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아시아

윤영관 서울대학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영토 주권과 자결권 존중이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었고, 이를 방치하는 경우 약육강식의 적나라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복합적인데 미국의 동맹들과 자유주의 질서를 원하는 국가들은 대러 제재에 참여하고 있지만,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각각의 지정학적 고려에 따라 불참하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를 적극 지원하는 경우, 유럽이 미국 쪽으로 밀착하여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해주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미국은 유럽의 러시아와 아시아의 중국을 동시에 억제할지, 계속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 견제에 집중할지 전략적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든 동맹들에 대한 부담 증대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심화는 북·중·러 대 한·미·일 간의 진영대립 구조를 강화시켜,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도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의 충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후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인 국제법 원칙으로 지켜져 온 무력에 의한 국경변경 불용의 원칙(Territorial Integrity, 유엔헌장 2조 4항)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흔들리고 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국제사회는 단합했고,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를 요구하며 응징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 크리미아 병합,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 지원에 이어,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공격했다. 2008년 조지아나 2014년 우크라이나의 경우, 나토 회원국이 아니었기에 서방세계는 군사적 개입을 자제했다. 비슷한 이유로 이번에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나토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징후를 인지하고서도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경우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가 가해질 것임을 누차 경고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서방측은 유사 이래 가장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위의 영토 주권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으면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또 하나의 일반적 규범은 자결권(Self-Determination) 존중의 원칙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들의 정치체제의 성격이나 외교 노선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그러한 자결권을 무력을 동원하여 유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원래 예상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강하게 저항했고, 미국과 유럽의 나토국가들은 상호 연대하에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시행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대응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좌시할 경우, 무력 사용을 통한 국경변경 금지, 즉 영토 주권 존중의 원칙이 완전히 약화되어 버리고, 러시아가 인접국들에 대한 제2, 제3의 공격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강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꿈을 오랫동안 보유해온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동진으로 자국의 안보가 위협을 받았다는 것을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2007년 2월 10일 뮌헨 안보회의, 2014년 3월 18일 크리미아 연설, 같은 해 10월 24일 발다이(Valdai) 연설, 우크라이나 침공 3일 전인 2022년 2월 21일 연설 등을 통해 일관되게 이러한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그는 애초부터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국가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았고, 크리미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이 오히려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안보 우려는 무시했다.

이처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존중되는 일반적 가치·원칙과 푸틴 대통령이 펼치는 지정학적 논리, 즉 러시아의 세력권 회복이라는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자국의 세력권 확장에 집착하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서방세계가 용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만일 용인하는 경우 그동안 유지되어왔던 국제사회의 일반적 가치와 원칙들이 적나라한 힘의 행사로 폐기 처분되고, 세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질서한 상황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려는 서방세계의 대응은 세계사의 분수령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첫 3주 동안 각 국가가 러시아에게 부과한 제재의 건수
출처: Castellum. AI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

이러한 중요한 사건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적인 지지 국가들, 예를 들어 일본, 한국, 싱가포르, 호주 등은 러시아의 행동을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수호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서 파급되는 부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는 국력이 작은 도시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반적 규범의 약화에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기에 적극적으로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1871년 독일이 통일된 후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20년간 펼쳤던 외교와 비슷한 패턴의 외교를 중국을 상대로 펼치고 있다. 즉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 다자네트워크를 중첩적으로 만들고, 이들을 활용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AUKUS(미국, 호주, 영국), 한미일 3각 협력,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이 그 사례이다.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들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네트워크로부터 다소 거리를 유지하는 몇몇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는 자국의 지정학적 고려에 입각해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쿼드의 멤버이기도 한 인도는 모호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기대를 거스르고 있다. 인도는 금년 3월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에서 기권했고 경제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인도 외교는 아직도 오랜 비동맹 외교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인도의 우선적 관심사는 견제 대상 라이벌인 중국과 파키스탄인데, 러시아를 등지게 될 때 그것이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의식한다.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면 러시아를 중국이나 파키스탄에 더 가까이 밀어붙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유엔안보리에서 카시미르 지역에 대한 인도의 행동을 비난하는 결의안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하면서 인도를 외교적으로 지원해오기도 했다. 또한 인도는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군사협력 관계를 맺어왔고 러시아제 군사 장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다. 2021년 12월 초 푸틴 대통령의 인도 방문 시에도 54억 달러어치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구입하는 것을 발표했다.

동남아의 몇몇 국가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무비판, 또는 제재 불참이라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 견제용으로 러시아 무기를 대량 구입해왔다. 2000년에서 2019년까지 무기 수입의 84%가 러시아으로부터 왔고, 그래서 러시아 비판에 대해 소극적이다. 인도네시아도 러시아와의 경제와 국방 협력을 증가시켜왔다. 2021년에는 러시아와의 무역이 27억 4천만 달러였고, 전년 대비 42.2%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 때문에 대러 제재에 불참하고 있다. 미얀마는 아마도 동남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국가일 것이다. 서방의 미얀마 제재에 대한 반발과 군부 집권 세력이 푸틴식 권위주의 정치에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동남아 국가들의 미온적인 반응은 지역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멀리 떨어져 있고 직·간접적 연계가 깊지 않다는 점에서도 기인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단기적 지정학적 계산에 더 몰두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질서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힘의 논리가 판치는 무질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가져다줄 중장기적 위험에 대해서는 이들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복잡한 중국의 입장

문제는 중국이다. 트럼프행정부 초기 2017년경부터 미중 관계는 기존의 포용 기조에서 대결 기조로 크게 바뀌었다. 그 이후 미국과 중국 간에는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2022년 2월 4일 베이징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중러 간의 협력에는 제한이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미국에 대항하여 강한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

결국 향후 국제질서가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결이 심화되는 신냉전 상황으로 나아갈지 아닐지를 결정할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고 서방의 경제 제재가 닥쳐오자, 러시아는 중국에게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에게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중국의 입장은 간단치가 않다. 만일 중국이 러시아를 강력하게 지원하면 그동안 공들여온 유럽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다. 이는 중국의 장기 전략, 즉 유럽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 다극질서로 나아가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세계전략과 배치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항하는 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온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신뢰와 대미 연합전선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패배로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동요하는 것은 중국이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은 더욱 구조화되면서 국제질서는 신냉전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고민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 상황에서 미국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세계전략을 추진해나갈지도 중요한 변수이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전략적 선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푸틴 통치하의 러시아를 유럽의 나토 동맹 국가들에게 맡기고 미국은 이전처럼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오바마 행정부 때 처음 시도했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전략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독일이 국방비 지출을 GDP의 2%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던 것처럼, 다른 나토 동맹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서로 간에 단합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유럽 대륙에서 러시아,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을 동시에 억제하는 전략이다. 이는 미국에게 상당한 부담을 던져줄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보다도 중국을 훨씬 더 중요한 대결 상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든, 미국은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 간의, 그리고 아시아의 동맹국들 간의 단합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동시에 이들 국가들에게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더욱 크게 떠안아 줄 것을 요구하면서 미국 스스로의 부담은 줄이려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동북아시아의 경우, 한·미·일 3각 협력의 강화에 대한 요청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방력 강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여러 소다자 네트워크에 대한 참여요구도 강화될 것이다.

한반도에 미치는 여파

미국과 중러 간의 대립 심화 현상은 이미 북한 핵 문제에도 부정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ICBM 발사의 경우 유엔안보리 제재안 채택에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며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해왔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2022년 1월과 3월 두 번에 걸쳐 북한에 대해 추가 제재를 하자는 결의안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했다.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의 대립이 한반도에까지 파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 간 갈등이 심화하고, 그리고 중국의 적극적 대러 지원으로 미중 간의 대립이 심해진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적 경제 제재라는 연합전선이 약화되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위한 대북 레버리지가 훨씬 약화될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러시아는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한다. 결국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3각 대립구조의 고착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도 강해질 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국제질서의 성격, 아시아 지역 정치, 그리고 한반도 상황에 영향을 미쳐오고 있다. 특히 신냉전 시대의 도래는 과거 냉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차원에서 남북 간의 단절구조를 더욱 경직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갈수록 국제정치가, 그리고 그에 따라 한반도 상황도 어려워지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23호 (2022년 4월 25일)

Tag:
우크라이나전쟁,아시아,바이든 젤렌스키,푸틴,한반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신성호 (2022).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관계 및 한반도.” 『아시아브리프』 2권 19호.
    http://asiabrief.snu.ac.kr/
  • Emily Schmall (2022). “‘We Are on Our Side’: Across Asia, a Mixed Reaction to Ukraine War,” The New York Times (March 4). https://worldrepubl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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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mmy Waldman (2021). “India and Russia Expand Defense Ties, Despite Prospect of U.S. Sanctions,” The New York Times (December 6).
    https://exbulletin.com/

저자소개

윤영관(ykyoon@snu.ac.kr)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주요 저서: 『북한의 오늘』 (늘품플러스, 2019)
『외교의 시대』 (미지북스, 2015)
『한국외교 2020 어디로 가야하나? 1, 2』 (늘품, 2013)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 (신호서적,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