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2년 아시아 정세전망(2)
2022년 아시아 국가들의 환경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인가?

김준 (서울대학교)

지금은 팬데믹이 아니라 팬데믹의 결과로 오게 될 세상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새해에는 아시아의 환경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유일한 터전인 지구에 어떤 손상을 입혔는지 처음으로 깊이 자각한 첫 세대이자, 이를 바꾸기 위해 뭔가 해 볼 여지가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은 이상과 품격 있는 삶을 추구하더라도 일상에서의 배움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환경정책은 ‘비저니어링’을 통해 하학상달(下學上達: 아래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르게 함)의 단합과 헌신을 이루어 낸다.

여박총피(如剝蔥皮): 문제를 드러냄

파의 향취는 껍질에는 없다. 그래서 걷어내야 한다. 아시아의 환경정책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환경과 정책을 나누어 한 꺼풀 벗겨내 보자. 21세기의 화두는 단연코 환경이다. 환경,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확실한 한 가지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은 20세기 경제학과 결합하여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소비 위주로 바꾸어 놓았다. 이로 인한 환경 파괴로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생태계와 사회 기반의 참담하고 절박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무조건 기후변화를 탓하며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환경 문제의 진짜 원인은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다.

정책은 어떠한가?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책을 정의할 때, 정책의 목적·규범·행동·변화·미래지향적인 성격은 정부의 명확한 비전을 담아내고 확고한 실행 의지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또다시 확산일로를 거듭하고 있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가 배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문제가 해결책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찾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책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 실행 의지의 여부”이다.

지기췌마(知機揣摩): 미루어 헤아림

아시아가 지정학적으로, 지경학적으로 지구촌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환경정책에 큰 함의를 부여한다. 많은 인구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아시아는 글로벌 에너지 수요와 소비 증가의 진원지가 되었다. 경쟁 체제의 과도한 성장에 대한 집착과 심화되는 불평등은 급격한 자연 파괴, 환경오염 그리고 기후위기를 넘어 이제 팬데믹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연 서식지의 파괴로 인한 야생 생명들의 이주와 생태학적 한계를 넘어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인류의 삶의 방식으로 인해 이미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했고, 앞으로 더 많은 감염병이 창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코로나 발생 당시 인류는 보다 나은 협력을 추구하기보다 이기심과 민족주의로 돌아서며 팬데믹으로의 확장을 초기에 막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 봉쇄 조치와 이에 따른 산업 활동 및 경제의 위축이 비록 일시적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가파른 감소와 더불어, 대기오염이 완화되고 대기질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정부와 국민의 코로나 위기 대응의 잠재적인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늠하게 하고, 적응력과 회복성(Resilience)을 넘어 반취약성(Anti-Fragility: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지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되고 있다. 지금은 사회와 구성원 모두가 습관으로 굳어진 사고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관점을 바꾸어, 보다 나은 미래를 꾸려갈 대전환의 지렛대를 찾아 적용해야 할 때이다.

변례창신(變例創新): 발상의 전환

먼저, 확고한 비전을 기반으로 환경정책의 기본적인 관점과 틀이 바뀌어야 한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도넛 공간”의 비전을 제시한 ‘도넛 경제학’의 저자, 레이워스(Kate Raworth)가 제안했듯이, 큰 그림을 보며 시스템의 지혜를 배우고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해야 한다. 메가 아시아(Mega-Asia)를 꿈꾼다면, 성장 우선의 관리 차원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온전성을 인정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생태-사회시스템을 지향해야 한다<그림1 참조>.

<그림 1> 생태-사회시스템: 태양으로부터 양질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지구생태계 안에 사회시스템이 있고, 그 안에 경제가 내재되어 물질, 에너지, 정보의 유기적 순환으로 연결됨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지만,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초학문적 의사결정 과정, 환경 관련 행정의 통합, 그리고 총체적이고 사전예방적 환경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사고방식과 삶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환경문제는 국경이 없기에 국제적 노력에 안고수비(眼高手卑: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가 아닌 적극적인 실천으로 동참해야 한다. 환경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감시하는 것은 공중과 여론의 몫으로 국민의 환경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정부, 가계, 시장 및 공유재가 중심이 되어 협력하는 거버넌스(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 제시와 솔선수범), 관리(비전의 전략적인 운용과 실천), 그리고 모니터링(측정과 평가를 통한 데이터 기반의 스토리텔링의 되먹임(Feedback))의 삼합으로 이루어지는 비전의 엔지니어링, 즉 비저니어링(Visioneering)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본의본령(本意本領): 비전에 집중함

올바른 환경정책의 비전은 생태-사회시스템의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여 동기를 제공하고 방향을 설정해주며 우선순위의 목표를 부여하여 단합과 헌신을 이끌어 낸다. 다양성과 회복성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안전하고 건강한 생태-사회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본의본령, 즉 핵심을 건드려 전체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성장의 한계’의 저자인 메도우즈(Donella Meadows)는 시스템 사고에 기반을 두고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효과의 12가지 지렛점을 제안하였다<그림2 참조>.

<그림 2>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의 비저니어링에 사용할 수 있는 12가지 지렛점

시소 놀이를 생각해 보자. 지렛점은 지렛대의 받침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효과적이다. 비저니어링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런 효과적인 지렛점들은 거버넌스와 관리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은 시스템의 ⓵ 건강한 위계질서와 ⓶ 스스로 조직화하는 역량과 ⓷ 신속히 회복하는 능력이 출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돌보게 한다. 여기서 건강한 위계질서란 복잡한 생태-사회시스템의 계층구조가 최상위 계층이 아닌 하위 계층을 돌보고 지키기 위해 존재함을 뜻한다. 반면에 받침에 가까이 위치한 지렛점들(숫자, 완충, 재고·주식, 흐름, 지연 등)은 효과가 낮은 모니터링과 관련된 것으로 환경정책과 관련된 대부분의 물리적 조정(예,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배출권 거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비저니어링의 관점에서 말하는 모니터링은 이런 낮은 효율의 지렛점들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고 분석하여 도출한 데이터텔링(Data-telling)을 시스템에 되먹임으로써 거버넌스와 관리가 조화를 이루어 비전을 성취하도록 이끄는 선순환 과정을 말한다. 요약하면, 현재 낮은 효율의 단순한 모니터링에 집중되어 있는 대부분의 환경정책은 거버넌스와 관리에 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데이터텔링 기반의 되먹임을 반영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

간난불최(艱難不摧): 근검으로 일어섬

새해에는 과연 아시아 국가들의 환경정책에 변화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인류가 지구에 미친 손상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깨달은 세대이자 무언가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 2022년 아시아의 환경정책은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듯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디지털과 그린을 두 축으로 하는 ‘그린 뉴딜’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결속력과 설득력 있는 비전과 비저니어링의 의지를 찾기가 어렵고, 규모와 속도를 관건으로 한 낮은 효과의 지렛점들에 관심과 우선순위가 집중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사회가 ‘비성장’의 필요를 새롭게 깨닫게 되면서 정부와 국민이 함께 끌어안는 ‘문화적 적응’이다. 혁신적인 과학·기술의 적용과 더불어 단순한 생활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병행되어야만 그것이 문화적 특성으로 바뀔 수 있다. 메도우즈가 말했듯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그려내고 애정을 담아 평범한 일상의 현실로 만들어 낼 수는 있다. 복잡계인 생태-사회시스템은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저니어링을 통해 다시 설계하고 또 다시 설계하면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적응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좌절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비전에 집중하면 시스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시스템의 지혜와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이 어우러질 때, 우리가 꿈꾸는 안전하고 건강한 메가 아시아를 빚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5호 (2022년 1월 18일)

Tag:
환경정책, 아시아, 생태-사회시스템, 비저니어링, 메가아시아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양종화 외(2002).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환경문제, 환경운동 및 환경정책』. 서울대학교출판부
  • 케이트 레이워스, 홍기빈 옮김(2018). 『도넛 경제학』. 학고재
  • 김준, 양현영(2021). 『대도시 코로나19 대응시스템 비교: 회복성, 복잡성 그리고 전환』 . 전염성질병시대 대도시 방역과 도시 전환 전략(고길곤, 손창우 편집). 서울연구원
  • 김준(2021). 『비저니어링: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에 필수이나 등한시된 프레임워크』. 한국농림기상학회지 특별호 ‘농림기상학의 재고: 대전환’
  • 마야 괴펠, 김희상 옮김(2021).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나무생각

저자소개

김준(joon@snu.ac.kr)

현)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아시아연구소 미래지구프로그램 디렉터
전) 연세대 자연과학부 교수, 도쿄대 산업과학연구소 특임교수

 

저서와 논문:

『탄소순환과 녹색성장』 (지식의 지평. 2009)
『환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패러다임의 전환과 청지기직』 (연세대학교출판부, 2005)
“복잡계로 본 코로나19 대응 삼중고와 세계 전망.” (Uninomic Review, 2020)
“Visioneering: an essential framework in sustainability science.” (Sustainability Scienc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