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 백신의 정치와 외교(1)
싱가포르의 백신 구매 외교, 접종 효과 및 시사점
<특집 기획 편집자 노트>
이제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시아 각국도 누가 먼저 백신을 많이 확보하는가, 백신 접종 후 어느 나라가 먼저 집단면역에 성공하는가 등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편 백신 개발과 생산에 성공한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 백신을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아시아 브리프>>는 아시아 각국의 백신 정치와 외교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들이 교훈을 얻고자 한다.
싱가포르가 동아시아 최초로 백신 접종
싱가포르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고 접종을 시작한 국가이다. 작년 12월 14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에 대해 정부가 사용을 승인했으며, 동 백신 1차분을 실은 화물기가 벨기에 브뤼셀을 출발하여 12월 21일 싱가포르에 도착했고, 12월 30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이어 올해 2월 3일 모더나 백신에 대한 사용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동 백신도 2월 17일 도착했다. 선 구매계약을 한 3종의 백신중 중국 시노백 백신은 아직 검토가 시작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 싱가포르는 올해 9월까지 전 주민에 대한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접종 순서는 방역 의료 종사자, 국가안보 핵심부대, 항공 및 해운업계 종사자, 고령층, 기타 취약계층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장기체류 외국인 및 외교단에 대해서도 무료 접종을 진행할 예정이다. 접종 여부는 자발적 선택사항이나, 접종 희망 백신에 대한 선택은 불가하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사들도 우선적으로 접종을 마쳤고 최 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접종도 진행되고 있다. 초기에 4개의 대규모 접종소가 개설되었으며, 4월 말까지 대규모 접종소를 40개까지 늘려 하루 7만 건 이상의 접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또한, 양로원 등에 대한 대량 접종 지원을 위해 이동식 접종 팀을 10개까지 늘리고 있다. 2월 19일 기준으로 약 25만 명의 싱가포르인들이 접종을 마쳤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백신 조기 구입에 성공
싱가포르가 이처럼 재빨리 백신을 구매하고 접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확진자 발생 이전부터 가동된 범정부 태스크포스의 효율적인 대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외국인 노동자 거주 숙소에서 폭발적인 감염 확산에 따른 위기감이 있었다. 범정부 태스크포스는 2003년 사스(SARS)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이후 대규모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한 신속 대응체계이다. 백신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조치는 3단계(검토, 조사, 협상)로 진행되었다.
먼저 검토 단계를 살펴보자.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작년 4월, 싱가포르 정부는 18명의 과학자 및 임상의로 구성된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여 35개 이상의 백신 후보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검토의 목적은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RNA 방식의 백신이 생산이 용이하며, 빠른 임상실험을 할 수 있고 대량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는 백신을 빠르게 구할 수 있으며, 이른 시기에 보다 많은 데이터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으로는 조사 단계였다. 작년 4월 말 싱가포르 정부는 전문가 패널이 추천한 백신 후보에 대한 구매 협상을 추진할 ‘백신 및 치료제 기획단’을 구성했다. 이 기획단은 세계적인 제약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제개발청(EDB)을 통해 5월부터 백신 개발업체들과 광범위한 접촉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백신 개발사와 약 40개의 비공개 협정(Non-Disclosure Agreement)을 체결하여 백신 개발과 관련된 비공개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공개 협정은 공개 자료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를 개발팀으로부터 빠르고 직접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비공개 협정은 계약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서 협정을 맺었다고 해서 백신을 구매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는 협상 단계였다. 지난해 싱가포르 정부는 백신 관련 예산으로 10억 싱가포르 달러(약 8,400억 원)를 배정했다. 이 예산으로 백신 구매, 국제 백신 협력 프로그램인 코백스(Covax) 참여, 국내 기업의 치료제와 백신 개발 및 생산 지원, 일부 제약회사의 싱가포르 내 백신 생산 유도 및 지원 등을 추진했다. 백신 포트폴리오의 다각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를 통해 작년 6월 모더나와 선 구매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및 중국의 시노백과 선 구매계약도 체결했다. 비록 인구수가 적어 주문량도 적을 수밖에 없었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이 아시아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중심지이자, 다국적 제약사의 근거지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계약 단가도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했다고 설명한다. 백신 운송 능력 역시 싱가포르가 가진 강점이었다. 수년간 이루어진 선제적 투자 및 기업 우호적인 생태계를 통해 DHL, UPS, FedEx 등 세계적인 물류회사가 싱가포르에 지역 본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창이 공항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로부터 의약품 취급 및 운송에 대한 인증을 받았기에 대량의 백신 물량을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운송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백신 부작용 사례 및 대처 방안
백신 접종의 부작용 사례와 관련해서는 올해 1월 27일 기준 접종자 11만 3천여 명 중 432명이 부작용을 호소하였다. 이는 모두 백신에 수반된 일반적인 이상 반응(접종 부위 통증, 부기, 열, 두통, 피로, 몸살, 어지러움, 구토, 알레르기 등)이었다. 20~30대 3명의 경우 과잉면역반응인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를 보였는데, 이들 중증 반응자들은 과거 알레르기성 비염 및 조개류 알레르기 등의 이력이 있는 경우였다. 싱가포르는 백신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통상적인 의료보험상의 혜택에 추가하여 고위험병동 및 중환자실을 이용한 후 회복한 환자에게는 일회성으로 1만 싱가포르 달러(약 840만 원)를,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겪을 경우 일회성으로 22만5천 싱가포르 달러(약 1억8천9백만 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한국과 함께 다자주의 백신 외교 추진
싱가포르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진행되는 백신 외교에도 적극 참여를 했다. 작년 6월에 영국이 주최한 ‘비대면 국제 백신 정상회의(Global Vaccine Summit)’에서 리센룽 총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저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백신의 개발과 생산임을 지적하였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전염병예방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 CEPI)을 통해 1천3백만 달러($)를 제공했다. 아울러 동 정상회의가 백신 다자주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강조했다.
작년 11월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최한 비대면 G20 정상회의에 초청국 정상으로 참여한 리센룽 총리는 두 가지 사안을 강조했다. 첫째, 백신에 대한 접근은 적절한 가격과 공정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G20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주도하는 코로나19 백신의 글로벌 조달 및 공급 메커니즘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지지한 것을 적극 환영을 하였다. 또 코로나19 진단과 치료, 백신 개발과 생산, 공평한 접근을 가속화할 국제적 협력(Covid-19 Tools Accelerator)을 강조했다. 둘째, 코로나19 다음에 나타날 소위 ‘Disease X’는 현 코로나19 보다 훨씬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제적인 질병 감시 네트워크를 강화할 것을 지적했다. 이는 모든 나라가 안전해질 때까지는 그 어느 나라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싱가포르는 백신 국가주의(Vaccine Nationalism)에 대한 대안으로 백신 다자주의(Vaccine Multilateralism)를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Covax Facility에 조기 가입했다. 아울러 Covax Facility를 지원할 우호 그룹 창설을 제안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데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싱가포르는 스위스와 함께 Covax Facility 우호그룹(Friends of the Covax Facility, FOF)의 공동의장국을 맡아 Covax 거버넌스 관련 논의 진전에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우호 그룹에는 한국도 초기부터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또 싱가포르는 코로나19를 잘 통제하고 있거나 사회경제적 유대관계가 깊은 7개국과는 상호 그린 레인(Green Lane) 제도에도 합의한 바 있다. 이 제도는 필수 비즈니스 및 공무 여행을 촉진하기 위해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 시 격리를 면제하되 통제된 일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한국, 일본, 브루나이,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독일이 그 대상국이었다. 그러나 각국의 감염 확산세가 늘어남에 따라 각 국가별로 이 제도의 적용을 일시 정지하고 있다. 한국과의 그린 레인도 5월 초까지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백신접종 증명서와 항공사 디지털 검증 서비스 활용
싱가포르는 백신 접종자에 대해서는 싱가포르 입국 시 현행 2주간의 의무 격리 기간을 대폭 축소하거나 면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 접종이 감염 위험을 현저히 감소시킨다는 결과가 나오면 바로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싱가포르 항공이 항공사 중 최초로 코로나19 디지털 검증서비스를 시범 도입, 승객의 코로나19 검사결과나 백신 접종 등의 데이터를 전산화하여 입국 시 이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작년 12월 말부터 자카르타 및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로 입국하는 탑승객에 한해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다. 이 서비스는 두 도시의 선별된 검사기관에서 QR코드가 표시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디지털이나 종이 문서로 발급받으면, 공항 및 출입국 관리 당국이 모바일 앱을 사용해 QR코드를 스캔하여 처리한다. 싱가포르 항공은 시범 운용 결과를 토대로 여타도시 출발 항공편으로 확대 적용하고 올해 중순부터는 자사 스마트폰 앱에 데이터를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3월부터는 기업 활동 목적의 외국인 단기 방문객이 시내로 들어오지 않고, 창이 공항 부근의 전용시설에서 싱가포르 내 기업인과 미팅과 숙박을 한 후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도 개시할 예정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싱가포르는 코로나19가 유행한 초기에 외국인 노동자의 대규모 발병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철저한 방역 조치를 통해 2월 현재 수 주일간 지역사회 확진자가 0명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 이하 범정부 태스크포스 및 지도급 인사들은 한순간의 긴장 이완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전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도 정부는 현재까지의 효과에 대해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효과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는 비록 전 국민에 대한 접종이 이루어지더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력하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는 코로나19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대면과 화상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MICE)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의 대표적 연례 국제행사인 싱가포르 국제사이버주간(작년 10월 초), 싱가포르 국제에너지주간(작년 10월 말) 및 플러턴 포럼(올해 1월)에 이 방식을 실험했다. 금년 6월 개최 예정인 샹그릴라 대화와 8월 개최 예정인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그간 발전시켜온 방역 절차와 하이브리드 MICE 기술을 결합하여 철저한 방역하에서도 MICE 허브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음을 과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상황하에서도 작년 3월 말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선도적으로 제출했다. 이는 대유행병 상황에서도 장기적인 경제 이익확보와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려면 녹색회복(Green Recovery)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싱가포르를 국제 그린파이낸스의 허브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도 진행시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의 피해를 보전하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종 지원을 위해 총 5차례에 걸쳐 약 1천억 싱가포르 달러(약 84조 원) 규모의 코로나19 대응 패키지도 실행했다.
싱가포르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위기 시 정부가 발신하는 메시지가 명료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현 단계 이후의 상황을 미리 준비한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국민들은 정부의 대처와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따라줌으로써, 방역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간 모범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해 온 우리나라도 싱가포르의 백신 경험이 주는 교훈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Tag: CovaxFacility, 녹색회복, 백신구매, 백신다자주의, 백신전문가패널, 하이브리드MICE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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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안영집(yjahn87@mofa.go.kr)
현 주싱가포르대사
전 주그리스대사, 전 주제네바 차석대사, 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 전 북미국심의관
저서: 『역사와 문명속의 그리스 산책』 (박영스토리, 2020), 『싱가포르 성공의 50가지 비결』 (안영집 역; Tommy Koh 저; 박영스토리, 2020),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싱가포르 외교」 (『외교지』 제 129호, 2019년 4월호), 『북·미 정상회담-아세안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하다』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201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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