신년 특집: 2024 아시아의 회고와 전망(7)
동북아시아의 2023년 회고와 2024년 전망
‘슈퍼 선거의 해’ 2024년은 친미·독립 성향 민진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대만 총통선거 소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21세기 시작과 더불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과거 냉전시대 미·소 양 진영의 군사력 위주의 대결 구도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정치·군사·경제·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전개되고 있다. 작년에 10주년을 맞은 중국의 일대일로(BRI) 정책과 미일동맹 주도의 대중포위전략인 인도-태평양(FOIP) 정책 간의 대결 구도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지정학적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동유럽과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의 연쇄 효과로 동북아시아에도 정치·군사적 긴장 상태가 초래되고 있다. 항존하는 지정학적 갈등과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정치적 포퓰리즘과 군사적 긴장과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2024년은 동북아시아에도 일촉즉발의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복합위기의 시대, 안팎으로 누란지위에 놓여 항상적 과잉반응을 드러내는 북한의 위험을 관리하면서 미·중 간 고래 싸움에 휘둘리지 않고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 나아갈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지혜와 결단이 긴요한 때다.
해가 다르게 불안정해지는 국제질서에 더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가는 정치적 포퓰리즘 기류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각국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게끔 만들고 있다. 더구나 2024년은 전 세계 76개국에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2억 명이 전국 단위의 선거를 치르는 ‘슈퍼 선거의 해’가 아닌가. 그 신호탄이 된 1월 13일 제16대 대만 총통선거에서는 친미·반중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 라이칭더(賴清德) 후보가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와 대만민중당 커원저(柯文哲)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 힘겨루기가 격화되어 가는 와중에 치러진 이 선거 결과는 올 한 해 양안관계에 몰아칠 험난한 파고를 예상케 한다. 이 결과가 일부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중국과 북한의 연결된 군사적 도발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동북아시아의 상수로 작동해온 지정학적 갈등이 올해는 과거 여느 때보다 주요한 변수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팬데믹 원년을 맞은 동북아 각국의 표정
2023년 포스트 팬데믹 원년을 맞아 동북아시아 각국의 명암은 엇갈렸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공통적으로 소비 침체와 유동성 급증, 부동산 경기 악화, 공급망 회복 지연 등으로 인한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적 반등 움직임 속에 디지털·그린 경제 확산, 공급망 재편 등 구조변화 대응과 신성장동력 마련 여부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 한 해였다. 하지만 한국에게 팬데믹 위기가 K-컬쳐 붐과 더불어 K-방역의 위상을 널리 알린 호기가 되기도 했던 반면, 가혹한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일관한 중국은 시진핑 체제의 어두운 단면을 노출하기도 했으며, 팩스와 수작업으로 감염자를 집계하는 ‘아날로그 지향’ 일본 사회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중국은 3년 동안 이어진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인해 주민들의 일자리와 소득이 줄면서 소비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중국 전체 경제의 25% 안팎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의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에서도 집값이 하락했고, 다수의 부동산 개발·금융 기업들이 유동성 악화나 파산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잃어버린 30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 터널을 지나면서 일본 경제는 기업 생산성이 저하되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전반적인 경제력이 더 취약해졌다. 2022년 기준 일본의 인구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8개국 중 21위로 밀려난 것은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3년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2023년 10월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동북아시아에도 전운을 감돌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강대국의 세력권이 대치하고 충돌하는 지정학적 지진대인 동북아는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일어난 유혈과 총성의 반향으로 새로운 대지진의 전조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제국몽’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대립 구도는 동북아 전역에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동북아 지정학적 구도의 현주소: ‘일대일로(BRI)’ vs ‘인도–태평양(FOIP)’
2023년은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정책이 10주년을 맞은 해였다. 2013년 시진핑이 카자흐스탄 방문 중에 공식화한 ‘일대일로’ 정책은 지난 10년간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중국은 BRI를 통해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위성 네트워크, 금융 및 투자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과 영역에서 자본, 기술, 상품, 인적 자원의 흐름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150개가 넘는 국가를 대상으로 200개 이상의 BRI 협력문서가 체결되었으며, 3천 건 이상의 사업이 착수되었고, 총 지출액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 10월 베이징에서는 BRI 10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 150개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 등 약 4,000명이 참여한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개최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의 지역 패권국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일동맹, 한미동맹, 쿼드, G7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왔다. 2017년 이후 미국의 ‘중국 포위 구상’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정책으로 요약된다. FOIP는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처음 공식화되었지만, 이를 처음 발표한 것은 2016년 아베 일본 총리에 의해서였다. 당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에서 아베 총리는 두 대양, 두 대륙을 결합하는 지리적 공간을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등 자유와 개방이란 양대 규범이 중시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작년 3월 기시다 수상은 FOIP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특히 인도를 중요한 파트너 국가로 간주하는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할 것을 강조했다. 일본은 팬데믹과 국제분쟁 등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네 가지 새로운 협력의 축을 제안했다. 법치주의의 중시, 인도-태평양 협력의 다면화, 다층적 연결성 강화, 바다만이 아닌 하늘을 포함한 안보 대응의 강화가 그것이다.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중국의 정체성 인식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일본의 해양 중심의 세력권 구상은 시진핑과 아베 시기(2012-2022) 중국과 일본의 지전략(Geostrategy)으로 동시대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21세기 접어들어 일본이 공세적 외교전략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있음은 주목할 변수이지만, 한국을 건너뛰고(Korea passing)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결집할 만큼의 자체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간 국가들 가운데 일본과 한국은 여전히 대외의존적 속성이 강하며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횡포에 취약하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은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해묵은 역사문제, 초계기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 등으로 쉽사리 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지지기반이 몹시 취약한 기시다 정부나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실질적 교섭력을 발휘하기는 난망한 상황이다. 동북아의 만성적인 지정학적 갈등구조에다 최근 동북아 안보 정세의 위험성이 가중되면서 한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슈퍼 선거의 해’ 2024년, 격화되어 가는 고래 싸움의 전망
연초의 대만 선거 결과, 총통선거에서는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의회에서는 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대만 선거가 중국-미국의 대리전 성격을 지닌 만큼, 중국-대만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사태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는 육상노선, 해상노선을 주축으로 극노선, 디지털노선으로 다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단지 저개발국가들의 자원 수탈을 위한 플랫폼으로 그칠지 혹은 글로벌 패권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중국의 성공적인 형질전환을 위한 초석이 될지 현재로서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1월 대만 선거에 이어 4월에는 한국 총선, 5월에는 인도 총선,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도 선거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각국 선거에서 정치적 혐오와 배타주의에 바탕을 둔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되면 탈세계화와 보호주의 경향은 강화될 것이고, 지정학적 위험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G7의 ‘대중국 견제’ 공동성명을 주도하는 등 미중경쟁을 강화해왔지만, 최근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크)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고자” 함을 강조하는 등 강온 양면노선을 취해왔다. 하지만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현실화한다면 그는 예전 대통령 재임기보다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 미국 우선주의가 심해지면서 무역과 대외정책에서 다자주의가 아닌 양자주의가 채택될 것이고, 미중관계는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의외로 트럼프와 시진핑이 담판을 지어 양국관계가 개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공산이 큰 한미동맹에는 먹구름이 끼게 될 것이다.
글로벌 복합위기의 시대, 동북아는 어디로
21세기 전 세계는 ‘글로벌 복합위기(Global Polycrisis)’의 시대를 맞고 있다. 자본주의 축적 위기와 불평등 심화, 패권 경쟁과 전쟁 위기,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 4차 산업혁명과 AI로 인한 노동과 정체성 위기, 공론장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등이 그것이다. 장기침체에 접어든 세계 경제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노동, 보건, 교육, 젠더의 격차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 혹한, 가뭄, 폭우, 폭설, 산불,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었고, 지구상의 약 38%에 이르는 생명이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로봇과 AI는 노동과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인류문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인류세(Anthropocene) 혹은 자본세(Capitalocene)에 의해 초래된 이런 총체적 난국에도, 공론장은 붕괴일로에 놓여 있고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 기능이 잃은 지 오래다. 진보적 대안이 아젠다를 펼칠 기회조차 상실한 상황에서, 오히려 복합위기에 편승하고 그것을 심화시키는 이들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위기의 근원에는 근대 서구 문명에 의해 창출된 시장만능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이율배반적 이중성이 자리잡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이러한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는 현장 중 한 곳이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큰 폭의 성장과 쇠퇴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창조적 파괴’를 자행해온 동북아 지역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2024년 동북아시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바야흐로 남북관계와 양안관계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임기응변과 더불어, ‘지구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결합하여 글로벌 복합위기의 극복 방안을 차분히 모색하는 심모원려가 동시에 필요한 때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아시아,동북아시아,일대일로,미중갈등,지정학,포퓰리즘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Lim, Hyun-Chin et al. (2023). Covid-19 in East Asia and Aftermath, Zininzin,
- 백범흠 (2022). 『전문가들을 위한 미·중 신냉전과 한국Ⅱ』. 늘품플러스.
- 정재호 (2021). 『생존의 기로: 21세기 미·중 관계와 한국』.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저자소개
김백영(kimby88@snu.ac.kr)
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