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류와 아시아(1)
한류 20년, 성과와 미래 전략
중국 및 동남아에서 시작된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초기의 한류 비판론과 종말론은 지나친 기우였다. 이제 한류의 장르도 드라마와 K-pop 중심에서 영화와 웹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되고 있다. 본 글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류가 쌓아온 발자취와 그 의미를 돌아보고,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미래 전략을 제시하였다.
한류 20년의 의미
2019년 BTS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미국 CBS TV의 인기 토크‧버라이터 프로그램, The Late Show에서 비틀즈의 미국 데뷔장소인 에드 설리반 극장에 BTS를 출현시키고 비틀즈 오마쥬 무대를 꾸몄다. 팝의 본고장에서 BTS가 비틀즈의 뒤를 잇는 시대의 아이콘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한류 시작 초기 ‘한국 대중음악이 비틀즈라도 되나?’라는 냉소적인 비판을 들었기에 BTS의 비틀즈 오마쥬 무대는 한류 성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가 세상에 알려 진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사랑이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가 아시아의 수백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클론’과 HOT가 이 지역 청소년들의 패션 스타일을 바꾸어 놓으면서 한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초기에 한류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비관적이었다. ‘한류는 곧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곧 끝날 것을 갖고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하수도 쓰레기 같은 저급한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문화를 대표하나?’ ‘일제와 서구의 싸구려 대중문화를 카피한 것은 우리 문화가 아니다’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런 비판가들은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 유명 기획사 대표는 “우리의 세계 진출은 한국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라고 세계 진출의 동기를 설명하였다. 누군가가 도와주어서, 아니면 여건이 좋아서 해외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당시 열악했던 국내 상황 속에서 문화콘텐츠산업의 생존을 위해 해외 진출을 모색했던 결과가 지금의 한류열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겨울연가>나 <대장금> 같은 빅 히트작이 나올 때면 언론에서 한류의 성공을 떠들다가도, 붐이 조금이라도 수그러들면 ‘그것 봐라,’ ‘결국은 쉽게 꺼질 거품이었다’라는 비판을 가하였다. 하지만 한류는 신기하게도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 단계씩 도약하였다. <겨울연가>, <대장금> 직후 ‘한류는 이제 끝났다’라고 할 때, 일본에서 카라와 소녀시대를 중심으로 K-pop 붐이 일었다. 일본 음악 시장 진출로 목표를 달성한 줄 알았던 K-pop은 프랑스 SM Town 공연의 성공과 싸이의 등장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서구 진출을 시작하였다. 한류의 핵심 콘텐츠가 K-pop으로 쏠렸다고 생각될 때, 한동안 잠잠하던 드라마에서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라는 킬러 콘텐츠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후 소강상태를 거친 한류 콘텐츠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서 글로벌 시장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K-pop에서 BTS와 블랙핑크가 그렇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통해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승리호>가 세계 안방극장에 파고들고 있으며, 영화시장에서는 <기생충>과 <미나리>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한류 초기부터 현재까지 킬러 콘텐츠들의 성공 하나하나가 기억에 생생한데, 그 사이사이에 한류 종말론과 비판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는 게 놀랍다. 한류의 끝이 언제인가를 얘기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아시아와 한류, 반한류
2021년의 한류는 전 세계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하고 있으나, 그 출발은 대만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였고, 지금도 아시아 시장의 비중이 가장 높다. 동남아시아,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 등의 시장 잠재력도 급부상하고 있어, 이들 지역의 미래 가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경제적 성장과 발맞춰 콘텐츠 산업이 급성장한 것에서 보듯이 아시아 국가들의 빠른 경제적 성장은 콘텐츠의 수요를 촉진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의 한국 콘텐츠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아시아 권역의 문화적 유사성은 한류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한류가 아시아 청소년 하위문화로 자리매김하면서 외국 문화에 몰두하는 자국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가 한류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류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국 팬들을 보며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현지 지식인들의 비판도 컸다. 최근 몇몇 아이돌들의 현지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부적절한 행동 등은 한류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
아시아는 한국 대중문화가 가장 사랑받고 있는 지역이자, 한류 팬들이 가장 많은 곳이며, 한류의 가장 큰 시장이다. 한류의 출발지인 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한류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 각국과 원활한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그들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우리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국가들에 대한 존중과 그들의 중요한 문화적 코드를 거스르지 않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한류의 성과
한류의 일차적 성과는 문화콘텐츠 상품의 해외 수출액이다. 2000년 약 5억7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콘텐츠 수출액은 2018년에는 96억1천5백4만 달러로 급증하였다. 특히, 핵심 한류 콘텐츠로 분류되는 방송콘텐츠와 대중음악의 수출액은 더욱 두드러진다. 2000년 1천3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방송수출액은 2018년 5억 달러로 40배에 가까운 성장을 보였으며, 2000년 약 8백만 달러에 불과한 음악콘텐츠는 2018년에 방송콘텐츠 수출액을 능가하였다.
한류 콘텐츠의 수출액이 크게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가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미미하다. 한류가 전 세계시장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2017년에 방송콘텐츠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액 대비 0.087%였고, 음악 수출액의 비중은 0.079%, 영화는 더욱 저조하여 0.007%에 불과하였다. 문화콘텐츠 상품의 수출액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각 장르의 수출액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0.1%도 안 되는 작은 액수라도 한류가 방송, 음악, 영화가 세계에 한국 문화 이미지를 심고 한국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화장품이나 패션 산업, 관광 산업 등 타 산업 수출을 촉진시키고 있는데, 한류의 가치를 단순히 ‘수출액수’로만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대중문화콘텐츠의 경우 그것이 직접 창출해내는 수출액보다 파급효과로 인한 다양한 가치 창출에 주목해 할 필요가 있다.
한류는 한국의 이미지에 문화를 입혀 새로운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 내었다. 한국전쟁, 경제발전 등에 한정되어 있던 한국의 이미지가 바뀌게 된 것이다. 한류 스타들이 세계 패션의 트렌드 세터가 되면서 한국의 문화가 ‘힙’한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한류 팬들은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에 관광을 온다. 전 세계에 한국을 알고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함으로써, 앞으로 이들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또 이렇게 형성된 한국의 이미지는 프리미엄을 더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파급효과를 확대시킬 것이다. 과거 한국 상품이라고 하면 디스카운트되었던 관행이 바뀌고 있다.
한류의 미래전략: 해결해야 할 과제
한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아직 열악한 부분이 많다. 한류의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한류를 선도하는 문화콘텐츠 기업들은 아직까지 글로벌 콘텐츠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고 기업 안정성이 낮다. BTS가 없는 빅히트를 상상해보라. BTS 멤버 누군가가 군대에 간다면 빅히트의 운명도 위험해질 수 있다. 이것이 한류 선도 기업의 현주소이다. 한편 기업문화 측면을 보면 근로환경의 열악함, 종사자 인권침해, 대중문화예술인과 연습생들의 정신건강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한류 스타가 자살하거나 아이돌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인적인 불행을 넘어 한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다. 한류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경쟁업체나 국가에서는 한국 문화산업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기 때문에,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인권과 정신건강 문제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이는 언제든 한류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문화산업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문제와 종사자 안전망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류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함 속에서 성장하는 문화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최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콘텐츠 기업이나 콘텐츠 제작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예컨대 K-pop이 세계를 휩쓸고 있어도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아레나(Arena)급 대형 공연장이 없다. 또 한류의 주역인 드라마를 즐기고 체험하는 기념관이나 박물관도 없다. 유럽의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어도 영화박물관은 열악하기만 하다. 해외의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K-pop에 매료되어 한국을 방문해도 한류를 즐기고 체험할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드라마 박물관이나 K-pop 박물관, 영화박물관은 그 자체로서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의 장이자, 외국인들에게는 한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 인프라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사업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치하고자 하는 지자체들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 국가적인 대중문화 인프라 사업들이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한류를 둘러싼 세계 문화산업의 환경은 하루하루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OTT 플랫폼 기반의 콘텐츠 소비로 영화와 드라마의 장르 구분이 모호해지고, 콘텐츠 유통의 국가 간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한편 AR, VR, 메타버스 등 콘텐츠를 둘러싼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탄생시키고 있다. 시리즈물 콘텐츠과 함께 숏 폼 콘텐츠도 대 유행이다. 지금까지 우리 문화산업이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한류를 만들어 냈다면, 한류의 지속을 위해서는 그 변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콘텐츠 산업 선진화를 위한 지원도 강화되어야 한다.
한류는 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앞으로 한류가 국제무대에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제안한 몇 가지 정책들과 더불어, 한류가 지금껏 이룩해 놓은 성과에 대한 존중과 인정,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류가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고민하고, ‘한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한류, K-pop,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 소프트 파워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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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채지영(afifa@kcti.re.kr)
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전) 東京大學 인문사회계연구과 사회심리학전공 연구원
전) 시즈오카현립대학 객원연구원
저서:
『한류 포에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2011) (공저)
『韓流ハンドブック』 (新書館, 2007) (공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해』 (넥서스Biz, 2009) (공저)
『창조경영 시대의 문화마케팅』 (한국메세나협의회, 2006) (공저)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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