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시아의 미래와 전략 (2)
미중 전략경쟁과 아세안의 아시아 지역전략

최원기 (국립외교원)

아세안은 1967년 창립 이래 지난 50여 년간 어느 특정 강대국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국가들과 다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최근 미중 전략경쟁 격화에 따른 미중 간 양자택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향후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단선적인 외교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하나와 배타적 관계를 맺기보다는 양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다원적 외교를 통해 자신들의 외교적 옵션과 선택지를 넓히고자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외교적 자율성과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역외 강대국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이러한 균형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법은 아세안 개별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격화되는 미중 경쟁

2021년 1월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 견제를 주축으로 하는 신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임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본격화된 미중 전략경쟁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해서 미중 양 강대국의 전략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외교 및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핵심지역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공세적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에게도 동남아 지역은 핵심 전략 거점이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거대 경제권 건설 전략인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의 거점지역으로 동남아를 설정하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동남아는 중국의 부상이 가장 분명하게 지정학적·지경학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000년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이에 따라 동남아에서 미중 간 역학관계에는 중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이제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은 압도적인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시도하면서 동남아 역내 당사국들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바, 남중국해를 비롯한 동남아에서 미중 패권경쟁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유보적 태도

아세안은 역외 강대국 중 어느 특정국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국가들과 다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과거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동남아 지역은 역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는 전략적 교차점(Strategic Crossroads)으로서 지정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지역 국가들은 특정 강대국의 배타적 영향권으로 귀속되는 것을 극히 꺼려 왔다. 일종의 균형전략을 통해서 아세안 국가들은 자신들의 외교적 자율성과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역외 강대국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최근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도 특정 역외 강대국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러한 외교적 지향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유보적 태도를 보여 왔다. 가장 큰 이유는 인도태평양 개념이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Quad) 참여 국가들이 주창하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모두 중국을 배제·견제하고자 하는 전략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아세안은 미국뿐만 아니라 이들 쿼드 국가들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영향력에 대한 강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중국과 원만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오고 있기 때문에 선뜻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세안이 2019년 6월 34회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에 관한 아세안의 관점(AOIP: 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이라는 아세안의 단일 입장을 정리한 공식문서를 채택한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과거의 유보적 태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아세안의 AOIP의 채택 그 자체가 인도태평양 개념의 수용 및 동조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AOIP의 채택을 통해 아세안은 인도태평양 담론을 아세안에 유리한 측면에서 외교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동기가 매우 컸다. 즉, 아세안은 미국이 강조하는 인도태평양 차원의 지역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미국이 강조하는 중국 견제의 군사안보가 아니라 아세안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계성(Connectivity), 해양협력 등 경제 분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안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이 제시하는 군사안보 협력에 간접적인 거부의사를 나타내는 동시에, 경제협력을 통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에 대한 헤징(Hedging) 전략

냉전 종식 이후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역내 안정유지에 기여해 온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적 ‘헤징’ 전략을 추구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는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점차로 역내에서 무역 및 투자 면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제적 ‘편승’ 전략을 추구해 왔다. 즉, 동남아 국가들은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미중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보 및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의 헤징 전략을 추구해 온 동남아 국가들은 최근 역내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미중 간 세력균형의 변화와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라는 새로운 외부환경의 도전을 맞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여가 약화된 상황에서 중국의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압도적인 경제적 영향력은 이제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 및 미중 경쟁의 본격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아세안의 개별 국가들의 대외정책에는 사안별로 조금씩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단일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캄보디아는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 대외정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친중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다. 중국은 캄보디아가 남중국해 당사국들과 아세안 차원에서 연대하기 보다는 중국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강력한 경제적 유인과 외교적 압박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캄보디아가 아세안 의장국이던 2012년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아세안 회원국 간 이견으로 인해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의장성명을 채택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의장국 캄보디아가 베트남 등 남중국해 당사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의장성명에 남중국해 관련 언급을 생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구조적 압력에 대응하여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서, 중국 이외에의 역외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중국에 대한 헤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한국, 호주, EU, 인도 등 미중을 제외한 아세안의 역외 대화상대국(ASEAN dialogue partners)들은 아세안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들 역외국들은 미중 사이에서 아세안의 자율성을 강화시켜주는 전략적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이후 경제적·외교 다변화 차원에서 추진해 온 신남방정책에 대해 동남아 국가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적 고려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정부가 2019년 11월 부산에서 개최한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가 매우 예외적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10개국들이 모두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을 제외한 역외국들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미중에 대한 의존도를 적절히 관리하고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이들 역외 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의 일방적 영향력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레버리지(Leverage)로서 가치를 가진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권 하에 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역외 대화 상대국과 같은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너무 커지게 되면 자신들이 중국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강한 경계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교역, 투자 및 자본 확보라는 관점에서 환영하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전략적 대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중 간 균형 유지 및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 유지 노력

동남아 국가들이 향후에도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단선적인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하나와 배타적 관계를 맺기보다는 다원적 외교를 통해 자신들의 외교적 옵션과 선택지를 넓히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세안은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선택을 요구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그동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아세안의 자율성과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도태평양 지역협력을 추진할 것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또 이 지역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중국과는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경제적 이익은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일본, 호주, 인도 등 다른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압도적 영향권 하에서 놓여 있는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중국 편승(Bandwagoning) 전략을 택하고 있는 캄보디아나 라오스조차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대해 강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개별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중국과 미국 두 역외 강대국에 대해 헤징(Hedging), 균형(Balancing), 그리고 편승(Bandwagoning)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다면적인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미중 간 역내 주도권 및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격화되고 있는 전략경쟁 상황에서 아세안은 앞으로도 미중 어느 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양 강대국으로부터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아세안 자체의 단결력(Unity)과 내구력(Resilience)을 강화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18호 (2021년 7월 5일)

Tag: 아세안중심성, AOIP, 헤징전략, 미중전략경쟁, 인도태평양전략, 일대일로구상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영선. (2019). “한-아세안관계 30주년, 신남방정책의 나아갈 방향은?.” 『Diverse Asia』 (1권 4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ttp://diverseasia.snu.ac.kr/?p=2377
  • David Shambaugh. (2021). Where Great Powers Meet: America and China in Southeast Asia.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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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bastian Strangio. (2020). In the Dragon’s Shadow: Southeast Asia in the Chinese Century. Yale University Press.

저자소개

최원기(wchoe06@mofa.go.kr)

현) 국립외교원 교수, 국립외교원 산하 아세안-인도 연구센터 책임교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 자문위원
전) 국회 한-남아시아 의회외교포럼 자문위원, 유엔기후변화협상 정부대표단 외교부 자문 (2010-2019)

저서와 논문: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아세안의 인식과 대응』 , (국립외교원, 2021).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하다』, (공편), (국립외교원, 2019).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 정책연구시리즈, (외교안보연구소, 2019).
“New Southern Policy: Korea’s Newfound Ambition in Search of Strategic Autonomy.” Asie.Visions No.118, (IFRI France, Jan.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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