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중앙아시아: 트럼프의 재선이 가져올 지역 질서의 변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으로 중앙아시아 지역 질서가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보다 경제적 실익과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강화되고, 러시아의 지역 영향력 확대도 저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미-러-중 3강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내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자체적인 발전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재선으로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미국의 대외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으며, 현직 미국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이 지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변화로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향후 미국의 정책을 예측하기 위해 트럼프 첫 임기 동안의 대(對)중앙아시아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첫 임기 동안의 중앙아시아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은 2020년 2월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의 중앙아시아 방문이었다. 그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여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등 명백한 반중국적 행보를 보였다. 이 방문 직후 2020년 2월 5일, “미국의 대(對)중앙아시아 전략 2019-2025(U.S. Strategy for Central Asia 2019-2025)”가 발표되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실용주의적 접근법으로, 6가지 주요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주권과 독립성 지원이다. 이는 민주적 제도를 강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촉진함으로써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협력적 파트너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둘째, 중앙아시아 사회가 극단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복력을 키워 테러 조직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지원을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과 경제 및 무역 연계를 발전시키도록 장려했다. 넷째, 지역 안정에 직접 기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에너지, 경제, 문화, 무역, 안보 분야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더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시민 참여, 선거, 투명한 정책 수립, 법치주의, 인권 보호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투자 촉진을 위해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하지 못해 이러한 전략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다.
대(對)중앙아시아 전략 채택 이전부터 트럼프의 정책에는 실용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졌다. 그의 접근 방식은 민주주의 개혁이나 인권 문제보다는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했으며,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구상)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협력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핵심 전략이었다.
트럼프의 첫 임기 정책은 민주당 행정부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실용적 접근을 선호했던 트럼프와 달리 오바마와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개혁과 인권 문제를 강조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9월 최초로 ‘C5+1’ 미국-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고위급 외교를 강화했고, 민주적 거버넌스 증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지역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추가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이러한 과거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의 중앙아시아 정책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마이크 폼페이오가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대(對)중앙아시아 전략 2019-2025″의 기본 골자는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실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이 강화될 것이다. 이 전략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지원과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연계성 강화라는 3, 4번 목표에 대해서는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목표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보다는 투자와 무역 확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미국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 중심의 정책 기조는 특히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은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러시아 주도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Eurasian Economic Union) 가입을 계속 저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첫 임기 당시에도 미국은 WTO 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우즈베키스탄의 유라시아경제연합 참여를 저지하려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상원은 2024년 5월 EAEU 옵서버 자격 참여를 압도적 찬성으로 결정했다). 더욱이 냉전 시기 소련의 이민 제한 정책에 대응해 제정된 잭슨-배닉 무역제한 수정조항이 아직 해제되지 않아 우즈베키스탄과의 양자 무역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난 30여 년간 러시아,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것처럼 교묘한 균형 외교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對)중앙아시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러 관계의 변화가 될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 전 공약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러 이유로 이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전쟁 종식 조건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가 매우 크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간 유예하는 대신 무기 지원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푸틴은 이러한 ‘분쟁 동결’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입장에서 이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닌 우크라이나를 재무장시켜 또 다른 충돌을 준비하기 위한 일시적 중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민스크 협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접근법이며, 민스크 협정으로 인해 깊은 배신감을 느낀 푸틴은 이와 유사한 새로운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푸틴이 요구하는 핵심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영구적인 중립국화, 즉 나토 가입 완전 포기이며, 이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원하고 있다.
현재 시간은 푸틴의 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선에서 러시아군은 지속적으로 전진하여 최근 2개월간 전년도 대비 5배 이상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사적 우위와 더불어 러시아의 전반적인 상황도 안정적이다. 최근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보았듯이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며, 러시아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올해 3.9%의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고 역사상 가장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적으로는 푸틴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푸틴이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푸틴의 모든 조건을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이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트럼프는 의회 의원들을 설득하여 이러한 양보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며,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 기득권 관료집단)’ 또한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될 경우,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 이들 국가가 러시아의 서방 제재 우회를 위한 경로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러시아와의 무역량이 러시아 경제제재 이후 큰 폭으로 증가했으며 이를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대해 이중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제재 우회를 막기 위해 2차 제재 위협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은 중앙아시아 지역 질서에 실용주의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정책은 민주주의와 인권보다는 경제적 실익과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미-러 관계와 미-중 관계의 변화가 이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강대국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이 자체적인 발전 모델을 구축하고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외부 세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자적 대화 플랫폼인 중앙아시아 정상회담 등 역내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과 같은 모델을 참고하여 중앙 조정 기구를 설립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중앙아시아, 실용주의, 트럼프재선, 국제질서, 균형외교, 유라시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The White House (2023). “Remarks by President Biden After Central Asia 5 + 1 Meeting.” https://www.whitehouse.gov/
- U.S. Department of State (2020). United States Strategy for Central Asia 2019-2025: Advancing Sovereignty and Economic Prosperity (Overview).https://2017-2021.state.gov/
- Гарбузарова, Е.Г. (2020). “Приоритеты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Д. Трампа в Центральной Азии.” Вестник Том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455, 97–103.
- Сатпаев, Д. (2024). “Трамп и Центральная Азия: status quo или смена приоритетов?” Forbes Kazakhstan, November 7.https://forbes.kz/
- Хён Сын Гу (2020). “Окажется ли успешной стратегия США в отношении Центральной Азии?”https://www.kf.or.kr/
저자소개
바딤 슬랩첸코(omegaplan@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전) 한림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주요 저서와 논문
『러시아 극동을 알다. 캄차카 변강주 경제편람』(공저), (한림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21).
『러시아 문화산업의 현황과 전망』(공저), (다해, 2019).
“Факторы привлекательности Армении для российских релокантов в контексте современных миграционных процессовков.”『러시아연구』34(2), 2024. (게재확정)
“러시아연방 북극 원주민의 지속가능한 발전: 추코트카 자치구 중심으로.” 『아태연구』29(4), 2022.
“러시아의 국제운송회랑 정책과 한국의 기회: ‘프리모리예-1/프리모리예-2 운송회랑’ 및 ‘북극해 회랑’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30(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