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3년 아시아 정세전망(3)
미중 갈등과 신 국제질서

신성호 (서울대학교)

미중 경쟁과 갈등은 바이든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은 여기에 수반한 각종 정치·경제·군사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단기간의 승패로 귀결되기보다는 향후 20~30년간 뚜렷한 승자의 구분이 없는 혼란과 위기의 국제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이념이나 이데올로기, 대의명분보다는 각국이 자신의 국익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19세기식 전형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면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신중하게 위기를 관리하되, 평화와 비핵화를 주도하기 위한 담대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심화하는 미중 경쟁과 양국의 대응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 시작된 미중 경쟁과 갈등은 바이든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에 발표한 국가안보 전략에서 중국을 가장 심각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하였다. 중국이 경제는 물론 외교, 군사, 기술 면에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이며, 자국에 유리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능력이 향상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에 맞서는 미국의 전략은 미국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내 투자(invest), 동맹 및 주변국들과의 대중국 정책 조율(align), 그리고 21세기 첨단기술과 혁신에 대한 우세한 경쟁 (outcompete)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향후 10년이 그 승패를 가름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군사적 충돌이나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으며 대신 중국과의 평화적 공존을 희망하며 지구적 위기에 대한 협력과 공동 대응을 제시한다.

한편 중화민족의 최강대국 부흥을 추구하는 시진핑 정부는 미국이 중국 공산당 체제를 부인하며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특히 홍콩이나 대만 등의 내정 문제에 간섭하는 외부 세력은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지난해 10월 열린 20차 공산당 전국대회에서 시 주석이 재연임을 불사하며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포함한 주권 수호 의지를 천명한 배경이다.

글로벌 차원의 정치·경제·군사적 위기에 대한 경고

2015년 하버드 대학의 그래함 앨리슨(Graham T. Allison) 교수는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기술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를 인용하며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이 양국 간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츠 창업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2차 세계 대전 이래 압도적이던 미국의 패권이 그동안 누적된 재정적자와 빈부격차, 그로 인한 극심한 정치 분열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강력한 중국의 부상이 겹치면서 미중 간 무역전쟁, 기술전쟁, 지정학 영향력 전쟁, 자본과 경제전쟁이 현재 벌어지고 있으며 종국에는 군사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미국 최대 은행 JP 모간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냉전 이후 지난 30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화가 끝나고 중국의 값싼 임금과 제조업에 기반을 둔 저물가 고성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이후 지정학 경쟁이 경제 안보 논리로 전이되면서, 세계 경제가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자국 유치 경쟁으로 블록화하고 고물가와 경기침체 혹은 장기적 저성장의 시기로 진입하는 모습이다. 작년 초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림 1> 미중 경쟁의 장기화와 향후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
출처: https://cepr.org/

지속되는 경쟁과 혼란의 국제질서

그렇다면 향후 세계질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당장 미중 경쟁이 단기간에 결판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위협을 보듯이 중국도 2050년 세계 최고국가 달성을 목표로 장기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향후 20~30년간 미중 경쟁이 지속되면서, 뚜렷한 승자의 구분 없이 혼란과 위기의 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냉전 시기처럼 미중 양극을 중심으로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지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미중과 나머지 세력 혹은 국가 간에 복잡한 이합집산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서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기술, 경제 블록을 형성하려 한다. 중국 역시 러시아와 이란, 북한 등 자신과 비슷한 권위주의 체제와 더욱 결속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규모 경제사절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독일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처럼 서방의 주요 선진국들은 여전히 중국과의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한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전통적 친미 국가에 대한 구애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를 전격 방문하여 에너지와 인프라 건설 부분에서 대규모 공급 및 투자 논의를 가진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일부 보도대로 사우디 원유의 위안화 결제가 본격화된다면 미국 패권의 가장 중요한 축인 달러의 전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흔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과 같은 주요 지역 세력 국가와 아프리카의 주요 지원국들은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이용하여 미중 사이에서 활발한 양다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

한국 주도의 신중한 위기관리와 평화를 위한 담대한 노력의 필요성

오늘날 국제정치는 미국 패권의 상대적 쇠퇴 속에 정치이념이나 이데올로기,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의 국익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19세기식 전형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모습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영원한 적이나 동지보다는 지역별 세력 구도, 경제적 이해관계, 팬더믹이나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위기에 따라 다양한 국가와 세력 간 경쟁, 갈등, 협력의 복합적 합종연횡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주의할 것은 각종 지정학적 위기나 미중 경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 미중 스스로가 철저히 자국 이익 중심주의에 기초한 정책을 펴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최근 수년간 진행된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믿고 섣부른 나토 가입을 추진한 우크라이나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은 전쟁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결국 전쟁의 가장 큰 희생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의 몫이 되었다.

미국은 각종 국내문제와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집중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에도 무심한 모습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 결의를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도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의 위기관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책임이 된 것이다. 동시에 미중의 전략적 충돌에 휘말리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혹은 대만해협의 충돌 가능성을 주시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우리의 입장과 정책을 점검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공급망 구축이나 기술 봉쇄에 우리의 국익을 따져, 유연한 협력을 하면서도 가장 큰 무역 상대인 중국 시장과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림 2>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출처: https://www.nytimes.com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G20 회의에서 처음 대면 정상회담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양국 간 존재하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내면서도 글로벌 차원의 기후 및 각종 경제위기에 공동 대응할 것을 천명하였다. 특히 양 정상은 그 어떤 형태의 핵전쟁도 일어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상호 윈-윈 하는 대화와 협력 채널의 유지를 약속하였다. 미중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주도하는 한국의 담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5호 (2023년 1월 19일)

Tag:
미중갈등, 바이든행정부, 시진핑주석, 블록화, 비핵화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Seoul National University Asia Center 외 5개 기관 주최. (2021). “Session 1: US-China Rivalry and Strategies of Asia.” The Asia-China Dialogue 2021: Toward a peaceful and Brighter future. Seoul. November 4. https://snuac.snu.ac.kr/
  • 신성호(2020). 21세기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 안보 연구의 과제와 역할. 국제.지역연구, 29(3), 29-54. DOI : 10.56115/RIAS.2020.09.29.3.29
  • Graham Allison(2015). “The Thucydides Trap: Are the U.S. and China Headed for War?” The Atlantic (September 25) https://www.theatlantic.com/

저자소개

신성호(ssheen@snu.ac.kr)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및 국제안보센터 소장, 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전) 미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APCSS) 연구교수, 부르킹스연구소 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East West Center 객원연구원

주요 저서와 논문

『전략적 경쟁시대 한반도 안보정세 분석 전망』 (편저),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2021).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공저), (한울출판사, 2008).
“한반도 미사일 방어의 딜레마: 북핵과 미중 핵 경쟁 사이에서.” 『국제지역연구』 30권 2호, 2021.
“US Coercive Diplomacy toward Pyongyang: Obama vs Trump.”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32(2), 2020.
“군사혁신, 그 성공과 실패: 한반도 ‘전쟁의 미래’와 ‘미래의 전쟁’.” 『국가전략』 25권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