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언론인의 아시아 인식(4)
세계시민의 눈으로 아시아와 지구촌 보기

조일준 (한겨레21 선임기자)

아시아는 넓은 땅이다. 서로 다른 언어·혈통·문화·역사를 지닌 47개 국가가 아시아라는 공동의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아시아“라고 하면 한국·중국·일본이 주축인 동북아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정도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 범위를 벗어난 ‘아시아’는 서양(정확히는 미국과 서유럽)과 대비되는 ‘동양’ 또는 ‘제3세계’로 뭉뚱그려진다. 그러나 아시아는 생각보다 훨씬 폭넓고 깊숙이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다. 한국 시민과 언론도 아시아에 대한 무관심, 편견, 혐오 대신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권, 모두의 더 나은 삶, 지속가능한 세계라는 관점에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림>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기 위해 총을 든 미스 미얀마 (좌측: 2021년, 우측: 2013년)
출처: 본인 트위터의 사진 https://mobile.twitter.com/

아시아의 다양성을 실감했던 사례

2010년 가을, 필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주요 5개국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몇몇 언론사 국제부 기자들을 선발한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히잡을 쓴 여성 종업원에게 “앗살람 알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건넸다. 고마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주변의 모든 종업원이 일제히 환한 미소로 “와 알라이쿰 앗살람!” 이라고 화답하는 게 아닌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낭랑한 화음이 식당에 울려 퍼졌다. 인도네시아는 2억7900만 인구(2021년, 세계 4위)의 87%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졌지만, 20세기 전반 일본의 식민 통치에 신음했고 1960년대에는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 속에 최소 50만명이 좌익으로 몰려 수하르토 독재정권에 학살된 비극을 겪었다. 경제 개발에 안간힘을 쓰는 이 나라 관료들이 1970년대 한국의 국가 동원 모델인 ‘새마을 운동’을 모범 사례로 주목한다는 말에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필자가 그보다 몇 해 전에는 방글라데시의 빈민 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한국의 국제 어린이 권리 비영리단체 한 곳의 도움을 받았다. 하루는 수도 다카의 거리에서 2명의 걸인을 만났다. 한 사람은 다리를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이들은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걸었는데, 일상의 대화라기보다 운문을 암송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 현지 활동가에게 물어봤다. 놀랍게도, 이들이 읊조린 말은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의 시 한 대목이라고 했다. “지금 당신이 이생에서 선을 행하면 내세에 귀한 존재로 환생할 것”이라는 내용이란다. 타고르는 영국 식민 통치 시기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 출신으로, 벵골어로 시를 썼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1913년)했다. 그가 조선(한국)을 예찬했다는 시 <동방의 등불>은 한때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아시아의 다양성을 실감했던 사례 중 일부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화려한 초고층 복합 쇼핑몰 앞 거리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자동차 유리창을 닦아주며 푼돈을 구걸하였다. 한편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에는 높은 담장의 호화 주택 바깥에서 외국인만 보면 남루한 옷차림에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흔했다. 상반된 풍경 모두가 그 나라의 일부다.

그런데 한국은 분명 아시아 국가이지만 중국과 일본이 아닌 나라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미미했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수출시장이나 관광지로만 익숙하다. 오히려 아시아보다 미국과 유럽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은 최소 1500년 넘게 중국이 유일한 접경국으로 사실상 섬나라와 다를 게 없었던 지리적 조건, 20세기 전반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된 뒤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 체제를 겪으면서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서방 진영에 편입된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아시아라는 거대한혹은 모호한 정체성 

 아시아는 지구 육지 면적의 30%, 세계인구의 60%를 차지하는 거대한 땅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아시아 전체를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지중해 동부 아나톨리아 반도(소아시아)부터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만(중동)을 거쳐 인도 아대륙,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중국과 극동의 캄차카 반도까지 아우른다. 일반인들이 ‘아시아인’이란 개념으로 공동의 정체성을 상상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기자들은 어떨까? 회사의 몇몇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하나같이 선뜻 답하지 못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먼 느낌이다”, “한 마디로 포괄하는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중·일 3국을 넘어서면 동남아 몇 개 나라가 떠오르는 정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막연한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한국 언론이 특별히 아시아에 무관심하다거나 홀대한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한국에서 전문 언론매체들이 쏟아내는 뉴스가 하루에만 수 천 건이다. 단시간에 내용과 논조를 분석하는 건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뉴스 빈도(보도 분량)만 살펴봤다. 최근 1년간(2022년 4월9일 기준) 10대 전국 종합일간지가 보도한 기사와 칼럼은 모두 77만1041건이었다. 이중 ‘국제 뉴스’는 11만7090건(15.2%)에 그쳤다. 전체 보도 10건 중 8~9건이 국내 뉴스인 셈이다. 국제 뉴스만 떼어놓고 보면, 중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 뉴스가 7만4422건으로 63.5%를 차지했다. 국제뉴스 3건 중 2건의 발원지가 ‘아시아’다. 아시아 뉴스 중에도 ‘중국’ 또는 ‘일본’이란 단어가 반드시 포함된 기사가 4만4347건으로, 10건 중 6건을 차지했다. 한국 언론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국제뉴스가 많이 쏟아지는 중동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빅카인즈의 지역 분류에서는 ‘중동·아프리카’로 묶였다는 것. 이는 국내 대다수 언론 매체의 분류이기도 하다. 중동 국가들이 이슬람권이고 아프리카의 상당수 나라도 무슬림 인구가 많다는 점, 역사·문화·지리적으로 중동이 동아시아보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훨씬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아시아 뉴스에서 중국과 일본의 비중이 압도적인 것은 한반도와 역사적·지정학적 밀접성, 그에 따른 상주 특파원 집중 배치와 관련이 깊다. 매체 특성상 외국 주재 특파원이 가장 많은<연합뉴스>는 2022년 4월 현재 세계 27개국 36개 도시에 해외 취재망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아시아 지역 특파원은 중국(홍콩 포함), 일본, 인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6개국뿐이다. 대만·호주·카자흐스탄 등 몇몇 곳에는 현지 거주 한국인 통신원이 있다. 연합뉴스를 뺀 주요 언론사는 미국·중국·일본 3개국에만 상주 특파원을 보낸다. 그 밖의 나라에는 <KBS>가 유럽(파리)과 중동(두바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유럽(파리)에 특파원을 둔 정도다.

한국 언론은 아시아보다 서구에 우호적

상주 특파원이 없는 지역의 국제 뉴스는 특별 취재기자를 파견하지 않는 한, 외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신의 주요 소스(원천)는 미국과 유럽 언론사들의 영문 기사다. 필자의 경우 외국 소식을 전할 때 가능한 한 현지 매체의 보도를 들여다보고 인용하려 노력하지만, 언어 장벽과 해당 매체의 신뢰도, 영미권 매체 경로의존성 등 한계가 많다. 이런 사정은 한국 언론이 의도했든 아니든 ‘서구 편향성’ 시비를 낳는다.

언론학자 오대영은 “(한국 언론의 논조가) 아시아에 대해선 ‘부정적>긍정적>중립적’인 반면 서구에 대해서는 ‘중립적>긍정적>부정적’ 순서로 많아”, 한국 언론이 아시아보다 서구에 우호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2011년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한겨레> 등 4개 신문의 국제뉴스1786건을 표집 분석한 논문 <한국 신문의 아시아와 서구에 대한 보도 양상의 차이와 이유 연구>(2013년)에서다. 오대영은 “한국 신문은 아시아에 대해서는 외교·국방·도덕·정의·정치 등 경성기사를 많이 보도했다. 서구에 대해서는 경성기사 이외에 인간적 흥미, 인물 등 연성기사도 많이 보도해 아시아보다 뉴스 주제의 다양성이 높았다”고 했다. 이런 경향은 “한국 신문의 수용자들은 아시아보다는 여러 뉴스를 접하는 서구에 대해 더 다양하고 폭넓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분석이 얼마나 유용하고 설득력이 있는지는 독자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일정한 경향성을 보여주기엔 부족하지 않다.

언론이 상주 특파원을 두지 않는 외국을 현지 취재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중대 재난이나 전쟁·테러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특별취재팀을 파견한다. 예컨대, 2011년 봄 일본 동부 해안을 강타한 지진해일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대다수 언론은 현지 특파원과 별개로 취재 기자를 보냈다. 올해 많은 매체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피란민 소식을 현지에서 전하고 있다. 필자는 2011년 2월 ‘아랍의 봄’ 때 이집트 카이로에, 2015년 11월 ‘프랑스 연쇄 테러’ 때 파리에 급파된 경험이 있다. 둘째, 특정 주제를 정한 기획취재다. 외국 기획취재는 비용 부담이 커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한다. 필자도그 프로그램으로 2009년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독일·폴란드·체코)와 2015년 봄 ‘강대국 사이에서’(핀란드·폴란드·우크라이나) 시리즈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2013년 이후 최근 10년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 선정(전체 207건) 현황을 보면, ‘국제·남북관계’ 분야의 기획 보도 45건 중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은 단 4건에 불과했다. 그중 2건은 중동 지역의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현장 취재였다. 다른 하나는 ‘수소 경제’ 시리즈 4개국 중 일본이 포함된 것에 그쳤고, 나머지 하나는 ‘아시아의 한류 열풍’이 주제였다. 한국 언론에서 아시아권 보도량이 적진 않지만, 다양한 심층 취재와 보도에서는 뒷순위로 밀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곁의 아시아

아시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게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다. 관세청 집계를 보면, 2021년 한국의 10대 교역국 가운데 중국(1위), 베트남, 홍콩, 일본, 대만, 인도, 싱가포르(3~8위)등 아시아 국가들이 7곳이다. 상위 20대 교역국 중에선 15곳이 아시아권이다.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의 <통계월보>를 보면, 2022년 2월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196만2594명으로 집계됐다. 대한민국 인구의 3.8%다. 이중 아시아계가 173만여 명으로 절대다수다. 국적별로는 중국(42.6%)이 가장 많고, 베트남(10.5%), 태국(8.7%), 우즈베키스탄(3.4%),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네팔,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미얀마 등이 뒤를 잇는다.

 최근 1년 새 한국 언론이 2022년 2월 미얀마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 시민의 민주화 운동 무장투쟁에 큰 관심을 갖고 상당량의 기사를 꾸준히 쏟아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빅카인즈에서 ‘미얀마+군부+민주화’를 열쇠말로 검색한 결과, 보도량 톱3는 <한국일보><한겨레><경향신문> 순이었다. 한국 시민사회가 미얀마 시민에 보여준 연대와 지원도 다른 나라의 일에 대한 관심으로는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크고 뜨거웠다. 일본의 식민통치, 군부 쿠데타와 수십 년 독재, 끈질긴 민주화운동과 좌절, 민주화운동 지도자의 고난과 승리 서사, 짧은 문민정부 시기와 쿠데타 재발 등 격동의 정치사가 한국 현대사와 많이 닮은 게 공감의 폭과 깊이를 키워주었다.

주간 <한겨레21>이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과 미얀마 양국의 시민들이 쓰는 자유기고 ‘미얀마 연대’를 연재하면서 모든 글을 상대국 언어로 번역해 함께 실어 연대 효과를 극대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언론은 그러나 한국기업 포스코가 미얀마 국영기업과 벌여온 합작사업이 군부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는 미얀마와 한국 양쪽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더욱이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한국 언론의 국제뉴스가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면서 미얀마발 소식은 현저히 줄었다.

참고로, 한국에는 아시아권 뉴스만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아시아N>(The Asia N)이라는 월간지가 있다. 2011년 아시아기자협회를 모태로 온라인 매체로 창간했으며, 한국어·영어·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한다.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50여개국 300여명의 필진이 ‘아시아’의 다양한 뉴스를 균형 잡힌 ‘아시아의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을 표방한다. 2013년 7월부터는 인쇄매체 월간 <매거진 N>을 발행하고 있는데 최근 2년새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 탓에 한시적으로 계간으로 펴내고 있다.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을 보자

뉴스 수요자(독자와 시청자)와 공급자(언론매체)가 생각하는 ‘좋은 국제뉴스’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게 정말로 ‘좋은 뉴스’인지는 사람마다 생각과 평가가 다를 테다. 10년 이상 국제뉴스를 써온 필자가 나름 갖게 된 기준은 ’보편적 인권, 모두에게 더 나은 삶, 지속가능한 세계’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다. 엄정한 팩트 확인과 객관적 시각은 언론의 숙명이지만 그것이 기계적 중립과 같은 말은 아니다. 국가 간 패권 경쟁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특히 분쟁지역이나 재난 상황일수록 정치와 전쟁에 가리고 자칫 ‘숫자’로만 치환되기 일쑤인 ‘사람’의 삶에 돋보기를 대야 한다.

국민국가의 규범적 인식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시민’의 시각과 태도가 국제뉴스와 논평을 생산하고 전달하는 언론인의 중요한 미덕이라고 믿는다. 그 바탕에는 사람, 즉 지구촌의 동료 시민의 삶과 희망에 대한 관심이 깔려있다. 한 나라, 특정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지구촌 공동의 문제들, 즉 빈곤과 불평등, 기후변화와 환경, 전쟁(분쟁)과 평화, 과학기술과 윤리, 소수자 권리, 포스트 휴먼과 우주개발 같은 이야기들도 인간과 사회, 자연과 지구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서 더 풍부해지고 깊어진다. 아시아에 대한 언론의 인식과 태도 역시 그런 차원에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22호 (2022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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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봄, 해외특파원, 미얀마, 국민국가, 세계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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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조일준(iljun@hani.co.kr)

현) 한겨레21 선임기자

저서와 논문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푸른역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