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2년 아시아 정세전망(4)
팬덤 그 이상의 정서적 공동체, 2022년 아시아의 한류는 어떻게 흘러갈까?

2021년 세계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열광했다. 한국 대중문화는 전 지구적인 팬덤을 형성하게 되었고, 각 로컬에서는 한류 문화 수용 과정에서 새로운 관련 콘텐츠들을 생산해냈다.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OTT)을 비롯한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기술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한류는 ‘동시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류를 통해 다채로운 수용자를 맞이하게 되면서 글로벌 팬덤 문화는 더욱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변모하였다. 아시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특출성이 아닌,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류보편적인 정동(affect)이다. 2022년에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서 한류 콘텐츠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감과 위로 그리고 연대의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방탄소년단(BTS)은 나를 살려주었어요. BTS의 노래는 나에게 매일매일 힘을 줍니다.

아티스트들의 목소리와 외모보다는 그들의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요. 완전 걸작이에요! BTS의 노래를 들으며 전 삶의 희망을 느껴요. 죽음까지도 생각했던, 어둡기만 했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희망이 되었어요. 항상 고마워요.“

이란 여성, 29세, 전문직, BTS ARMY와의 인터뷰 중에서

팬덤 그 이상의 정동, 한류 문화

2021년 세계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열광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전 지구적으로 46일 연이어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주,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뿐 아니라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방영될 수 없는 중국과 이란 등지에서도 <오징어게임>은 연일 이슈가 되었고, 파생된 로컬 콘텐츠와 ‘밈(meme,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이미지)’들을 생산했다.

아시아의 팬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콘서트 ‘직관’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방탄소년단(BTS)을 만났다. 글로벌 팬들은 유튜브 댓글과 각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이벤트를 만들며 아미로서 ‘선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과연 한국의 대중문화의 어떤 특성이 이렇게 전지구적인 팬덤을 끌어오게 되었는가? 무엇이 아시아를 넘어 전지구적인 팬덤 이상의 정동을 만들어냈는가? 서아시아 한류의 메카라 불리는 이란의 사례를 통해 한류 문화가 로컬 수용자들의 마음을 가져오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과 나아가 2022년 아시아 한류의 방향성에 대해 논해보자.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등 한국 드라마가 이끌었던 한류를 K-POP이 다시 견인하게 되고, 이후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끄는 새로운 한류 현상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한류 5.0>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받으며, 한류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수용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류의 새로운 열풍 이면에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OTT),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텔레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기술적 영향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 초기, 한국 드라마들이 방영 이후 2-3년 지난 후, 다른 지역에서 뒤늦게 배급 및 방영 이후 인기를 얻었다면, 현재의 한류는 ‘동시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한류 팬덤은 국내와 동시적으로 반응한다.

<그림> 인스타그램 내 오징어 게임(좌) 및 BTS(우) 관련 이란어 게시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시아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통로로 한류 문화를 접한다. OTT, 각국의 위성채널과 국내 방송뿐만 아니라 불법 유통되어 ‘구워지고’, ‘복제되는’ 콘텐츠, 즉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종류와 양도 엄청나다. 물론 콘텐츠의 불법 유통은 엄격히 금지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시아의 경우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통계의 수치화를 넘어선 다수의 시청자들과 팬덤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극, 트렌디 드라마, 로맨스물 그리고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한류 드라마 장르는 다양해졌고, 한국의 대중음악, 온라인 게임,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한류 문화의 장르 역시 확장되었다. 이에 한국 대중문화를 접하는 아시아인들의 연령대와 성별, 계층 역시 다채로워졌다.

또한 아시아 각국에서 국가의 경계와 종교, 이념을 넘어선 ‘상상의 공동체’가 팬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뉴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강력한 팬덤 중심의 스타매니지먼트가 강화되었다. 팬덤이 직접 생산과 매니지먼트에 관여하고 스타들의 이미지를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등 팬덤의 문화적 실천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하게 글로벌 대중음악을 즐겼던 이란 팬덤에서도 관찰된다. 온라인 문화와 더불어 글로벌 팬덤 문화는 더욱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변모하였다. 다소 보수적이고 제한적이라 알려져 있는 서아시아에서도 새로운 젊은 세대의 하위문화로 부상해 왔다. 아시아 청년 세대들의 온라인 문화와 맞물려 한류 문화는 온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초국가적인 글로컬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팬덤 활동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특히 코로나 19로 국가 간,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된 2020년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고 있으며, 온라인 팬덤은 한 국가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팬덤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2010년 이후 시작되어 발전해온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는 온라인 팬덤을 강화하고 다양화하였다.

아시아 팬덤이 펼쳐지는 플랫폼 역시 확장되면서 아시아 팬들의 활동은 보다 역동적으로 변모했다. 2021년 현재, 이란에서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BTS, 엑소(EXO) 등의 보이그룹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팬클럽이나 한국 현대극 등의 한류 문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란의 한류 팬덤을 사례로 보자면, ‘텔레그램’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귀한 ‘굿즈(연예인 관련 상품)’ 제작과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팬클럽 리더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주도된다. 2021년 기준으로, 이란 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그룹은 바로 BTS로 소셜 미디어에서도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한편, BTS의 이란 내 팬클럽을 이끄는 주역은 바로 젊은 10∼20대 여성들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팬은 ‘아미’라는 이름으로 나라 구분 없이 하나의 통합된 집합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BTS와 관련된 각종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특성을 보인다. 실질적으로 이란 팬들이 국경을 넘는 것은 어렵지만, 팬덤 활동을 통해 청년 세대, 특히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이다.

아시아인들은 왜 한류에 열광하는가?

<오징어게임>과 BTS가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물론, 이와 같은 보급과 전파를 가능하게 한 테크놀로지의 힘이 컸지만 팬덤을 넘어선 공감과 연대의 의미를 주목해보고자 한다.

BTS에 대한 문화, 산업, 사회, 미디어적 관점을 분석한 홍석경은 『BTS 길 위에서(2020)』에서 청년 세대에 보내는 BTS의 메시지를 분석한바 있다. 홍석경은 한국을 비롯한 북미와 유럽 사회는 인구문제와 세대 문제가 결합되어 위기의 사회로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전 지구적으로 청년 세대는 사회의 불안과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고,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성공한 BTS의 이야기는 공감과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BTS의 히트 곡 대부분이 신자유주의적 경쟁 사회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난을 겪고 있는 소위 ‘불타버린 세대’인 이란의 MZ세대에게는 하나의 탈출구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죽을 만큼 우울하고’, ‘이란을 탈출하고 싶은’ 한 엘리트 여성의 언설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란의 젊은 세대에게 큰 위안이 된 것이다. 이란의 아미들은 BTS가 나오는 <인더숲>을 시청하면서 함께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잠시나마 자신들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온오프라인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이란의 한류 팬클럽을 이끄는 리더들은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가지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룹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열고 그들만의 굿즈를 만들어낸다. 또한 팬클럽에 따라 자신이 따르는 그룹의 앨범 발매에 맞춰 서울의 지하철역에 광고물을 만들기도 하고, 쌀 화환 선물 행렬에도 동참한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란 사회 내에서 교차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10∼20대 여성들이 이런 팬덤 활동을 통해 전 지구적인 팬덤과 연대 의식을 갖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란에서 한류를 즐긴다는 것은 그들에게 인정 투쟁의 과정이 되기도 하며, 주체적인 사회 활동의 일부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강렬한 동기 부여가 된다.

또한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서는 신자유주의 이후 전 지구적으로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공감이 바로 한류를 통해 느끼는 정동이다. 전지구화로 인한 불평등과 청년 실업 문제 그리고 계급의 되물림을 경험하는 아시아인들은 자신 역시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각 지역의 사회 문제에 대입시켜버린다.

2022년 아시아의 한류는 어떻게 펼쳐질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21년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뒤흔들었던 한류 열풍은 2022년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2022년 아시아에서 펼쳐질 한류의 미래를 점쳐보기보다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해보자. 지금처럼 한국 대중문화가 지속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문화적 영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국 한류 문화가 공감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감하는 아시아 로컬의 소비자들이 한국 대중문화와 사회 내의 인종주의, 젠더 감수성, 종교 다양성 등에 주목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류 콘텐츠뿐 아니라, 한국 사회 내의 담론 역시 동시성을 가진다는 면에서 문화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특출성이 아닌,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류보편적인 정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류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한류를 수용하는 아시아, 나아가 전 지구적인 지역적 수용 형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022년에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서 한류 콘텐츠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이길 수 있는 동감과 위로 그리고 연대의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한류, 이란, 글로벌팬덤, BTS, 공감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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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구기연 (kikiki9@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문화인류학회 연구위원, 한양대학교 한국학 세계화랩 전임연구원

 

주요 논문: “이란 ‘무슬림 키즈’가 주도하는 한류와 소셜 미디어 담론,” 『2020 한류, 다음 [권역특서_ 이슬람 문화권 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1)
“Riding the Korean Wave in Iran: Cyber-Feminism and Pop Culture among Young Iranian Women,” Journal of Middle East Women’s Studies 16(2). (2020).
“ ‘테헤란젤레시 음악’에서 ‘케이팝(K-POP)’까지: 이란 밀레니얼 세대의 하위문화로서의 대중음악,” 『한국중동학회논총』. 41권 2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