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가는 길: 디지털 플랫폼 사회와 한국

이재열 (서울대학교)

코로나19는 디지털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시키면서 글로벌 질서 뿐 아니라 아시아 사회와 경제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미국과 중국에 집중되다보니, 미중간 디지털 냉전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고, 심각한 국가간 불평등과 데이터 식민화를 초래할 위험도 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 아시아 각국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공백을 메우고, 국내 디지털 산업에 대한 과잉규제의 문제를 해소할 제도적 혁신이 절실하다. 또한 아시아 각국과의 다자간 협력으로 건강한 플랫폼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림1> 세계 주요 플랫폼 기업의 지역적 분포 (2018)

코로나19가 촉진한 디지털 플랫폼 사회

디지털 플랫폼은 인간의 모든 활동, 감정, 소통의 흔적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이를 알고리듬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갖게 만들어 개별화된 추천으로 네트워킹 효과를 극대화하는 인프라다. 미국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GAFA)과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BAT)는 대표적인 기축 플랫폼이다. 과거 산업혁명이 공장이라는 장소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4차산업혁명은 데이터와 가치의 흐름을 매개하는 플랫폼 중심으로 진행된다. 기축 플랫폼 위에서 야후, 우버, 에어비앤비, 쿠팡처럼 뉴스, 숙박, 차량공유, 판매 등을 담당하는 다양한 부문별 플랫폼들이 번성하여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어낸다. 플랫폼 효과는 단지 경제에 그치지 않는다. 트위터 없이는 트럼프식 포퓰리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사람의 이동은 얼어붙었지만 정보 흐름은 폭증했다. 2020년 3월 기준 국제통화는 전년보다 20% 늘었고, 2020년 중반 기준 국제인터넷트래픽은 48% 급증했다. 이에 반해 2020년 세계 여행객은 70%나 감소했다. 유학생과 이주자도 급감했다. 코로나 초기에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입, 해외직접투자나 주식매매로 측정한 자본의 흐름도 크게 줄었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대면접촉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초연결이 폭증한 것이다. 이는 ‘장소와 공간’보다 ‘흐름과 연결’이 중요해진 그간의 추세로 보면 놀랍지 않은 결과다. 2002년에 초당 100 기가바이트에 불과했던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은, 2017년에는 460배 늘었다. 2022년에는 1,500배 늘 것이라 예측된다.

플랫폼 G2 시대의 갈등

그런데 <그림1>에서 보듯, 플랫폼기업이 미국과 중국에 집중되어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빼면, 남는 기축 플랫폼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세계에서 유일하고,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에는 전무하다. 세계 70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 자본 총액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이외에도 블록체인 관련 특허의 75%,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의 75%, 사물인터넷시장의 50%를 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플랫폼 기업의 수입도 급증했다. 예컨대 2020년 기준으로 아마존 수입은 전년대비 36.8% 증가한 3,646억 달러로 세계 최고이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의 수입은 같은 기간 13%이상 증가하였다. 알리바바는 35.3% 증가한 5억 위안의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세계 인구의 절반은 아직 인터넷과 무관하게 산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구 20%만 인터넷에 접속가능하다. 초연결을 추동하는 미중과 뒤처진 개발도상국 간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 적절한 개입이 없으면 심각한 국가간 디지털 불평등을 낳을 것이라 유엔은 경고한다.

디지털 패권을 잡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기축 플랫폼 전쟁은 21세기판 투키디데스 함정이라 불릴 만큼 심각한 양상이다. 자유 시장, 개인의 다양성,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의 플랫폼 정책과, 국가가 나서서 시장을 조정하고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중국은 서로 화해할 수 없을 만큼 대조적이다. GAFA와 BAT의 상업적 전략은 거의 일치하지만 정부 정책은 완전히 다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산업의 육성을 위해 외국기업으로부터의 경쟁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정부보호 하에서 대부분의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독점 구조를 인정받으면서 다양한 분야로 다각화하는 문어발식 확장을 해 왔다.

코로나19에 대한 국가주의적 대응에서 잘 드러났지만, 중국식 플랫폼은 사회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감시사회를 운영하는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베이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사회신용시스템’이다. BAT를 포함한 8개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의 긍정적, 부정적 활동에 대한 정보를 광범하게 수집하여 점수를 매긴다. 사회신용점수가 낮으면 대학입학, 해외여행, 고속철도 탑승이 거부되고, 은행 대출도 제한되며, 공직에 취업할 수 없다. 반면 높은 사회신용점수를 받으면 보험료율을 할인받고, 다양한 사회서비스에 접근 가능하며,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대학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플랫폼에 기반하여 거의 완벽한 감시사회로 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의 데이터 주권만 있고 시민의 데이터 주권은 없는 곳이다.

데이터 주권을 찾아라

자신의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역량이 국가의 데이터 주권이다. 자체 기축 플랫폼이 없는 유럽은 데이터 흐름과 잠재적 가치 창출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다.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관련 데이터를 저장 관리하는 것을 GAFA에 의존하는 유럽은 심각한 지정학적 위험의 가능성을 걱정한다. 민주적 가치와 정치 시스템의 안정성과 공공성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 독일 주도의 EU 전략은 GAFA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규제하고, 멀티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하여 중장기적으로 미국 및 중국 플랫폼과 경쟁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유럽과 달리 인터넷 사용자가 전 세계 절반인 23억 명을 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디지털 경제가 성장하는 아시아는 복잡한 춘추전국시대다. 유럽과 같은 역내 공감대도 없다. 중국은 압도적인 플랫폼 역량과 인공지능기술, 그리고 풍부한 자본을 앞세워 아시아의 신흥시장 인 동남아와 인도에 적극 진출 중이다. 플랫폼 기반 모빌리티의 경우, 동남아의 우버라 불리는 그랩에는 중국의 알리바바, 디디추싱,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인도네시아 고젝에는 중국의 텐센트와 징둥닷컴이, 인도 올라에는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투자했다. 일본과 동남아에서는 네이버 라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GAFA나 BAT에 안방을 모두 내주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어를 활용하여 문화적 자산을 아카이빙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다. 더구나 데이터센터를 확장 건설하면 데이터 역외 유출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산업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거대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모범적인 플랫폼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최고의 초연결사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소셜미디어 사용 모두 세계 최고이고, 디지털 경제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를 가장 많이 제조하는 나라다. 카카오, 네이버, 쿠팡, 배달의 민족 등 짧은 시간에 유니콘 기업을 키워낸 혁신적 기업가 문화도 있다. 아시아 문화에 익숙한 한국의 플랫폼 역량을 거대한 아시아 생태계와 연결시킨다면 급격히 팽창하는 아시아에서, 데이터의 국가 주권을 상실한 유럽과 시민 주권을 상실한 중국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꿈꿀 수도 있다.

규제의 불일치를 줄여야

문제는 제도다. 미중의 거대한 기축 플랫폼과 경쟁하려면 한국의 관련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지난 2016년 세계경제포럼 평가에 의하면 한국은 정부규제의 품질, 정부정책결정의 투명성, 시장지배제도, 노사관계, 금융서비스 등에서 모두 최하위권이었다. 그 이후엔 평가기준이 달라져서 비교 불가능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시도하기 위한 제도적 환경이 매우 나쁘다. 또 디지털 산업과 기존 산업 간 갈등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혁신과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규제의 불일치를 줄여야 한다. 즉 글로벌 기축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국내 토종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잉규제는 줄여야 한다.

GAFA나 BAT에 대한 정부 규제는 거의 공백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검색 서비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앱 개발자에게 갑질을 일삼지만, 이들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침묵한다. 국내 앱 사용 시간 1위는 유튜브지만,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사실상 무료로 국내 망을 이용한다. 반면 국내 플랫폼 기업은 거액의 망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

국내 플랫폼에 대한 과잉규제도 문제다. 소비자의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는 법령이 미비했던 까닭에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높이기 어려웠다. 규제 강도가 높고, 까다로운 당사자 동의를 요구하며, 담당부처가 행안부, 과기정통부, 방통위, 금융위로 나뉘어서 중복규제했기 때문이다.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이 제정되어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나, 아직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드러나지 않아 그 효과에 대해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국내 규제가 과도하다 보니 기술 혁신을 이루려는 스타트업들은 외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 55조원 가치의 기업을 상장키로 한 쿠팡이 뉴욕 증시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국내의 과도한 규제다.

건강한 플랫폼 사회로 가려면

과거에 정부가 도장 찍어 인증해야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한 관행을 규제 1.0이라고 한다면, 투명하게 데이터로 새로운 혁신의 효과를 검증하고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는 개방형 혁신이 규제 2.0이다. 과거 규제는 전통 산업계의 방어막으로 활용될 ‘규제포획’의 가능성이 컸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은 공공성을 해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개방형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개방형 혁신이 자리 잡으려면 그 사회의 투명성, 특히 규제기구의 투명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기존산업 종사자는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므로, 잠재적 피해 집단의 위험을 줄일 다양한 안전장치 보완이 필요하다.

과거 두 차례 세계대전이 포디즘적 대량생산체제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듯이, 코로나19 팬데믹은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혁명적 계기가 되고 있다. 미중 양강 구도 속에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 다자주의를 확대해 새로운 국제적 규범을 만들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글로벌한 흐름 속에 아시아 각국과 공존하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려면 한국의 국제적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2019년 G20 정상회의에서 디지털 과세로 미국 플랫폼 기업의 횡포를 막고, 국가간 데이터 이동의 기준을 마련하여 폐쇄적 중국 플랫폼 기업을 압박하는 ‘오사카 트랙’을 제안한 것은 일본이다. 이제는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공정하고 개방적이며 차별 없는 글로벌 플랫폼 사회를 만들고 함께 공존하려면, 이제는 한국도 아시아 국가들과의 다자간 협력에서 훨씬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1권 1호 (2021년 3월 8일)

Tag: 기축플랫폼, 디지털경제, G2갈등, 데이터주권, 규제불일치, 오사카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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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재열 (서울대학교) / kimyh1358@gmail.com

현 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부장 겸 한국사회과학자료원장, 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전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저서: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21세기북스, 2019), 『인간을 위한 미래(공저)』 (클라우드나인, 2020) 『커넥트파워(공저)』 (포르체 2019), 『아시아는 통한다(공저)』 (진인진, 2016) 등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편집위원장: 김용호 편집위원: 이명무 객원편집위원: 김윤호 편집간사: 최윤빈 편집조교: 정민기, 민보미 디자인: 박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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