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 백신의 정치와 외교(4)
중국의 백신 외교: “팬데믹 시기 내가 리더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쥐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팬데믹’과 ‘미국의 압박’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아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을 능가하는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최근 사태가 심각해진 인도에게 방역용품 및 100만불을 쾌척한 것도 대표적 사례이다. 한편 중국의 글로벌 보건외교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인류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가 미·중 간 각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미·중의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새로운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하여 아세안 등과 협력하여 제3의 외교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중국의 글로벌 보건 외교의 주요 양상
최근 중국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인도에게 산소호흡기 등 의료용품을 제공한 것 외에도 적십자사를 통해 100만불을 쾌척한 것은 미국에 비해 우월한 자신의 도덕성을 암묵적으로 내세우기 위함이다. 중국 언론은 인도 사태를 외면하는 미국의 냉정함을 비난했다. 사실상 중국에서는 이전부터 미국의 백신외교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이 인류의 건강을 위해 백신을 나누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또한 WHO의 코백스를 제끼고 인도, 일본, 호주와 연합하여 백신을 무기로 삼아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충하려 한다는 비난이었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정에서 미국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리더십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자국의 보건 리더십과 규범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여왔다. 작년 6월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국제협력정상포럼 축사를 통해 “보건 실크로드(健康丝绸之路)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공보건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인류보건건강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것은 글로벌 공공보건 거버넌스에 새로운 길을 제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대일로의 고품질 건설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일대일로를 통하여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발전 방향에 적극 개입할 것임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또한 방역 및 사회관리와 관련한 첨단기술 및 플랫폼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디지털 실크로드(数字丝绸之路)도 활기차게 진행 중이다. 방역에 필요한 백신과 마스크, 손소독제 외에도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이나 사회관리 시스템에 필요한 첨단기술, 예를 들면 QR코드, AI 진단 키트, 드론 열감지기, 원격 진료를 위한 IT, 빅데이터, 5G 등을 팬데믹 대응이 절실한 개도국 및 저개발국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방역을 앞세워 안면인식, 스마트 시티 솔루션 등 첨단 감시 및 공안 기술을 아프리카 권위주의 정권에 제공하는 상황은 향후 미국과의 대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 외에도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백신을 제공함과 동시에 아세안(ASEAN)을 대상으로 하는 ‘광시5G산업연맹’을 설립하여 중국식 디지털 규범, 표준, 시스템을 전파하고 있다. 현재 중국-아세안 인공지능혁신센터, 중국-아세안 구역연결혁신센터, 북부만(北部湾) 빅데이터 교육센터 등 디지털 기술혁신 플랫폼이 구축되고 있다.
세간에 잘 알려진 중국의 백신여권 외에 이번 달에 막 출시된 중국 영사 애플리케이션 또한 주목할 만하다. “건강하고 안전하며 질서 있는 인적 왕래의 신질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백신여권은 포스트 팬데믹 시기 중국식 인적 왕래의 표준을 국제사회에 전파하려는 의도이다. 한편 중국 영사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전 세계 중국인들에게 여행 증명서와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전 세계 곳곳에 분포해있는 화교에 대한 관리 및 감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포스트 팬데믹 시기 화교들을 통해 중국의 표준과 시스템을 전 세계에 확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미 200여 개에 달하는 국가와 지역의 화교 및 화인들이 알리페이(支付宝)의 방역 플랫폼을 이용하여 1,000명이 넘는 중국 의사들로부터 온라인 진단과 처방을 받고 있다. 스페인 주재 화교와 중국 유학생들도 위챗(Wechat)에서 보건 문제 교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30여 개 국가나 지역의 의료 종사자들이 당면한 400여 개의 문제들을 번역하면 전문가가 답해주는 방식이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중국의 ‘도덕적 리더십’ 필요
중국의 코로나19 관련 보건외교의 이론적 기반에는 ‘도덕적 현실주의(道义现实主义, Moral Realism)’가 있다. “이익보다 의(义)를 먼저 구함은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중요한 내용이다…(중략)…우리는 경제발전의 이익을 희생하고 스스로 방역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중국식 방안과 중국의 역량으로 글로벌 공공 위생 안전이라는 인류의 대의를 수호한다.”라고, 작년 4월 인민일보에 게재된 사설은 중국의 도덕적 현실주의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이론은 2015년 중국의 대표적 신현실주의 학자에 의해 주창된 후 중국학계에서 주도적 담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시진핑 집권 이래 중국이 서구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식 모델과 담론을 개발하려는 사회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 성행했던 전통사상, 특히 유가적 관점의 소환이기도 하다. 도덕적 현실주의는 “부상국이 어떻게 기존 패권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양자 간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물질에 기반한 힘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리더십이며, 이때 정치적 리더십의 핵심은‘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도덕적 현실주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중 압박 이전에 나온 것으로서 미중 세력경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가 담겨있다. 중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방 동맹국들의 무력함이 드러남에 따라 미국 동맹체제가 적잖은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의 조직적 대응도 무기력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개도국과의 연대 강화
‘미국의 거센 대중 압박’과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대 위기를 맞아 과거 1950-1960년대 비동맹국가들을 대상으로 나타났던 중국의 전략적 구상과 큰 그림이 오늘날 재강화되고 있다.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처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자국 진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국 및 서구의 거센 압박에 대항할 뿐 아니라, 특히 서구의 코로나19 대응의 무력함이 초래한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권력 진공 상태를 메우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작년 6월 베이징에서 개최한‘중국-아프리카단결방역특별정상회의(中非团结抗疫特别峰会)’에서“UN을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를 수호하고 WHO가 글로벌 방역을 위해 더욱 큰 공헌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진핑 주석이 과거엔 ‘UN의 국제사무에서의 핵심 지위’ 또는 ‘UN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 라고 주로 표현했다면, 최근에는“UN을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자”라고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중국은 그동안 국제기구에서 아프리카 등 개도국들의 발언권을 제고시키는 것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민주화’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대변해왔는데 최근 이러한 입장이 더욱 빈번하게 표출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올해 3월 양회(兩會) 기자 브리핑에서“50년 전 중국이 유엔 지위 회복 시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형제들이 환호해주었다”며 강한 유대감을 표했다. 또 “유엔은 강대국의 클럽이 아니고, 부자의 클럽은 더더욱 아니다”고 일갈하며 전선을 나눴다. 정부 뿐만 아니라 언론도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다자주의를 빌미로 패거리를 짓거나(拼凑小圈子) 패권적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라며 미국을 경계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주도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력영역으로 팬데믹 대응, 경제 부흥, 기후변화 라는 세 가지 의제를 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이 이러한 글로벌 난제를 미국과 함께 해결하자고 나선 것으로서 스스로를 G2 입지에 올린 것이다. 이는 중국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에서 회자된 G2 담론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 팬데믹 시기를 맞아 오히려 정체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K-보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며 아세안(ASEAN)과의 유대를 강화해야
상술한 중국의 노력들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도덕성 인정 및 리더십 강화로 이어질 것인가? 코로나19 발발 초기 정보 은폐 및 중국식 강압적 봉쇄는 방역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작년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평균 73%의 선진국 국민들이 중국에 비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한 선진 14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역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는 대체로 중국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있는 반면, 중동 및 라틴아메리카의 개도국들은 팬데믹 시기 중국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향후 비서구권 국가들의 백신 공급 및 보건 개선에 중국이 계속 기여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면, 또한 그에 대한 미국 및 서구의 반발이 증폭된다면 인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보건 분야도 지정학적 고려에 따른 강대국 간 치열한 세력경쟁의 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극복을 위한 미중 간의 협력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력, 한류와 IT 등 소프트파워 강국, 민주주의 모범국이자, K-방역 모범국가인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의 기본원칙은 미중 파워경쟁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며, 우리의 비교우위(민주적 가치, 보건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 갈등에 휩쓸리지 않고 소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신남방정책의 핵심영역으로서 ‘K-보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며 아세안과의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Yusof Ishak Institute)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남아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세안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으로 팬데믹과 취업 문제를 꼽았다. 앞으로 아세안이 현 정치 경제 발전의 흐름에 잘 대처하지 못하거나 강대국 경쟁의 대리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또한 백신외교로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들은 ‘K-보건 이니셔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즉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고 미중 갈등에 대처하는 한국의 제3지대 외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세안의 팬데믹과 경제 회생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필요하다. 예컨대 백신 지재권이 면제되면 한국산 백신을 조기에 개발하여 아시아의 공공재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세안 각국의 상황에 맞게 한국의 선진적 보건 시스템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애로 사항과 현지인들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조치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백신의 공평 분배, 정보의 투명성, 인권의 가치를 선도하되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NGO도 참여하는 역내 보건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처럼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역량과 신뢰를 구축해 나아간다면 미중 갈등의 심화로 초래될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훼손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우리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 확보, 과거 사드와 같이 강대국 개입으로 인한 당사국 이익 침해 발생시 한-아세안 공동 대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또한 향후 장기간 전개될 미중 경쟁과 갈등 국면에서 아시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팬데믹, 백신외교, 거버넌스, 현실주의, K-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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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서정경 (jksnu@snu.ac.kr)
(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현) 현대중국학회 학술기획위원장
(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전)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
(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저서와 논문:
『일대일로 다이제스트』 (다산출판사, 2016) (공동책임편집).
『중국 발전모델의 변화와 미중경쟁』 (명인문화사, 2020) (공저).
『시진핑 사상과 중국의 미래: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분석』 (지식공작소, 2018) (공저).
“중국의 강대국 정체성과 주변외교의 발현: 대 중앙아시아 인식 및 정책 ” 『국제정치논총』 56권 3호, 2016.
“동아시아지역을 둘러싼 미중관계: 중국의 해양대국화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50권 2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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