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3년 아시아 정세전망(7)
참을 수 없는 북핵 대응의 가벼움 혹은 담대함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소문은 지난해 내내 한반도 안보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가리고 입엔 재갈을 물렸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해안포를 쏘았는데도 그래서 언제 7차 핵실험을 하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언론들은 7차 핵실험 임박 또는 조만간 단행이란 기사를 계속 쏟아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까지 나서 중국의 당 대회와 미국의 중간선거 사이로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지만 빗나갔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모두 오보이거나 가짜 뉴스이다. 핵실험을 단정했던 전문가들은 “코로나 때문이다”, “장마철이라 못한다”라고 핑계를 댄다. 준비는 다 끝났지만, 눈치를 보고 있다고도 한다. 북한이 핵을 움켜쥐고 끊임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진짜 이유를 알 턱이 없고 당연히 제대로 된 대응도 해법도 있을 수 없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북한의 핵 능력은 빠르게 발전해 왔다. 지금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과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에도 핵 무력 강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영변 원자로는 가동 중이고, 어디선가 원심분리기가 돌아가며 고농축우라늄 양을 늘리고 있다. 핵탄두의 운송 수단인 다양한 사거리의 신형미사일 개발은 더욱 속도를 내고 시험발사는 잦아졌다. 특히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이후 핵 무력 강화는 기술적 준비 상태에 따라 계획표대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핵 무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의도를 하나로 특정 짓기는 어렵지만, 외교적, 군사적, 내부적 차원에서 계산된 합리적 선택이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강압 외교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019년 북미 간 하노이 결렬 이후, 더 이상 북한은 북미대화나 미국의 양보에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다시 진영화 된 신냉전 구도 속에서 미중 경쟁 심화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에 더 경사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주외교를 위한 대외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하는 데 핵 무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무극적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북한은 이미 정권 생존과 체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핀을 보장받았고 이제 더 이상 대북 제제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군사적 차원으로는 미국이나 남한 등으로부터 군사 위협을 차단하고 억지하기 위함이다.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 속에 핵무기를 비롯해 강력한 억지 수단이 될 수 있는 무기를 가짐으로써, 상대가 느끼게 될 견디기 힘든 피해에 대한 우려와 심리적 공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다양한 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 본토 타격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차원의 응징적 억지로부터 한반도와 역내에서 작전‧전술적 차원의 거부적 억지까지 핵 운용전략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아직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 미확인 등 기술적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최근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까운 시일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상 발사 역시 현실화 될 것이다.
내부체제적 차원에서 핵 무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여 보다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는 의도 역시 중요하다. 김정은 정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남한이나 미국이 아닌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일지도 모른다. 당 규약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정은 시기에 있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2018년 4월 20일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바로 병진노선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탈선군과 함께 북한군의 건설 현장 투입 등 경제적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경제발전에 집중하면서도 직면한 대외적인 안보 우려 차원에서 군사력 유지 및 강화는 불가피하다. 북한은 경제발전에 매진하면서도 국방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려 해소로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핵 무력을 바탕으로 ‘병진노선 2.0’으로 진화하고 있다. 핵 무력은 탈선군과 사회주의 부강 조국 건설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국방비 60조를 쓰는 남한과 핵을 가진 북한, 이미 넘치는 상호확증파괴
최근 북한이 보이는 핵 무력과 군사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행동은 남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상호 양보 없는 군사적 맞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 무력 강화의 이유를 미국과 남한에 돌리며 군사 행동의 명분과 정당성을 마련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 정부 역시 동맹과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겠다며 군사적 대응만을 고집하고 있다. 현 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지난 1년여 간 제7차 핵실험 가능성을 점쳐오고 있다. 북한의 핵 무력 강화와 새로운 무기 개발 등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는 군사적 도발과 미국의 양보를 얻기 위한 압박으로 치부하고, 한미 연합훈련 강화, 사드기지 정상화 등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군사적으로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핵에 대해 군사적 대응이 무의미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재진영화된 국제질서 하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를 바탕으로 서구 중심의 대북 압박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몰이해 속에 정치적으로 손쉬운 군사적 대응만을 고집할 경우,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 고조 및 위기와 함께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에 빠질 공산이 크다. 동맹과 힘에만 의존한 평화 유지는 비핵화가 아니라 오히려 북핵 위기를 잉태하고 핵전쟁 위기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무지와 전략의 부재 하에 고민 없이 가장 손쉽고 간편한 대응책을 선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위기와 공포는 국민의 몫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미래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이미 국방비를 60조 원 가까이 사용하는 남과 핵을 가진 북은 서로를 완전히 파괴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북핵에 대해 군사적 해법만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것은 담대한 대응이라 할 수 없다. 평화를 위해 남북관계에 있어 위험을 감내하는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조정과 전략적 선택이 시작되어야 북핵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평화가 가능하다.
비핵화에 앞서 불용핵화와 군비통제와의 조우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질량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상황에서, 동결을 입구로 한 비핵화나 실질적 비핵화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2단계 방식만으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실질적 비핵화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인지 개념과 구분도 모호하다. 이미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동결을 경험했고,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 및 10·3 합의를 통해 폐쇄·봉인, 불능화라는 좀 더 세부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진행한 적이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에게만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지금까지처럼 등가의 맞교환 방식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북한이 핵은 더 이상 어떤 것과도 교환 등가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비핵화-평화 체제 병행론도 수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맞교환조차 등가인지 고민스럽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등가’나 ‘순차적’보다 상호 수준에 맞는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핵을 통해 우리가 받는 위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북한이 받는 위협도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 북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와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인 과거 핵 위협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래 안보 우려까지 해소해 주어야 하는 딜레마와 비현실성이 존재한다. 비현실적인 비핵화를 내세우기보다 안정적이며 지속할 수 있는 평화를 바탕으로 핵이 사용되지 않고 불필요한 상황인 불용핵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며, 이를 위한 군비 통제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난 9월 북한은 새로운 핵 교리에 핵무기의 선제 및 보복 사용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핵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것은 북한이지만, 도리어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북한에 핵이 필사의 핵이 될지 절망의 핵이 될지는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을 궁하필위(窮下必危),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물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 절망의 핵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은 아직 열려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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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핵무력,억지,비핵화,군비통제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김동엽(2022).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군비통제의 이론적 고찰과 접근”, ?인문사회21? 13권 5호. http://www.insa21.kr/
- 김성배(2022). “김정은 정권의 핵개발 및 비핵화 협상 평가와 전략적 시사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http://www.inss.re.kr/
- 전봉근(2022). “북한 ‘핵보유국법’과 ‘핵무력정책법’의 비교 평가와 한국의 대응책 모색”, ?외교안보연구소?.
https://www.ifans.go.kr/
저자소개
김동엽(donykim@kyungnam.ac.kr)
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국방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주요 논문
“북한 허위 정보에 대한 다층적 분석과 이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020.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군사 분야 변화와 전망”, 『경제와 사회』 122호, 2019.
“북한의 해상경계선 주장 변화와 남북군사협상: 북한의 ‘서해 해상경비계선’을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31권 2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