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언론인들의 디스토피아

정철운 (미디어오늘)

5월3일은 세계 언론자유의 날이었다. 세계적으로 언론 자유 수준이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탄압의 양상들은 심각하다. 아시아 언론인들은 갇히거나, 탈출하거나, 또는 죽는다. 이는 대체로 민주주의 제도가 허약한 독재국가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 아시아 언론인들의 현실을 각종 지표와 사례로 살펴보고, 우리 언론이 외신으로서 아시아 언론과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해 본다.

그림 1. 아시아의 언론자유지수(붉을수록 언론자유가 없는 곳이다) 출처: 국경 없는 기자회

아시아 국가의 언론 자유 실상

2010년 ‘한중일PD포럼’ 취재차 중국을 찾았다. 그해 한국 측 경쟁작으로 EBS <다큐프라임> ‘바퀴’가 출품되었는데 중국 당국이 ‘상영 불가‘를 통보하며 한국 PD들이 공분한 일이 있었다. 중국요리점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장면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해 심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EBS PD는 수상 심사 보이콧을 선언했다. 중국은 당시 ’바퀴‘와 함께 출품된 KBS 드라마 <추노>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검열을 지시했다. 드라마 속 등장한 정묘호란에서 청나라군과 전투 장면을 가리켜 “(우리는) 침략한 적이 없으니 상영 불가”라고 주장했다. 결국 전투 장면을 제외한 부분만 상영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다수 아시아 국가의 언론 자유 실상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외신기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북한과 중국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미디어 통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구체적 정보를 궁금해했고, 중국의 미디어 통제 메커니즘이 주변 국가로 ‘수출’되는 양상과 더불어 중국 자본이 한국 미디어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해했다. 2018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대다수 참석자들이 유럽 언론인들이었고 아시아 언론인들은 극소수였다. 그곳에서 유럽 언론인들이 구글과 페이스북 플랫폼이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문제와 뉴스룸 내 젠더 불평등을 주제로 토론할 때 아시아 언론인들은 실종‧구금 및 살해 위협의 문제, 뉴스사이트의 인터넷 접속 차단 문제를 다뤘다.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차원이 다른 위기를 다루고 있었다.

전 세계 언론 자유 하향 평준화’, 아시아가 절대적 지분

전 세계 언론 자유는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언론계 최고 권위를 지닌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RSF)가 지난 3일 발표한 ‘2024 세계 언론 자유 지수’를 보면 2022년만 해도 언론자유 지수에서 △매우 나쁨(붉은색)을 받은 국가는 180개 조사 대상 국가 중 28곳이었으나 올해는 36곳으로 늘었다. △좋음(흰색) △양호(노란색)를 받은 국가는 25%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북유럽 국가였다. 아시아는 언론 자유 하락세에 있어 절대적 지분을 갖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32개 국가 중 26개 국가의 언론자유 지수가 전년보다 하락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이 지역 독재 정부들은 뉴스와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더 거세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인 3명이 사망하고 최소 25건의 언론인 구금 사례가 알려진 아프가니스탄(178위)은 전년보다 26계단이나 하락했다. 베트남(174위)에선 소셜미디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 언론인들을 조직적으로 구속했다. 중국(172위)과 미얀마(171위)도 최악의 언론탄압 국가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특히 중국을 가리켜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지도자가 된 이후 온라인 검열과 감시, 선전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감독하는 중국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광범위한 조치를 통해 중국 내 인터넷 사용자 9억 8,900만이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북한(177위)에 대해선 “이웃인 중국으로부터 검열 기법을 배울 필요조차 없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탈북민 61명의 목소리를 담아 지난해 발간한 북한인권 증언집 『북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다』에 따르면 2021년 탈북한 정유훈 씨는 “조선중앙TV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걸 계속 강조했다. 우리도 북한에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7년 탈북한 강은혁 씨는 “인터넷이 들어가기만 하면 북한이 달라지겠지만, 절대 들어갈 일은 없다. 인터넷을 막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걸 허용하면 자기네들이 망할 거란 것을 북한 정부도 안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한 김순화 씨는 “한국 드라마는 절대 마음대로 볼 수 없다. 걸리면 교화소를 보낸다. 아니면 다른 죄를 지은 것보다 몇 배는 더 뇌물을 줘야 한다. 정해진 것은 없으나 중국 돈으로 2~3만 위안은 바쳐야 한다”고 했다.

AFP 통신과 교도통신 등 몇몇 외국 언론사가 공식적으로 북한에 진출해 있지만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에 △북한 내 모든 사람이 외국에 살고 있는 가족 및 그 외의 사람들과 간섭없이 통신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독립적인 신문 및 기타 매체의 설립을 허용하고 국내외 매체에 대한 모든 검열을 중단할 것 △학교, 도서관, 기타 공공시설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비단 이 같은 요청은 아시아 국가에서 북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아시아 지역은 전체주의적 선동, 감시, 협박, 물리적 폭력, 사이버 괴롭힘 등 저널리즘을 괴롭힐 만한 모든 문제가 존재한다. 아시아에서 독립성을 지키며 언론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2023년 2명의 언론인이 살해된 필리핀(134위)과 3명의 언론인이 살해된 방글라데시(165위)도 언론인 위험 국가로 꼽힌다. 홍콩(135위)의 경우 2020년 중국이 시행한 국가안보법에 따라 더 많은 언론인을 박해하며 점수가 하락했음에도 순위는 5계단 상승했다. 하향 평준화 탓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선 오직 대만(27위)이 언론자유 모범 사례였다. 한국(62위)의 경우 윤석열 정부 들어 2년 사이 순위가 19계단이나 하락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21년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자유의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갇히거나 탈출하거나 죽거나아시아 언론인들의 현실

2023년(12월1일 기준) 전 세계에서 최소 521명의 언론인이 정권을 비판하다 감옥에 갇혀 있다. 이 중 중국(121명), 미얀마(68명)가 전 세계 ‘언론인 감옥’ 1‧2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지난해 6월 억압을 피해 고국을 떠난 언론인들의 망명 경로를 종합한 ‘망명 언론인 지도’를 최초로 제작‧공개했다. 지난 5년간 세계 각 지부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에 따르면 2021년 8월 탈레반이 국가를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2021년 2월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차지한 미얀마에서 수백 명의 언론인이 조국을 탈출했다. 홍콩에서도 지난 3년간 최소 100명의 언론인이 중국의 집요한 탄압을 피해 탈출했다. 미얀마 언론인들이 찾아간 태국의 경우 망명 언론인 일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림 2. 망명 언론인 지도 출처: 국경 없는 기자회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디지털 뉴스리포트』에 따르면 인도에선 BBC 지사들이 탈세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인도 총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던 BBC 콘텐츠는 ‘객관성 결여’를 이유로 유튜브‧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관련 링크와 트윗이 삭제됐다.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새 형법은 대통령과 정부 기관 등에 대한 모욕을 금지하고 있어 언론자유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필리핀에선 언론인들을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두테르테 정권에서 지속적 공격을 받은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언론인 마리아 레사의 탈세 혐의는 2023년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명예훼손 혐의의 경우 징역형 유죄가 나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두테르테 정권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벌어진 초법적 처형을 비판한 결과다.

현재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팔레스타인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2023년 10월 이후 언론인과 미디어는 기록적인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1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이스라엘 방위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이 중 취재 과정에서 사망한 사례는 최소 22건 이상”이라고 밝혔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당한 공격은 국제인도법상 ‘무차별 공격’에 부합해 전쟁 범죄의 요건을 갖췄다”며 이스라엘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전쟁 상황에서 언론은 국가의 선전도구를 강요받게 된다. 사실관계와 피아 구분은 단순해야 하고, 메시지는 명확해야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지난 20년(2003년~2022년)간 취재와 보도 활동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최소 1,668명의 언론인이 살해된 것으로 집계했는데 언론인 피살 사건의 80%는 15개국에서 일어났으며 이라크(299명)와 시리아(279명)에서 가장 빈번했다. 2014년 이후 피살된 686명의 언론인 중 335명이 아시아 전쟁 지역(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에서 목숨을 잃었다. 필리핀(107명)과 파키스탄(93명), 인도(58명) 역시 위험 국가 목록에 올랐다. 전쟁 혹은 내전은 언론의 자유를 봉쇄한다. 아시아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전쟁이야말로 언론자유가 정착될 수 없는 구조적 요인 중 하나다.

아시아 언론자유 위기와 민주주의

아시아가 언론인들의 디스토피아가 된 것은 대체로 민주주의 제도의 허약함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부설 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 2월 15일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3년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했는데 중국이 148위, 이란이 153위, 북한이 165위, 미얀마가 166위, 아프가니스탄이 167위였다. 민주주의 지수가 약할수록 언론자유가 없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대만이 10위, 일본이 16위, 한국이 22위였는데, 세 국가 모두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 지수에 비해 민주주의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에 비례해 반드시 언론자유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인데, 언론의 자본 종속성이나 정치인 팬덤의 사이버불링 등이 언론자유를 위기로 모는 다층적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언론자유에 있어 민주주의 제도의 존재는 절대적 조건이라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선출직 공직자 △ 자유롭고 공정하며 빈번한 선거 △표현의 자유 △정보원 선택권 △결사의 자유를 꼽았다. 민주주의 사회는 공직자를 투표할 권리, 선출직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시민들은 공직자‧정부‧사회경제 질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엄중한 처벌의 위험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이 가능한 정보원이 존재해야 하고, 정당‧노동조합‧협회 같은 결사 조직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북한 헌법 67조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앞선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북한을 언론자유가 보장된 사회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세계 언론자유의 날을 맞아 지난 4월 23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절반(51%)은 ‘언론자유가 제한되더라도 허위 정보의 공표는 항상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46%는 ‘허위 정보가 게시될 수 있더라도 언론자유는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언론자유는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답을 인종별로 보면 백인은 50%로 평균보다 높았는데 히스패닉은 40%, 아시아인은 38%, 흑인은 35%였다. 해당 조사는 2024년 4월 1일부터 7일까지 미국 성인 3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는 미국 내에서 인종별로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어느 정도 합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지점에서 유의미하다. 혹자는 아시아의 언론자유가 위기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아시아에선 근대적 의미에서의 언론자유가 있었던 시기를 찾기 어려워서, 위기라는 표현보다는 태동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독일 철학자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는 “매스미디어는 무엇보다도 정보가 아니라 도덕적 틀거리를 사회에 제공한다”고 했으며 “여론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매스미디어를 국가권력이 통제하는 곳에서 도덕적 틀거리와 여론은 특정한 의도에 따라 전체주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대중은 통제받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언론의 자유는 반드시 권력 비판을 예고하는데, 과거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의 나치 시절처럼 언론인을 향한 국가권력의 프로파간다가 대중에게 작동할 때 언론의 권력 비판은 질서를 흔드는 반사회적 행위가 되어버리고, 비로소 언론인들의 디스토피아는 완성된다.

아시아의 언론 자유를 위해 우리 언론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한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는 게 좋다. 전두환 신군부는 외신을 철저하게 검열했으나 그럼에도 한국의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은 외신을 통해 한국 언론보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이어갔으며, 대안 언론을 구상했다. 그렇게 쌓아간 1980년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1986년 한국일보 기자의 ‘보도지침’ 폭로로 이어졌다. 아시아의 언론 자유도가 높아지려면 아시아 민주주의의 위기를 그 나라 밖 외신이 적극 다뤄야 한다. 미얀마와 홍콩, 중국과 베트남 내부에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려야 한다. 외신을 통해 자국 언론과 자국 체제에 대한 비평의 기준을 만들어줘야 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대한 열망도 자생적으로 쌓아나갈 수 있다. 결국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적 언론 자유의 확대를 위해선 언론인들의 연대가 결정적 조건인 셈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언론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4권 15호 (2024년 5월 20일)

Tag: 아시아,언론자유,국경없는기자회,언론인,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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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철운(pierce@mediatoday.co.kr)

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전) 미디어오늘 기자,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

주요 저서

『손석희 저널리즘』 (메디치미디어, 2017).
『요제프 괴벨스』 (인물과사상사, 2018).
『뉴스와 거짓말』 (인물과사상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