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장악과 향후 전망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20년 만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프간 정부는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의 진격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동안 미국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성한 아프간 정부군이 별 저항도 없이 게릴라 반군에 항복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아프간 정부의 취약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높았으나, 아프간처럼 부패와 불신이 만연해 정확한 정보 수집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하자, 주변 나라에서 알 카에다,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대거 입성해 과도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아프간발 급진 지하디스트(Jihadist) 세력의 확산이 신장 위구르 분리 독립운동을 자극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레반 지도부가 하부조직의 압박에 밀리고 통제력을 잃어 정국 불안이 내전으로 빠르게 악화될 경우 중국의 안보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극적 몰락과 탈레반의 귀환

2021년 8월 15일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의 거침없는 진격 앞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20년 전 미국이 축출했던 게릴라 반군 앞에서 20년 간 미국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성한 아프간 정부군이 별 저항도 없이 허망하게 항복했다. 올해 4월 14일 바이든 미국 정부가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넉 달여 만이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 20주년에 맞춰 철군을 완료하려 했다. 그러나 아프간 체류 미국인의 대피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탈레반은 카불의 대통령궁을 접수했고,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거액을 챙겨 해외로 도망갔다.

바이든 정부가 아프간 정부의 취약함과 탈레반의 진격 속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높았다. 그러나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혹은 임계점은 양질전화(量質轉化)의 폭발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극적 순간을 의미한다.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기 이전은 폭발의 압력을 겨우 버티는 위태로운 시점인데, 이때 겉모습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다가올 폭발을 짐작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아프간처럼 부패와 불신이 만연한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고질적으로 투명하지 않은 사회라 정확한 여론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어려우니, 극적 폭발의 전조 현상이 종종 무시되기 때문이다. 1975년 북베트남군 탱크가 사이공의 대통령궁에 진격했을 때 남베트남 군대는 제대로 싸울 생각도 않고 무기를 내려놓고 달아났다. 당시 친미 남베트남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심각했고 투철한 직업정신을 갖고 있는 군인은 찾기 어려웠다. 남베트남처럼 아프간에서 내부 불만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으나, 몰락의 징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가운데 정권은 순식간에 붕괴해버렸다.

비극의 시작은 2001년 9·11 테러였다. 당시 부시 정부는 아프간에 숨어있던 알 카에다 수장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탈레반 정권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 달 뒤 미국은 대대적 공습과 함께 속전속결 전법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부시 정부는 과학전이라는 이름 아래 소규모 특수부대와 공군을 첨단 무기로 무장시켜 최소의 희생으로 전투를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문제는 탈레반 정권의 축출 이후였다. 미국은 구체적인 전후 장기 재건 프로그램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뒤늦게 참여한 NATO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얼떨결에 공동 책임을 떠맡으면서 재건의 핵심 주체가 불분명해졌다.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여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 반군은 2005년부터 구식 소총과 급조된 사제 폭탄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이에 맞설 미 전투병은 턱없이 부족했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 첨단 군사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시작한 상황이어서 아프간 증파가 어려웠다. 2006년 이후 외국군을 상대로 한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와 요인 암살이 늘어나자,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새로운 아프간 정부에 치안권 이양을 서둘렀다.

2008년 이후 탈레반이 세력을 빠르게 확산하면서 아프간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2009년 오바마 정부는 증파를 결단했다. 2011년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한 후 2014년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아프간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이 아직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아프간에서까지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영향력이 커지자 2015년 미국은 철군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이후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 합의의 독단적 파기,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우방 쿠르드 배신과 급작스런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2019년에는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접촉을 시도하더니, 2020년 평화협정을 맺어 이듬해 철군하기로 약속했다.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뒤집기’ 정책이 여러 부문에서 진행됐지만 ‘중동 떠나기’ 기조는 이어졌다. 아프간과 이라크 장기 참전으로 인한 전쟁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가 우선순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외정책에서 중동과 이슬람 세계의 중요도는 현저히 낮아지게 된 것이다. 비록 공화당 정부가 시작한 아프간 전쟁이었으나, 동맹의 가치와 인권·민주주의의 구호 아래 미국의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됐다. 그런데 철수가 끝나기 전에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정책 실패

미국의 아프간 개입은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이전으로 올라간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소련은 아프간의 사회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 침공을 단행했다. 미·소 이데올로기 경쟁이 극심하던 시기,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의 일환으로 이슬람의 깃발 아래 모인 아프간 저항 세력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산유국들은 자금을 댔다. 이들 저항 세력은 아프간 내 파슈툰,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족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무신론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사우디, 이집트, 파키스탄 등 이웃 무슬림 국가에서 건너온 무자헤딘(전사)이었다.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자국이 아닌 곳에서 행하는 국제 지하디스트 1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빈 라덴도 이때 성장했고 1988년 알 카에다를 창설했다. 결국, 1989년 소련은 10년 간 천문학적 비용과 병력을 잃은 뒤 패퇴했다.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이들 무자헤딘에 대한 지원을 끊었고 배신감을 느낀 지하디스트는 미국을 향한 복수를 준비했다. 알 카에다는 더욱 급진적인 지하디스트 2세대를 이끌었고, 여러 무슬림 국가에서 젊은이들을 충원했다. 탈냉전 시기 사회주의 진영 대신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국제질서를 위협하자, 미국은 재빠르게 이들을 향한 봉쇄 정책을 펼쳤다. 알 카에다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 무슬림 영토에서 서구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미국 본토에 9·11 테러를 감행했다. 1994년 아프간에서 창설된 탈레반 역시 이를 지지했다. 자국 이익만을 쫓는 미국의 위선, 민주·공화당의 비일관적 대외정책이 결국,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라는 괴물을 키웠던 것이다.

2001년 10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해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몰아낸 미국은 12월 아프간 전체 부족장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 원로들은 타지크족 출신의 이슬람 법학자 시라트를 임시정부의 수장으로 선정했으나, 미국은 아프간 최대 부족이자 탈레반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파슈툰족 출신인 카르자이에게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맡겼다. 한편 미국과 함께 탈레반 격퇴전에서 싸웠던 북부동맹의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족 출신들에겐 주요 부처 장관직이 돌아갔다. 2004년 첫 민선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는 수도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졌다. 미국 또한 탈레반 게릴라의 격퇴를 위해 취약한 카르자이 정부 대신 아프간의 요충지와 수송로를 장악한 군벌에 의존했고, 이들의 자금줄인 마약 밀매를 눈감아줬다. 결국, 탈레반 반군도 어렵지 않게 마약 거래를 했고 재정을 늘렸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측근과 카불의 엘리트 집단은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형성해 국제원조금을 착복했다. 부패한 간부들은 급료를 가로채려고 군인 명부를 허위로 기재하기 일쑤였다. 군경의 훈련과 장비 구축을 위한 재정은 늘 부족했고 사병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부정선거 논란 끝에 2014년 당선된 가니 대통령 역시 부패의 대명사로 전락했고, 결국 탈레반의 카불 장악 직전 국외로 탈출해버렸다.

이로써 미국의 아프간 안정화 및 재건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재건이란 외부의 개입과 원조로 국가 기능을 수행할 역량을 키우고 안정적이고 민주적 체제를 다지도록 돕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의 치안력 회복과 민주 시스템 구축은 물론 공여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이지 못했다. 20년 간 1조 달러 이상을 쓰고 2400명이 넘는 미군이 사망했으나, 아프간은 탈레반 손에 다시 넘어갔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 이후 정세 변화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장악하자 주변국에서 알 카에다, IS 대원들이 아프간을 국제 지하디스트의 해방구로 여기며 속속 입성하고 있다. 8월 26일 IS 아프간 지부로 알려진 IS ‘호라산(Khorasan)’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에 카불 공항에서 과감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고,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IS ‘호라산’은 탈레반에서 떨어져 나온 극단주의 분파로서 미국과 거래를 한 탈레반을 유약한 배신자라며 비난했다.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후 아프간 내에서는 탈레반, 알 카에다, IS ‘호라산’간에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고, 그 중 극단주의 테러조직 IS의 영향력이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들 조직의 목표는 존재감을 과시해 이슬람 급진 원리주의를 널리 알리고 최대한 많은 추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에 더해 과거 미국을 도와 탈레반 축출에 앞장섰던 북부동맹이 탈레반을 향해 항전을 선포했다. 향후 아프간 사태가 더욱 혼란스러운 내전 상황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타락한 물질문명과 쾌락주의에 반대하는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를 교조적으로 해석해 공개 참수, 절단, 태형을 일삼고 특히 여성을 심각하게 억압해왔다. 탈레반의 극단적 여성 정책은 폭압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과거 탈레반 집권 시기(1996-2001) 아프간 여성은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 원조기구가 아프간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나 탈레반이 법으로 금지했다. 화장, 헤어 커트, 손톱 손질이 금지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부르카를 입지 않거나, 크게 웃거나, 혼자 이동해도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탈레반은 이번 카불 입성 후 변화된 통치를 선언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탈레반 지도부의 발표와 달리 하부조직은 전국 곳곳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지도부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하부 조직원들이 IS로 이탈할 가능성을 우려해 탈레반 수뇌부가 하부의 일탈을 묵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4년에 탄생한 IS는 전 세계 90여개 나라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극단주의에 입문한 젊은 조직원들이 상향식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IS의 등장 이후 지하디스트 조직 내 상하 간 소통 방식이 크게 바뀌었고 거점별로 분점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시리아와 이라크가 IS의 근거지였다면,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후 IS의 무대가 아프간으로 넘어오고 있다.

탈레반은 카불 장악 후 3주가 지나서야 임시정부 구성을 발표했다. 여성 인권 보호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나는 가운데 탈레반의 임시정부는 1990년대 집권기와 2001년 축출 이후 20년 간의 게릴라전 시기에 활약했던 고위급 인물들로 채워졌다. 내무장관과 이민장관에 내정된 하카니(Haqqani) 네트워크 소속 인물들에는 미 연방수사국의 현상금이 걸려있다. 이번 임시정부안의 발표 시기와 구성을 보면 탈레반 지도부의 내부 분열 양상이 드러난다. 발표 예정일을 번복해가며 나온 결과에 따르면 입지가 다소 약한 하산 아쿤드가 총리를, 조직의 2인자이자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바라다르는 부총리를 맡았다. IS, 알 카에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조직 내 초강경파 하카니 네트워크가 정부 구성에 반발해 내부 권력 다툼이 거세지면서 수뇌부가 한 발 양보한 결과로 보인다.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아프간발 급진 지하디스트 세력의 확산이 신장 위구르 분리독립 운동을 자극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 나라의 접경지대에 바로 중국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신장 자치구가 있다. 중국은 대표적 위구르 독립운동 조직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이 탈레반의 재집권에 고무되어 활동에 나설 것을 두려워한다. 현재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트럼프 정부 시기 굳어진 미국의 신뢰도 추락과 힘의 공백을 틈타 터키, 이란, 러시아가 제국의 영광을 소환해 팽창주의 행보를 보이며 반미 연대를 맺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중국과 함께 아프간에서 공관을 철수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중동에서 떠나고 있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 추진을 위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고자 한다. 중국은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사우디, 이란, 터키, 이스라엘 등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인프라 연결을 위한 협력을 다져왔다. 중국은 재집권한 탈레반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과 단절을 촉구하며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탈레반 지도부는 선택의 시간이 왔을 때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 없을 것이다. IS, 알 카에다와의 주도권 경쟁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압박과 추종자 이탈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레반 지도부가 통제력을 잃고 정국 불안이 빠르게 악화될 경우 중국의 안보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4호 (2021년 9월 13일)

Tag:중동,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IS,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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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장지향(jhjang@asaninst.org)

현)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선임연구위원, 산업부·법무부·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문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편집위원
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정부업무평가 일자리·국정과제 평가전문위원, 국방부 서울안보대화 자문위원, 아산서원 강사

 

저서와 논문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3월 29일. (2018)
『지하디스트의 여정』 (역저), (아산정책연구원, 2011)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Aug 12. 2016)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ed.) (Palgrave Macmillan, 2013)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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