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클래식 음악가들, 유튜브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1)
클래식과 대중을 잇는 유튜브
클래식 연주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클래식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클래식 선율 그 자체만으로 누구나 감동이 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첼로 전공자로서 클래식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더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클래식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 나의 작업들을 통하여 클래식 연주자이자 유튜버로서 음악과 대중이 상호 소통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연주자에서 유튜버 요룰레히로
연주자가 되기로 선택한 건 온전히 내 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첼로를 켜면서 활을 계속 놓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전적으로 나에게서 비롯됐다. 12살, 첼로 연주자로는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해 앞선 친구들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의 패기로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나만의 연습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상위권 실력을 유지했다.
지금은 사라진 제도이지만, 내가 입시를 치를 당시에는 특정 콩쿠르에 입상하면 서울대 수시에 지원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한 명을 뽑는 자리에 합격했다. 동 대학원 재학 중에는 보스턴 음대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고 연주자과정에 재학했다. 어떻게 합격했고, 어떻게 연습했는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저 무작정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연주하며 기계적으로 외웠을 뿐이다. 어린 시절의 연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당연하게도 별다른 왕도는 없었다. 연습 없이 이대로 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나,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나 고민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으면서 따르는 성취감이 나를 움직였던 것이다.
ᅠ“네 연주를 들으니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연습하고 나서 들은 아버지의 칭찬은 내가 지금도 첼로를 연주하는 이유가 되었다. 비록 어렸을 때는 연주자가 되기 위한 입시에 사활을 걸었던 것 같지만, 내 성격에 첼로가 주는 재미나 감동이 없었다면 이토록 오래 활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화려한 무대, 연주자로서의 명망도 좋지만, 나는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 연주를 들으면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동하도록.
유튜브를 시작한 건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유튜브 세상과 격조 높고 고루한 클래식 연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튜브는 단지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연주를 감동으로 전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에게 딱 맞는 플랫폼이다. 지금은 비싼 돈을 들여 화려한 콘서트홀에 일부러 발걸음하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클래식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잠옷을 입고 침대에 편히 누워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산책을 나선 공원에서… 유튜브는 일상의 모든 쉼에서 클래식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갖춰진 공간이 아닌 삶의 모든 순간에 감동으로 다가오는 음악,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클래식이었기에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 연주를 들려주면서 클래식이 단순히 어렵고 지루하기만 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를 알리면서 클래식 연주자는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깨보고 싶었다.
클래식 연주자의 면면을 담다
하지만 실제로 클래식은 유튜브 생태계에서 인기 종목에 들지 않는다. 그 증거는 조회 수다. 유튜브 트렌드로 떠오르는 먹방이나 여행에 비해 클래식 분야는 대중의 관심도를 반영하듯 평균 조회 수가 낮은 편이다. 비전공자 시선에서 클래식은 ‘지루하다’라는 인상이 강하고, 클래식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주류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만으로 유튜브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대표적인 클래식 유튜브 채널로는 2cellos, 레이어스, 또모를 들 수 있겠다. 2cellos, 레이어스의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악인 대중음악, 뉴에이지, 영화음악 등 화제의 음악을 클래식 악기와 융합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방식을 택한다. 분위기 좋은 배경에서 정제된 연주를 선보이는 것이 이들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또모는 비전공자라면 모를 연주자의 레슨 상황이나 연주자 몰래 장치나 상황을 설정하고 지켜보거나, 사람들이 궁금할 만한 주제를 클래식과 결합한 기획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모두 “유튜브를 활용해 클래식에 대한 장벽을 낮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목표와 같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아주 쉬워 보이는 목표지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동안 연주자라는 정체성만으로는 파급력이 큰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내가 재밌고 좋은 것을 한다고 해서 다들 봐주지는 않으니까. 첼로 연주자 유튜버로서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생 대부분을 첼로와 함께 보낸 나에게 사람들이 궁금한 점은 무엇일까?”
대중의 시선에서 고민하자 콘텐츠 아이템이 떠올랐다. 평소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악기를 채널을 통해 소개하는 것이었다. 악기를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콘텐츠는 많지만 나는 실시간 채팅 소통과 전공자의 시선을 아울러 유쾌하고 신선하게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더불어 소개해준 악기로 사람들의 귀에 친숙한 곡을 연주한 뒤, “이 악기가 바로 그 악기구나!”라며 유투브 시청자들이 이전에 그 악기를 모르고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을 복기할 수 있게 도왔다.
기타 전공 동문이 등장하는 영상도 그 시도의 연장선이었다. 친구가 SNS를 통해 타 채널 유튜브에 출연한 소식을 접했다. 내 채널에서도 기타 연주를 선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클래식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 외에는 서로 자주 얘기를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지만,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고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이런 연주를 듣게 해줘서 고맙다” 손색없는 기타 연주에 댓글 창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저 자리를 만들고 라이브를 켜고, 전공자로서 친구의 연주에 진심을 담아 호응하는 것뿐이었는데. 나에겐 주변만 잠깐 둘러봐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구독자들에게는 새로운 광경이 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 흥미는 나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는지 영상은 백만이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기타리스트 친구의 출연 영상은 클래식 연주자 유튜버인 나에게 새로운 포문을 열어주었다.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은 아주 많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클래식 연주자의 면모를 전공자로서 바라보면서 소개할 수 있는 채널은 많지 않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멋진 모습만 보여주기보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들,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으로서 음악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을 전하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특기였다. 대금 연주자가 플롯을 연주하고 쿠팡이나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첼로를 구매해 연주해보는 등 클래식 연주에 관해서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시도들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거대한 담론을 논의하는 게 아닌 라이브 방송 시청자들과 깔깔 웃으면서 즐겁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도 내 유튜브 채널의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
콘텐츠를 만들면서 끝내 도달한 결론은 ‘타인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고 팁을 배우는 재미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 가보지 않은 길, 내 삶에는 없었던 선택지를 무료로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첼로 외에 다른 분야 클래식 전공자들도 화려한 무대 뒤에 평범한 각자의 인생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클래식이 그렇게 머지않은 타인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앞으로 무대 밖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면서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소명을 더 확장해나갈 것이다.
유튜버로 살면서 달라진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클래식 연주자 유튜버”는 내가 유튜브에서 연주를 일방향으로 ‘들려준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가졌던 목표다. 24만 명의 구독자를 만나는 지금에는 그들이 내 연주를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실제로 많은 구독자들이 내가 연주회를 열었을 때 직접 표를 구매해 연주회장을 찾아주었다. 몇백 석의 좌석이 금방 매진되었다.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클래식 연주자로만 지내왔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나로 인해서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어 다른 클래식 연주회를 찾아다녔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모두 내가 해낸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튜브는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이곳에서는 내가 했던 것을 넘어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유튜브는 청중은 물론, 연주자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플랫폼이다. 연주, 영상 촬영, 연주자와의 만남 등 내 손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늘 너무 크고 먼 미래를 보지 않는다. 첼로를 켜면서도, 유튜브를 지속하면서도 엄청나게 큰 수치적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보다는 늘 한 단계 위만을 목전에 두었다. 그래서 현재 구독자가 24만 명인 나의 목표는 30만 명이 될 때까지 열심히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다. 또한, 흔들림 없이 지금껏 유튜브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채널 그 자체로 나를 건설적으로 돌아볼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과 클래식을 알리려는 사명은 나의 존재 그다음에 뒤따라오는 것임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명심하며 앞으로도 클래식 연주자와 유튜버, 그리고 나 자신 모두를 잘 지켜갈 생각이다.
유튜브 시작을 고민하는 클래식 연주자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시도하기를 권하고 싶다. 내 음악을 어떻게 꾸준히 하나의 포맷의 영상으로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하고, 자신의 과정을 돌아볼 아량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기를. 나는 클래식이 대중에게 어렵고 낯선 분야가 아닌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될 때까지 촬영 현장에 음악인을 초대하고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더 많은 곳에서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그 여정에 당신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유튜브,트위치,클래식대중화,첼리스트,요룰레히
저자소개
요룰레히(yodelay167@gmail.com)
현) 첼리스트, 유튜브·트위치 크리에이터
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Boston university 연주자과정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