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류와 아시아(2)
한류(K-pop)의 성공과 미래

이장우 (경북대학교)

한류는 우리나라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문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류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조망하고, K-pop의 성공을 세 가지 혁신(신제품 개발, 신생산방법의 도입, 신시장 개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한류는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인류가 자신들의 삶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드러내는데 기여할 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혁신 역량이 한류의 핵심 동력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문화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류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는 90년대 중후반 대만과 중국 등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드라마를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K-pop이 이끌고 있다. 지난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BTS는 히트곡인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K-pop 그룹이 되었다. 여기에 SM엔터테인먼트의 어벤저스 그룹 수퍼M이 핫200 차트에서 앨범 데뷔와 함께 1위를 기록했으며, 블랙핑크가 국내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앨범200 차트 2위에 올랐고 전 세계 57개 지역에서 iTunes 앨범차트를 정복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과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등이 화제이며, 글로벌 온라인 스트리밍 매체를 타고 우리 드라마가 또 다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빌보드 클래식 앨범 1위’, ‘퓨전 국악’ 등 의외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한식과 뷰티 등 라이프스타일 한류가 가세하며 전 방위적으로 우리 문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한류 문화의 동시다발적 약진에 대해 외국 학자들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고난의 역사로 인한 위기의식이 창의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는 창의적인 문화상품을 창조하는 우리 문화산업의 혁신 역량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K-pop 붐이 거세지면서 2020년 한국의 음악 앨범과 비디오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1~11월 수출액은 지난 해 대비 무려 94.9% 증가한 2,300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예술의 차원을 넘어 국가브랜드와 산업혁신 차원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에 힘입어 문화콘텐츠 산업은 2018년 가전 산업을 제치고 13위의 국가수출 품목으로 등극하였다. 그 결과 202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했다<그림 1 참조>. 한류의 이러한 산업적 성공은 한국 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미래에 대응해 어떠한 혁신전략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림 1>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 사상 첫 흑자

K-pop의 경우를 보면 슘페터의 혁신(innovation) 개념 중에서 신제품 개발(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혁신), 신생산방법의 도입(아이돌 프로듀싱 시스템 등 Culture Technology 개발), 신 시장 개척(전 세계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함으로써 팬덤 시장 조성) 등 세 가지 혁신을 이루어냈다.

<그림 2> ‘K-pop Innovation’을 만든 모멘텀(Momentum)

이러한 혁신성과는 이수만과 방시혁 프로듀서를 비롯한 소수의 혁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국내외 음악시장에서 파생된 위기와 기회에 대응해 아이돌화, 수익원 다변화, 글로컬라이제이션(해외시장 개척)이라는 3대 전략을 창의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어갔다. 이들 프로듀서 혁신가들은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시장이 셧다운 되는 위기에 대응해 첨단 IT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유료 온라인 공연을 세계 최초로 시도하고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등 창의적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혁신 모멘텀을 유지·확대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산업이 반도체와 함께 한국경제의 혁신을 주도

이렇듯 산업혁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K-pop 산업은 한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도 공통점이 많다. 예를 들면 첫째, 메모리 반도체가 생산 시스템을 중심으로 혁신을 했듯이, K-pop도 아이돌 생산 시스템이 혁신의 중심을 이룬다. 둘째, 반도체가 전 공정을 기업 내부에서 수행하는 수직적 통합에 의해 경쟁력을 확보했듯이, K-pop도 Total Management System을 통해 아이돌 관련 전 공정을 내부에서 수행한다. 셋째, 메모리 반도체가 기존 일본 기업들과 달리 세계 최고의 품질과 성능이 아니라 적정 품질을 유지하며 가성비 좋은 제품을 재빨리 공급하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듯이, K-pop도 기존 음원 중심 사업에서 탈피해 아이돌 자체를 상품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K-pop을 포함한 한류 콘텐츠 산업은 비록 양적 규모는 작지만 질적 측면에서 반도체와 함께 앞으로 한국 경제의 2세대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경제는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정부주도의 개발과 해외기술의 단순 모방을 토대로 발전했다. 이후 혁신의 시대가 1983년 故이병철회장의 도쿄선언, 즉 민간의 반도체 독자개발 선언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1세대 혁신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아직 외국 기술을 학습해 추격하는 ‘창의적 모방’의 단계에 머물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2세대는 세계 최초 메모리 반도체 개발 성과들로 상징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혁신을 실천했다. 여기에 중소 벤처기업들이 합류해 IT산업을 중심으로 혁신을 이어갔다.

K-pop 역시 1996년 H.O.T. 데뷔 이후 2세대 혁신의 대열에 동참했다고 할 수 있다. 2세대 혁신은 ‘신지식 창조’를 특징으로 하는 ‘퍼스트 무버’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대기업과 IT벤처기업의 제조 경쟁력은 바로 2세대 혁신을 기반으로 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K-pop을 비롯한 문화콘텐츠 기업들이 가세해 소프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소프트 혁신은 해외에서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평가할 정도로 국가 브랜드를 크게 증진시키고 있으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보완하는 새로운 혁신 돌파구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혁신 역사를 조망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2세대 혁신부터는 민간이 대부분의 혁신성과를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민간의 혁신을 촉진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제도와 문화를 통해 기업의 자유로운 혁신활동을 간접적으로 촉진시키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음악 산업의 경우 ‘뉴키즈온더블록’ 그룹 해체 이후 아이돌 그룹이 사라진 것은 정부의 제도적 규제 때문이었다. 일본은 경쟁을 회피하는 문화로 인해 한때 융성했던 J-pop이 쇠퇴하게 되었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류, 특히 K-pop의 미래는 어떠한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홍콩의 영화나 일본의 J-pop 사례를 들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K-pop은 당분간 지속·확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혁신 모멘텀의 핵심인 프로듀서 혁신가들이 기성과 신세대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들을 프로듀싱하고 있으며 세계 팝 시장에서 계속적으로 틈새를 개척하고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문화산업을 주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기업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창의와 혁신은 궁극적으로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한류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녀야

앞으로 한류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한류의 경쟁력은 역시 혁신적인 콘텐츠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화기업들의 혁신 모멘텀이 식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한류가 더욱 글로벌화 되면서 다른 나라의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도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K-pop 스타들이 문화적 인식 부족으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주의하고 보다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한류는 한민족의 예술적 자부심이나 산업적 성과로만 묶어두기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그만큼 한류 콘텐츠들이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삶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드러내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특정 문화예술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창의적이고 탐구적이며 표현적으로 잘하려는 과정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예인정신(藝人情神, Art Spirit)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류는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인류가 하나의 세계시민으로 공감하는 사해동포주의의 실현에 기여할 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14호 (2021년 6월 7일)

Tag:한류, K-pop, 혁신, 한류콘텐츠, 예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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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장우(antonio@knu.ac.kr)

현)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의장
전) 한국경영학회 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저서: 『K-pop 이노베이션』, 21세기북스, 2020
『퍼스트 무버』, 21세기북스, 2017
『창발경영』, 21세기북스, 2015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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