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지정학의 만성적 갈등 구조와 한국 지전략의 고민

전봉근 (국립외교원)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탈냉전기 영구평화에 대한 세계인의 꿈을 깨어버리고, 현 국제질서의 취약성을 일깨운 대사건이었다. 동북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강대국의 세력권이 대치하고 충돌하는 지정학적 지진대였다. 동북아에서도 강대국 충돌과 핵사용 위험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각종 안보 위기가 중복되는 ‘퍼펙트 스톰’으로 알려진 위험천만한 동북아 안보 정세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안녕과 발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동북아 전통 지정학에서 현대 지정학으로

동북아는 19세기 말부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서로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선이 그 가운데를 통과하는 지역이다. 동북아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이미지는 냉전 초기 니콜라스 스피크만(Nicholas Spykman)과 조지 케넌(George Kennan)에서 시작하여 탈냉전기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에 이르기까지 영미계 지정학자와 지전략가가 일관되게 제시했었다. 21세기 ‘중국의 부상’ 시대를 맞아, 동북아에서 ‘지정학의 귀환(The Return of Geopolitics)’ 담론이 다시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다.

사실 동북아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대치하게 된 것은 비교적 근세의 일이다. 1400년대 서유럽에서 대항해와 신대륙 발견의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동북아까지 서양의 해양 세력권이 확장되지 못했고 역내에서 자체의 해양 세력도 발달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의 경우 일본이 해양 세력으로서 대륙 세력인 중국과 충돌했다기보다는 아직 대륙 세력 성격이었던 양 강대국 간 지역 패권 쟁탈전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중세 일본은 섬나라였지만, 서양의 해양 국가와 달리 대륙 세력의 성격을 지녔다. 일본은 1800년대 후반 들어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점차 해양 세력으로 변모했다. 이후 일본은 해군력의 증강을 통해 중국 및 러시아와 해상전투에서 승리했다. 대표적인 태평양 해양 세력인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는 일본에 승리했고, 이후 냉전기 들어 오늘까지 동북아와 서태평양에서 러중의 대륙세력과 대치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명분적인 조공체제와 현실적인 세력 정치가 혼재하며 위계적인 질서를 추구했던 구질서는 19세기 중반 서양 세력의 본격적인 동북아 진출과 근대화된 일본이 새로운 지역 강국으로 등장하면서 그 성격이 변모했다. 동북아 한·중·일 삼국의 장기적 병존을 가능하게 했던 동북아 구지정학은 무한 세력경쟁과 약육강식의 서양식 지정학으로 대체되었다. 동북아에서 20세기 중반 들어 다시 한·중·일 3국의 병립체제가 복구되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3국 체제는 아니었다. 미소 냉전의 지정학적 단층선이 동북아를 가로지르면서 남·북·중·일 4국의 적대적이고 갈등적인 병존 시대가 열렸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체결하고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동아시아에서 기득권 해양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21세기에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군사적 세력권과 정치외교적 영향권이 중국 본토를 넘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 일대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역내 주둔 미군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미 중국이 구상하는 해상 방어선인 소위 제1, 2 도련선 내에 들어있어 역내 미·중 충돌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불완전한 종전 처리로 인한 동북아의 만성적 갈등 현상

동북아는 만성적이고 소모적인 역내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동북아에서 외교안보의 주된 담론은 자조, 동맹, 핵 억제, 세력균형, 군비경쟁 등 전통적 안보 개념이 차지했다. 이는 역내 유행하는 ‘힘을 통한 평화’, ‘안보 제일주의’와 같은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로 표현된다. 그 결과, 동북아에서는 세력경쟁과 군비경쟁이 ‘정상’ 상태이다. 그런데 이런 안보 갈등 구조는 언제라도 충돌과 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지역이 세력균형과 개별국가의 절제에 의존하며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유지하는 현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평화체제가 필요한데 상당 기간 그럴 가능성은 작다.

오늘날 동북아에서 지역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의 하나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전후 처리를 불완전하게 봉합했다는 역사적 유산이 있다. 그 결과, 역내국들은 일상적인 외교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토분쟁, 역사분쟁, 분단, 과거사 등과 같은 발화성이 높은 정치·안보적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차대전 종전 처리의 봉합으로 인해, 대부분 동북아 국가는 불완전한 주권의 ‘비정상 국가’이다. 따라서 영토 통일, 영토분쟁 종결, 과거사 정리, 보통국가화 등을 통해 더욱 완전한 정상 국가,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려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동력이 상시로 작동 중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전쟁 또는 정치적 대타협과 같은 예외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현상 변경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북아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구조적인 갈등 요인을 내포한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주도하는 역내 동맹체제의 정착도 역내국들이 역내에서 협력적인 안보 체제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배경이 되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냉전에 대한 대응 체제로 한국, 일본과 동맹을 체결하여 ‘바큇살(hub and spoke)’ 안보 체제를 정착시켰다. 이렇게 미국 주도 동맹체제가 정착하면서, 미국 동맹국들은 당면한 각종 전통, 비전통, 초국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안보협력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동북아 국가들은 역내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다수의 다른 지역과 달리 안보협력이 아니라 세력균형과 억제 전략을 선택했다. 동북아에서 만연한 국가주의, 세력경쟁, 군사안보 중시 노선은 역내 외교안보 현상을 모두 ‘안보화’하는 경향이 있다. 동북아는 상호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적 보완성으로 인해 지역 협력의 동기가 작지 않다. 하지만 동북아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지역 협력을 촉진하기는커녕, 심지어 기능적, 비전통 안보 분야의 협력까지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동북아 지역 안보 대화가 가동되면, 역내에 만연한 상호 불신과 안보딜레마로 인한 안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아직 요원한 과제로 남아있다.

중국의 부상이후 미중 전략경쟁과 동북아 진영화 추세

21세기에 중국 경제력이 계속 성장하고, 군사력, 특히 미사일 역량과 해군력이 급성장하면서 동아시아 지정학과 세력균형이 변동 중이다. 종래 미국이 통제했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중국의 해군력이 침투하고 확장되며 미국의 해상 세력권과 중복되면서, 점차 미국 통제의 평화지대가 미중 간 갈등 지대로 변했다. 2010년대 들어 미국 패권의 국제질서가 해체되는 징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화하고, 해군력을 대규모로 증강하면서 미국의 해상패권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2009~2017) 동안에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군사력을 증강 배치했지만, 해상패권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이 동아시아와 태평양에 집중하는 틈을 이용하여, 2014년 푸틴 대통령 치하에서 재부상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미국과 유럽이 강력히 반발했지만, 러시아는 합병을 기정사실로 했다. 미국에 반대하는 러·중의 군사 안보적 연대는 노골화되었다. 러시아는 NATO의 미사일 방어망 설치를 반대하고,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미사일방어체계 도입에 반발하며 한국 기업을 제재했다.

동북아 신지정학의 연쇄반응을 촉발한 근원에는 중국의 경제력 급성장으로 인한 역내 세력균형의 변동이 있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1996년만 해도 미국 국내총생산의 10%에 불과했지만, 고도성장을 지속하여 2012년 50%, 2018년 65%, 마침내 2020년에는 70%까지 도달했다. 중국의 구매력 지수(PPP) 국내총생산은 2014년에 세계 경제의 16.5%를 차지하여, 15.8%를 차지한 미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되었고,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30년까지 미국을 추월하여 명실상부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미중 간 경제력 전이 여부를 전망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의 강력한 대중 견제 정책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신생 변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2위 초강대국으로 미국과 패권경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중일 간 급속한 세력전이(勢力轉移)도 동북아 지정학의 변동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1996년까지만 해도 일본 국내총생산의 20%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계속 늘어나, 2018년에는 일본의 2.7배로 팽창했고, 그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한편,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의 경제 침체가 예상되고, 미국의 중국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미중 간 경제력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소위 ‘차이나 피크’ 주장도 이에 해당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미국이 중국에 비해 군사력과 경제력의 절대적 우위를 50년 이상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도 이런 전망에 동의한다. 하지만 미국은 정치군사적으로 유럽을 중시하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개입해야만 하고, 중국은 군사력을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만 집중한다. 따라서 미국이 총량으로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더라도,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전역에서 거리의 불리(不利)를 극복하고 그런 우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역 패권 세력의 등장을 거부하는 지전략(Geostrategy)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런 지전략적 전통에 따라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중국의 지역 패권국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미일 동맹, 한미동맹, 쿼드, 인도태평양전략, G7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 이런 조치는 역내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진영화 현상을 촉발했다. 미국은 “국가안보 전략보고서(2017.12)”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2020.5)”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했다. 이때 전면적인 전략경쟁이 불가피하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경쟁을 더욱 확장하고 강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국들을 대중 경쟁 전선의 앞에 내세우고, 당근과 채찍을 내보이며 진영적 선택을 요구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봉쇄적 지전략에 대항하여, 이를 타파하기 위한 대응 지전략을 추구했다. 미국의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전략무기의 한국 반입 반대, 한미동맹 강화 반대, 북한에 대한 북핵 불용과 체제 안정화의 이중적 입장, 벨트로드구상(BRI) 확장, 남중국해의 군사화와 내해화, 서태평양 도련선 설정 등이 대응 지전략에 해당한다. 동시에 중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심을 낮추고,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타개하기 위해 주변국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증대하고, 인류 운명공동체(Community of Common Destiny for Mankind), 유교적 평화(Confucian peace) 등과 같은 평화 담론을 전파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제로섬 성격의 패권경쟁으로 강화되면서, 지정학적 중간국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을 거부할 때 정치·안보·경제적 불이익까지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과 연대를 강화하지만, 적지 않은 중간국들은 미중 간 담장에 걸터앉아 ‘헤징 전략(Hedging strategy)’을 구사하며 선명한 선택을 거부하고 최대한 실익을 챙기려는 경향이 있다. 인도, 베트남,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남아공, UAE 등이 이런 중간국 그룹에 해당한다. 결국 미중 전략경쟁의 개시와 강대국 정치의 부활은 대부분 지정학적 중간국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제3의 세력권으로 급부상하는 국제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신지정학 시대에 한국의 지전략에 대한 국민의 고민

2020년대 들어 미중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탈냉전기의 세계화와 국제협력 추세가 급격히 쇠퇴하고, 동북아에서는 신냉전의 진영화 추세가 확연해졌다. 우리 국민은 급변한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인식할까?

2021년 통일연구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을 제외하고)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주변 국가는 누구인가” 질문에 대해, 중국 72%, 일본 21%, 미국 6%, 러시아 1% 순으로 답변했다. 우리 국민은 압도적으로 중국을 안보위협 국가로 지목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2021년 여론조사에서 “북한을 포함하여 가장 큰 안보위협 국가”를 질문했을 때, 중국 46%, 북한 38%, 일본 11%, 미국 4%, 러시아 1% 순으로 대답했다. 우리 국민이 전통적인 주적인 북한보다 중국을 더 큰 안보위협으로 지목한 것은 매우 특이하다. 미중 전략경쟁, 고구려사를 둘러싼 동북공정(2002),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보복(2016), 코로나19 팬데믹(2020)의 중국 기원설 등 복합적 요인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한중 경제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경제적으로 상호 이익이다” (동의 50%, 보통 39%, 반대 11%), “중국의 큰 시장은 우리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한다” (동의 56%, 보통 32%, 반대 11%) 등으로 응답하여,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한편, “한중 경제는 미래에 경쟁할 것이다” (동의 61%, 보통 30%, 반대 10%), “한국의 우위 상품에 중국은 위협이 될 것이다” (동의 62%, 보통 32%, 반대 6%) 등으로 응답하여,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경계심이 급부상했다.

2022년 EAI 여론조사(김양규, 2022)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서, 좋지 않은 인상 70%, 좋은 인상 12% 순으로 응답했다. “중국이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가” 질문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하지 않다 90%, 신뢰할 만하다 8% 순으로 응답했다. 2019~2022년에 걸친 EAI 연례 여론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52%에서 70%로, 불신도는 80%에서 90%로 증가하여, 대중 감정은 확연하게 악화일로에 있다.

“미중 관계에 대한 한국의 외교전략”에 대한 질문에서, 미중 균형외교(53%), 미국과 동맹 강화(31%), 중국과 동맹 강화(4%), 자주 외교(12%) 순으로 답변했다. 여기서 ‘미중 균형외교’에 대한 선호가 2016년부터 50~60% 범위에서 등락하면서 아직 국민의 다수 의견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한편, ‘미국과 동맹’은 2016년 14%에서 2021년 31%로 증가하여,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한편, ‘자주 외교’ 선택은 2016년 29%에서 2021년 12%로 하락했는데, 그만큼 ‘미국과 동맹 강화’가 증가했다. “한국 안보에 미중 누가 더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에서, 미국이 더 중요 55%, 미중이 비슷하게 중요 42%, 중국이 더 중요 3% 순으로 응답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다.

“한국 경제를 위한 미국과 중국, 누가 더 중요한가” 질문에 대해, 국민은 미중이 비슷하게 중요 55%, 미국이 더 중요 37%, 중국이 더 중요 8% 순으로 응답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더 중요’는 10% 이내로 일관되게 낮았고, ‘미중 경제 비슷하게 중요’는 50~60%를 유지했다는 특징이 있다. 탈냉전기에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에서는 중국 경제의 기여도가 매우 컸다. 사실 탈냉전기 한국의 중국 시장 진출은 한국이 첨단 산업국가이자 중견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본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이 대중 경제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경제 다변화를 추진했고, 중국에서 임금이 상승하면서 한국 기업도 투자를 축소했다.

지난 수년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동향과 이로 인한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외교안보 관심이 종래 한반도에 집중되었으나, 급격히 동북아 국제정치와 미중 경쟁으로 확대되었다. 국민은 오랜 역사와 냉전의 기억 속에서 강대국 세력경쟁으로 인해 입었던 피해를 상기하며, 강대국 세력경쟁의 사이에 끼여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국에 대한 비호감, 불신, 안보위협 우려가 급증했다. 반면에 미국에 대한 호감,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과 신뢰가 급증했다. 현재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통일연구원, 91%), 통일 후 주둔도 다수가 지지했다(54%). 한미동맹 속에서 한국이 경제발전, 안전보장, 정치발전에 모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낮다. 2017년에 북한의 핵무장과 핵 위협 수준이 급증했다는 점도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든 것 같다. 미중 갈등 시, 미국 지지(24%)에 비해 중국 지지(5%)가 훨씬 낮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질문에서도 전자만 참여(27%)에 비해 후자만 참여(1%)가 크게 낮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적 리더십에 대한 한국민의 선호도도 미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셋째, 국민은 한국이 미중 패권경쟁 사이에 끼이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거부한다. 미중 갈등에 대해 ‘중립’ 선호의 비율(70%)이 매우 높다. 미중 경쟁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때로는 미중의 일방에 참여하기보다는 둘 다 참여 또는 둘 다 거부를 선택했다. EAI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한미동맹 강화를 선호하면서도(30%),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균형 발전을 지지했다(32%).

결론적으로, 위 여론조사에서 동북아 신지정학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전략적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부상한 중국에 대한 비호감과 안보위협 인식이 급증하고, 중국에 대한 대응책으로 미국을 더 의존하게 되었다. 동시에 미중 간 선택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랫동안 갈등하면서 살아온 대륙 세력인 중국은 가깝고, 영토적 욕심이 낮은 해양 세력인 미국은 멀다. 따라서 국민이 미국을 안보 후원자로 선택한 것은 지정학적, 전략적으로 매우 타당하다. 한미동맹은 한미가 서로 필요로 하고 호혜적인 소위 ‘자연 동맹’이다. 중국이 너무 강대하고 가까이 있어 두렵지만, 적대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균형 외교, 헤징 외교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커질수록 미국은 한국에게 더욱 강한 반중 연대를 요구한다. 반대로 중국은 현 한중 교역 관계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한국에게 친중적이거나, 최소한 균형외교를 요구한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도 깊어질 전망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50호 (2023년 10월 23일)

Tag: 미중경쟁,동북아,유라시아,지정학,신냉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양규 (2022). “중간국 한국의 여론 지형 변화: 부정적 대중국 인식 확대 요인과 정책적 함의.” 2022년 한국국제정치학회 연례 학술회의.
  • 김흥규 편 (2021).『신 국제질서와 한국 외교전략』. 명인문화사.
  • 전봉근 (2022). “북핵 협상 재개 전략과 북미 ‘잠정합의’”. 『아시아브리프』2(24). 아시아연구소. https://snuac.snu.ac.kr/
  • Frank Aum·Jessica Lee (2022), “Beyond Deterrence: A Peace Game Exercise for the Korean Peninsula.” 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 Sejong Institute. QUINCY BRIEF NO. 20, https://quincyinst.org/

저자소개

전봉근(jun2030@mofa.go.kr)

현)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한국핵정책학회장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제안보비서관, KEDO 뉴욕본부 전문위원, 통일부 장관정책보좌관

 

주요 저서

『북핵 위기 30년』(명인문화사, 2023)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박영사. 2023)
『비핵화의 정치』(명인문화사, 2020)
『북한의 오늘 2(공저)』(서울대학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