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언론인의 아시아 인식(3)
위기의 한중 관계, 우리의 자세

채병건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중국의 부상이 한ㆍ중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중화 패권을 회복하려는 중국이 주변국을 향해 공격적 전략을 구사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어느덧 반중 정서가 한국 사회에 확산됐다. 하지만 반중 정서는 그 자체로는 한ㆍ중 관계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 당장은 중국을 견제할 레버리지를 어떻게 확보할지가 우선이다. 즉 대중 레버리지로 한ㆍ미 관계를 어떻게 어디까지 구사할지에 대한 냉철한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동시에 한ㆍ중 간엔 다양한 층위와 분야가 존재하는 만큼 반중 정서라는 단일 프리즘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미국의 한반도 간섭 배제’ 요구하는 중국

올해가 2022년이니 벌써 20년 전 얘기가 됐다. 2000년대 초반 국방부 현역 장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안보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회의장에 대만 인사들도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들어선 중국 측 인사들이 대만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즉시 대만 측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 측 인사들의 느닷없는 거부에 주최 측이 설득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결국 중국 측 인사들은 떠났다고 한다. 당시 그 장성이 이 일화를 귀띔하면서 했던 우려가 “중국의 부상이 만만치 않다”였다. 요즘은 어떨까. 중국 측은 자리를 지킨 채 대만 측을 향해 나가라고 요구할 것 같다.

수년 전 들었던 다른 일화 하나.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미ㆍ중 각료급 회담이 열렸다. 미측 인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국제 규율을 무시하는 중국의 일방주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했는데 중국 측 카운터파트의 반응이 희한했다. 회의장에 있던 지도를 가리키더니 한반도를 지목하며, 이쪽은 원래부터 중국의 영역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당초부터 중국의 바다로 주장하면서 영해화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주장하는 논리는 ‘한반도에 대한 간섭 배제’다. 여기에서 간섭은 한반도 바깥의 제 3자로부터의 간섭을 뜻하는데 물론 미국을 지칭한다. 중국은 관련 당사자이고, 미국이 제 3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21년 9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예방하는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 “중국은 한반도 남북 쌍방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간섭을 배제하고 관계를 개선하기를 굳게 지지한다”였다. 여기서 ‘간섭 배제’에는 한국은 미국에 흔들리지 말라는 중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과거 중국은 아시아의 중심이었다. 아시아를 주도할 대국이 되려면 물리적 조건이 필요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생산력이 중요했다. 통일된 중국 왕조는 인구ㆍ토지라는 압도적 생산력으로 아시아의 중심을 유지했다. 중국에서 통일 왕조가 바뀔 때마다 아시아 질서가 재편됐다. 사회주의를 통해 봉건 체제를 없앤 중국은 이제는 거대한 단일시장도 무기로 활용해 대국의 지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는 신중화 추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과거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를 21세기에도 투영하는 방식으로 중국 중심의 질서로 바꾸려고 하면서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서도 신형대국관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중국이 대국의 물리적 조건은 다시 회복하고 있다 해도 과거의 제국형 리더십을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하니, 주변국을 ‘중국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갈등을 부르거나 힘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다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한국 사회의 중국 비호감 정서 심각

한ㆍ중 관계가 심리적 위기 국면에 와 있다고 경고한 게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2021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 설문조사’ 결과 분석 보고서다<그림 참조>. 여론조사 결과 조사 대상 20개국 중 가장 비호감인 국가군에 중국이 꼽혔다. 이는 북한, 일본과 유사한 수준이다. 일제 수탈이라는 근대사의 고통이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지금 반일 정서 역시 여전하다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중국이 비호감국 수위에 오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당초엔 존재했는지 조차 몰랐던 반중 정서가 어느새 무섭게 커져서, 이젠 일본에 육박하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림> 아시아 주요 국가별 4개의 인덱스: 선호도, 신뢰도, 관계도, 영향도

주) 미국 및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한국인의 선호도, 신뢰도, 관계도, 영향도를 나타낸다. 선호도는 설문 대상이 0에서 100을 척도로 각 국가에 대해 느끼는 호감의 정도에 평균을 낸 값을 의미한다. 신뢰도는 각 국가에 대해 “매우 신뢰한다.”와 “대체로 신뢰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의 합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관계도는 각 국가와 한국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좋은 관계이다”와 “대체로 좋은 관계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의 합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영향도는 각 국가가 한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응답한 비율과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응답한 비율의 합을 의미한다. 선호도, 신뢰도, 관계도, 영향도는 각각 주홍색, 초록색, 파란색, 회색으로 표기되었다.

출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더욱 심각한 대목은 2030세대가 중국에 대해 가장 정서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연구소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국에 대한 호감-비호감을 가르는 점수가 50점이었다. 50점 미만이 비호감에 속한다. 그런데 19~29세의 67.3%, 30~39세의 59.5%가 중국에 50점 미만을 줬다. 이들 2030을 합치면 50점 미만, 즉 비호감 응답은 63.5%다. 전 연령대 평균이 53.8%였는데 2030에선 이를 뛰어넘는다. 젊은 세대일수록 반중 정서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건 국내의 반중 정서가 앞으로도 오래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반중 정서가 사그라질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은 중국이 대국에 걸맞은 자세로 주변국 신뢰를 얻어가는 소프트파워 외교에도 나서면서 민간에 깔린 불신까지 해소시켜 가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이는 관찰자의 희망일 뿐 지금 중국은 관도 민도 그럴 단계에 올라서 있지 않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제국의 경영술 대신 천상천하 유일 중화에 가슴 벅차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거의 유일한 선택은 철저한 냉정함이라고 생각한다. 반중 정서는 한ㆍ중 관계의 현실에서 비롯됐지만, 반중 정서를 고양시킨다고 해서 중국의 전랑 외교가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예컨대 온라인 공간에서의 거친 말과 분노의 댓글은 잠시 화를 풀어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즉 한국의 대응은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안보ㆍ역사ㆍ문화 등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일관되게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되,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한미 동맹이 대 중국 외교의 지렛대

레버리지 측면으로 보면 한ㆍ미 관계가 한ㆍ중 관계의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한ㆍ미 동맹의 수준과 협력 단계는 그 자체로 중국에 부담이다. 한ㆍ미 군사동맹이나 한ㆍ미 경제협력은 한ㆍ미 양자 관계로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볼 필요가 있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한국 역사에서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태평양 건너의 레버리지를 처음으로 갖고 있다. 레버리지는 때론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부담을 초래하지만, 레버리지 자체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일반 여론도 미국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서 어느 나라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7.8%가 미국을 선택했다. 10명중 7명 꼴이다. 반면 중국을 택한 이들은 4.4%에 불과했다. 보수만 아니라 진보에서도 미국을 더 많이 선택했다. 이념적으로 스스로를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의 80.1%, 진보라고 알린 응답자의 66.0%가 미국을 선택했다.

차기 정부가 가장 중시해야 할 외교적 과제 역시 한·미 동맹 강화(69.8%), 북한 비핵화(61.6%),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50.5%), 아세안 협력 강화(46.7%), 한·중 관계 발전(41.7%), 한·일 관계 회복(29.8%)의 순이었다. 한·미 관계가 1순위에 올랐다.

외교는 내치와 분리돼 있지 않다. 대외적으로 레버리지 외교를 구사하기 위해선 국내적으로 대외 정책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일정한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즉 국민이 동의하지 않곤 대외 정책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대일 외교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정부가 한ㆍ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싶어도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지 않다. 일반 국민들이 한ㆍ미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정부가 한ㆍ미동맹을 교두보로 삼아서 대중 관계에 임하려 할 때 부담이 적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반중 감정을 현실의 한ㆍ중 일상에 투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일제의 기억이 여전하니 대한민국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반일’이다. 그렇다고 일본 우동을 먹지 않고 일본 영화를 혐오하며, 일본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일제의 수탈과 위안부 피해자 착취를 놓고 일본 정부가 사과를 번복하고 역사를 부인한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과 비즈니스 관계를 끊고 현해탄에 출입 금지선을 쳐놓지는 않는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반성 철회에 분명한 언어로 우리 입장을 전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압박하면서도 일본과 함께 이(利)를 찾을 일은 한다.

반중 정서로만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비현실적

역시 중국과도 당연히 먹고 사는 문제를 놓고 국익이 된다면 대접해주고, 때론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 인내하는 것도 더 현실적이다. 한ㆍ중 관계엔 당연히 무수한 층위와 분야가 있고 반중 정서의 프리즘만으로 이들 구석구석을 바라볼 필요도 없다. 한ㆍ미동맹이라지만 한ㆍ미 간엔 서로 이익이 충돌하는 무수한 분야가 존재하니, 친미 정서의 프리즘으로만 들여다보면 순진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시작되면 각자 워싱턴과 서울의 지침에 맞춰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게 일상적이다. 과거 미국 측과 분담금 협상을 했던 외교안보 당국자는 나중에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돈 문제가 걸려 있으니 협상장에선 한국이나 미국이나 결코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일반 여론 역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한 중국과 협력하는 데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한 여론조사에서 분야별 협력을 물었더니 대부분 ‘미국과 협력’ 응답이 ‘중국과 협력’ 보다 더 많이 나왔다.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적 활동과 관련해선 미국과 더 협력할 수 있다는 응답이 79.3%로, 중국과 더 협력할 수 있다는 응답(20.7%)을 압도했다. 코로나19 협력에서도 미국과 더 협력(96.9%)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무역에선 이 격차가 축소됐다. 미국과 더 협력이 67.5%였고, 중국과 더 협력도 32.5%가 나왔다. 돈을 버는 문제에선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더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더하고 싶다. 반중 정서와 관련해선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대목도 있다. 성숙한 시민 사회는 자신을 타자의 시선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를 갖춰야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 역시 국가적 자긍심을 뛰어넘어 스스로에 대한 민족적 우월 의식이나 타자에 대한 무시라는 집단적 유혹에 빠진 적은 없는지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21호 (2022년 4월 11일)

Tag:
한중관계,반중정서,전랑외교,한미동맹,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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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률 (2021). “2022 EAI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시리즈 3_대중정책: 미래지향의 실용외교를 통한 한중관계 재건축.” 동아시아연구원 EAI 워킹페이퍼. https://www.dbpia.co.kr/
  • 최재덕 (2021). “한중관계 미래 30년을 위한 발전적 대안 연구 : 중국의 공세적 외교와 호주에 대한 경제보복 사례를 중심으로.” 『평화학연구』 2권 3호. https://www.earticle.net/

저자소개

채병건(mfemc@joongang.co.kr)

현)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전)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