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2024 아시아의 회고와 전망(4)
동남아·아세안 지역의 2023년 회고와 2024년 전망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2023년 동남아시아에서 개별 국가의 국내, 그리고 역사 상황은 민주주의의 후퇴로 요약된다. 미얀마 군부통치의 지속과 캄보디아 훈센 부자의 2대 세습이 이를 대표한다. 대외적으로 동남아는 약화된 강대국의 관여를 경험했다. 문제는 이런 약화된 관여가 강대국 전략 경쟁이 줄어든 탓이 아니라 동남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라는 점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2024년 동남아에서 강대국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지역 전반의 전략적 상황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의 동남아 관여가 약화된다면 그 빈 공간은 한국, 호주, 일본 등 지역 중견국이 채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대 아세안, 동남아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2024년 예정된 한-아세안포괄적전략동반자관계 수립을 관계 발전의 중요한 도약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3년의 동남아·아세안 민주주의 후퇴와 강대국 경쟁의 약화

역내 민주주의 약화와 무기력한 아세안

코로나-19의 우울한 시기를 빠져 나온 2023년의 동남아가 역내, 국내적으로 마주했던 현실은 지역 내 민주주의의 쇠퇴로 요약된다. 2021년 군부 쿠데타로 민주화, 자유화가 역전된 미얀마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군부는 여전히 국내외 비판에 귀를 닫고 억압적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정치범 수는 지속 증가했고, 무고한 인명 희생은 이어졌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군부가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군부에 반대하는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 저항 세력은 물론 소수민족 반군 역시 군부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이런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서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이나 국제사회는 상황의 변화를 가져오기에 무기력했다.

동남아 민주주의와 관련해 2023년 주목할 만한 사안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2대 세습이다. 1998년부터 집권했던 훈센(Hun Sen) 총리는 2023년 아들 훈 마넷(Hun Manet)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훈 마넷은 2021년 집권당인 캄보디아 인민당(Cambodia People’s Party, CPP) 총재로 선출되었고 2023년 치러진 선거에서 프놈펜 선거구에 당선되어 의회에 입성하며 총리직을 맡게 되었다. 외견상 선거를 통해 집권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당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당 총재가 되고 2년 만에 총리가 된 것은 누가 봐도 아버지 변수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훈센은 25년간 캄보디아를 장기간 통치해 왔으며, 그 기간 동안 강력한 선거 기반의 권위주의 체제, CPP의 지배적 일당 체제를 구축했다. 단적으로 2023년 선거 결과를 보면 집권당인 CPP의 의석은 총 125석 중 120석이다. 득표율도 82%를 넘는다.

이런 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역내 권위주의화의 흐름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캄보디아의 2대 세습은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즉,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이 있어 아세안이 이 문제에 개입한다면 내정간섭 논란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 또한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와 인도적 위기에 대해 아세안은 지난 2년간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물론 군부의 아세안 회의 참여를 막고, 2026년으로 예정되었던 미얀마의 아세안 의장국 순번을 건너뛴 것으로 아세안은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들이 미얀마 국내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내정불간섭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개별 회원국의 자기 이익 보호를 위한 비토권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 없이 아세안은 미얀마 문제는 물론이고,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외관계: 미국의 관여 약화와 중국의 무관심

아세안 지역 밖으로 눈을 돌리면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 경쟁이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동남아 지역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지역으로 미-중 전략 경쟁의 가장 중요한 충돌 지점이다. 2023년 동남아 지역에서 미중 경쟁은 크게 보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023년 동남아 지역에서 강대국 경쟁은 예년에 비해 약화되었다. 미국의 대 동남아 관여(engagement)가 전과 같지 않고 중국 역시 동원할 수 있는 자원 측면에서 제약을 드러냈다.

미국 바이든(Joe Biden) 행정부 출범 이후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더 적극적인 대 아세안, 대 동남아 관여 정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전략은 지역국가를 끌어안기 보다는 몇몇 능력 있는 전통 동맹 국가 관계에 더 많은 무게 중심을 두었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미국, 일본, 호주, 인도 사이 4국안보협력인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QUAD)의 강화, 미국-영국-호주 사이 새로운 안보협력인 오커스(AUKUS)의 출범, 그리고 2023년 한국, 미국, 일본 사이 강화된 안보협력 구조의 등장은 모두 전통적 동맹 국가만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태 전략을 잘 보여준다. 이런 미국의 인태 전략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설 자리는 매우 좁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이 지역의 경제질서, 무역질서에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했다. 특히 무역에 의존한 국가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바랬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동남아 국가들이 기대했던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의 부활, 역내포괄적경제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에 대한 미국의 더 긴밀한 관여 등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RCEP은 중국의 경제적 수단으로 치부해 버리고 대신 인태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에 관심을 쏟았다. 개도국이 관심 있는 통상적인 무역보다 첨단기술, 새로운 경제 분야 질서 수립에 관심을 둔 IPEF는 동남아 국가들의 긴급한 경제적 요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과거의 예를 보면 미국의 대 동남아 관여가 약화된 시기는 대개 중국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2023년 미국의 대 동남아 관여 약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그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메웠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미국과 전략 경쟁, 동남아를 넘어 더 넓은 개도국 집단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공략 등으로 인해 전선은 확대된 반면, 중국 내 부동산 버블의 붕괴 등 국내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원 가능한 자원은 더 제약되었었다. 동남아 전선에 미국의 관여가 약화되기는 했지만 중국도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충분한 정책적 관심을 보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24년의 동남아/아세안 전망

더욱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강대국 관여

2024년 동남아와 아세안을 둘러싼 대외 환경을 먼저 보면 앞서 언급한 미국과 중국의 대 동남아 관여 약화는 2024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2024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미국 국내 환경과 선거 결과는 아세안을 둘러싼 대외 환경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의 2024년은 대통령 선거라는 화두가 지배할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을 트럼프(Donald Trump)가 가로막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바이든 행정부가 대외정책, 특히 대 동남아 정책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정책적 여유는 없을 것이다.

만약 2024년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귀결된다면 미국의 대 동남아 정책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의 경험을 떠올리면 단순히 동남아 정책의 약화뿐만 아니라 미국이 인태 지역에서 유지하고자 했던 영향력, 리더십의 큰 손상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집권으로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힘이 완전히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 동남아, 아시아 정책에 회의적 시각이 커지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 역내 힘의 균형이 중국 쪽으로 급격히 기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중국이 이런 미국의 부재 혹은 약화를 틈타 동남아 지역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2023년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영향력을 강화하지 못했던 중요한 원인들이 2024년에도 여전히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제 문제, 미국의 경제적 압박 지속,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라는 더 큰 전선으로 맞춰진 중국의 대외정책 초점 등으로 인해 중국이 동남아라는 특정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약화-중국의 현상 유지 혹은 미국과 중국의 동시 약화라는 현상은 동남아 국가, 아세안의 헤징(hedging) 전략에 유리한 환경은 아니다. 헤징 전략은 경쟁하는 복수의 강대국을 전제로 한다. 미국의 퇴조로 인해 지역에서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 두 강대국이 동남아 지역에서 동시에 관심을 철회하는 현상 모두 아세안의 헤징 전략이 작동하기에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강대국을 경쟁시켜 강대국으로부터 양보와 지원을 얻어내고 아세안의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는 아세안의 헤징 전략은 헤징의 대상인 강대국의 관여와 전략적 관심이 약할 때 레버리지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지역 중견국의 아세안 공세 강화와 취약한 아세안 리더십

반면 호주, 일본, 한국 등 지역 중견국가의 대 아세안 관여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가 재등장 한다면 미국의 인태 지역에 대한 관여 약화가 지역의 규칙기반질서(rules-based order)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지역의 규칙기반질서 유지를 위해 하던 역할을 방기한다면 이 질서를 유지하는데 지역의 중견국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 규칙기반질서는 중국의 역내 헤게모니 행사를 방지하는 방식으로 지역 중견국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개별 중견국의 정책도 중견국의 대 아세안 접근 강화의 원인이 된다. 호주는 2023년 “Invested: Australia’s Southeast Asia Economic Strategy to 2040”을 발표하며 대 동남아 경제적 관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일본 역시 2023년 말 아세안과 포괄적전략동반자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CSP)를 형성하고 2024년 동남아 접근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2024년 한-아세안 관계 형성 35주년을 맞아 아세안과 관계를 포괄적전략동반자로 높이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개별 국가들의 정책, 그리고 미국의 정책 방향을 놓고 볼 때 미국이 빠져 기울어진 지역의 힘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 지역 중견국이 아세안에 접근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견국가의 접근에 대응해야 할 아세안의 상대는 의장국인 라오스다. 국가의 능력이나 경험으로 볼 때 라오스의 아세안 리더십은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라오스는 동남아 안에서 가장 친중국적인 국가의 하나로 분류된다. 약해지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 미국의 관여 약화, 중견국의 접근 강화 등의 변수에 흔들리는 라오스의 리더십은 쉽게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2년 전 또 다른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의 아세안 리더십은 예상 외로 미중 전략 경쟁 맥락에서 중립적 유연성을 보여왔다. 지금까지 축적된 아세안 내 상호 이해, 정착된 아세안 대외정책의 전통, 그리고 역내 큰 국가의 지원은 의장국을 수임한 국가가 다소 취약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고 해도 아세안 전체가 기존 방향성과 복원력(resilience)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다.

아세안 최대 국가, 인도네시아 대선의 향배

2024년 벽두부터 동남아 최대 국가 인도네시아는 향후 5년 인도네시아를 이끌 대통령을 선출한다. 세 명의 대통령 후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가장 앞서 있는 후보는 쁘라보워 수비안또(Prabowo Subianto)다. 쁘라보워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현 대통령에 패배한 후보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재 그는 팀 조코위(Team Jokowi)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조코위의 정치적 후계로 자임하고 있다. 그 뒤를 잇는 후보는 현 집권당인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 간자르 쁘라노워(Gnajar Pranowo)로 서민층에 호소했던 현 대통령 조코 위도도의 노선을 잇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다소 지지층이 약한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후보가 있다. 아니스 후보는 교육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로 비교적 작은 정당 연합의 후보로 약간 더 개혁적이고 시민사회 친화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지 인도네시아 정치의 큰 변화를 가지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당들은 큰 이념, 정책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쁘라보워가 선택한 1987년생 지브란(Gibran Rakabuming) 부통령 후보다. 지브란은 바로 현 대통령 조코 위도도의 아들이다.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는 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결국 그의 아들이 부통령 후보에 지명됨으로써 이런 평가는 더욱 굳어지는 듯하다. 만약 조코 위도도의 이런 정치적 의지가 실현된다면 이런 현상이 향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지난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비해 현 정부의 대 동남아 정책이 약화된 것이 아닌지라는 동남아의 평가가 많다. 2024년 지역 중견국의 대 동남아 접근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 한국도 동남아에 대한 정책을 재정비하고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한-아세안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아 추진되는 한-아세안포괄적전략동반자관계 수립은 한-아세안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향후 한국의 대 동남아 정책에 대한 중요한 비전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5호 (2024년 1월 18일)

Tag: 아시아,동남아시아,아세안,인도네시아,민주주의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이재현 (2023). “2023년 아세안,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 미-중 무관심 속 아세안 문제에 집중한 정상회의,” 『이슈 브리프』 2023-23. 아산정책연구원.
  • 이재현·강충구 (2023). “동남아에서 기대에 못 미친 바이든 행정부의 성적표.” 『이슈 브리프』 2023-27. 아산정책연구원.
  • Alexander Raymond Arifianto (2023). “The 2024 Indonesian Presidential Election: Heading Towards a One Round Election?” IDSS Paper. No. IP23090.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Nanyang Technology University.

저자소개

이재현(jaelee@asaninst.org)

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지역연구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