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양극이 지배하는 나라에 대한 양극적 서사의 이면

강성용 (서울대학교)

방글라데쉬를 2009년 이래로 통치하던 하씨나(Sheikh Hasina) 총리가 금년 8월 5일 권좌에서 쫓겨나 인도 망명길에 오르면서 세계의 눈이 방글라데쉬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빈곤과 발전이라는 두 얼굴이 얽힌 정치적 불안정성이 연말 시즌을 준비하는 국제 섬유업계에 폭풍을 몰아올 것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국가 체계의 미비함이 일상을 지배하는 나라이지만, 남아시아 국가들 중 모범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가는 나라이기도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둑함’이라고 해야 한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두 극단이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서의 현실을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점을 밝혀서, 방글라데쉬의 미래는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에는 충분하게 밝고 달려가기에는 너무 어둡다는 필자의 전망을 밝히고자 한다.

<사진 1> 방글라데쉬 학생들의 시위는 하씨나 정권의 종말로 이어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작가: Rayhan9d

I. 양 진영의 역사적 뿌리

1971년 독립을 맞을 때부터 벵골 민족주의적 지향이 강했던 세력이 독립을 주도했고 무지부르 라흐만(Sh. Mujibur Rahman)이 이끌던 아와미리그(AL: Bangladesh Awami League, 방글라데쉬 인민 연합)는 독립 당시 지원을 제공한 인도에 대해 친화적 노선을 지닌 채 의용군 성격으로 결집된 독립군 세력의 지지를 받아 집권세력이 되었다. 이 반대 진영에는 이슬람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인도 이외의 국가들(중국, 서방, 파키스탄)과 연계를 중요시하고 정규군 세력의 지지를 얻은 방글라데쉬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이 자리 잡고 있다. AL은 1975년 쿠데타에서 살해당한 라흐만의 딸인 하씨나가 이끌어 왔고, BNP는 군부 실권자로 1977~81년에 대통령이었다가 쿠데타로 살해당한 지아울 라흐만(Ziaur Rahman)이 설립한 정당이며, 그 미망인인 칼레다 지아(Khaleda Zia)가 이끌고 있다. 하씨나의 아버지를 살해한 쿠데타에 지아의 죽은 남편이 개입되어 있는지의 문제에서 두 여성 지도자 간의 적대감은 봉합 불가한 수준에 이른지 오래되었고, 해당 쿠데타 가담자 처리 문제는 정치적 전선이 되고 말았다.

1990년대 군부독재 시기 반군부 전선에서 입장의 일치를 보인 이후로 AL과 BNP의 대립 구도는 유지되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는 두 여성 지도자의 한이 서린 사연 때문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벵갈 민족주의와 이슬람 보편주의 그리고 비정규 독립군 세력과 정규군 세력의 대립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부독재 청산 이후 1991년부터 양당의 교차 집권기가 있었다. 매번 집권당은 불법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야당을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관행처럼 만들었다. 그때마다 야당은 영국 식민 시기부터 자리 잡고 있던 총파업(hartal)을 동원한 저항의 관행을 살려 국가 체제와 경제를 마비시키면서 세력을 과시했다. 그동안 수많은 중립 과도정부 시도가 있었고, 제3세력 구축의 노력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1991년 이후 수상직은 이 두 여성만이 차지해 왔다. AL이 2009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하씨나 총리는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고 납치와 불법 구금을 해 가면서 정권을 공고하게 했고, 2024년 망명하기까지 방글라데쉬를 지배했다. 그 이면에는 군부에 국책사업의 이권을 던져 주면서 군부 장악에 성공한 사실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긴 세월 동안 야당이던 BNP는 와해에 직면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에서 방글라데쉬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은 AL 정부의 경제발전 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불만이 쌓여 가니 정치적 기회를 얻었다. 이 와중에 AL 지지 세력인 독립전쟁 국가유공자의 후손들에게 공공 일자리를 할당한다는 정책 이슈가 불거졌고, 최고의 안정성과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에 진출할 길이 좁아진 대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2023년 기준 (ILO 추정) 실업률은 5.06%이고 청년실업률이 15.74%이니 대학생들의 분노는 민생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씨나 총리의 권위주의적 통치 분위기에서 AL은 친여당 민병대 성격이 강한 학생조직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발포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대규모 폭동을 야기하고 일반인들의 동참을 이끌어 총리 하야에 이르게 되었다.

II. 양극의 경제

방글라데쉬는 한국인들에게 1943년 벵골 대기근의 이미지를 가진 나라이고 빈곤과 과도한 인구밀도를 (제곱킬로미터당 인구밀도가 다카는 23,234명, World Population Review 2022년 기준; 서울은 15,533명, 통계청 2023년 기준) 떠올리게 하는 국가이다. 하지만 남아시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 방글라데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연평균 7%에 달하는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이고, 2023년 기준으로 2차 산업 비중이 34.6%로 (World Bank 집계, 인도는 25.0%) 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인식된다. 전체 GNI에서 ODA가 차지하는 비중이 1976~80년에는 7~8%였다가 2012~16년에는 1~1.5%라는 사실이 방글라데쉬 경제발전의 상황을 대변한다. 방글라데쉬가 1억 6,800만 명의 인구를 지닌 남아시아의 3대 인구 대국이고 중위연령이 26세인 젊은 인구를 지닌 채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곳에 자리한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가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파트너로서 최근 5년간 우리나라가 지원한 액수(5억 7,367만 달러) 면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 중요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극단의 대립과 열악한 제도 및 정부의 집행력 부재 그리고 심각한 부정부패는 ‘발전하는’ 방글라데쉬라는 표현을 낯설게 만든다. 이 양극단이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에는 경제적 기반이 되는 기성복(RMG: Readymade Garments)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의류 봉제업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 식민시기 훨씬 이전부터 방글라데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면직물 생산 수공업의 전통을 갖춘 곳이었다. 현대 RMG 산업의 특징은 노동집약적, 저임금 산업이며 생산품의 가격경쟁이 심하고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큰 자본투입이 요구되는 섬유산업과도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미 재봉틀이 발명된 19세기 이래로 RMG 산업의 기본 장치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은 적이 없고, 섬유라는 재료 자체가 가진 유연하고 약한 물성 때문에 로봇이 투입되거나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이다. RMG 산업의 생산기술은 단순하면서도 성숙기에 진입한 특징이 있어 집중적인 R&D 투자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집적효과가 높아 다카와 치타공에 약 7,000개로 추산되는 공장들의 95%가 모여있고, 노동자의 81%가 61개의 대형 회사와 공장에서 근무하는(Enterprise Surveys, 2017) 편중이 심한 분야이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높고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방글라데쉬는 RMG 산업에 적합한 국가여서 1983~2010년 기간 동안 섬유 봉제업 수출은 큰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인도가 정치적인 이유로 자본이나 기술집약적 산업에 집착할 때 방글라데쉬는 노동집약적인 RMG 산업에 집중했고, 이는 빈곤 퇴치와 문맹률 저하와 여성 지위 향상 그리고 조혼 풍습의 약화 등 다양한 사회 변화를 불러왔다.

<그림 1> 방글라데쉬의 기성복 수출 규모
출처: Bangladesh Garment Manufacturers and Exporters Association

사유재산권 존중과 권력자의 권력 남용 방지 및 경쟁의 공정성 보장 등등, 일반적인 경제발전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한 채로 경제가 발전해 오는 방글라데쉬의 모순적인 모습은 바로 RMG 산업의 특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또한 산업 인프라와 물류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의 경쟁력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RMG 산업 육성을 위한 조세 및 관세 그리고 예외적인 무역 제도를 정비한 것이 세계적인 섬유 수출 쿼터제와 맞물려 상생 작용을 일으켰다. RMG 산업은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한 작동 방식을 갖고 있어서, 정치적 비효율성과 부정부패의 예측 불가능성이 지닌 어려움들을 상쇄할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먹임 효과로, 구조적으로 취약한 거버넌스는 방글라데쉬를 더욱더 RMG 산업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현직자의 권력, 집권당의 영향력이 절대화되는 상황은 RMG 산업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Sh. Rahman, 2021).

III. 석양인가 새벽인가?

국제적 맥락에서 방글라데쉬의 의류 봉제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2년 기준 세계 의류산업에서 차지하는 국가별 수출 물량의 비중은 금액 기준 중국이 1위 1,820억 달러, 2위 방글라데쉬 450억 달러, 3위 베트남 350억 달러, 4위 터키 200억 달러, 5위 인도 180억 달러 순이다. (WTO, World Statistical Review 2023) 다시 말해서 방글라데쉬의 핵심 수출산업은 세계적으로 볼 때 ‘China+1’ 전략에서 바로 ‘+1’ 부분을 성공적으로 점유한 결과인 셈이다. 중국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방글라데쉬의 의류산업은 발전 속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 왔다. 따라서 방글라데쉬 사태가 세계 의류업에 절대적 위기를 부를 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않겠지만, 시위가 격렬했던 당시 1주일간 생산을 중단한 업체들이 많았고 겨울 판매 시즌에 대비하는데 필요한 육상과 해상물류가 마비되면서 (치타공 항구는 5일간 공식 폐쇄) 일부 물량이 항공 배송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인터넷을 차단하면서 생산라인에 대한 해외 본사의 모니터링에 문제가 있었고, 특히 시위대들에게 하씨나 정부 친화적이라고 인식된 업체들(Zara, H&M 등)의 공장이 공격받는 일도 있었다. 현재 유럽 발주처들이 빠르게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스리랑카로 주문을 돌리고 있다.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설립해 빈곤 퇴치를 위한 마이크로크레딧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2006년 노벨상을 받은 유누스(Muhammad Yunus)가 현재 최고국정자문위원 자격으로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다. 핵심 산업의 마비를 막아야 하는 유누스 과도정부도 의류산업 안정화를 공표한 상황인데, 인건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의류산업의 속성 때문에 단기적인 방글라데쉬의 비중 감소는 있겠지만 큰 흐름에서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보인다. 단적인 예로 방글라데쉬 의류산업 종사자의 평균 월급이 134달러인데, 이는 캄보디아의 293달러에 비해서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의류업체들이 방글라데쉬를 떠나기는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가 상존한다. 단기적으로 2024~25 겨울 시즌의 의류 가격 인상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도 재고 물량이 소진된 상태는 아니어서 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유행에 민감해서 납기와 물량 그리고 인건비가 중요한 의류산업에서 방글라데쉬는 자기의 자리를 유지하고 몇 년 안에 비중을 더 늘리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누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총선 이전 개혁’을 향한 의지를 강조했는데, 이 개혁은 개헌을 포함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현재 헌법을 수정할지, 신헌법을 제정할지부터 남은 질문이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집권자에 의해 권위적 통치 체제로 변질될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에 대한 합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헌의 성패는 문구에 달린 것이 아니라 논의의 과정에 달려 있다. 현재 수세에 몰린 AL이 배제된 개헌은 실패할 것이 명확하고, 긴 세월 절멸의 위기를 겪은 BNP는 수권능력을 가진 조직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는 유누스가 독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면서 군부의 지지를 받아 꼭두각시 정권을 창출하는 경우이고, 최선의 경우는 폭넓은 이해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개헌을 통해 국가 체제를 한 단계 고양시키는 경우이다.

지금의 어둑함이 새벽인지 석양인지의 질문은 여전히 남았지만, 새벽일 확률이 높은 것은 양극 구도의 단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군부가 전면에 나서지 못할 만큼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가 굳건하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정치적 요구들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민생의 문제로 환원될 것인데 RMG 산업이 곧 정상화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27호 (2024년 11월 11일)

Tag: 방글라데쉬, 아와미리그, 의류봉제업, 남아시아, 유누스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강성용 (2023). “방글라데시의 두 모습과 미래에 대한 단상.” 편찬위원회 편.『방글라데시 한인 50년사』. 방글라데시 한인회, 118-133.
  • Parvez, S. (2018). “Explaining Political Violence in Contemporary Bangladesh (2001-2017).” in Ali Riaz et al. ed. Political Violence in South Asia. Routledge, 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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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강성용(citerphil@snu.ac.kr)

현)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한-인도산업포럼 상임위원장

전) 오스트리아 빈대학 책임연구원, 국제 울너사본 프로젝트 발기인, 무진불교학술상 집행위원장

 

주요 저서와 논문

『위대한 인도』 (공저), (문학동네, 2024).
『종교문해력 총서 2 불교. 미처 몰랐던 불교, 알고 싶었던 붓다.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불광출판사, 2024).
“The Future of RMG Industry of Bangladesh Confronting COVID-19 and Industry 4.0: A Thematic Analysis.” (Kang et al.), Chittagong Independent University Journal. 2023.
“영원무역의 방글라데시 진출 전략: 제도적 공백의 극복방안을 중심으로.” 『KBR (Korea Business Review) 25 신년 특별호』 (공저), 2021.
“쌍쓰끄리땀과 암벧까르(Ambedkar)의 소환 그리고 고대사 재구성과 인도 현대 정치의 규정요소로서의 언어.” 『아시아리뷰』 10(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