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아시아의 영토·해양·안보 분쟁(5)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 대만해협의 전쟁과 평화

대만해협은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이다. 대만은 미국의 유용한 전략적 자산이지만 중국에겐 민족통합의 대상이다. 대만해협에는 전쟁과 평화의 요인이 병존한다. 바이든은 대만을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지칭하며 가치동맹의 일원으로 포용한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불사하며 대만을 독립시킬 마음은 없다. 시진핑도 바이든의 계산된 친대만 행보에 분노하지만 무력 충돌은 부담스럽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그가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도 중국과의 경제협력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 결국 시간은 통일과 독립 누구의 편도 아니다.

대만 방공식별구역

중국은 과연 하나인가? 이는 양안 관계의 굴곡진 역사와 미래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의문 자체를 비우호적인 도발로 인식한다. 반면 미국은 하나의 중국과 구별되는 ‘사실상의 주권 국가’ 대만이 존재함을 강조하며, 대만은 한발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승인을 상실한 ‘중화민국’의 부활 혹은 독립된 ‘대만공화국’을 꿈꾼다.

1949년 이후 미국·중국·대만의 삼각관계 변화과정은 중국과 대만이 아닌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 중국의 대표권이 바뀌었고, 대만해협의 전쟁과 평화의 기운이 교차했다. 지금도 미국의 대중전략과 대만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미중관계와 대만해협의 파고가 연동되어 있다. 미국이 중국 정책을 경쟁과 대결로 전환하자 대만 문제가 급부상하는 이유다. 특히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격화되면서 대만해협의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대만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도 있다는 다소 과장된 주장도 제기된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대만해협이 우리에겐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미·중 요인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떠한 대만을 원하는가?

미국의 대중전략이 변화하면 대만 정책도 여지없이 변화한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는 중국에 대한 실망과 당혹감에 기인한다. 미국은 지난 40여 년의 ‘건설적 개입’을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많은 문제에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미국의 기대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며 수수방관할 수 없는 제어의 대상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다원화가 철저히 무시된 채 오로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중국몽’(中國夢)의 최종 목표로 설정한 시진핑의 중국은 더 이상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없다. 미국이 대중 압박수단으로 대만정책을 서둘러 재편하는 이유다.

우선 미국은 수교 당시 대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던 중국의 약속을 더이상 믿지 않는다. 중국의 약속 불이행과 고의적인 사실 왜곡을 비난한다. 이는 미국이 미중관계의 기본 문서인 ‘3개 공동성명’의 대만 관련 합의를 철저히 재적용할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은 1972년의 ‘상해공동성명’과 1979년의 ‘수교공동성명’이 명시한 “양국 이익과 세계평화 증진” 합의를 중국이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대만에 대한 방어용 무기 제공” 등을 명시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에 의거하여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무기 판매를 맹비난하는 중국에 대해 1982년 8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메모와 외교 전문까지 공개하면서 첫째,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축소는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중국의 약속 이행과 확고히 결부되어 있으며(conditioned absolutely), 둘째, 대만에 제공할 ‘무기의 질과 양’(the quality and quantity of arms)은 전적으로 중국의 위협 여하에 달려 있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미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미중관계의 ‘일부분’이 아닌 독립적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자제했던 대만과의 정치교류를 확대하는 동시에 ‘타이페이법’(TAIPEI Act) 등을 통해 대만의 국제무대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다자적인 가치⸱이념⸱기술 동맹으로 대중 압박 전선을 확대하면서 대만을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지칭한다. 대만 정책도 더 이상 비정치⸱민간차원에만 머물지 않으며 미국의 고위지도부가 빈번하게 대만을 방문하고 있다. 한동안 단교부(斷交部)라는 오명을 들었던 대만외교부가 분주해진 이유다.

그러나 미국의 대만 정책 변화는 여전히 한계를 갖는다. 우선 미국의 대만 정책 조정은 ‘하나의 중국 정책’(one-China policy) 범위 내에서 추진되고 있다. 바이든도 3월 18일 시진핑과의 화상통화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 견지, 대만독립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미국이 대만 문제를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 차원에서만 인식하고, 군사적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의 독립을 지원할 ‘의지’가 없음을 시사한다. 의지와 별개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 공격을 제압할 미국의 ‘능력’도 한계가 있다. 최근 대만해협의 미중 군사 충돌을 상정한 미국 내 ‘워 게임’(war game)에선 미국이 패하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이젠 미국이 섣불리 대만독립 전쟁을 감행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중관계 향배가 대만 문제의 변화 범위와 내용을 규정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압박 일변도가 아니며 협력⸱경쟁⸱대결의 복합전략을 구사한다. 대만 문제는 분명히 첨예한 대결영역이다. 그러나 미국의 최종 목표는 대만독립이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 대만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 성향을 부추겨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 대만도 이 점을 모르지 않으며 자신들의 미래를 미국에만 맡길 수 없다는 내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원하는 대만은 독립된 주권 국가가 아니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덩샤오핑의 약속, ‘일국양제’는 지속 가능한가?

대만 문제가 미국에겐 전략적 카드지만 중국에겐 반드시 사수해야 할 민족적 과제다. 더구나 중국이 표방하는 ‘신시대’의 이념·정치·경제·안보를 독점 설계한 시진핑의 정치적 미래는 대만 문제의 향배와 무관하지 않다. 민족통합의 성과 없이는 시진핑의 어떠한 치적도 빛을 잃을 것이다. 대만과 마주한 양안 교류의 전진기지인 복건성에서 무려 17년을 근무한 시진핑은 대만 문제와 양안 관계의 복잡다단한 속성을 잘 알고 있다. 이를 파고드는 바이든의 계산된 친대만 행보에 분노하는 이유다.

시진핑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통일과 독립을 양극단으로 한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은 점에 중점을 둘 것이다. 첫째, 핵심 이익의 상징인 대만 문제가 협상⸱타협⸱양보의 대상이 아니라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만의 이탈 조짐과 미국의 개입에 대한 경고성 무력 시위를 지속할 것이다. 이는 국내의 애국주의 분위기 확산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둘째, 전면 단절이 어려운 양안 경제교류, 인적교류의 현실을 고려하여 대만을 향한 유인책을 확대할 것이다. 최근 중국은 무력 시위의 다른 한편에서 양안의 ‘융합발전’을 명목으로 다양한 경제협력 구상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싫든 좋든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지속할 수 밖에 없는 대만 경제계를 겨냥한 것이다. 셋째, 대만 문제의 현실적 해법으로 일국양제를 유지할 것이다. 비록 홍콩 민주화 시위의 무력 진압과 보안법(國安法) 강행으로 덩샤오핑이 약속했던 일국양제의 빛이 크게 바랬지만 ‘고도자치’(高度自治)로 분장된 일국양제의 간판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헌법의 연임제한 규정까지 삭제하고 장기집권을 꾀하는 시진핑에게 대만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지상과제다. 그러나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라는 시진핑의 살벌한 경고가 당장 전쟁으로 비화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군사력엔 여전히 역부족이며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하고 있다. 미중관계에서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던 유럽연합마저 중국을 비난하며 미국과 의기투합하고 있다. 시진핑은 푸틴의 전쟁 도발로 미국의 대중 공세가 약화되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전범’으로 몰리는 듯한 푸틴을 더 이상 두둔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장기집권의 분수령이 될 금년 가을의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시진핑의 자제력은 대만 민진당 정권의 독립 분위기와 미국, 일본의 개입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 대만의 독립 선언, 노골적인 외세 개입을 대만 문제의 ‘레드 라인’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일과 독립,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민진당 내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대만독립주의자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처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동시에 차이 총통은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자주·독립을 향한 감성적 접근과 무모한 시도가 초래할 부정적인 결과도 잘 알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져다 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만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 발전을 통해 와해 직전인 외교적 ‘생존공간’ 확장에 주력할 것이다. 최근 대만은 미국과의 가치동맹, 국제사회의 반중정서 확산을 계기로 중국의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대만의 자유민주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리투아니아, 프랑스, 체코 등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실질적 관계 발전 성과를 얻고 있다. 물론 미국의 지원이 당장 대만의 공적 외교영역을 확장시킬 수는 없다. 미국의 의지도 문제지만 이를 모질게 저지하는 중국의 힘은 넘기 힘든 철벽이다. 세계보건총회(WHA) 옵저버 자격 취득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좌절했다. 그러나 숨 쉴 공간이 거의 소진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차이 총통의 시도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기댈 곳은 미국뿐이다.

한편 첨예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윈-윈의 경계를 부단히 확장해 온 ‘특수한’ 양안관계의 안정적 관리 역시 차이 정부의 핵심 과제다. 그동안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과 민간교류는 명실공히 ‘하나의 중국’에 근접했으며 통일과 독립을 둘러싼 대립과 반목을 무색하게 했다. 심지어 인적교류가 단절된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양안교역은 크게 증가했다. 대만이 중국을 떠나 새로운 교역⸱투자 대상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겨냥한 ‘남향 정책’은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정신적 다짐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양안교류는 결혼, 취업, 이주, 유학 등을 통해 대다수 대만인들의 가정과 실생활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는 현 단계의 양안 관계를 단순히 통일과 독립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다. 시진핑조차 버거워하는 강골 차이잉원이지만 분노를 삭이며 미우나 고우나 양안 교류를 지속할 수 밖에 없다. 대다수 대만인들에게 양안관계는 체제·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다.

이처럼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인 대만해협에는 전쟁과 평화의 요인이 병존한다. 중국이 빛을 가리고 힘을 기르는 동안 대만해협은 양안의 교류 협력을 위한 평화적 공간이었다. 더 이상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해 묵은 싸움터가 아니었다. 그러나 증강된 ‘종합국력’에 기대어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며 덤벼드는 중국에 놀란 미국이 대만 정책을 재조정하면서 대만해협은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으로 변했다. 미국은 중국의 위장된 평화 전술에 속았다는 인식이 강하고, 중국은 미국이 타국의 주권·영토를 무시하던 제국주의 시절의 고질이 재발했다고 분개한다. 그들의 인식이 어떠하든 미중 대립의 본질은 ‘핵심 이익’의 수호와 확장을 위한 패권 경쟁이며 그 과정에서 대만의 미래를 볼모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점점 고조되는 미중의 패권 다툼이 결국 대만해협의 전쟁을 유발할 것인가. 결론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 대만 모두 예측 불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군사적 충돌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특히 중국은 군사적 위협과 경제수단만으로도 대만의 독립 분위기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미국 역시 군사행동이 불가피할 정도까지 시진핑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은 홍콩 사태 이후 일국양제에 대한 기대를 모두 버렸지만, 중국과의 모든 대화 창구를 폐쇄한 것은 아니다. 결국 중국이 원하는 통일이나 대만이 원하는 독립 모두 불가능하다. 다만, 미중의 대립 강도에 따라 대만해협의 전쟁과 평화가 심한 기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통일과 독립 누구의 편도 아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Tag:
미중패권경쟁, 대만문제, 양안관계, 중국통일, 대만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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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문흥호(hmoon@hanyang.ac.kr)

현)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전) 한양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소장, 현대중국학회 회장

주요 저서:
『동아시아 공영 네트워크와 한반도 평화』 (공저), (한울아카데미, 2022)
『동아시아 공동번영과 한반도 평화』 (한울아카데미, 2019)
『한국-타이완 관계사(1949-2012)』 (공저), (폴리테이아, 2015)
『대만문제와 양안관계』 (폴리테이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