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튀르키예 지진(1)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과 튀르키예 및 주변국 관계의 변화가능성

권성준 (에르지예스대학교)

스웨덴, 핀란드의 NATO 가입에 대한 이견 차이로 튀르키예와 서방국가 간의 냉기류가 흐르던 와중,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이후 최대규모, 최다 지역에 피해를 끼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러자 불편한 관계인 스웨덴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이 튀르키예에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튀르키예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년째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를 두고 대립하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무력충돌을 비롯한 주변국 정세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튀르키예의 균형주의 정책(Denge politikası)에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림 1> 튀르키예 울린 한국 작가의 그림 한 장
주)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를 돌봐 주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과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아이들을 돕고 있는 한국 긴급구조대의 활동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함.
출처: 명민호 작가 인스타그램(@93.minho).

튀르키예 지진 발생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남동부에 위치한 카흐라만마라쉬(Kahramanmaraş)와 가지안텝(Gaziantep) 사이에서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이후 최대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진앙지인 카흐라만마라쉬와 가지안텝을 포함한 10개 도에서 공식 통계로 4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3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지진 발생 직후 세계 각국은 구조인력과 물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지원의 물결에는 현재도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미국과 서방 진영, 반서방 진영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튀르키예와 역사적, 정치적인 이유로 불편한 관계인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현재 NATO 가입에 있어 튀르키예와 갈등 중인 스웨덴 모두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인적, 물적 지원을 했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한 상황이다.

<그림 2> 진앙지에서 매우 가까운 카흐라만마라쉬 중심가의 아파트단지 26개가 붕괴한 현장  
출처: 2023년 2월 9일, 필자 현지 촬영

국제외교에서 튀르키예의 위치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지대에 위치해 있으나 정치,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튀르키예는 유럽 국가의 일원에 가깝다. 현재 튀르키예 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1912년 발칸전쟁 이전까지도 남동 유럽에 상당한 영토를 보유하고, 유럽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튀르키예는 유럽연합 가입 후보국, 유럽 평의회 회원국,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서 유럽, 특히 냉전 시기 서방진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에르도안 정부 집권 이후, 튀르키예는 ‘스프르 프로블렘(Sıfır Problem)’ 즉, 주변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외교 행보를 밟아왔다. 서쪽의 그리스부터 시작해 불가리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의 지중해 너머 키프로스, 북쪽의 흑해 너머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인접한 튀르키예는 같은 튀르크계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주변국과 크고 작은 갈등 관계가 있었다.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한 나라였지만, 19세기 민족주의 운동의 발흥으로 1832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이들 나라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비롯된 갈등들이 현재까지도 이 지역 정치, 외교에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비록 제국은 망했지만, 튀르키예 공화국은 여전히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에 비하면 큰 영토와 인구,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강국이다. 튀르키예는 1974년 키프로스 전쟁,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21세기 이후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 등 주변국의 분쟁에 개입하여 이권을 챙기면서 주변국과 갈등 관계는 다시금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에르도안 정부가 집권한 이후, 공화국 수립 이후 무관심했던 중동지역과의 교류 확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냉전시기에는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맞선 NATO의 일환으로서 튀르키예와 서방국가들은 단결해왔으나, 1974년 키프로스 전쟁 당시 키프로스 내 튀르크인의 생존권 보장, 마카리오스 3세 키프로스 대통령의 복권을 명분으로 튀르키예군이 개입하자 같은 NATO 회원국인 그리스와 갈등이 생겼다. 이 와중에 튀르키예의 EU 가입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되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정책 변화를 모색한 에르도안 정부는 서방과 갈등을 빚었다. 2015년 샤를리 엡도 무함마드 만평 테러 사건, 2020년 사뮈엘 피티 피살 사건으로 인한 유럽 내 반이슬람 여론이 고조하자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반발했으며, 표현의 자유와 신성한 가치의 존중 주장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서방국가 일부 (프랑스, 독일 등)와 튀르키예의 정치, 외교적 갈등이 더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으로 대표하는 각각의 보수우파 세력들을 자극하여 유럽에서 반이슬람 극우정당들이 집권하고, 튀르키예에서도 케말주의로 대표되는 강경한 세속주의적 원칙들이 약화되고 있었다. 또한 2016년 7월 15일,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사건 이후 쿠데타 참가자들과 지도자 페툴라 귈렌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미국, EU국가들이 인도적 이유를 내세우며 쿠데타 참가자들의 인도를 거부함으로써 갈등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지정학적 이점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튀르키예는 서방, 반서방 세력 양쪽 모두에게 있어 중요한 위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야 대양으로 나갈 수 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제권은 튀르키예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1936년 해협의 체제에 관한 몽트뢰 협약을 근거로 러시아 군함의 보스포루스 해협 진입을 막았다. 흑해협약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안전한 곡물 수출을 보장함으로써 애그플레이션 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구원했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도 얻었다. 서방국가들에게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막음으로써 러시아 해군의 흑해배치를 차단하고, UN의 러시아 규탄안에 튀르키예도 동참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고, 그럼에도 대 러시아 경제제재에는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NATO 회원국이면서도 양다리를 걸치는 듯한 튀르키예의 행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NATO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과 우호관계가 있는 나라이며, 실제로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여러 차례 튀르키예에서 회담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입지는 NATO 내에서 튀르키예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대지진 이후 외교관계

대지진 직후, 최근 러시아제 S-400의 도입, F-35 프로그램의 퇴출, 시리아 내 쿠르드족 문제 등으로 갈등 양상을 보이던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튀르키예에 대한 지원을 시사하였다. 튀르키예와 미국은 동맹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실제로 구조대와 물자를 지원하면서 관계 개선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어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일본, 심지어 NATO 가입 문제로 갈등하던 스웨덴과 팔레스타인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이스라엘도 잇달아 위로 메시지와 실질적인 지원을 하면서 그동안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대립하던 서방권과 튀르키예의 관계개선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도 튀르키예에 구조지원과 물자지원을 함으로써 서방 진영과 러시아 모두 튀르키예에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서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에 대해 위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지원을 보내는 것은 사실 흔한 일이다. 하지만 서방국가들과 러시아 양쪽 진영 모두가 튀르키예에 보내는 메시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당사국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외교적 움직임을 고려해본다면, 이 메시지는 양 진영 모두 튀르키예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내세우는 튀르키예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러브콜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2월 현재 양군은 참호전 상태로 대치 중이고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항로와 유럽국가들에 천연가스, 석유를 공급하고 러시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유일한 통로 ‘바쿠 트빌리시 제이한 파이프라인(Baku-Tbilisi-Ceyhan Pipeline)’이 튀르키예를 지난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자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NATO 회원국이 튀르키예이므로, 튀르키예는 대 서방교섭에서 중요한 대화상대이다. 또한 13년째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는 튀르키예와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의 종식을 위해서는 반군을 지원하는 튀르키예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대립에서도 양국은 서로 다른 국가를 지원하고 있고, 이쪽에서도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대화에 나서고 있다.

EU입장에서는 튀르키예와 체결한 난민송환협정에 따라 시리아, 이라크에서 발생한 난민들을 튀르키예에 묶어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더더욱 튀르키예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해졌다.

향후의 추이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지진 당시 중국과 일본은 각국의 인도주의적 손길과 동정적 여론에 힘입어 자국의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일본 못지않게 지진이 잦은 튀르키예의 경우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당시 그리스의 인도적 지원과 같은 해에 발생한 그리스 지진 당시 튀르키예 측의 인도적 지원으로 양국관계의 개선을 이룬 바 있다.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 이후 1992년 이래 국경을 폐쇄했던 아르메니아가 튀르키예를 지원하기 위해 물자와 구조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튀르키예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국가들도 튀르키예에 인도적 지원을 보냄으로써 관계개선의 계기가 열렸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서방진영과 러시아의 ‘신냉전’ 구도 속에서 양대 진영 모두 튀르키예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냄으로써 튀르키예는 지진이라는 대재난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외교적으로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균형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튀르키예의 외교 기조는 큰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튀르키예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국가들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고, 각국 정상들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현시점에서 튀르키예와 주변국 관계는 기존의 패권주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평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방향은?

한국에게 있어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참전국이며,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또한 2012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13년에는 FTA를 체결해 현재까지 우호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지진에도 피해가 심한 하타이(Hatay), 오스마니예(Osmaniye)를 중심으로 구조요원과 인도적 물자지원을 보낸 바 있다.

필자는 대지진 3일 후에 뉴스 특파원 통역 업무를 위해 진앙지 카흐라만마라쉬와 가지안텝을 일주일 동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지진피해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구조가 벌어지는 현장들을 둘러보았다. 필자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반가워하고,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개중에는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천막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형제의 나라’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빈손으로는 못 보낸다며 필자와 특파원들이 마다하는데도 차와 과자를 대접하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명민호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공유한 그림 두 장은 튀르키예 SNS에서 큰 반응을 불러왔다<그림 1 참조>. 하나는 튀르키예에서도 2017년 영화로 개봉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한국인 고아 소녀 아일라(Ayla)와 쉴레이만 딜비를리이(Süleyman Dilbirliği) 하사와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의 지진현장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한국인 구조대원과 튀르키예인 소녀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튀르키예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신문기사와 방송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역강국이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로 한국과는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이다.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에서의 튀르키예의 균형주의적 외교 기조는 미일과 중러, 상호 대립하는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무역, 외교 전략 수립에 있어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13호 (2023년 3월 6일)

Tag: 균형주의,지진외교, NATO,신냉전,한국-튀르키예 관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형구 (2023). “앙숙도 허문 ‘재난의 역설’…500년 적대국 그리스도 ‘돕겠다.’” 『중앙일보』 (2월 7일).
  • Cumhuriyet (2023). “Duygulandıran paylaşım: Güney Koreli çizer Kahramanmaraş depremiyle ‘Ayla’yı hatırlattı(감동적인 공유: 한국인 일러스터가 카흐라만마라쉬 지진과 더불어 ‘아일라’를 상기시키다).” Cumhuriyet (February, 10)
  • SETA (2017). “Rusya ve AB Arasında Türkiye’nin Denge Politikası(미국, 러시아, EU사이에서의 튀르키예의 균형주의정책).” ABD.
  • Oğuzhan Ergün, Vefa Kurban (2021). “Denge Politikaları ve Türkiye’nin Stratejik İkilemi(균형주의정책 및 튀르키예의 전략적 딜레마).” Livre de Lyon. 160-191.

저자소개

권성준(polyonomata@gmail.com)

현)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학부 유학 중, 튀르키예 현지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