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4)
아시아 대도시의 문화 경직성-유연성(cultural tightness-looseness) 비교

김지혜 (서강대학교)

개인들이 사회 규범에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받는지에 주목한 문화 경직성-유연성 개념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지표로 널리 활용된다.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는 사회 규범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시행되어 개인의 자율이나 즉흥적 행동에 대한 허용 수준이 낮은 것을, ‘느슨한 문화(loose culture)’는 사회적인 기대가 유연하여 다양한 의견이나 태도 및 행동에 대해 포용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의미한다. 이 글은 국가 수준을 넘어, 도시 차원의 문화 특성을 비교하기 위해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2022)’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서울과 다른 국가의 대도시를 비교한다. 분석 결과, 국가 수준에서 빡빡한 문화로 분류되어 온 국가들이 대도시 차원에서는 비교적 느슨한 문화로 분류되기도 한다는 점을 확인하였고(예를 들어 서울이나 싱가포르 등), 연구 결과의 함의와 더불어 대도시 비교문화 연구의 필요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그림 1> 빡빡한 문화와 느슨한 문화 비교
출처: Gelfand. (2020). “Keynote: Understanding Tight & Loose Cultures & How they Shape our World”에서 재구성. https://youtu.be/

문화 경직성과 유연성, 국가 비교연구

사회 규범은 특정 사회나 문화에서 정상적으로 간주되는 행동이나 가치, 기대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즉, 사회 규범은 어떤 행동이 올바르고 적절한지를 정하는 규칙으로서 구성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동과 상호작용에 대한 기준이 된다. 개인들이 사회 규범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에 주목한 문화 심리학자 미셸 겔펀드(Michele Gelfand)는 ‘느슨한 문화(loose culture)’와 ‘경직된·빡빡한 문화(tight culture)’로 국가 간 차이를 설명한다. ‘문화 경직성-유연성’ 지표는 개인이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용인 수준을 뜻하는데, 선행연구들은 이러한 문화 특성이 국가 간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다수 보고한 바 있다(<그림 2> 참조). 문화 경직성-유연성의 차이는 개인 차원의 심리나 성격, 국가 차원의 COVID-19 팬데믹 대응뿐 아니라, 집단 간 편견이나 소수자·외집단에 대한 차별적 태도 형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사회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림 2> 31개 국가 문화 경직성-유연성 수준
출처: Gelfand et al. (2011). New Scientist. https://images.app.goo.gl/

먼저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는 사회 규범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이에 대한 신뢰가 높아 개인의 즉흥과 해석에 대한 여지가 거의 없는 문화로, 한국,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의 아시아 국가가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 이들 국가는 사회적인 규범이 엄격하며 문화적 탈선에 대한 용인 수준이 낮아, 탈선에 대해 엄격한 제재와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다시 말해, 규범적인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허용의 여지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강한 사회적 규범 아래에서는 범죄율이 낮은 편이고, 사람들이 비슷한 옷을 입거나 유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uniformity)이 높다.

반면, 느슨한 문화(loose culture)는 사회 규범이 유연하고 비공식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 스페인, 브라질, 이스라엘 등의 나라가 이 그룹으로 분류된다. 보다 허용적이고 느슨한 문화권에서는 사회적 관계에 근거한 제재나 규범적 처벌이 약한 편이다. 개인의 행위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는 분명 존재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선호에 따라 그 기대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 결정하고 가능한 행동 범위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사회 규범의 시행은 개인에게 맡겨지는 편이다. 즉 이러한 문화적 맥락에서는 집단 수준의 기대가 유연하며 다양한 의견, 태도 및 행동에 대한 허용 범위도 넓다. 느슨한 규범과 제재 아래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용인되는 편이고, 변화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관용 수준 또한 높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에 의해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기존의 연구들은 세계 다양한 국가 문화를 비교하여, 문화 경직성-유연성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역사적, 생태학적 특성에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자연재해나 질병의 유행, 만성적인 자원 부족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영토 침략을 경험한 사회는 빡빡한 문화로 분류되는 경향이 높았다. 역사적, 생태학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더 강한 규범과 제재를 통해 사회를 결속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 같은 위협이 적은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제재하거나 구속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느슨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 간 비교로 확장된 최근의 연구들

문화 경직성-유연성에 대한 국가 간 비교를 넘어, 최근엔 단일 국가·사회 내 다양한 지역 간 차이를 다룬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적 차이가 있고, 국경을 넘어 도시별 문화 경직성-유연성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해링턴과 겔펀드(Harrington & Gelfand)는 미국 내에서도 지역(states)에 따라 문화 경직성-유연성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혔는데, 미시시피, 앨라배마, 아칸소, 오클라호마와 같이 규범이 강하게 정립된(tight) 주에서는 마땅히 따라야 할 사회적 규칙이 비교적 엄격하게 정의되고 시행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처럼 보다 느슨한(loose) 문화를 가진 지역에서는 사회규범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정의되며 규범 이행에 대한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기존의 국가 비교연구 결과와 마찬가지로, 지역 수준에서도 자연재해나 식량·자원 문제, 질병 유병률 등 사회적, 생태적 위협을 많이 경험한 지역이 더 경직되고 빡빡한 문화적 특성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중국 내 지역(省, 성) 단위 분석에서도 비슷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림 3> 문화 경직성-유연성 국가 내 지역 비교
출처: Harrington & Gelfand (2014), Chua et al. (2015)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도시화(urbanization)와 문화 경직성유연성의 관계가 미국과 중국에서 다소 상이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도시화(urbanization)가 높은 지역에서 빡빡한 문화가 관찰된 반면, 미국에서는 도시화 수준이 낮을수록 즉, 농촌 지역이 더 경직된 문화를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도시에 거주하는 개인은 더 많은 익명성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데 비해 농촌에서는 공동체 내 개인 행위에 대한 비공식적인 모니터링이 농촌 지역에서 더 많이 이루어진다. 반면, 중국에서는 중앙정부의 시선으로부터 가까운 도시 지역에서 규범적 감시 수준이 높으며 규범의 영향력도 더 강하기 때문에 두 국가 간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도시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반드시 동양과 서구사회에서 동일한 형태로, 획일적인 문화가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도시화의 영향력은 특정 국가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독특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어떤 지역의 문화가 빡빡한지, 느슨한지는 비교 대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아시아 대도시들과 비교해 서울은 비교적 느슨한 문화로 분류

도시화가 비교적 많이 진행된 대도시들만을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는 어떨까? 선행연구에서 아시아를 대체로 빡빡하고 경직된 문화로 분류한 것을 고려하면, 아시아권과 비아시아권 대도시들과의 차이가 분명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도시화의 영향력이 국가 맥락에 따라 다양했다는 연구 결과에 기초한다면, 대도시별 다양한 문화 경직성-유연성 수준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은 베이징, 도쿄, 타이베이 등 다른 아시아 대도시와 비교해 어느 수준의 문화 경직성을 나타낼까? 비아시아권 도시인 뉴욕, 런던, 파리와 비교했을 때는 어떤 패턴이 관찰될까?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2022)’에서는 “우리나라에는 누구나 따라야 하는 사회 규범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행동에 대한 분명한 기대나 가이드라인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특정 행동이 적절한지 혹은 부적절한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정한다”(역코딩),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부적절하게 행동하면,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사회적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 등 6개 항목의 평균값으로 문화 경직성-유연성을 측정하였다. 각 항목은 ‘매우 반대한다’(1점)에서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4점)를 거쳐 ‘매우 동의한다’(7점)의 7점척도로 측정되며, 6개 항목의 평균점수가 높을수록 더 빡빡하고 경직된 문화를 공유함을 의미한다. 도시별 700명씩 15개 대도시 총 1만500명의 응답을 종합하여 문화 경직성-유연성을 비교한 결과를 <그림 4>에 제시하였다.

<그림 4> 15개 대도시 문화 경직성

문화 경직성-유연성 점수가 가장 낮은, 즉 상대적으로 느슨한 문화를 공유한 도시는 도쿄(4.68)였고, 예루살렘(4.75), 서울(4.76)이 그 뒤를 이었다. 해당 점수가 비교적 높은, 빡빡한 도시는 뉴델리(5.61), 베이징(5.48), 앙카라(5.46)였다. 15개 대도시의 평균점수(5.15)에 준하는 곳은 쿠알라룸푸르(5.13), 뉴욕(5.19), 런던(5.23) 등이다. 기존 연구결과와 달리 새롭게 발견된 점은 국가 수준에서 빡빡한 문화로 분류되었던 한국(서울)을 비롯해 일본(도쿄), 대만(타이베이), 싱가포르 등의 지역이, 도시 수준 비교에서는 – 전통적으로 느슨한 문화권으로 분류되어 온 예루살렘(이스라엘)과 비슷하게 – 비교적 느슨한 문화 특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상당히 빡빡하고, 경직된 문화로 보고되어 온 점을 고려하면(33개국 중 5위, Gelfand et al. 2011; 65개국 중 9위, Uz 2015), 이와 같은 결과는 서울이 가진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화 경직성-유연성 수준이 국가 간 혹은, 국가 내 다양한 지역 비교를 넘어, 대도시 차원에서 또 다른 패턴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도시별 다양성 지수, 도시화 및 글로벌화, 개인의 자율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시설과 인프라 등 문화 경직성-유연성을 결정하는 다양한 특성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후속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기대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38호 (2023년 7월 31일)

Tag: 문화,규범,경직성,유연성,아시아,도시비교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Chua, Roy YJ, Kenneth G. Huang, and Mengzi Jin (2019). “Mapping Cultural Tightness and its Links to Innovation, Urbanization, and Happiness across 31 Provinces in Chin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6(14). 6720-6725.
  • Gelfand, Michele J. et al. (2011). “Differences between Tight and Loose Cultures: A 33-Nation Study.” Science 332(6033), 1100-1104.
  • Harrington, Jesse R., and Michele J. Gelfand (2014). “Tightness–Looseness across the 50 United Stat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22). 7990-7995.
  • Jackson, Joshua Conrad, Michele Gelfand, and Carol R. Ember (2020). “A Global Analysis of Cultural Tightness in Non-Industrial Societie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87(1930).
  • Uz, Irem. (2015). “The Index of Cultural Tightness and Looseness among 68 Countries.”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46(3):319-335.

저자소개

김지혜(jihyekim@sogang.ac.kr)

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전) Moon Family Postdoctoral Fellow, Center for Korean Studi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통계센터 연구원

 

주요 논문

“Perceived China Threat, Conspiracy Belief, and Public Support for Restrictive Immigration Control during the COVID-19 Pandemic.” Race & Justice 13(1). 2023.
“Intergenerational Coresidence and Life Satisfaction in Old Age: The Moderating Role of Homeownership.” Applied Research in Quality of Life 17. 2022.
“Social Capital and Subjective Social Status: Heterogeneity within East Asia.” Social Indicators Research 154. 2021.
“가치 연구와 이중과정이론(Dual-Process Theory): 암묵적 인지 측정 방법의 적용.” 『한국사회학』56(3).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