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아시아 주요국의 경제 안보(1) 미국의 경제 안보 전략: 평가와 전망

이승주 (중앙대학교)

미중 전략 경쟁은 ‘상호의존 속 존재적 위협’이라는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경제안보 전략을 규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중론이 미국 내에서 형성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견제를 “핵심 분야로 좁히고, 강도는 높이는(small yard, high fence)”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미중 전략 경쟁과 상호의존

2018년 무역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은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 재편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중 전략 경쟁은 ‘상호의존 속 존재적 위협’이라는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경제안보 전략을 규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중론이 미국 내에서 형성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패권 경쟁을 전개하는 두 국가가 여전히 높은 상호의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더 나아가 경제안보 전략의 설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상호의존 하 미중 전략 경쟁의 현실은 양국 간 갈등을 촉발하였던 무역에서 잘 나타난다. <그림 1>에서 나타나듯이, 2018년 무역 전쟁 이전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이었던 중국산 제품은 0.2%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무역 전쟁 발발 이후 관세 부과 대상이 22.5% (2018년 7월) → 31.5%(2018년 8월) → 65.5% (2018년 11월)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관세 부과 대상의 비중이 2019년 1월 56.3%, 2019년 10월 58.3%로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무역 전쟁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는 매우 광범위하다. 무역 전쟁의 치열함은 관세 부과 범위에 그치지 않는다.

평균 관세율 역시 3.1%(2018년 1월) → 6.7%(2018년 7월) → 8.2%(2018년 8월)로 단계적으로 인상되더니, 2018년 11월에 12%를 기록하여 마침내 두 자리 관세율을 돌파하였다. 이후에도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2019년 7월에 17.6%를 기록하였고, 2021년 1월에는 결국 20%를 돌파하였다. 미중 1단계 합의가 도출된 이후 평균 관세율이 19.3%로 미미하게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이행 조치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높은 관세율이 유지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3%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대중국 공세의 강도가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평균 관세율이 21.2%인 데서 나타나듯이, 미국에 맞서는 중국 역시 강경 대응을 서슴치 않았다. 미중 양국은 지난 3여 년간 무역 ‘열전’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림 1> 미중 관세 부과 현황(2022년 6월 기준)

출처: Bown (2022).

상호의존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에서 시작한 경쟁의 무대를 첨단기술 분야로 빠르게 확대하였다.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규제로 시작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AI, 사이버, 우주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핵심 첨단기술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며, 일부 첨단기술에서는 미국을 이미 추월하였다는 우려 섞인 평가를 하고 있다. 상대국 수출품의 대다수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현재의 경쟁과 첨단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미래의 경쟁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는 미중 양국에게도 상호의존의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무역 전쟁이 발발했던 2018년 6,588억 달러에 달하였던 양국의 무역 규모는 2019년 5,556억 달러로 약 16% 감소하였으나, 불과 2년 후인 2021년 6,563억 달러로 반등하여 무역 전쟁 이후 수준을 거의 회복하였다.

전략 경쟁의 파고가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미중 무역의 증가는 다소 의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는 효과가 의문시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높고 넓은 수준과 범위의 제재가 중국산 원료와 부품을 사용하는 기업에게 비용 증가를 초래하여 경쟁력 저하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또 궁극적으로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미국의 장점을 활용하지 않고, ‘중국 방식으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전략 경쟁에서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략 경쟁은 일회성 갈등 또는 단기전이 되기보다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적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실천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견제를 “핵심 분야로 좁히고, 강도는 높이는(small yard, high fence)”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상호의존의 현실을 인정하되, 중국 견제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전략 경쟁과 국내정치: 과잉 안보화와 자국 우선주의

전략 경쟁에 국내정치적 고려가 투사되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전략 경쟁이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첫째, ‘과잉 안보화’의 가능성이다. 전략 경쟁 속에서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적어도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려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이때 핵심은 경제-안보 연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 관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현시점에서 미국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나 대중국 견제에 대해서는 초당적 합의의 기반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중국 견제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중국 정책의 과잉 안보화의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잉 안보화는 경제적 효율성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장기적 효과는 전략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과잉 안보화의 유혹을 떨치고, ‘적정 안보화’를 추구하는 것이 향후 미중 전략 경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관건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경제-안보 연계는 자국 우선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of 2022), CHIP4,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등이 기본적으로 미국 산업과 기업을 우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및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역량을 확충하고 기술 혁신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명분을 표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자국 산업과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국내정치의 논리가 정책결정에 투영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상징적 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과학법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국을 견제’할 것이라고 평가한 데서 미국 경제-안보 전략의 국내정치적 영향이 발견된다.

또한 한국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미 의회가 주도한 데서 나타나듯이, 기술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표방하는 정책들이 로컬 정치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안보 연계를 자국 우선주의의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 수단 간 정합성에 문제를 초래한다. 이는 전략 경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역으로 한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의 경제-안보 연계에 국내정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상시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경제안보 연계와 국제협력

미국 경제-안보 전략의 우선 목표는 중국에 대한 취약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상호의존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차선책은 취약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취약성 완화라는 정책 목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대중국 경제안보 전략의 다음 목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확대하는 것이다. 경제 제재와 기술 통제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은 중국의 기술 추격을 지연 또는 저지시키는 전략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미국 경제안보 전략은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를 가능한 한 지연시키는 가운데 미국의 기술 혁신 생태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확대하고자 한다.

취약성의 완화와 기술 격차의 유지는 국제협력, 특히 동맹 및 파트너와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협력 전략에 호응하여, 한미 협력을 첨단기술과 산업 분야로 대폭 확대하여 동맹의 포괄화를 추구하였다. 올해 5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첨단 반도체, 친환경 자동차 배터리, AI, 양자 기술, 바이오 기술, 바이오 제조, 자율 로봇 등 한미 양국이 핵심 및 신흥 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에 합의한 것은 한미 협력을 업그레이드하였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와 산업정책이 미국 경제안보 전략의 국내적 차원이라면, 국제협력은 대외적 차원이다. 경제안보 전략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자 사이의 조화가 요구된다. 이는 결국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미국이 ‘신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공동의 이익 실현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포용적인’ 생산 및 기술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규범적・지적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39호 (2022년 10월 4일)

Tag:
경제안보, 미중전략경쟁, 첨단기술, 반도체, 파트너십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이승주(2021). “경제・안보 넥서스(nexus)와 미중 전략 경쟁의 진화.” 『국제정치논총』 61권 3호, pp. 121-156.
  • 이승주(2022). “기술과 국제정치: 기술 패권경쟁시대의 한국의 전략.” 『한국과 국제정치』 38권 1호, pp. 227-256.
  • Allison, Graham et. al. (2021). “The Great Tech Rivalry: China vs the U.S.”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https://www.belfercenter.org/
  • Bown, Chad P(2022). “US-China Trade War Tariffs: An Up-to-Date Chart.” PIIE Chart (April 22) https://www.piie.com/
  • White House. “FACT SHEET: CHIPS and Science Act Will Lower Costs, Create Jobs, Strengthen Supply Chains, and Counter China.” (August 09) https://www.whitehouse.gov/

저자소개

이승주(seungjoo@cau.ac.kr)

현)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동아시아연구원(EAI) 무역ㆍ기술ㆍ변환센터 소장,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회 위원장
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게이오(慶應義塾)대학교 방문교수

 

저서와 논문

『패권의 미래: 미중 전략 경쟁과 새로운 국제 질서』 (편저) (21세기북스. 2022).
『지경학의 기원과 21세기 전환』 (책임편집)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기술과 국제정치: 기술 패권경쟁시대의 한국의 전략” 『한국과 국제정치』 38권 1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