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가 바라본 인공지능과 웹툰

이대양(웹툰 작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불과 수년 전까지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예술가를 비롯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직업만이 살아남을 거라 했지만, 막상 가장 먼저 벼랑 끝에 몰린 직업은 예술계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시대에 웹툰 작가의 길을 선택한 공학박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림 1> 공학박사가 바라본 인공지능과 웹툰

공학박사는 어쩌다 웹툰 작가가 되었나

아내와 나는 서로가 대학생일 때 만났고, 4년 반의 연애 끝에 2010년 결혼했다. 그 사이 의대생이던 아내는 산부인과 전공의가 되었고,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3년 후, 아내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어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기 시작했고, 나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본격적인 논문 연구를 시작했다. 각자의 인생 계획을 따라 달리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우리도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나?”

30대 중반의 나이.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는 고위험 산모(만35세 이상)의 기준이 코앞에 왔는데 임신과 출산을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친할머니에게 맡기자는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는 임신을 준비했다.

아이를 갖는 과정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술을 끊고, 운동하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던 가운데 드디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는 우울에 빠졌고,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의 존재가 우리 인생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는지 처음 실감했다. 여러 고민 끝에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만약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땐 내가 아이를 키워보고 싶어.”

그 한마디가 아내에게 용기를 주었고, 다음해 우리는 소중한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난 학위논문만을 남겨놓은 박사학위를 중단했다.

<그림 2> 사랑스러운 아들 레서의 모습

이후 아이를 키운 3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고, 또 많은 것을 가져갔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아이와의 신뢰 관계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다. 처음 아이를 키울 때 육아의 모습은 나의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똥 치우기, 밥 먹이기, 잠재우기의 쳇바퀴를 1년 가까이 반복하며 느꼈던 자괴감은 인생 첫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그 시간의 가치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고, 아이는 나를 따르고 신뢰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한 덕분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지금도 9시 정도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박사학위를 마무리 짓고, 웹툰 작가로 주간연재를 이어갔던 배경엔 일찍 자고 깊이 자는 아들이 있었다.

육아가 나에게 앗아간 제일 큰 것은 공학박사로서의 경력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대학원에 복귀해 1년 만에 학위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3년의 공백은 나의 이력서를 보내기조차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서울대학교의 간판 덕분인지 몇몇 기업에서 자리를 제안해 주었지만, 근무 시간이나 환경때문에가족과의 단절을 각오해야 했다.

긴 고민 끝에, 오랜 꿈이었던 작가의 길에 정식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그동안 책도 내고, 포털 연재도 하고,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당선되었었지만, 몇 번의 실패와 좌절 끝에 취미에 만족하기로 타협한 길이었다. 어떤 작품을 쓸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요즘 웹툰이 인기던데, 당신 육아 웹툰을 그려보는 건 어때?”

이미 웹툰과 웹소설 시장에 대한 조사를 마쳤던 난, 육아물은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라고 일축했지만, 그 뒤에 나온 한 마디는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 많은 작품 중에 남자가 전업으로 육아를 하고, 학위를 포기하고, 경력 단절로 고민하는 내용이 있어?”

맞벌이 비율이 40%를 넘어선 지 십수 년이 된 시점에서, 그런 고충을 담은 작품이 마땅히 없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왔고,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5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정식 작품으로 데뷔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두 번째 작품 <닥터앤닥터 병원일기>를 내놓으면서, 가장 크게 와닿는 변화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의 돌풍 내지 범람이다. 인공지능은 창작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웹툰과 인공지능

<그림 3> 인공지능 이미지 저작권 논란의 중심이 된 작품 Zarya of the Dawn. 이미지출처: 미국저작권청(USCO)

2023년 2월21일. 미국저작권청에서 흥미로운 결정이 내려졌다.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소프트웨어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한 그래픽 노블 <새벽의 자리아(Zarya of the Dawn)>의 저작권 중 이미지 저작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원작자는 인공지능에게 키워드를 입력하는 과정 및 이미지를 선정하는 과정 또한 인간의 창의적 영역이라고 맞섰지만, 아직까지 인공지능 이미지의 저작권은 인정받지 못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이 결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도구의 가능성을 잘랐다는 의견도 있었고, 창작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생존권을 지킨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4년차 웹툰 작가로 활동하며 바라본 인공지능 저작권 이슈는 흑백의 문제보다 회색에 가깝다. 네이버웹툰은 2021년 웹툰AI페인터(https://ai.webtoons.com/ko/painter)라는 인공지능 채색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선화를 바탕으로 사물을 분석하고 채색하며,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힌트 색을 지정해주면 자동으로 연관된 부분의 색을 수정한다. 오른쪽 눈의 색을 수정하면, 왼쪽 눈의 색도 함께 수정되는 식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아직 모든 작품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퀄리티와 범용성을 보여주진 못한다. 예를 들어 현재 연재중인 나의 작품 <닥터앤닥터 병원일기>의 경우 등장인물이 모두 동물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색상이나 형태가 사람과 다르다 보니 AI페인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보편적인 작화에서는 수년 안에 평범한 어시스트 수준은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널리 쓰이고 있는 인공지능 툴이라면 2023년 3월 업데이트 된 클립스튜디오의 자동 음영 기능과 핸드트랙커를 들 수 있다. 자동 음영 기능은 2D 이미지에 광원 위치를 표시하면 그림자 영역을 생성해주고, 핸드트랙커는 캠으로 손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3D포즈 모델에 반영해주는 기능이다. 이 같은 도구들을 활용한다고 해서 해당 그림의 저작권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그림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일러스트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텍스트를 바탕으로 배경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인공지능은 어떨까? 기본 구도와 주요 특징을 사람이 그렸으니 고유한 창작물로 인정해야 할까? 배경은 인물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니 전체 이미지의 저작권엔 영향이 없을까? Novel AI를 필두로 발표되고 있는 이 기능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저작권 논란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안에 인공지능을 둘러싼 저작권 이슈는 다양한 회색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양분하는 과정만큼이나 혼탁해질 것이다.

<>를 연구해야 하는 시대

그 논란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출판 만화 현장에 디지털 작업이 도입된 결과에서 찾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교지편집부에서 신문을 만들었다. 불과 20년이 조금 더 된 일이지만, 당시 출판물에 포함된 그림에 그림자를 넣기 위해선 스크린톤이라는 점무늬 필름을 일일이 커터칼로 잘라 모양에 맞춰 붙였다. 이 시절 만화란 취미로 하기엔 너무나 노동집약적이고 값비싼 일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되면서 스크린톤 작업은 몇 번의 클릭이 대신하게 되었고, 필름 비용도 들지 않게 되었다. 노동량의 감소는 곧 진입 장벽의 완화를 의미했다. 취미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경쟁자의 증가는 새로운 수준의 퀄리티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 한쪽 가지 끝엔 매주 6-70컷의 칼라 원고를 작성하는 웹툰이 있다. 웹툰 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도전만화엔 매일 50~100편 정도의 작품이 올라온다. 기존에 없던 차별성, 범접하기 힘든 퀄리티, 혹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보는 재치, 적당한 운 등이 없으면 빛을 보기 힘든 시장이 되었다. 인공지능 도구들의 등장은 이 추세를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도구를 활용할 때 홀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면, 몇몇 장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품질이 떨어져 보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도구에 의존하게 되면 소위 말하는 공장에서 찍어낸 그림으로 수렴하게 된다. Webui와 같은 인공지능 도구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특정 작가의 그림만을 학습시키는 경우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권리가 없는 제3자가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할 경우 새로운 형태의 저작권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작가 본인이 자신의 그림을 학습시켜 이후 작업에 활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한다면, 주요 피사체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학습 데이터와 그 권리관계가 명확한 경우에만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기술의 최대 수요처는 만화보다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시장이다. 결국 <내>그림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컨텐츠가 빠르게 재생산되는 시대가 오리라 예상한다.

다른 지식 산업의 미래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제 열심히, 오래 일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결과물이 손쉽게 만들어지고, 대량으로 만들어질수록 차별성을 가지는 것은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이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재미있고, 어떤 게 편리하고, 어떤 게 불쾌한지 집중해서 느껴야 한다. 나는 가지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최고의 무기는 경험과 감정, 감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나>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28호 (2023년 6월 5일)

Tag: 닥터베르,웹툰,AI,인공지능,저작권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대식 (2023). “챗GPT에게 묻는 한국의 미래”. 『아시아 브리프』 3(21).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마경태 (2023). “생성모델과 AI거버넌스”. 『아시아 브리프』 3(22).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이강재 (2031). “인공지능과 고전학 연구”. 『아시아 브리프』 3(23).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이수현 (2023). 『미국 저작권청 「Zarya of the Dawn 저작권 등록 취소 결정」 검토보고서』.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자소개

이대양(dr-ber@naver.com)

현) 닥터베르 스튜디오 대표, 네이버웹툰 <닥터앤닥터 병원일기> 연재 중.

 

주요 저서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1-2권』 (더북컴퍼니, 2006)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1-6권』 (북폴리오, 2021, 2022)
『과학특성화 중학교 1-3권』 (뜨인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