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과학기술 경쟁력의 현황과 전망 (1)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한·중·일의 경쟁과 협력

김재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한중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많은 인구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 증가의 진원지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가 국가 안보를 좌우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3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앞으로 핵융합 에너지가 차세대 기간 에너지(backbone energy)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3국은 이 분야에서 핵심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한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핵융합 선진국인 일본은 물론, 중간 진입 전략을 채택한 한국과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자체 역량 강화와 함께 핵융합 연구가 활발한 나라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아시아의 에너지 수요 폭증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현대사회에서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요소이기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이면에는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지정학적 요인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아시아 지역은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 인도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라 세계 에너지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각국은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기존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확보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미래 에너지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략에는 소위 backbone energy라 불리는 기간 에너지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데 날씨, 계절 등에 따른 변수가 큰 신재생 에너지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연유로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지금 아시아 각국은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가동되고 있는 초전도 핵융합장치의 과반수가 아시아 (한, 중, 일, 인도) 지역에 있고 국제 공동으로 진행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 7개 회원국 가운데 4개국이 아시아 국가인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아시아 각국의 핵융합 연구 현황을 알아보고 향후 전망을 살펴보는 일은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넘어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의 선명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은 2050년대에 핵융합 상용화 목표

국내 핵융합 연구는 1979년 서울대에서 시작하여 1989년 원자력연구원에 이어 1993년 KAIST가 소형 핵융합 장치를 운영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핵융합 연구 초창기로서 1950~1960년대 핵융합 선진국들이 거쳤던 길을 따라가는 단계였다. 그러다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단시간에 따라잡기 위한 중간 진입 전략으로 1995년 토카막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국내 핵융합 연구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는 도넛 형태의 용기 내부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고온의 플라즈마를 발생시켜 가두는 장치이다. 이때 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강한 자기장이 필요한데 초전도 토카막은 초전도 전자석을 사용해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초기 투자 비용이 큰 거대장치 과학의 특성상 후발 주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인 최신 기술 적용이 가능했다. 따라서 구리 전자석을 사용하는 상전도 핵융합연구장치 일색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장시간 운전이 가능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를 곧바로 보유하게 된다. 2008년 최초 가동 이후 KSTAR 장치는 핵융합 상용화에 필요한 고성능 장시간 운전 연구를 진행하며 다양한 부문(고성능 운전시간, 불안정성 안정화 시간 등)에서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KSTAR 장치의 성공을 기반으로 한국은 미국, EU, 러시아, 일본 4개국이 시작한 ITER 프로젝트에 2003년 중국과 함께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다. 이후 2005년에 인도가 일곱 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아시아 국가가 ITER 회원국의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핵융합 상용화 연구에는 장기간에 걸쳐 큰 투자가 필요한데 ITER 가입을 통해 전체 비용의 10% 미만을 분담하는 것만으로 핵융합 선진국들이 보유한 기술들을 습득하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2050년대에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은 2006년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법을 제정하고, 2007년 제1차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2017년 ‘전력생산 실증을 위한 핵융합로공학 기술개발 추진기반 확립’을 위한 제3차 기본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그림 1> 한국의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
출처: https://www.kfe.re.kr/kor/pageView/18

중국은 2030년대부터 핵융합 실증로 운영 목표

중국은 핵융합 연구 태동기인 1950년대부터 소형 장치에서 핵융합 반응의 기초가 되는 플라즈마 물리 연구를 시작하였다. 현재 중국의 핵융합 연구는 대학에서 운영 중인 소형 장치 (J-TEXT 등)를 제외하면 크게 중국원자력공사 산하 남서물리연구소(SWIP, 1960년대 설립)의 HL-2M 장치와 중국과학아카데미 산하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ASIPP, 1970년대 설립)의 EAST 장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HL-2M과 EAST 모두 KSTAR와 함께 중형 토카막으로 분류되는 크기인데, 이 가운데 EAST는 KSTAR와 함께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전자석이 초전도체로 이루어진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이다. 부연하자면 국제 공동으로 건설 중인 ITER 역시 현재까지 가장 높은 성능을 보이고 있는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이다.

한국과 함께 ITER 프로젝트에 가입한 중국은 EAST와 ITER를 중간 디딤돌로 삼아 2020년대 핵융합 실증로인 CFETR 건설에 착수해 2030년대부터 운영에 돌입한다는 야심 찬 핵융합에너지개발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EAST는 CFETR에 필요한 장시간 운전 기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공학 설계가 완료된 CFETR은 핵융합 반응에 따른 각종 안정성 규제(방사선 및 방사선 물질 규제)와 이를 위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CFETR을 위한 종합연구시설 CRAFT(Comprehensive Research Facilities for Fusion Technology)를 2025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건설 중인데, 12만 평 부지에 60억 위안(한화 약 1조 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그림 2> 중국의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
출처: Wan, Yuanxi et al. (2017) “Overview of the present progress and activities on the CFETR.” Nucl. Fusion 57, 102009.

일본은 핵융합 연구의 선진국

일본은 ITER 초기 회원국으로 참여했을 만큼 한중일 3국 가운데 핵융합 연구가 가장 앞선 국가이다. 일본 핵융합 연구는 양자과학기술연구개발기구(QST) 산하 나카 연구소와 국립자연과학연구원 산하 핵융합과학연구소(NIFS)의 두 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학 연구실 단위에서 다양한 형태의 소형 장치들을 다수 운용하고 있다. 나카 연구소는 1985년에 대형 토카막 장치로 분류되는 JT-60 장치를 가동하였고, 세계 최초로 에너지 분기점(Q=1)을 넘긴 JT-60U를 1991년부터 운영하였다. 핵융합과학연구소 NIFS는 대형 헬리컬 초전도 핵융합 장치인 LHD를 199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일본은 고성능 달성에 유리한 토카막형 대형 핵융합 장치와 더불어 장시간 운전에 유리한 헬리컬형 대형 핵융합 장치도 동시에 보유해 운영했을 만큼 핵융합 연구를 다각도에서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유럽연합과 긴밀한 협력 관계(BA: broader approach)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2040년대 핵융합 실증로(DEMO) 건설, 2050년대 DEMO 전기 생산 실증을 목표로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과 협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장치가 JT-60SA라 명명된 대형 초전도 핵융합 장치이다. 1단계 BA(2007.06~2020.03)를 통해 조립이 완료된 JT-60SA는 2단계 BA를 통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JT-60SA가 가동되면 ITER 가동 전까지 초전도체로 제작된 유일한 대형 토카막 장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핵융합 에너지 실증을 위한 일본의 DEMO 관련 연구는 현재 사전 개념설계 단계이다. 2021년 이후 개념설계 착수를 위한 R&D 종합리뷰 계획이 잡혀 있다. 일본의 핵융합 연구는 핵융합 장치 건설에 국한되지 않고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필요한 기반 연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과 BA의 일환으로 핵융합 재료 연구를 위한 IFMIF/EVEDA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중성자조사시설인 A-FNS 건설 추진을 위한 설계 작업 또한 진행 중이다.

<그림 3> 일본의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
출처: https://www.mext.go.jp/b_menu/shingi/gijyutu/gijyutu2/074/shiryo/__icsFiles/afieldfile/2018/11/08/1408259_2_1.pdf

한국은 자체 역량강화와 함께 다른 나라와 협력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기초 연구 수준의 태동기를 거친 핵융합 연구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간 진입 전략에 따른 한국과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기존 핵융합 선진국인 일본의 투자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ITER 프로젝트처럼 국가 간 협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핵심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 역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ITER 프로젝트의 성공 결과 역시 7개 회원국 사이에 배타적으로 공유될 수밖에 없다. 일본과 유럽연합의 BA 활동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경쟁은 때로는 다양한 배타적 협력관계로 나타나게 된다. 한국도 자체 역량 강화와 더불어 핵융합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아시아 각국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5호 (2021년 9월 20일)

Tag: 핵융합, 국제핵융합실험로프로젝트, 동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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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재현(jayhyunkim@kfe.re.kr)

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 International Tokamak Physics Activity MHD 분과 한국 멤버, ITER disruption taskforce 한국 담당
전) 미국 Far-tech 박사후연수원,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연구원

 

주요 논문:

Kim, Jayhyun et al. (2012). “ELM control experiments in the KSTAR Device.” Nucl. Fusion 52, 114011.
Kim, Jayhyun et al. (2017). “Suppression of edge localized mode crashes by multi-spectral non-axisymmetric fields in KSTAR.” Nucl. Fusion 57, 022001.
Kim, Jayhyun et al. (2021). “Disruption mitigation by symmetric dual injection of shattered pellets in KSTAR”, Proceedings of 28th IAEA Fusion Energy Conference. EX5-831.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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