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부는 새로운 바람

김승근 (서울대학교)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기존의 질서들이 흔들리고 전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서 동양이나 서양 모두 변화된 세상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기술과 미디어 환경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게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되었다. 더 이상 앞서 발전된 서구의 문화와 예술을 따라가는 식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함께 발전에 대한 논의를 함께하고 새로운 방안을 먼저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림 1> PGVIS 2023 출처: PGVIS https://www.pgvis.com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태국의 국제 심포지움

2023년 8월말 태국의 방콕에 위치한 국립음악원 PGVIM(Princess Galyani Vadhana Institute of Music)의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하였다. 태국의 존경받는 왕실의 공주인 깐야니 왓타나(1926-2008)의 84세 생일을 기념하여 시작된 음악원은 일반적인 대학과는 차별화된 혁신적인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국제 심포지움 PGVIS(Princess Galyani Vadhana Institute of Music International Symposium)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의 초창기부터 평가위원(Peer Reviewer)로 참여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음악원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성과 함께 국제행사를 통한 다양한 교류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그림 2> 2023 PGVIS 행사 현장

한국-태국 수교 65주년 연계한 두건의 프로젝트 발표

특히 이번 심포지움 기간 중에는 교류 협력을 체결하고 협력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음대 학생들의 공동 프로젝트 이외에도 한국에서 코로나 이후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축제사례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탄생 100주년을 위해 2012년에 만들어졌던 『道TAO in CAGE』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형태의 음악극이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올해 PGVIS 초청으로 열렸던 공연과 발표내용은 한국과 태국의 학생들이 단순한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창작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에디션을 선보이는 무대였고 수준 높은 완성도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존 케이지의 유명한 작품 『4분33초』를 포함한 음악이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시와 어우러지고 한국과 태국의 전통음악이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서양과 동양, 고전과 현대가 만나는 창의적인 작품이었는데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한국과 태국 이외에도 향후 유럽의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논의하게 되었다.

<그림 3> TAO in CAGE 공연 현장 – PGVIS

같은 기간에 발표된 『위도보체: 공간, 시간, 예술적 경계를 초월하다 WIDOVOCE: Transcending Space, Time and Artistic Boundaries』 는 팬데믹 이후 대두되고 있는 페스티벌의 접근성과 지속 가능성 문제에 다양한 기술을 통해 물리적(physical) 및 가상(virtual)적으로 다양한 예술 플랫폼으로 제공하고자 코로나 시대의 한국의 외딴섬에서 2022년 시작된 실험적이면서 대안적인 축제의 사례를 국제적으로 공개하는 자리였다. 전통적인 개념의 축제가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 공감하고 같은 시간을 나누는 비교적 규모가 행사였다면 21세기형 축제는 예술적 경계를 넘어서 축제 공간과 시간의 관념을 재정의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림 4> 위도보체 사례발표 (이보람 박사:남호주 대학교) – 위도보체, PGVIS

새로운 혁신을 위한 아시아의 도전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시기에 국제 심포지움에서 진행된 두 건의 발표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또한 태국이라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에서 열린 행사라서 더욱 새로운 아시아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함께 참여했던 동료들뿐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에서 방문한 전문가들과도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설립 초기부터 음악원의 방향 설정과 개념을 설계한 프랑스의 음악학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혁신적인 도전들이 유럽보다 아시아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험이나 도전이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지라도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아시아의 여러 장소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림 5> 실험적인 퍼포먼스 – PGVIS

필자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서양의 현대음악을 공부했던 199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학은 필수 과정처럼 여겨졌었다. 국악이 전공이었기 때문에 서양의 음악을 그대로 공부하기보다는 우리보다 먼저 발전되었던 경향과 그것을 담아내는 행사 등을 체험하면서 우리 음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로 귀국 후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성과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앞서 시작된 서구의 모델을 따라가는 형태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라는 전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면서 기존의 질서들이 흔들리고 전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서 동양이나 서양 모두 변화된 세상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진정한 21세기는 2020년에 시작되었다는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주장처럼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될 혁신적인 기술과 미디어 환경은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아시아의 후발주자들에게 훨씬 유리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서구의 문화와 예술을 따라가는 식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함께 발전에 대한 논의를 함께하고 새로운 방안을 먼저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시아에 부는 새로운 바람이 전 세계의 많은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길 희망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47호 (2023년 9월 25일)

Tag: 아시아,음악,국악,PGVIS2023,PGVIM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장윤희 (2018). “국내 개최 동아시아음악학 국제학술대회의 성과와 국악학계 반영: 제6회 국제전통음악학회 동아시아 음악연구회 서울 학술회의를 사례로.” 『국악원논문집』 38, 251-74.
  •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서양 음악문화비교 국제심포지엄 (2000). “변화하는 음악가치: 새로운 창조성을 찾아서.” 제5회 동양음악 국제학술회의: 동서양 음악문화비교 국제심포지엄. 서울.

저자소개

김승근 (sngknkim@snu.ac.kr)

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K-뮤직공방 대표
전) 통영국제음악제 운영위원 및 재단설립자, KBS교향악단 이사,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주요 작품

『道TAO in CAGE』(2011/2022)
『국악관현악을 위한 음양의 조화』(2016)
『대금,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음악』(2008/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