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2024 아시아의 회고와 전망(5)
2024년, 한류의 회고와 전망

홍석경(서울대학교)

2023년에 한류의 재료인 한국 대중문화는 여전히 큰 진전을 보였다. 케이팝의 차기 스타들이 데뷔하고 시장은 확대됐으며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 투자를 넘어서서 단단한 제작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음식의 인기, 한글 학습자의 증가 등이 대중문화가 중요한 소프트파워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의 현실은 미디어 콘텐츠와 더불의 한류의 성공 스토리를 생산해왔는데, 2023에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의 미디어콘텐츠가 생산하는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여러 사건이 발생해 한류스토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류의 미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 저하라던가 해외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 저하라기보다 한국 사회 내부의 위험요소에 달려있다. 이와 동시에 한류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성찰하고 해결하기 위한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한류는 언제부터인가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이 한류를 언급하는데 실제 맥락 속에서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정책을 다루는 분들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대체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고, 미디어업계 종사자들은 한국 문화콘텐츠를 의미하는 경향이다. 한류가 세계 속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라는 수용현상임을 고려한다면, 전자는 한류의 효과, 후자는 한류의 원재료라는 점에서 복잡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는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일종의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한국을 매력있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 속 한국의 상황과도 스토리와 의미로 얽혀있다. 한류에 대한 의견을 낼 때마다 한류를 정의해야 하는 번잡함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짧은 전망의 글 속에서도 이 세 가지 차원을 모두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한류에 대한 회고는 따라서 대중문화, 그것의 수용, 현실 한국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논해야 한다.

케이팝, 한국 드라마, 케이푸드의 한 해

2023년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 속에서 계속해서 전진했다. 케이팝의 경우 BTS가 그룹 활동을 멈췄지만 4세대 아이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으로, 아직 2023년 공식집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2022년 음반 판매량 8,000만 장을 30퍼센트 이상 넘어서서, 2023년 케이팝 음반 판매량이 1억 장을 넉넉하게 돌파했으리라 예상된다. 2022년에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앨범 10개 중 8개가 케이팝 앨범이었는데 이 경향을 지속해 나가고 있으니, 세계 속에서 앨범 판매라는 물적 결과만으로 볼 때 케이팝은 여전히 급격한 상승 곡선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팝의 진정한 영향력은 세계 청년세대를 네트워크화된 공중으로 만드는 힘이고, 이것은 시장 데이터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케이팝 팬 중 많은 수용자가 한국 드라마, 영화, 웹툰의 소비자이고 한국 음식과 케이뷰티에 열광하고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을 여행하거나 꿈꾼다는 점에서 한국 소프트파워 형성에서 케이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가 보여주는 2023년 한국 드라마의 건강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2023년 글로벌 순위 탑 50중 <더 글로리>가 3위를 기록했고, 50위 속에 <피지컬>, <일타 스캔들>, <닥터 차정숙>, <환혼, 파트 1>, <환혼, 파트 2>, <철인 왕후>, <나쁜 엄마> 등 총 8개의 텔레비전 콘텐츠가 이름을 올렸다. 이 중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은 <더 글로리>와 리얼리티 프로그램 <피지컬>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방송사와 제작사 오리지널 드라마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드라마들은 전통적인 한국의 로맨스와 멜로물, 그리고 동아시아 크로스미디어 전통의 퓨전 사극, 판타지물인데, 이들의 순위를 50위 이내로 밀어 올린 시청자들이 아시아에 주로 분포해있고 갈수록 인도, 인도네시아, 아랍국가들에서의 시청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에게 세계시장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 강국 한국이 파트너로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증거한다. 또한 2023년엔 디즈니 플러스 또한 강풀 웹툰원작 <무빙>을 통해 한국형 수퍼히어로물이 국내외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동안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헐리우드에 고유한 수퍼히어로 장르를 지극히 한국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인 일반인 수퍼히어로를 통해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문화적 산업적으로 큰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은 또한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한국 축구선수들의 유럽 리그 진출이 e-스포츠 강국 코리아를 넘어서 유럽과 한국의 일상을 중계와 선수들 뉴스로 엮는 한해였다. 한국 미디어문화의 주 소비자가 청소년과 여성관객이라면, 축구스타들의 선전은 남성관객들에게, e-스포츠의 절대 강세는 청년 남성들에게 한국을 어필하고 있다. 토트넘의 주장선수가 된 손흥민 선수의 선행은 어떻게 스포츠가 한류의 일부로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확실히 진행되고 있는 웹툰 플랫폼의 세계시장 장악 또한 괄목할만 하다. <나 혼자만 레벌업>이나 <전지적 독자 시점>과 같은 웹소설과 웹툰은 전자책, 종이책, 애니메이션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웹툰과 웹소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으로서뿐 아니라 독자적인 지적재산권(IP)로서 고유한 콘텐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심심치 않은 해외발 뉴스들은 미디어 콘텐츠를 넘어서는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 상승을 증언하는데, 그중에서도 케이푸드의 진전은 특히 괄목할만했다. 2023년에 어떤 비약이 있었다기보다 미국인들이 냉동김밥을 유행시킨다거나 물회면이나 돼지국밥 같은 음식이 뉴욕타임즈지가 선정한 세계의 음식 리스트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한국의 일상적 음식이 한류 팬을 넘어서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음식을 대중문화로 간주하는 것은 이 음식들에 대한 관심의 촉발이 미디어콘텐츠를 통해서이고, 수많은 유튜브나 쇼츠 영상을 통해서 전 세계인이 재매개함으로써 한국 음식의 인기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의 인기는 한류가 얼마나 가치지향적인 문화현상인지를 잘 말해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김밥, <기생충> 속 짜파구리, 한국 드라마 속 수많은 삼겹살 회식 장면들과 아이돌의 먹방이 주목을 끄는 것은 음식을 먹는 순간이 커뮤니케이션 순간이고 음식과 먹는 순간에 ‘정’이든 ‘효’든 ‘배려’든 ‘계급’이든 한국 사회 인간관계의 정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에서의 성공으로서 한류는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으나, 그것을 생산하는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2023년은 2022년 11월 말 할로윈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의 쇼크 연장선에 있던 한해였다. 이 참사는 그 발생뿐 아니라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팬데믹 기간에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가 만들어 놓은 “자유와 다양성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한 나라 한국”의 이미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여름엔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끈 잼버리 대회의 무능과 실책, 그것을 케이팝 콘서트로 무마하려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소셜미디어 속에서 뜨겁게 비판되었다. 이어진 2030 부산 엑스포 유치경쟁의 어이없는 실패는 국내외로 한국 소프트파워에 큰 생채기를 낸 한국 공공외교의 실패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4년을 전망하기

이리 나열하고 보니 2023년의 한국과 한류는 참으로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관계에 있었다. 2024년에도 한국 대중문화는 2023년 만큼 진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드라마는 오리지널 뿐 아니라 그동안 성공했던 드라마의 시즌 2들이 예고되어 있고, 세계가 주목하는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신작도 나올 것이다. 케이팝 분야에서는 SM이 영국에서, 하이브가 미국에서 오디션을 통해 로컬 케이팝 그룹을 내보낼 예정인데, 케이팝의 ‘K’를 드디어 떼어내는 팝음악을 시도한다는 기대 속에 그 행보가 주목된다. 한국 음식과 한국으로의 여행, 한국어 열기도 쉽사리 수그러들 요인은 없다. 한국 대중문화의 누적된 실력과 한류를 통해 표현되는 세계 한류 애호자들의 열망을 고려할 때 한류라는 문화적 흐름은 한국 문화산업의 흥망성쇠와도 탈구되어, 개도국 출신 선진국이 된 한국이라는 스토리가 지닌 세계사 속 의미를 맥락으로 지속할 것이다. 따라서 한류의 희소식을 가릴 부정적 요인은 대중문화판이 아닌 현실 속 한국에 있다. 한국의 정치적 혼돈과 정치 엘리트들의 문화감수성 부족, 그리고 한국 사회와 문화 속에 잠재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태도는 한류에 가장 큰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한류의 힘이 한국이라는 스토리가 지닌 의미와 가치에 있다는 점에서, 아무리 국난 극복 한국인의 쟁투 자체가 긍정적 스토리로 수용될 수 있을지라도 한신대의 우즈백 학생 강제송환 사건이나 억울하게 세상을 하직한 이선균 배우를 낳은 현실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해결의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한류라는 한국의 성공 스토리에 커다란 악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좋아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매력의 장은 그것이 국가일지라도 경쟁자가 있고, 애정은 움직일 수 있다.

한류라는 기회

결국 한류는 한국 사회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 상황에서 더 나은 사회와 가치를 추구하도록 끌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 많은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을 여행자로서 방문하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걸 넘어서 일자리를 찾으러, 즉 정착을 꿈꾸며 입국하고 있다. 전 세계인이 제2외국어를 배우는 인기 앱인 듀오링고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중국의 거의 두 배에 달하며 일본어 학습자 수에 근접하고 있다, 세계 많은 대학의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 지원자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추월했다. 한류가 창출한 이러한 매력자원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역사적 문제나 현실적 문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넷플릭스가 방송 중인 일제강점기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을 다루고 있는 <경성크리쳐>는 역사시간과 교과서가 했던 것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일본인에게 한일의 과거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스토리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싶은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찾는 것은, 그 어떤 정부의 인구감소 해결책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한류는 끝없이 성찰과 해결의 실마리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6호 (2024년 1월 22일)

Tag: 한류,케이팝,한국드라마,케이푸드,한국어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3). 『2022 한류백서』. 2023-02 연례조사. https://kofice.or.kr/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3).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12차)』. 2023-01 연례조사 https://kofice.or.kr/
  • 홍석경 (2023). “한류 관광이 펼치는 새로운 가능성.” 『아시아 브리프』 3(4), https://snuac.snu.ac.kr/

저자소개

홍석경(skhong63@snu.ac.kr)

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및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