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류와 아시아(4)
일본에서 K-드라마와 영화의 성과와 과제
‘기생충’을 시작으로 ‘사랑의 불시착’ 등이 일본에서 ‘제4차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붐은 제1차 붐처럼 드라마(겨울연가 등)와 영화 중심인데, 제2차(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와 제3차(BTS, TWICE 등)는 K-Pop 중심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극장의 관객 수는 줄어들었지만 그것을 상쇄하듯이 넷플릭스를 통해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와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극장 개봉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나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확실히 ‘기생충’ 이후 커졌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과거 여성주인공의 이미지는 신데렐라였으나 최근 자립적이고 당당한 여성 주인공이 일본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드라마 중심 제4차 한류 붐
한국에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에 방송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건 2020년 4월쯤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첫 번째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된 4월 이후 재택근무 등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4차 한류 붐인데, 1차 붐은 2003년부터 일본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계기가 된 드라마 중심 붐이었다. 2차, 3차 붐은 K-POP 중심, 4차 붐은 다시 드라마 중심 붐이다. 4차 붐의 특징은 한국 드라마 팬의 확대이다. 그전까지 한국 드라마는 일부 팬들만 보는 드라마로 50대 이상 여성 팬이 많았다. 그런데 4차 붐 이후 한국 드라마 팬은 전 연령대 남녀로 확대됐다. 특히 그전까지 거의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던 30~40대 남성들도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는 ‘이태원 클라쓰’다. 이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인데 멜로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일본 남성들의 입맛에도 맞았던 모양이다. 주요 내용은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가 음식점 프랜차이즈 ‘장가’ 회장과 아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도 복수극이었다. 한일간에 인기 드라마의 주제는 이처럼 유사성이 있다.
일본에서 한류의 역사를 보면 1차 붐 후 한국 드라마는 ‘대장금’을 계기로 시대극도 인기를 끌었고, 2차 붐 시기에는 K-POP 붐과 맞물려서 가수로도 활동했던 장근석(‘미남이시네요’ 등)이나 동방신기(2010년 이후 JYJ) 멤버였던 박유천이 출연한 ‘성균관 스캔들’, ‘옥탑방 왕세자’ 등의 드라마도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2차 붐은 식어버렸다. 지상파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지상파는 스폰서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수요가 있어도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기 어려웠다. 이후 한국 드라마를 보려면 DVD를 구매 또는 빌려서 보거나, 한국 드라마를 많이 방송하는 케이블 채널 등을 계약해야 했는데 그 시청료는 한 달에 4천 엔을 넘는 채널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쉽게 계약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1차 붐에서 형성된 기존 팬들에 한정됐다.
한편 2017년부터 방탄소년단, TWICE 등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3차 한류 붐이 불었으나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침체상태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드라마-영화 중심의 4차 한류 붐에는 넷플릭스도 한 몫을 했다. 넷플릭스 시청료는 한 달에 천 엔 정도로 젊은 세대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금액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넷플릭스에는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다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비해 최신 한국 드라마가 많다. 한국에서 방송되면 바로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작년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려면 넷플릭스’라는 공식이 정착됐다. 처음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했던 드라마도 화제작은 시간이 지나면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SKY 캐슬’,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이다. 넷플릭스 일본법인이 발표한 2020년 인기 랭킹(모든 콘텐츠)을 보면 상위 10위 중 다섯 작품은 한국 드라마였다(1위 ‘사랑의 불시착’, 2위 ‘이태원 클라쓰’, 6위 ‘사이코지만 괜찮아’, 8위 ‘청춘기록’, 9위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렇듯 지상파 시청률이 아닌 넷플릭스 랭킹이 일본에서의 한국 드라마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다만 작년 한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아직 일본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는 등 넷플릭스 랭킹에 들어가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기생충’ 아카데미상 4관왕에 이어 윤여정 여우조연상 수상
사실 일본에서 한국 영화가 한류 붐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다. 1차 붐 때 드라마 인기의 연장선상에서 히트를 친 작품은 있었으나 사회현상이 될 정도로 눈에 띄는 히트작은 없었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히트를 친 한국 영화는 ‘쉬리’(1999년)다. 일본에서는 2000년에 개봉하고 18억 엔을 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한류 붐 전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서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1차 붐 때는 배용준, 손예진 주연 영화 ‘외출’(2005년, 일본 흥행 수입 27억 엔)이나 정우성, 손예진 주연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 일본 흥행 수입 30억 엔)가 2005년에 일본에서 잇따라 개봉하고 흥행이 잘 되었다. 그 후 ‘기생충’이 처음으로 흥행 수입 45억 엔을 올렸다. 그런데 한국 영화와 드라마 흥행에 손예진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류 드라마 붐을 일으킨 ‘사랑의 불시착’도 손예진이 주연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영향을 받기 쉬운 나라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이때 일본에서는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생충’이 일본에서 2019년 12월 말에 개봉하면서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을 한 후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기생충’은 일본에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흥행 기록을 훨씬 넘는 흥행 수입 45억 엔을 올리고 역대 한국 영화의 최대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어서 올해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나리’는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윤여정을 비롯해 출연 배우는 대부분 한국 배우 또는 한국계 배우다. 2년 연속으로 한국 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미나리’는 일본에서는 3월에 개봉하고 어느 정도 평가는 좋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흥행은 쉽지 않았다. 윤여정 수상에 대한 반응이 일본에서는 ‘기생충’보다 크지 않았지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 올해만 해도 일본에서 3편의 윤여정 출연 영화가 개봉했다. 또 주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 상영회를 열고 있는데 ‘배우 윤여정 아카데미상 수상 기념 특별 상영회’라는 이름으로 윤여정 출연작 ‘장수상회’, ‘계춘할망’을 6월에 상영했다. 이 문화원은 매년 ‘오사카 한국영화제’를 개최하고 윤여정(2016년)을 비롯해 안성기(2017년), 황정민(2018년) 등 유명 배우를 초청해서 일본 관객들과의 교류를 추진해왔다.
올해 5월 10일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BTS나 기생충 대히트, 한국 엔터는 왜 강한가”라는 제목으로 CJ 엔터테인먼트 서장호 상무 등 여러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의 서두에 “아시아에서 문화의 선두주자는 일본이었는데 왜 역전됐는가”라는 문장을 보면 일본 언론의 문제 의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윤여정 수상이 이 인터뷰 기사의 계기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일본에서의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확실히 커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에서 인기있는 이유: 여성 캐릭터의 매력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들 수 있다. 페미니즘 전문 잡지 ‘에트세트라(エトセトラ)’ 5호(2021년 5월 발간)는 ‘우리(일본 여성)는 한국 드라마로 강해질 수 있다’는 제목의 특집을 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 윤세리(손예진)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가 자립적이라는 점에 공감하는 일본 여성 시청자가 많았다. 그리하여 한국 드라마와 페미니즘을 연관시키는 계기가 된 듯하다. 예를 들어 ‘에트세트라’에는 시청자의 이런 목소리가 실렸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건 20년 만이라 우선 (‘사랑의 불시착’의) 설정에 깜짝 놀랐다. 멜로드라마인데 히로인이 30대다. 그것도 연기하는 배우는 이미 30대 후반인 손예진이다. 재벌 딸이지만 본인도 유능한 기업 경영자라는 점도 새롭다. 한국 드라마는 예전엔 가난하지만 활기찬 10~20대 여성과 돈과 지위가 있는 20~30대 남성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많았다. 자립적인 히로인이 멋지다.
이 시청자의 경우 20년 만에 한국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그 사이의 변화를 크게 실감한 듯하다. 1차 붐 때 한국 드라마를 봤던 시청자가 4차 붐으로 다시 보기 시작한 경우다.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주인공 동백(공효진)이 미혼모였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많다. “여성들의 연대가 재미있었다,” “직업적 편견 등 여성이 어렵게 사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소감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MeToo 운동이 퍼지지 않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출판물도 잘 팔리고 있다. 평범한 여성이 부딪치는 어려움을 그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개봉한 2020년 10월 시점에 소설의 판매 부수가 21만 부를 돌파했다. 영화 분야에서 작년과 올해 일본에서 개봉하고 화제가 된 작품들을 보면 ‘82년생 김지영’, ‘말모이’, ‘벌새’,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밤’, ‘야구소녀’ 등 여성 감독 또는 여성 주인공 영화들이다. 한국에서는 #MeToo 이후 여성 감독 또는 여성 주인공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그 점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아사히신문(2021년 1월 8일 자)에 게재된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영화평은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작년 일본에서도 개봉한 ‘벌새’를 비롯해 한국에서는 독립영화라는 작은 틀에서 여성 감독들의 양질의 영화가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한국 여성 감독에 의한 첫 장편. 본 작품의 감독을 맡은 김초희는 오랫동안 홍상수 감독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경험이 있다.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는지 주인공 찬실이는 프로듀서로서 유명한 영화감독 밑에서 노력해온 여성이다.
늘어나는 한국 원작 일본 드라마
기존 리메이크 드라마는 일본 원작 한국 드라마가 많았으나 요즘은 반대로 한국 원작 일본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원작의 시나리오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원작의 인기를 일본에서도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다시 한국 원작이 일본에서 주목받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일본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는 2018년 방송(이하 방송 시기는 일본 기준) ‘시그널’(이하 제목은 한국 제목), ‘굿 닥터’, 2019년 방송 ‘보이스’, ‘투윅스’, ‘싸인’, 2020년 방송 ‘청년경찰’, 2021년 방송 ‘아는 와이프’, ‘그녀는 예뻤다’ 등이 있다. ‘시그널’과 ‘굿 닥터’를 중심으로 분석한 ‘일본 한류의 지속적 확산을 위한 TV 드라마 리메이크 활성화 방안 연구’(후루카와 유미·김경희, 2019)는 “그 나라의 정서나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어야 하고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멜로나 가족 드라마보다는 수사나 의료, 법정 등 장르 드라마가 리메이크로 선호된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올해 리메이크된 드라마 ‘아는 와이프’나 ‘그녀는 예뻤다’는 멜로나 가족 드라마에 해당된다. 4차 붐 이후 인기가 많은 한국 드라마를 봐도 멜로나 가족 드라마가 상위권에 많고 일본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로 판단된 듯하다.
일본에서 한류의 향후 과제
같은 드라마 중심 붐인 1차 붐과 4차 붐을 비교해보면 1차 때는 인적 교류가 활발했지만 4차 때는 인적 교류가 거의 없다는 차이를 들 수 있다. 1차 때는 출연 배우들이 일본을 찾아가 매체의 취재도 받고 팬 미팅을 통해 팬들과 만나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팬들이 한국에서 배우를 만나거나 촬영지를 여행하는 등 상호 인적 교류가 많았다. 한편 4차 붐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일 왕래가 어려운 상황에다가 한일관계가 안 좋아서 배우들이 일본 매체의 취재에 소극적인 면도 있다. 작품만 넷플릭스를 통해 ‘소비’되는 건 한일 문화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쉽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한일 왕래가 재개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한일 양국 정부는 한일관계가 문화 교류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주오사카 한국문화원이 해왔듯이 공적 기관이 문화 교류를 이끌어 주는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일본, 한류, 한국드라마, 한국영화, 여성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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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나리카와 아야(nariaya31@gmail.com)
현) 저널리스트(중앙선데이, 한국기자협회보 연재 중)
현)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전) 아사히신문 기자
저서: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 생각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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