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삶,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 그리고 위태로운 이란

구기연 (아시아연구소)

2022년 이란의 거리는 왜 뜨거운가? 마흐사 아미니라는 한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 시위는 지금까지 억눌려온 이란의 정치, 사회, 경제 등 총체적인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운동이라 평가할 수 있다. 1997년 하타미 정권부터 형성된 이란 시민 사회 운동은 90년대 후반 대학생 시위, 2006년 백만 서명 운동, 2009년 녹색 운동, 온라인 인권 운동 그리고 2017년부터 시작된 민생 시위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체제에 대한 개혁을 시도해왔다. 한편, 이슬람 혁명 전후 망명과 이주를 한 이란인 디아스포라 미디어는 헤테로토피아로서 이란 내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 있다. 이란 시민들은 당국의 강력 진압 앞에서도 ‘연대하는 신체들의 힘’을 보여 주고 있으며, 전 지구적인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Alisdare Hickson, “Mahsa Amini #1”, 2022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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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민들은 왜 시민불복종을 선언하였는가?

2022년 이란의 거리는 왜 뜨거운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이란 안팎의 시위는 마흐사 아미니라 불리는 22세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쿠르드 소수민족인 그녀는 가족과 테헤란으로 여행을 왔다가, 지하철역 앞에서 지도 순찰대의 복장 단속에 걸리게 된다. 그녀는 여느 히잡 단속에 걸린 여성들처럼 재교육 센터에 이송되었다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9월 16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이후 한 달 가까이 이란 전역의 전 세대, 다양한 종족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은 “여성, 삶, 자유”,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연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시위는 히잡 단속에 분노한 여성들과 마흐사 아미니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의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시위 때마다 울려퍼지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는 원래 20세기 후반 쿠르드 자유 운동 당시 널리 쓰였고, IS에 대항하는 투쟁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 설립된 직후, 히잡의 강제화와 여성에 대한 샤리아법 적용에 항의하는 대규모 여성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히잡 문제는 1981년 법제화된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언제나 개혁적인 여성들과 이슬람 정권 사이의 ‘문화적 전쟁터’였다. 하지만 이번 시위처럼 히잡을 불에 태우거나, 많은 여성이 연대하여 거리에서 히잡을 벗고 ‘여성 인권’을 외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이번 시위가 단순히 히잡 강제 착용이나 단속에 대한 여성의 저항만은 아니다. 그동안 쌓여온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문제가 이번 시위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부가 JCPOA(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물가는 40% 이상 치솟았고, 청년 실업률은 2020년 기준 28%를 웃도는 수준이다. 폭력적인 유혈 진압 앞에서 어떻게 시위를 지속할 수 있는지 묻는 필자에게 이란의 40대 지인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의식주가 달린 문제이다. 우리의 아들딸들을 계속 이 정권의 노예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울부짖었다.

오늘날 이란 시위의 출발점은 1997년 하타미 정권 이후부터이다. 이란의 젊은 세대는 늘 이란의 변혁과 개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2006년 시작된 이란 여성들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 2009년 녹색운동, 2014년부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작된 강제 히잡 착용법에 대한 해시태그 운동, 그리고 #LETWOMENGOTOSTADIUM(여성의 프로축구 관람을 허용하라)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란 여성들은 언제나 ‘용감한 사자들’이었다. 이란 여성을 필두로 한 젊은 세대는 자신들을 짓누르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해 왔고,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드높였다.

‘우리의 목소리’: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의 연대의 힘

지난 9월 25일 서울의 테헤란로에서 첫 연대 시위가 열렸을 때 영국에 기반을 둔 ‘이란 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의 기자가 시위 내내 촬영을 하여 생생한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송출하였다. 이 보도는 뉴스 방송 영상으로 만들어져 이후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었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이란 내 미디어 환경에서 이란 시민들의 휴대전화 안에 담긴 영상들은 어떻게 밖으로 전해지고 있을까? 그 역할은 이란 내 언론이 아닌, 이란 밖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이주민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물론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이 전해지는 데에는 이란 개혁 신문 <샤르그>의 기자인 닐루파 하메디의 용감한 취재의 힘이 컸다. 하지만 현재 하메디와 함께 마흐사 아미니의 장례식을 취재했던 사진기자 얄다 메이리를 비롯한 최소 17명 이상의 언론인이 구속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국내 언론은 지금의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언론사의 존폐와 신변의 위협이 있는 가운데, 지난 2009년 대선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던 녹색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BBC Persian>이나 <Iran International>, <manoto>와 같은 채널들이 국내 언론사가 통제에 묶여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채워주었다. 이와 같은 초국가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이슬람 혁명 이후 끊임없이 이주와 망명의 역사를 이어온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을 검열하고 위성 수신기를 범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정권은 수천만 명의 이란인들 사이에서 뉴미디어가 빠르게 확산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다. 위성 미디어를 비롯한 뉴미디어의 규모와 중대성은 2009년 대선의 여파로 재확인되었다. 녹색운동 동안 백만 명의 시민들이 투표 조작에 항의하고 선거 결과의 무효화를 요구하기 위해 전국 거리로 나왔다. 국내 독립 미디어 매체가 없는 상황에서, 개별 시위자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뉴스, 이미지, 비디오를 외부에 전파했다. 유엔, 유럽 연합, 인권 단체 및 기타 국제기구들을 통해 혁명수비대의 철권 통치와 경찰의 탄압이 알려지면서, 이란 정부는 전지구적인 비판과 시선을 받게 되었다.

이에 아흐마디네자드 2기 정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통치자들은 미디어에 대한 통제와 검열을 새로이 강화하였으며, 국가 인터넷 구축을 가속화 하였다. 하지만 2013년 대선에서 중도파 정치인 하산 로하니가 승리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고 국가 정책에 균열이 생겼다. 로하니 정부는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사업자들에게 3G와 4G 라이선스를 부여했고 메시지 앱인 텔레그램을 차단하라는 압력에 저항했다. 이러한 변화된 통신과 미디어 완화 정책의 결과, 200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2017~18년 시위 당시 소셜미디어는 중요한 확산의 창구로 기능했다. 이란에서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포함한 뉴미디어는 반정부 시위를 억압하는 국가의 힘을 약화시켰다. 2017~19년 전국적인 시위 확산을 통해, 이란 권위주의적 통치 아래의 뉴미디어 기능과 중요성을 정권과 대중 모두 인지하게 된 것이다, 2009년을 비롯한 2017~18년 대규모 시위는 이란 제2의 도시인 마슈하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끊임없이 전송되고 확산되는 사진과 동영상 파일들은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위성 미디어채널의 뉴스에서는 진압 경찰의 잔혹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란 내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마다 이란 당국은 며칠 동안 위성방송을 비롯하여 인터넷을 차단하였다.

이번 시위에서도 이란 당국은 필사적으로 이란 내부의 인터넷망을 차단하고 있다. 현재 이란에서 인터넷은 새벽 2시가 넘어야 접속이 가능하고, 아침 7시 전후로 접속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신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들을 한밤중에 VPN을 통해 해외 디아스포라 미디어에 끊임없이 보낸다. 그 영상을 전하는 이란 시민들의 목소리는 공포에 떨고 있으며, 영상 속에는 촬영자의 울음과 분노가 섞여 있다.

이란 국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거나, 이슬람 정권에 반하는 사회 운동이 진행될 때 위성 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이란 내 변혁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왔다. 특히 2009년 이란 녹색운동 이후부터, 위성 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이란 국민이 국내, 그리고 국외의 ‘연대하는 신체들의 힘’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검열의 칼날을 피해 가는 미디어일 경우 거리의 신체들을 보다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며”, “지역 거리의 현장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시공간을 재현해 낼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란의 디아스포라 미디어는 글로벌 연대성을 끌어내는 정치력을 가지게 되며, 이번 시위에서도 ‘주체적인 연대하는 신체들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이란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이란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싸울 것이다. 죽을 것이다!”

2022년 9월에 발발한 이란의 시위는 한 달 가까이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10월 1일 토요일 글로벌 연대 시위에는 151개국의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이 참가했다. 2020년 우크라이나 항공 737여객기 사고로 82명의 이란인과 63명의 이란계 캐나다인들을 잃었던 토론토에서만 5만 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이란 내에서도 10월 8일을 기준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적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일 발송되는 이란 내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처참할 정도이다. 10월 10일까지 이란의 사망자는 14세, 16세 소년·소녀 19명을 포함해 최소 185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2022년 이란은 위태롭고, 시민의 삶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40년 넘게 견고하게 유지돼온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최대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란은 리알 가치의 하락 등 2017년 말부터 지금까지 이란이 겪어온 경제난으로 인해 전통적인 이슬람 정부 지지 세력인 시장 상인과 노동자 계층, 교사들까지 연이은 파업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젊은 이란’을 이루는 청년 세대들의 심각한 실업률과 인권 문제 등은 이란의 평화와 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시리아는 잊어라! ‘우리’부터 생각해!”,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우릴 위해 희생하리라!”는 새로운 정치구호에서 드러나듯이, 이란 시민들은 대외적으로 오해받는 것처럼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이스라엘에 맞서 무슬림 형제들을 구하겠다’는 포부는 더 이상 없다. 더욱이 2019년 11월 유가 인상으로 촉발된 경제난으로 일어난 최악의 대규모 유혈 시위와 한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된 현재의 시위까지 앞으로 이란의 정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토록 원하고 기대하던 이란 핵협상 역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물론 이번 시위로 이란 신정 체제가 쉽게 무너지리라 예측하는 이는 없다. 시위가 지속될수록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발루체스탄이나 쿠르디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강경 진압이 예상되며, 정부의 강도 높은 공포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한다고 해서 이슬람 정권이 원하는 ‘정권의 안정’은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19년과 2022년 시위에서 보여 준 이슬람 정권의 잔혹한 탄압에 대한 시민의 반발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갑작스러운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미 이란의 역사는 혁명으로 그 과정을 증명한 바 있다. 현재 대학생, 바자르 상인들, 석유화학 노동자, 변호사 그리고 중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시민들은 두려움 앞에서도 ‘자유’를 외친다. 보안군의 총부리와 강력 진압 앞에서도 “이란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마음은 결코 이 시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41호 (2022년 10월 17일)

Tag:
2022 이란 시위, 마흐사 아미니, 시민불복종운동, 이란 여성, 히잡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구기연 (2022). “저항하는 헤테로토피아 공간으로서의 이란 위성미디어와 경합하는 정체성들.”『중동문제연구』 21권 2호, 325-358.
  • 구기연 (2019). “혁명 거리의 소녀들(#GirlsofRevolutionStreest)”:해시태그 정치를 통한 이란 여성의 사회운동.” 『비교문화연구』 25권 1호, 5-43.
  • Sohrabi, Hadi (2021). “New Media, Contentious Politics, and Political Public Sphere in Iran.” Critical Arts 35(1), 35-48.
  • Sydiq, Tareq (2022). “Youth Protests or Protest Generations? Conceptualizing Differences between Iran’s Contentious Ruptures in the Context of the December 2017 to November 2019 Protests.” Middle East Critique 31 (3), 201-219.
  • Ziya, Onis (1991). “The Logic of the Developmental State.” Comparative Politics 24, October, 109-126.

저자소개

구기연 (kikiki9@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법무부 난민위원회 자문위원
전) 한국문화인류학회 연구위원

저서와 논문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만들기』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7).
“국제 사회의 여성 인권 규범과 이슬람권 내 페미니즘의 흐름과 동향: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례를 중심으로.” 『아시아리뷰』 12권 1호, 2022.
“미완의 혁명 그리고 위태로운 삶: 이란 녹색운동과 튀니지 재스민혁명 그 후 10년.” 『아시아리뷰』 아시아리뷰 9권 2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