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국면전환과 대일외교의 과제

조양현 (국립외교원)

2010년대는 한일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급속히 개선되어 대결에서 협력으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과거사 관련 국민적 자존심과 한일협력의 실익 사이에서 국론이 분열된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반일과 혐한의 악순환을 끊고 한일 양국이 미래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긴박한 현실에 대한 대국민 설명 노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국제정세와 변화한 한일관계를 반영한 미래비전을 양국이 공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 한일 관계 복원 출처: Aljazeera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한일관계의 국면전환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는 여러 차례의 부침(浮沈)을 겪었지만, 2010년대에는 ‘최악의 한일관계’로 불릴 만큼 깊고 긴 대결 국면이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한일 간에 일본군위안부와 강제동원(징용) 문제 관련 과거사 갈등이 상시화하고, 이 갈등이 경제 및 안보 등 제반 분야로 확대되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양국 정상의 상대국 단독 방문 및 정상회담이 없었던바, 2010년대는 한일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8월에 위안부 관련 우리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일외교에서 과거사 문제가 우선적인 현안이 되었고, 이듬해 8월에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는 대결 국면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3년 가까이 공방을 벌이다가 2015년 12월에 동 문제의 해결에 합의하고 이듬해 11월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를 체결하는 등 일시적인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부산 위안부소녀상 건립 문제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으로 한일협력의 기조가 정착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2017년 말에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검증 결과의 발표, 이듬해 10월에 강제징용 관련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과 현금화 조치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 11월에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등으로 과거사 갈등이 격화되고, 12월에 초계기 사건, 2019년 7월에 일본 정부에 의한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3종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 발표와 이에 대한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결정 및 GSOMIA 불연장 선언 등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1년 반 동안 한일관계는 급속히 개선되어 대결에서 협력으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한일 간 갈등 현안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양국 정부는 다양한 분야의 협력에 합의하고 그 성과의 일부가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 간 소통과 신뢰가 회복되고,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조치의 해제(이른바 화이트리스트의 복원), GSOMIA의 완전한 정상화, 정치인, 경제인, 지자체 및 관광 분야를 포함한 인적교류의 증가 등 제반 분야에서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었다. 나아가 한일협력은 양자 차원의 소통을 넘어 한미일 3국 협력, 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 기조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거사 중심의 대일외교가 한일관계의 과도한 대결을 초래하여 국익 극대화에 실패하였다는 판단하에 대일외교의 목표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복원에 두었다. 윤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대일외교의 목표는 “셔틀외교 복원을 통한 신뢰 회복 및 현안 해결 등을 토대로 공동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한일 미래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과거를 직시하면서 한일관계 미래상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의 발전적 계승 및 양국 미래세대 열린 교류 확대”였다. 이듬해 6월에 국가안보실이 명시한 대일외교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한반도와 지역·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강화한다”로 진화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이전 정부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전 정부에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윤 정부는 일본을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협력해야 할 전략적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과거사 관련 한일대결의 구도가 고착되어 정부가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이른바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서도 일본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고, 북한 문제나 미중관계와 관련해서 일본과 협의하거나 한일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전략적 동기가 약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안보, 통일, 번영 등 핵심 국익을 실현하고, 미중 전략 경쟁에서 우리의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한미동맹에서 실질적인 억지력 확보 및 한미일 협력의 실현 등의 측면에서 일본을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바라보고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중심주의와 삼권분립원칙에서 민간소송 중인 강제동원 관련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중시한다. 2018년에 강제징용 현금화 조치 관련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였고, 결과적으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실질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방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윤 정부가 출범하자 외교부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하여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동시에 한일 간에 일련의 정부간 대화를 통해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작업을 개시하였다.

셋째, 윤석열 정부는 대일외교의 추진에서 과거사 비중의 완화, 지역 및 다자 차원의 협력 확대, 경제통상, 문화·인적 교류 등 실질 협력의 확대를 통해 상생의 한일관계를 구축한다는 이른바 포괄적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한일 간의 주요 갈등 현안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하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여 정부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토대로 포괄적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연계, 경제협력, 민간 및 문화 교류,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조 등 다양한 협력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접근법이다. 우리 대일외교의 관심을 과거사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수출입, 관광, 차세대, 지자체, 대학, 문화인, 경제인, 정치인 등의 인적교류를 활성화하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균형 잡힌 한일관계를 추구하겠다는 발상이다.

대일외교의 성과

정부 간 신뢰 복원 및 관계 정상화

2018년 10월에 한국 대법원이 강제동원 관련 현금화 조치를 확정하고 11월에 한일위안부 합의에 근거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자, 일본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한일 간 합의와 약속을 어긴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게 과거사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압박하는 한편, 이듬해 7월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고 북한 문제 관련 한미일 협의를 제외한 모든 정부 간 협의를 사실상 거부하였다. 2021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위안부 문제 배상의 강제집행은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해 7월 도쿄올림픽을 전후하여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모색했지만,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2022년 5월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일본의 기시다 정부는 처음에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책 제시를 요구하면서 한일 정상의 단독 회담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으나,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윤 정부의 일관된 태도가 분명해지자 한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두 정상은 2022년 6월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계기 대면 회담을 가진 이후, 동 회의의 환영 만찬과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 그리고 9월의 유엔 총회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일본 정부의 대한국 인식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었는데, 기시다 총리는 2022년 10월 임시국회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전제하고, “국교정상화 이후 구축해 온 우호협력관계의 기반을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더욱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어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해 11월에 두 정상은 프놈펜에서 ASEAN 정상회의 계기 한일정상회담 및 한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북한 문제 관련 긴밀한 협력 외에 외교 당국 간 협의를 통한 강제동원 문제의 조기 해결에 합의하였다.

2023년 3월과 5월에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각각 상대국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는데, 두 차례의 회담에서 다양한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고 양국은 정부간 대화 채널의 복원·강화에 합의하였다. 양국 정상에 의한 상호 방문은 12년 만에 재개된 것으로, 정상 간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관계 즉, ‘셔틀외교’가 복원되고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향한 움직임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강제동원 해결책의 제시

한국 외교부는 2023년 3월 6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였는데, 그 핵심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의 피고인 일본 기업을 대신하여 한국 정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조성한 재원으로 원고인 징용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변제한다는 것이었다. ‘제3자 변제안’으로 불리는 이 해법은 1965년 한일수교 당시 체결된 청구권협정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자,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었다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사실 외교부의 대안은 사법 정신 외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기반한 대일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재원으로 하여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보상하였다. 2005년에 노무현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청구권협정의 효력 범위 및 그에 따른 정부 대책을 검토하였다. 동 위원회는 청구권 협정에 근거하여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지급한 “무상 3억 불은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1975년에 실시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적인 지원 대책을 정부에 권고하였다. 이에 정부는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하여 피해자에 보상을 실시하였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상기한 역대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관련 청구권협정의 해석 및 대응과는 결이 다른 것으로, 일본 정부는 이에 반발하였다.

지난 3월 16일에 방일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제3자 변제안을 통한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에 합의하고,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5월에 방한한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혹독한 환경에서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하여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위한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의 위령비 공동참배를 제안하였다. 국내정치적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가 일본 우파 정치인들을 의식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사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에 실시된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나 8~9월에 실시된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겐론NPO의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추진한 제3자 변제안과 이에 대한 일본 측 대응에 대해 한국 여론은 불만이 강하지만, 한미동맹 발전을 위해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과거사 변수가 여전히 한일관계의 제약요인으로 남아 있지만, 한국의 대외전략에서 미중 전략경쟁과 북한 위협이 상수화하고 안보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라면 한일협력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자 현안의 해결 및 협력

지난 3월과 5월의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그동안 누적된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4년 간의 무역갈등이 종결되고 경제협력을 위한 일련의 정부 간 협의체가 복원되었다. 양국은 7월까지 화이트리스트의 복원 절차를 마무리했는데, 이는 경제활동의 환경을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으로 되돌려 양국 간 무역 및 투자를 촉진한다는 의미가 있다. 양국은 우주, 양자, AI,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 공동연구와 연구개발(R&D) 협력을 협의하고,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간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합의하였다. 6월에 한일재무장관회담이 7년 만에 재개되었고, 11월에는 8년간 중단되었던 한일통화스와프협정이 체결되었다. 나아가 연말에는 양국 간의 포괄적 경제분야 협의체인 한일고위경제협의회가 8년 만에 재개되어 경제협력 관련 폭넓은 현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안보 분야에서 한일은 북한 위협 관련 한미일 간의 억지력과 대처력 강화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북한 미사일 정보의 3국간 실시간 공유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기로 합의하였다. 3월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GSOMIA를 완전히 정상화하고, 5월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의 추진 및 자유,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 수호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4월에 외교·국방 분야 국장급 한일안보정책협의회(2+2 외교안보대화)를 5년 만에 재개하고, 북핵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환경, 한일·한미일 협력 현황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10월에는 외교차관전략대화를 9년 만에 재개하여 한일관계 및 지역·글로벌 현안 등에 의견을 교환하였다.

민간 교류 분야에서는 관광, 문화예술, 인적교류, 미래세대 교류 확대에 합의하였는데, 항공노선의 증편, 유학생 교류의 확대 방안이 포함되었다. 한일·일한 친선협회 등 정치인 교류, 예술인 교류, 청소년 교류, 지자체 교류 등이 활발해지고, 한일관계의 개선 분위기가 양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지난 5월에는 1969년 이래 매년 개최되었던 한일경제인회의가 4년 만에 서울에서 재개되어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해질수록 한일협력이 더욱 절실한바, 한일의 공통과제를 연계·보완함으로써 상생의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양국에서 상대국 상품의 불매 운동이 사라지고, 패션, 자동차, 주류 등 소비가 회복되었다. 양국 국민의 상대국 방문도 증가하여 올해 1~9월 방일 외국인과 방한 외국인 중에서 각각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장 많았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관련 5월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전문가로 구성된 현지시찰단의 파견을 수용하고, “일본 총리로서 자국 국민·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형태로의 방출은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였다. 7월 한일외교장관회담에서 박진 장관은 실시간 모니터링 정보 공유와 기준치 초과 같은 이상 상황 발생시 방류 중단 및 우리 측에 즉시 통보 등을 포함한 필요 조치를 요청하였다. 8월 이후 일본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오염수를 방류하였고, 양국은 모니터링 정보의 공유 등 관련 협의를 계속해 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등 주변 지역의 농수산물 금수 조치의 유지, 국내 유통 해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 강화, 일본 측이 제공하는 자료의 공유 외에 우리 해역 및 일본 인근 공해상에 대한 자체적인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미일 협력의 진전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는 양자 현안 중심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지역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한 협의를 확대하고 다자회의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위치 설정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여 ‘인도태평양’ 관련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거리를 두었다. 윤 정부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를 전제로 지역 및 글로벌 문제의 대응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일본 등의 우방국과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2022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대만해협,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역 및 글로벌 문제 등에 대한 협력에 합의한 이후, 한국은 NATO와의 파트너십,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4개국 반도체 동맹), 쿼드 워킹그룹 등 미국 주도의 다자연대에서 일본과 협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한미일 3국 협력 역시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층 탄력을 받았다. 2022년 6월의 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3국 정상이 회동하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안보협력의 강화에 합의하였다. 11월에 프놈펜에서 열린 ASEAN 정상회의 계기 3국 정상회의에서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 3국의 포괄적인 협력 방향을 담은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이 채택되었다. 2023년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은 단독으로 회담하고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 문제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위협에 공동 대응, 공급망과 신흥기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3국은 공동의 도전과 도발, 위협이 발생 시 정보 교환, 메시지 조율 등 공동 대응과 3국 협력의 제도적 기반과 추진 의지를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동 회담은 한미일 협력의 획기적인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일외교의 과제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과거사 갈등으로 묶여있던 한일관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상화되었다. 그렇지만 과거사 화해가 국민의 눈높이만큼 진전되지 못한 상황에서 반일의 국민감정, 일본 사회의 보수화, 정권교체마다 대일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한국의 정치환경을 고려한다면 한일협력을 낙관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은 과거사 관련 ‘컵의 남은 절반’을 채우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미래파트너십기금’에 대한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남아 있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안으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현금화 조치 관련 사법 판결이 유효하고 대법원판결의 일부 원고들이 변제금 및 공탁 불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후속의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피해자 설득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강제동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초당파적인 입법 조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 확보를 위한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

내년 4월의 한국 총선을 앞두고 한일관계의 국내정치 쟁점화가 우려되는바, 한일 간의 잠재 현안과 갈등 유발 행사에 대한 선제적 관리가 중요하다. 사도(佐渡)광산과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 일본 측의 독도 관련 행사 및 교과서 기술, 일본 수산물의 수입 문제 등 잠재적 갈등 요인이 다수 존재한다. 양국 간 소모적인 감정 대결을 지양하고, 한일협력의 성과를 모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금융통화, 관광, 사회문화, 청소년 교류, 인적교류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전세기 노선의 확대, 반복 방문객의 출입국 절차 간소화, 지자체 및 미래세대 교류 프로그램의 확대, 한일 공동의 산학연구 및 저출산과 지방 소멸 등 공통과제 연구에 대한 지원 등의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일관계의 조기 정상화 및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효과적인 대국민 설득 노력도 중요한바, 최고지도자, 정부관계자, 민간전문가 간의 역할을 적절히 분담하고 대일 공공외교의 콘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 다음 날,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회담 타결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여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제의 원수와 손을 잡아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호소했다. 한일회담이 ‘미래를 위한 결단’인지 아니면 ‘굴욕외교’인지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각오였다. 그때 들여온 청구권 자금은 우리가 산업화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종자돈이 되었다. 그 자금이 없었어도 현재의 우리가 불가능하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 대일외교에서 과거사 관련 국민적 자존심과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협력의 실익 사이의 가치판단을 두고 국론이 분열된 지금의 현실은 한일회담 당시와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일외교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긴박한 현실에 대한 대국민 설명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우리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를 추진했으며, 제3자 변제안은 이러한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 △윤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은(국제법을 위반하는) 국가’라는 일본 측 논리가 힘을 잃고, 우리 대일외교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되어 한미일 관계에서도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 △우리는 세계의 많은 국가들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하여 협력하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 유사시에 유엔군에 기지와 후방지원을 제공하는 일본과는 동 협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반일과 혐한의 악순환을 끊고 양국 지도자 간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시작된 한일협력의 기조를 정착시키고 미래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정세와 변화한 한일관계를 반영한 미래비전을 양국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8년에 김대중 정부와 오부치 내각은 과거를 직시하면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 한일 양국이 전략적 소통을 통해 상대방의 전략적 가치와 한일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대하고, 양국 공동으로 새로운 미래비전을 국교정상화 60주년인 2025년 6월에 맞추어 발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 본 고는 한국 정부나 외교부의 입장과는 무관하며, 졸고,“2023년 대일외교 성과 및 과제”『주요국제문제분석』(국립외교원, 2023.12.14)을 수정·보완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59호 (2023년 12월 26일)

Tag: 한일관계,대일외교,윤석열정부,정상회담,강제동원,미래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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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열·김양규·박한수 (2023). “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한일 국민의 거리: 2023년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 분석.”『EAI 이슈브리핑』.
  • 신각수 (2023). “윤석열 정부 대일외교 체크 포인트.” 『월간중앙』, 2023(7).
  • 이수훈 (2023).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와 과제,”『동북아안보정세분석』. 한국국방연구원.
  • 진창수 (2023). “한일관계 개선의 평가와 제언.”『세종정책브리프』, 2023(9).
  • Park, Cheol Hee (2022). “Stronger and Broader: President Yoon’s New Foreign-Policy Initiatives,”Global Asia, June 27.

저자소개

조양현(joyhis@mofa.go.kr)

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겸 일본연구센터장
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장, 하버드대 웨더헤드센터 Academic Associate

주요 저서와 논문

『한국의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공저), (명인문화사, 2023).
『미일정상회담(2022.5.23) 평가 및 전망(2022-14, 2022.6.16.)』 (국립외교원, 2022).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한미일 협력: 미국의 동맹 관리의 시각에서』 (국립외교원, 2022).
『国境を越える危機(국경을 뛰어넘는 위기)』 (공저), (도쿄대학출판회, 2020).
『競合する歴史認識と歴史和解(경합하는 역사인식과 역사화해)』 (공저), (晃洋書房, 2020).
“South Korea-Japan Relations in the 2010s: Ambivalent Strategic and Economic Partners?” (co-authoring), East Asian Policy 11(3),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