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쇼, 기술과 예술의 절묘한 만남
파일럿, 과학자, 공학자 그리고 사업가. 앞에 소개한 3가지 키워드는 필자의 어렸을 적 장래희망의 순서이며, 마지막 키워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키워드 ‘사업가’는 과학과 공학 그리고 파일럿의 꿈까지 품고 있다. 이는 과학과 공학이 어우러진 집약체, 바로 드론 사업이다. 파일럿의 꿈은 나를 대신해 천여대에 가까운 드론을 조종하는 것으로 이루었고, 그 드론을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필자의 경험을 적어본다.
파일럿, 과학자 그리고 공학자
기억이 비교적 선명한 9살, 당시 ‘파일럿’이라는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의사나 선생님과 같은 잘 알려진 직업에 비해 파일럿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경이롭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운전한다는 것으로도 신기한데, 그 비행기의 복잡한 내부는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필자는 “언제 저런 복잡한 기계를 운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당연히 장래희망 질문에는 ‘파일럿’을 적어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어느 날, 필자는 ‘박사님’이 되어 있었다. 학위논문은 “소형 무인비행체의 영상기반 자동항법”. 학위를 마치고 나니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에 담겨있던 “복잡한 기계를 운전하고 싶다”는 열망을 이룬 건가? 싶기도 했다. 무인비행체, 즉 드론은 복잡한 비행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크기만 작을 뿐, 우리가 타는 비행기와 동일한 모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연구실에서 고생을 사서 하는 학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드론을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제안하는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직접 드론을 날려서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이다. 당시에는 구입할 수 있는 드론이 없었기에, 드론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연구 결과를 확인하는 용도가 주였던 드론은 시뮬레이션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했기에 다른 학생들은 드론 만드는 것을 꺼렸다. 시간도 걸릴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를 만드는 데 매료되어 어느때는 필자가 박사 공부를 하는 것인지, 취미로 비행기를 만드는 것에 매료되었는지 헛갈릴 때도 있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할 때, 내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비교적 이러한 고생을 덜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검증에 집중하는 연구실 동료들을 볼때마다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러한 ‘삽질’이 회사를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스마트폰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2007년 경으로 기억한다. 대학시절 참여한 공모전에서 필자가 제안한 내용 중 하나는 지금의 우버나 쏘카 앱과 매우 유사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되겠느냐, “지금 이메일 한통도 컴퓨터 앞이 아니면 못 보내고 있는데” 라며 차량을 공유할 수 있는 그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말그대로 공상과학 취급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 필자가 박사를 시작할 2010년 당시에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되며 누구나 길거리에서도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마트폰의 혁명이었다.
스마트폰 혁명은 드론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신산업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드론에서 가장 핵심 기술 중 하나인 관성항법장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속도 그리고 각속도를 감지하는 센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센서는 원래 사람 머리보다도 큰 센서였고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는 약 주먹만 했는데, 필자가 박사를 졸업할 때 즈음에는 새끼손톱만해졌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화면을 가로로 보는지 세로로 보는지 알기 위해서 가속도 센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유행했던 닌텐도 Wii는 손에 쥐고 게임을 하는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로 찬사를 받았는데 이때 들어간 센서가 가속도(자이로) 센서이다. 이 센서는 휴대전화에도 들어가 떨리는 영상을 안정화시키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가격에 민감하여 저렴하고 품질 높은 센서들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바로 드론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에는 드론이라고 불리는 것 중 가장 작은 게 소형 민간항공기 만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소형 드론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술적 성숙이 이루어진 것이다.
창업
이러한 나비효과에 힘입어, 졸업 후 필자의 진로는 드론 기업의 창업으로 정했다. 필자가 공부해온 것, 그리고 스마트폰 혁명 같은 시대 상황이 이러한 결정에 촉매역할을 했다. 창업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드론 회사라고는 군에 납품하는 무인항공기를 만드는 회사가 전부였다. 필자는 민간에서 쓰이는 활용도 높은 드론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여 제품 개발을 진행하였다.
아무리 어려운 주제라도 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은 교과서가 있기 마련인데, 이 창업이라는 것은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너무나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회사문을 열고 일을 시작해서 새벽에나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저 문제를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회사는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나가고 있었고 어떤 제품을 만들지 고민하며 몇 개의 제품을 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장반응은 냉담했고, 우리는 다음 제품을 찾고 있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2018년 2월의 기억은 비교적 선명하다. 대학 전까지 필자는 춘천에서 성장했고 평창올림픽에 도전하는 동안 강원도청 소재지인 춘천 길거리에 붙은 유치기원 현수막을 기억한다. 그토록 강원도민이 염원했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날이니 스스로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보다 필자를 더 충격에 빠트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개막식에 등장한 드론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연 형식의 개막식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천여대가 넘는 드론이 등장했다. 회사 동료들과 다같이 지켜보던 개막식은 우리를 모두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드론 1,218대로 이루어진 드론쇼는 전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줄 만한 새로운 콘텐츠였고, 드론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게 되니 우리 회사 사람들은 더더욱 놀랄만한 일이었다.
폐막식에도 드론쇼가 예정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매진된 폐막식 티켓을 겨우 구해서 드론쇼를 직접 보러 평창으로 달려갔다. 현장에서 본 드론쇼는 훨씬 압도적이었다. 문득 이 기술을 통해 앞으로 바뀔 세상이 그려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을 원하게 될지 말이다. 광고나 축제 분야에서 큰 잠재력이 느껴졌다. 검색엔진 구글도 결국 광고에서 그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하게 되었는데 드론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회사는 드론쇼를 위한 제품 개발 계획을 세우고 몰두하기 시작했다.
첫 드론 쇼
한참 개발을 해 나가던 2018년 말. 처음으로 2대 이상의 드론을 동시에 띄우는데 성공했다. 1218대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떨리는 첫 드론쇼를 했다. 지금 와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간단한 군집비행이었지만 당시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했던 힘들지만 뿌듯한 기억이다.
2019년 1월. 전 세계 IT 기술의 각축장인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 처음 제품을 선보였다. 사실 제품이라기보단 프로토타입(시제품)에 가까웠다. 20대 남짓의 드론으로 보여주는 간단한 도형이 다였지만, 몇몇 고객은 그 잠재력을 알아보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드론 규제 샌드박스
2019년 CES 가 끝나고, 제품 생산을 시작할 때쯤, 기회가 한두 개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진행하는 드론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서 처음으로 군집드론 분야가 신설되었고 2019년 5월, 우리 회사는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목표는 150대. 내부 목표는 200대 동시비행으로 제안했다. 이제 20대를 하기 시작했는데, 언제 200대가 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일단 하겠다고 하였으니 어떻게 든 그 방법을 찾고 달성해야 했기에 2019년은 테스트하느라 밖에서 지낸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고객도 하나둘씩 늘어갔다. CES 이후 고객을 다수 유치하며 회사는 정신없이 드론을 만들어 내야 했다. 다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본 가능성을 자기 사업으로 실현시키는 것에 꿈이 컸다. 우리 회사가 빠르게 시장에 제품을 출시한 덕에 고객들의 문의가 꾸준히 들어왔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며 프로젝트가 종료될 즈음, 우리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200대 드론쇼를 성공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말이다. 평창올림픽으로부터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COVID-19 팬데믹
드론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몇일 지나지 않은, 2020년 1월. 스위스의 고객이 신년 드론쇼를 수주했는데, 우리 회사의 기술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긴급한 출장을 요청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동계올림픽의 기원지인 ‘생 모리츠’ 였다. 드론쇼와 동계올림픽은 어떤 인연이 있길래 이렇게 나를 생 모리츠로 불러들인 것일까라는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취리히에서 생 모리츠까지 기차로 이동하며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도착하니 엄청난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객과 함께 영하 15도에 달하는 추위에서 무려 호수 중간까지 약 500m를 날아가는 드론쇼를 해내야만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또 이런 추훈 날씨에서 드론이 잘 비행할지. 모든 게 불확실하고 해본적이 없는 도전이었다. 여러 차례 테스트 끝에 결국 스위스 생 모리츠에서 100여대가 넘는 드론으로 신년 드론쇼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뿌듯하게 드론쇼를 마치고 귀국하여 보니, 인천공항 곳곳에 우한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경고를 하는 홍보물을 보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드론쇼에 미칠 파급력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불과 한달 후, 전 세계는 서로 오갈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다. COVID-19 팬데믹이었다.
팬데믹이 선언되고, 식당은 물론이거니와 공공장소에도 사람의 인적이 드물게 되었다. 현실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상황에 축제들은 모두 ‘셧다운’이었다. 모든 활동이 주춤해지고 위축되던 2020년 여름. 2019년 드론규제샌드박스를 지원했던 국토교통부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로 최초 300대 드론쇼를 할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았다. 지난 연말 200대 이후, 우리는 팬데믹으로 실험 등의 활동이 주춤해졌기 때문에 이것이 좋은 기회다 싶어 무조건 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300대는 해보지 않았던 대수라 모두가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멋진 드론쇼를 선보이는데 성공했고, 이후 6.25 7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생방송에서 드론쇼를 통해 호국선열들에게 드론 경례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행한 굵직한 두 건의 행사가 온라인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자 축제 ‘비대면 행사’에서 드론쇼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끊겨오지 않았던 축제가 팬데믹이라는 큰 어려움을 만나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또 한 번 중단된 축제가 돌아오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여러 축제 담당자들의 판단아래 불꽃놀이 보다 비대면 행사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드론쇼를 단독 아이템으로 축제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오히려 드론쇼를 더 대중적으로 만드는 데에 시대의 흐름이 도움이 되었다.
기술과 예술의 절묘한 만남
드론쇼라는 새로운 산업분야는 어디에도 그 운영방식이 적혀져 있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처음 만든 회사는 그 텔레비전에 무엇을 보여줄지도 같이 고민했을까? 이전부터 영화라는 분야가 있었기에 그러한 어려움은 덜 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드론을 텔레비전에 비유한다면, 드론쇼는 그 텔레비전에 무엇을 보여줄지 조차 결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분야였다. 드론쇼는 드론이 실제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표현하는 분야다 보니 그림을 그리더라도 드론이 표현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론이 직접 비행하며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서로 충돌하지 않는 비행 궤적을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다. 애니메이션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역시 드론의 비행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너무 급격히 움직일 수도 없으며 표현하려는 방법에 따라 비행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더라도 표현하는 내용이 드론으로 표현했을 때 그 표현력이 극대화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야 하기에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부분도 드론쇼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전에 없던 미디어이기 때문에 디자이너 스스로도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기술과 예술이 말그대로 절묘하게 만나야 한다.
필자가 창업을 할 당시에는 기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신산업으로 인해 드론을 개발, 양산하는 것 외에도 우리 드론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멋진 쇼를 선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드론쇼 애니메이션도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었고 회사에서 밤낮없이 전 세계로 공급되는 드론쇼의 크리에이티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구성원만큼이나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구성원도 늘어나고 있다.
점차 확장되어가는 드론쇼
2022년은 팬데믹이 종식되어가며 비대면 뿐만 아니라 축제 현장에서도 드론쇼를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드론 판매뿐만 아니라 드론쇼 제작, 그리고 드론쇼 운영까지 전문영역을 확장해 왔는데 2022년이 그 결실과도 같은 해라고 볼 수 있었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1년간 드론쇼를 운영하며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였다. 매주 아이디어를 내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이를 하늘에 띄워내는 것은 회사에 긍정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운영팀의 규모 성장을 일궈내었다. 팬데믹 종식이 다가오자 고객들도 드론쇼 솔루션의 구매 결정을 이어 나갔다.
우리 고객들과 이 새로운 사업을 보며, 사업은 필요에 의해 시작되고 고객에 의해 성장한다고 느꼈다. 처음 창업할 당시에는 상상의 고객들과 상상의 니즈들로 개발이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고객의 피드백과 시장의 반응이라는 채찍이 우리를 달리게 만들고 있다. 창업할 당시 만든 사업설명 자료를 매년 연말에 펼쳐보는데. 2019년까지는 무언가 예상했던 대로 진행이 되어 왔다고 느낀 반면, 2020년부터는 상상해보지 않은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드론으로 하늘에 메시지를 그려내고 수만명의 사람이 운집한 행사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가 된 드론쇼를 운영하고 전 세계에 드론쇼 콘텐츠를 공급하는 회사가 될 줄은 정말 예측하지 못했다.
현재 유비파이는 미국내 드론 라이트 쇼 드론 점유율 1위의 회사이다. FAA (미연방항공청) 에서도 비행승인 기준 1위의 제품이다. 즉 우리 제품으로 드론쇼를 하는 사업자가 가장 점유율이 높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고객이 잘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주었기 떄문에, 결국 우리 제품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글을 마치며
돌이켜보면 팬데믹으로 인해서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는 비즈니스이지만 기술 발전과 사회적 필요가 잘 맞물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등을 발판으로 비대면 축제라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있었고 이 기회 덕분에 팬데믹 동안에도 비즈니스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준비된 비즈니스가 엔데믹을 만나며 축적된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은 전국의 인지도 있는 축제에서는 모두 드론쇼를 선보이고 있다.
드론쇼는 최근 기술발전에 말미암아 완전히 새롭게 정의된 산업이다. 필자는 우리가 밤하늘을 즐기는 방식은 드론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불과 15세기에 정착된 불꽃놀이와 폭죽 한가지 방법에서 600년이 지난 지금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리고 정교한 3차원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방법으로 진화했다. 그것은 드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 창업을 한 후에도 드론쇼 분야가 생기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신산업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필자의 회사를 보면 무엇보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본 드론쇼에서 이미 늦었다는 패배감을 느끼기 보다 앞으로 창출될 시장에 대한 믿음에 집중한 것이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드론에 그렇게 많은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했는데 왜 평창 하늘에는 인텔의 드론이 비행했는지 자조하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늦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움직인 것이 지금 대한민국 하늘에 우리가 만든 드론으로 이 멋진 드론쇼를 선보일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드론쇼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을 통해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주는 콘텐츠로서 놀이공원(테마파크), 광고, 축제, 스포츠 이벤트, 야간관광 콘텐츠 등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놀라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낼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나고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때 세상이 우리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오늘도 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측면을 보며 어떻게 고객들이 더 멋진 드론쇼를 즐길 수 있게 할지 고민을 이어 나간다.
필자의 회사 이름은 UVify. 즉 Unmanned Vehicle + ify 가 합성되어 무인화 기술을 이용한 혁신적인 사업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분야의 배경지식을 갖춘 구성원들이 사업을 일궈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또 상상하지 못했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이룬 것보다 이루어 나갈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드론, 드론쇼,사업가,규제샌드박스,팬데믹
저자소개
임현(lim@uvify.com)
현) ㈜유비파이 대표이사
전) Dronecode Foundation (드론코드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