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2년 아시아 정세전망(8)
2022년 한국의 신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 개선 전망

이정환 (서울대학교)

2022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미래지향적 한일협력의 비전에 대한 합의 등이 언급되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고려 사항이지 단기적 한일관계 갈등의 해소 해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히려 2022년 한국 신정부가 직면할 한일관계의 핵심적 과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후속 조치, 즉 일본의 관련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의 현금화 과정에 대한 관리이다. 대국적 갈등 해소 추구보다는 우선은 갈등의 전염과 확산을 막아내는 불확실성 관리에 대한 단기적 정책 고민이 급선무이다.

난관의 한일관계

한일관계는 보통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한일 양국정부의 외교당국 간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양호하고, 양국 사회 레벨의 인적교류, 문화교류, 경제협력이 적극적으로 전개되더라도, 한일 양국 간의 역사인식 관련 미해결 과제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역사인식 현안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갈등 구조는 해소된 적이 없으므로, 한일관계는 좋지 못하다는 인상은 양국 사이의 상호 인식에서 고정되어 장기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근 한일 간 역사인식 현안에 대한 갈등은 양국간 경제관계와 인적교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상호간에 상대방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타적 정체성 정치까지 진전되어 왔다.

위안부합의 후속 조치를 둘러싼 갈등,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관련 기업들의 배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갈등, 메이지 산업혁명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역사인식 현안 갈등은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역사인식 분야를 넘어 한일관계의 모든 분야에서의 갈등 심화로 확산되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원활한 상보성을 유지해온 한일 양국 기업들은 공급망 혼란을 직면하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증가해오던 관광의 인적교류도 절벽의 상황을 맞이하였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안보 분야에서의 한일협력 제한으로 대응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전분야로 확대된 한일 갈등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한일 보건 협력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정치화된 대일본 정책

2022년 출범하게 될 한국의 신정부는 한일관계의 개선 또는 악화방지의 과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국 내에 폭넓은 동의가 있다. 하지만, 현재 한일관계 난맥상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국 내 합의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대통령 선거에서 쟁점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한일관계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강경한 대일 정책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해법은 한국 정부의 대일본 정책 태도 변화이다. 반면에 문재인 정부가 상대했던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의 경직된 대한국 정책에서 원인을 찾는 집권 정치 세력에게 한일관계 해법은 일본의 전향적 입장 전환일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선명한 정책 대립축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대일본 정책에 대한 강한 입장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일본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로 언급되곤 한다.

한국의 국가 비전이 종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일본 이슈가 과대 대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일본 정책이 중요 어젠다로 부상된 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한국의 미래 국가 비전 모색에서 대일본 정책 자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쪽은 반일 정서의 동원을 위해서, 다른 한쪽은 반문재인 정서의 동원을 위해서 대일본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일본의 정책관여자들이 한국 내 대일본 정책의 정치화에 대한 유불리 판단 속에서 한국의 국내정치적 선택에 대한 자기 선호를 은연중에 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한국 내에서 대일본 정책의 정치화를 증폭시키고 있다. 대일본 정책의 정치화는 한국의 집권세력, 야당세력, 일본 정책관여자 3자 사이에서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각각의 자기희망적 판단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 내 집권 세력과 야당 세력의 대일본 정책에 대한 평가와 해법, 그리고 일본 정책관여자들의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호 모두 한계점이 분명한 자기희망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우선 일본의 정책관여자들은 대일본 정책이 한국 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있다. 물론 최근 한국 정치가 그런 모양새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단언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일본 정책관여자들의 이런 태도는 2012년 한국 대선 전의 평가와 유사하다. 당시 일본의 정책관여자들은 박근혜 후보의 여러 배경을 견주어 볼 때 일본에 유화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직면한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은 위안부 문제를 입구로 하는 강경 노선이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 내 보수 정권은 집권 초반이든 후반이든 극히 대립적인 대일본 정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일본 정책은 5년의 집권기 동안 큰 폭의 진폭이 있다는 점에서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공통된다. 한국 보수가 일본에 유화적이라는 정형화된 인식은 한국 내 대일본 정책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의 대일본 유화 정책 태도는 대일본 정책을 역사인식과 관련된 국민감정 차원에서 다루는 것을 자제하고 외교적 전략 속에서 다루겠다는 전략 마인드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정권의 정치적 정체성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한국 내 보수와 진보의 정치 성향과 대일본 정책의 정책 선호는 직접적 연결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집권 세력의 일본 보수 정치권의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론은 나름 설득력이 있지만, 일본과 어떤 외교를 하겠다는 전략적 구상력이 빠져있다. 한국 내에서는 아베 신조가 1990년대 의원생활 초기부터 역사수정주의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신념이 정부의 정책을 모두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이후 미국을 의식하며 역사수정주의의 정책화를 나름 자제하면서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일본의 근현대사를 재해석해온 아베 전 총리의 역사정책이 일본 내 복고주의적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갈등을 무릅쓰면서, 일본의 보수중도로부터 많은 지지를 획득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포인트이다. 위안부합의 후속 이행 파행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내 반발을 일본의 소위 보수극우 정치세력의 잘못된 역사인식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일본과 외교를 하려한다면 그 상대일 수밖에 없는 일본 보수 주류의 넓은 저변이 생각하는 것이 한국의 인식과 근본적으로 상이하다는 점을 전제로, 좀 더 한국이 원하는 윈셋에 가깝게 양국 합의가 귀결될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적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 야당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대일본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무엇을 위해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 내에서 설득하는 힘이 약하다. 막연하게 갈등이 좋지 않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나오는 논리는 한미일 공조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냉전기 한일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 한국 내 넓은 공감대가 현재의 한일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지속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일협력의 이해 관계적 필요성이 저하되는 가운데, 정체성이나 안보적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본이 한국과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안보적 이익을 공유하는지에 대해 한국 내 합의 기반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일본의 레토릭을 그대로 가져와 한일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논리는 한국 내에서 설득력이 크지 않다. 일본 내에서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보수 인사들이 과거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군국주의 세력과 친화적인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한국 내에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남녀별성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보편적 가치의 잣대를 타국에 들이대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서 위화감이 크다. 더불어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으로 해양국가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다시 재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최근 모습은 과거 탈아론적 인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아시아의 지역개념은 선뜻 포기되지 않는다. 냉전기와는 다른 한일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일본이 구사하는 레토릭과 차별화된 한국 입장에서 한일협력의 필요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창되는 대일본 정책에서의 한국 정부의 전향적 자세 필요성은 한국 사회에서 수용성이 커보이지 않는다.

2의 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은 가능한가

최근 한국 내 보수와 진보 모두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일본 정책을 높게 평가하는 관점이 동시에 나오고 있으며, 이에 입각해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불리는 2018년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과 같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합의문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며, 탈냉전기 이후 한일협력의 비전에 대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 문서의 의의를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제2의 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에 어떤 내용을 포함할 것인가? 1998년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생략)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중략)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 하에서 전수방위 및 비핵 3원칙을 비롯한 안전보장정책과 세계경제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생략)

1998년에 한국 정부가 한국사회 내의 합의기반 없이 위 문구를 넣었을지 모르겠지만, 2021년 시점에서 위 두 구절 모두 한국사회 내에서 수용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양국의 전후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상호 긍정적 평가 속에서 양국의 미래 비전의 공유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문구에 버금가는 수준의 양국 합의와 이에 대한 양국 내 국내적 합의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래지향적 정체성 일치는 현재로서는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이지, 당장 한일관계 갈등의 해소 해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그림1> 신정부의 차기 대일 정책 과제
https://www.yna.co.kr/view/AKR20170223077100014

오히려 2022년 한국 신정부가 직면할 한일관계의 핵심적 과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후속 조치, 즉 일본의 관련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의 현금화 과정에 대한 관리이다. 사법부의 후속 조치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모두 한국 행정부가 대응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대국적 갈등 해법의 추구보다는 우선은 갈등의 전염과 확산을 일단 막아내는 불확실성 관리에 대한 단기적 정책 고민이 급선무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권 11호 (2022년 1월 26일)

Tag:
한국, 신정부, 일본, 한일관계, 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저자소개

이정환(factnnorm@snu.ac.kr)

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저서와 논문

『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국제·지역연구』 (27권 1호,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아시아리뷰』 (9권 1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