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발전주의 도시화와 국가 공간

박배균 (서울대학교)

지난 70여 년간 동아시아는 급격한 도시화를 경험하였다. 이 도시화 과정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발전주의 국가의 공간 전략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자본 축적의 효율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된 ‘예외공간’의 생산이 발전주의 도시화 과정의 근본적 뼈대를 이루었다.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토의 개방을 통한 자본축적의 촉진과 국가 영토성 보호 사이의 긴장을 다양한 ‘예외공간’의 적극적 개발을 통한 ‘공간선택적 세계화’ 전략으로 우회하였고, 그 결과로 국토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국가 영토성에 균열을 초래하여 중앙 정부의 자원 동원과 배분을 둘러싼 지역·도시 간의 극심한 경쟁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토건적 개발사업이 국토 전반에 걸쳐 과도하게 펼쳐지는 한 배경이 되었고, 이로 인해 환경 파괴, 투기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앙등, 공간적 불균등의 악화 등과 같은 문제는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그림> 아시아의 25개 거대 도시 지역 ⓒ아시아 브리프

발전주의 도시화란?

2차 세계대전 직후 1950년대에 동아시아는 전반적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수준이 매우 낮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위치한 동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가 많이 진전된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들 동아시아 국가의 도시화 과정은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이 도시화 과정은 국가의 공간성과는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동아시아의 현대 도시화 과정은 ‘발전주의 도시화(developmental urbanization)’란 개념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포스트 식민주의와 냉전 지정-지경학의 맥락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소위 ‘발전주의 국가’들이 국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발전주의 도시화’는 그러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이 도시의 성장과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1960, 70년대,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는 국가 차원의 산업적 발전을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자본과 노동을 집약적으로 동원하였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대규모의 산업 인프라와 도시기반시설의 건설에 가용 자원을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간적으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공간적으로는 정치, 경제적 중요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압축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예외공간의 생산과 불균형 발전

이러한 발전주의 도시화의 과정은 주로 국가에 의한 ‘예외공간(spaces of exception)’의 창출을 통해 구현되었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지배 엘리트들은 국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산업단지, 경제특구, 수출가공구, 수출자유지역, 아파트지구 등과 같이 공공 자원과 제도의 특혜가 주어지는 예외적 구역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로 인구와 산업이 이들 예외공간들을 중심으로 집중하고 도시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러한 발전주의적 공간 전략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탈식민주의화 경향과 냉전 지정-지경학의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에 부여된 ‘국가 만들기’라는 또 다른 중요한 정치적 과업과 내적으로 충돌되는 모순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한국, 대만), 전쟁에서의 패망 및 구질서의 해체(일본), 냉전적 대립의 심화(한국, 대만, 일본) 등과 같은 불안정하고 혼돈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의 지배 엘리트들은 그동안 형성이 지연되었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던 근대 국가를 (다시) 만들어서 안정된 정치-경제-사회적 질서를 형성해야 하는 긴급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에 부여된 이 ‘국가 만들기’라는 과업은 ‘발전주의적 경제성장’이라는 또 다른 과업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기도 하였다. 경제의 성장과 그를 통한 부의 증진은 지배 엘리트가 추진하는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발전주의적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과 노동의 집약적 동원은 경제 민족주의에 기대어 국민들을 하나의 이해관계로 묶는 영토적 상상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 만들기’와 ‘발전주의적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국가 프로젝트는 불가피한 모순관계에 놓여있기도 했다. 먼저 탈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추진된 ‘국가 만들기’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는 민족주의적 영토의식을 기반으로 한 국가 영토의 안정성과 통일성, 그리고 내적 응집력을 높이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엘리트들은 자본 축적의 효율화를 위해 압축적 국토개발을 도모하였는데, 특히 국가의 재정적, 제도적 특혜가 집중되는 산업단지, 임해공업단지, 수출자유지역 등과 같은 예외공간을 일부 선택된 지역에 건설하여 ‘성장극(growth pole)’과 집적 경제를 발전시키는 공간 전략을 추진하였다(손정원, 2006). 그 결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주의적 경제성장 전략은 전 국토에 걸친 균등한 부의 증진과 발전을 이루기 보다는 ‘산업화의 섬’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선별된 예외 공간을 중심으로 산업과 도시의 발달을 촉진하였고, 이는 국토공간의 극심한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의 영토적 응집력을 저해하여 ‘국가 만들기’ 과업에 지장을 초래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60, 70년대 동아시아 각 국가의 지배 엘리트들은 국토의 균형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예, 1960년대 일본의 전국종합개발계획, 1970년대 한국의 국토종합개발계획 등). 하지만, 지역격차는 부의 공간적 분배뿐 아니라 사회계층적 분배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효과적임에도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지역균형 정책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형평을 위한 진지한 노력 없이 지역 간 자원의 분배에만 치중하여 추진되다 보니 지역격차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공간선택적 자유화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의 지역균형 정책은 그 내재적 한계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시대적 전환 속에서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1990년대가 되면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전 등과 같은 국제 지정-지경학적 상황의 변화와 민주화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 내부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강력한 국가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기댄 발전주의적 경제성장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1997년의 금융 위기는 동아시아 발전주의의 급속한 몰락과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초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증가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초국가적 차원에서 유동하는 자본을 유치하기 위하여 국가의 영토성을 상대화하고 유연화하여 보다 개방화된 자본축적의 공간을 창출하려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개방화와 자유화의 시도는 발전주의 체제의 유산 속에서 존재하는 기존의 영토화된 기득권과 사회관계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하여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처럼 전 국토에 걸친 전면적인 개방화와 신자유주의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지배엘리트는 예외공간의 설치를 통해 선별된 지역에 ‘공간 선택적 자유화(spatially selectived liberalization)’를 허용하는 우회로를 택하였다(Park, 2005). 이러한 공간 선택적 자유화의 결과로 동아시아에서는 2000년대 이래로 경제자유구역, 국제자유도시, 금융허브, 국제전략특구, 자유무역시범구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의 예외공간들이 경쟁적 우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지역에 전략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예외공간들은 동아시아 국가들 영토 내부의 차별성을 강화하면서 지역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표> 동아시아의 예외공간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발전주의 예외공간 수출산업공단, 대도시공업지역 (1960년대)

수출자유지역, 동남해안 산업기지, 중화학 공업단지 (1970년대)

서남해안 국가공단, 과학산업단지, 민간공업단지, 관광단지 등 (1990년대)

아파트지구 (1976년)

택지개발지구 (1980년)

임해부 4대 공업지대 중심의 중화학공업 기반 정비와 기초 인프라 정비 (1950-60년대)

신산업도시지구 (1962)

공업정비 특별지구 (1964)

테크로폴리스 정책 (1980년대)

산업클러스터 계획 (2000년대)

일반 산업단지 (1950년대 ~)

가공 수출구 (1960년대)

과학기반산업단지 (1980년대)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 (1984 ~ )

지방급 개발구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예외공간 외국인투자지역 (1998년)

제주국제자유도시, 경제자유구역 (2000년대)

구조개혁특구 (2002년)

총합특구 (2011년)

국가전략특구 (2013년)

자유경제시범구 시도 (2008년) 자유무역시범구 (2013년부터)
체제전환형 예외공간 개혁개방기 경제특구 (1980년대)

국가급 신구 (1990년대)

종합형 개혁시험구 (2000년대)

출처: 박배균·이승욱·조성찬 편(2017). 16-102.

도시화와 국가 영토성 간의 긴장, 그리고 토건국가

발전주의 국가의 유산 속에서 동아시아의 도시화는 지속적으로 예외공간의 창출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화 과정은 국가의 영토성에 지속적으로 내적 균열을 만들어내면서 국가 공동체에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다양한 예외공간의 형성으로 인해 공간적 불균형이 심화되고, 지역 간 긴장과 갈등의 잠재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도시화와 국가 영토성 사이의 이러한 긴장으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통적인 문제를 지니게 되는데(구체적 모습은 상이하지만), 그것은 중앙정부의 자원을 둘러싼 지역·도시 간의 극심한 경쟁과 그로 인한 토건적 개발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이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도시 정치의 일반적 특징 중의 하나는 지역개발 사업에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지방 행위자들의 정치적 동원이 매우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행위의 의도적 공간 선택성으로 인해 국가 내부의 공간적 불균형이 지속·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여 예외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지역과 도시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과거 경험의 소산이다. 지역 간의 과도한 경쟁 속에서 동아시아의 중앙 정부는 지방에서 추진하는 개발 사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토건적 개발에 국가의 자원이 과도하게 쏠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박배균, 2012; 김은혜·박배균, 2016). 이는 지역 간 경쟁을 일시적으로 무마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개발주의의 심화로 인한 환경 파괴, 투기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앙등, 공간적 불균등의 악화 등과 같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의 발전주의 도시화는 그간 투기적 도시화의 심화와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급등, 주거 문제의 악화와 같은 문제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투기적 도시화의 문제와 함께 예외공간 전략에의 과도한 의존으로 인한 국토 불균형의 심화, 그로 인한 토건적 개발주의의 성행은 발전주의 도시화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14호 (2023년 3월 13일)

Tag: 발전주의도시화,예외공간,특구,지역균형,불균등발전,국가공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은혜·박배균(2016). 「2000년대 이후, 일본의 국가 스케일 재편과 특구 전략」. 『공간과 사회』 26(2): 10-43.
  • 박배균·이승욱·조성찬 편(2017). 『특구: 국가의 영토성과 동아시아의 예외공간』. 알트.
  • 박배균(2012). 「한국 지역균형정책에 대한 국가공간론적 해석」. 『기억과 전망』 27: 81-130.
  • 손정원(2006). 「개발국가의 공간적 차원에 대한 연구: 1970년대의 한국의 경험을 사례로」. 『공간과 사회』 25: 41-79.
  • Park, Bae-Gyoon (2005). “Spatially selective liberalization and graduated sovereignty: politics of neoliberalism and ‘special economic zones’ in South Korea.” Political Geography 24: 850-73.

저자소개

박배균(geopbg@snu.ac.kr)

현)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장
전)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지리학과 조교수, Territory, Politics, Governance 공동편집장

주요 저서

Developmentalist Cities? Interrogating Urban Developmentalism in East Asia. (공저), (Brill, 2018)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 투기 지향 도시민과 투기성 도시개발의 탄생』 (공저), (한울, 2017)
『특구: 국가의 영토성과 동아시아의 예외공간』 (공저), (알트, 2017)
『국가와 지역』 (공저), (알트, 2013)
Locating Neoliberalism in East Asia: Neoliberalizing Spaces in Developmental States. (공저), (Oxford: Blackwell,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