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의 미래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

K-pop, K-drama에 이어 K-classic의 시대가 오고 있다. 최근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보란듯이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 클래식계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현상의 주체로서 가져야할 태도와 이끌어 나가야할 담론,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일으킨 클래식 물결의 핵심과 이제부터 보여줄 우아한 도약을 위해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할 지 살펴본다. 

클래식에 스며든 21세기 가락과 추임새 

 2022년 상반기에만 거의 40명에 이르는 한국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며 한국 클래식계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특히나 많은 수상 소식에 국내 언론은 ‘k-classic’이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클래식에 관심이 아예 없던 이들이 BTS, 블랙핑크가 아닌 라흐마니노프, 리스트의 음악을 검색해서 듣기 시작했다. 이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하이테크의 최전방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200, 300, 400년 전 종이에 쓰인 서양 음악을 해석하는 행위가 열풍을 불고 있는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흐름의 본질과 방향을 연주자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이 새로운 한류 현상을 분석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는 ‘K-Classic Generatio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한 국제 대회에서 활약한 한국 음악가들이 걸어온 길을 조명한 이 영화는 벨기에 감독 티에리 로로(Thierry Loreau) 가 2020년에 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해외에서 인정받았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성과에 대한 분석 또한 해외에서 찾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는 정작 우리가 어떻게 이 위치에 도달했는지 설명하는 것에 서툴다. 조기 교육 방식가족의 지원 등 유럽인이 본 한국 클래식의 비결 중 필자는 이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유럽, 적어도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는 한국인을 시칠리아인에 비유합니다. 감정이 훨씬 풍부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를 시칠리아인에 비유한 것이 마땅하고 고맙게 느껴진다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부분을 잊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2022년 지금 우리의 일상은 풍부한 감정과 주저하지 않는 표현으로 가득한가? 

 우리는 본래 노래하길 좋아하는 민족이다. 우리나라만큼 노래방이 많은 곳 또 어디 있으랴. K-pop, K-classic이 비록 서양 음악을 토대로 하더라도 그 표현의 중심에는 흥에 겨워 춤추고 한에 서려 노래하는 우리 민족의 얼이 있다. 세계 어디든 마음껏 소통하는 한국 음악가들은 LTE에 매몰된 우리들의 오래된 정감과 서두르지 않는 소박함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문화 재생 프로젝트를 무의식적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는다 

 한편 시칠리아인 비유를 듣고 작년 여름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마스터클래스에서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 떠올랐다.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DNA에 없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뻔히 문제가 될 걸 알면서도 왜 굳이 이런 어리석은 말을 했을까? 한국 음악가로서 필자는 이 발언의 모욕성과 인종차별성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주커만은 한두 번 레슨을 해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연주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명성을 가지고 있고, 그의 체계적이고 특정한 주법은 전부터 꾸준히 음악인들 사이 영향력 있는 담론을 만들어왔다. 그에게서 배운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필자가 직접 경험했던 다른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레슨에 비추어 봐도우리나라 연주자의 음악성 문제는 계속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는다. ” “이 부분에서 원하는 캐릭터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전자는 뉴스 거리가 되고 후자는 그렇지 않지만 둘 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팽배한 성과주의식 교육 방식의 문제점을 건들고 있다는 점을 적어도 음악인들은 알 필요가 있다. 나만의 노래를 할 수 있는데, 논란의 여지가 두려워 하지 못하게 만드는 클래식계의 관료적 사고 방식을 점검하고창의적이고 때론 전위적인 태도와 틀에 박힌 해석으로부터의 해방이 이제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더 주목 받을 한국 클래식계가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몇몇 연주자들만으로 대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출신 음악가의 메이저 콩쿠르 우승은 가능한 것을 넘어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해외에서의 인정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마나 열렬한 문화적 향유가 이루어지고 흥미로운 음악적 담론이 펼쳐지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K-pop에서 파생된 우리나라만의 젊고 폭넓은 청중을 넘어,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음악가들의 국제적 위상을 넘어, 21세기 우리 사회는 어떤 귀를 장착하고 음악을 들을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레퍼런스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정체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클래식과 동시대 음악의 간지러운 간극, 그것이 주도하는 청각의 미래 

 젊은 한국 음악가들이 부상한다고 글로벌 클래식 시장에 대한 우리의 장악력이 자동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한국은 분명 클래식 선진국의 축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여러 면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와 제도의 부재를 인식해야 한다. 그 중 꼭 빠져서는 안 될 대목이 현대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전반에 걸쳐 최근 정부의 현대음악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독일 문화부는 2016년 현대음악을 위한 후원 기금을 설립해 매년 2백만 유로를 동시대 음악 관련 프로젝트에 운용하고 있고, 프랑스 문화부는 2020년 현대음악관(MMC)’을 창설하여 현대음악 관련 자료 보존과 자원 확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작곡가 육성 프로그램 등을 추진 중이다. 굳이 제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나라 교향악단을 찾아가 시즌 책자를 훑어보면 오늘날 동시대 작품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얼마나 많이 연주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언젠가 제2의 다름슈타트((Darmstadt)즉 현대음악의 새로운 화약고로 떠오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를 머리 속에 그려봤을 때, 한국이 유럽화 될 가능성보다 유럽이 한국화 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은가? 서울의 거리를 지나다니며 들리는 기계음들이 곧 현대음악이다.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소리와 그것을 통해 생산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어쩌면 그들에겐 혼란스럽기만 한 사치이다. 우리는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 우리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가장 래디컬한 소리에 더 가깝기에.    

 K-classic 의 미래는 결국 어떻게 들으면서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현재의 단계에서 k-classic이 일시적 현상으로 일단락되지 않고 클래식 산업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질 필요가 있다. 미국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는 그의 저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에서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법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고 소리 자체에 자신을 담그는 감각적 차원(the sensual plane)’, 소리 너머에 의미를 듣는 표현적 차원(the expressive plane)’, 그리고 소리의 재료와 구성을 인지하는 순음악적 차원(the sheerly musical plane).’ 음악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적어도 이 세 차원을 넘나드는 귀를 양성함으로써 자신 혹은 사회가 설정한 음악의 무의미한 경계를 허물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결정적인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며, 머지않아 찾아올 청각적 미래의 중심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리라.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42호 (2022년 10월 31일)

Tag:
K-Classic,한류,바이올리니스트,현대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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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양인모

현) 바이올리니스트
전) 2022년 제12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2015년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우승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대학 석사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