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과학기술 경쟁력의 현황과 전망 (5)
한·중·일의 휴먼증강 기술 개발 동향: 21세기 거대한 재편의 시대

심진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21세기 전반부에 인류는 새로운 ‘거대한 재편(The Great Reset)’의 시대를 맞고 있으며, 정치·경제적 패권 경쟁의 범위가 디지털화 및 지능화와 관련된 첨단기술 분야로 확대되면서 미·중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국들이 치열한 기술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휴먼증강 기술은 증강인류의 시대를 열어주는 열쇠임과 동시에 첨단기술 패권 경쟁의 주요 대상이다. 이에 한·중·일에서는 휴먼증강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과학 기술적 성과들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향후 휴먼증강 분야에서의 글로벌 기술경쟁력 확보는 대한민국이 21세기의 새로운 거대한 재편 시대에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거대한 재편(The Great Reset)’의 시대

지난 12,000여 년 동안 현생인류는 가장 거대한 인류공동체인 문명(Civilization)을 일궈내고 발전시켜왔다. 물론 20세기 이후 크게 발전된 고고학·유전학·분자생물학 연구의 성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300~3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지만, 문명 등장 이전과 이후의 인류 발전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문명사가 가지는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문명은 일종의 유기체이며 시스템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 속에서 문명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해당 문명의 유기체적 시스템 역시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화하지 못한 문명들이 도태되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인류 문명사에서 존재했던 문명의 숫자는 대략 20여 개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의 문명이 사라졌고,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문명은 4개다. 바로 서양 문명, 중국 문명, 이슬람 문명, 현대 인도 문명이다. 이 가운데 현시점에서 가장 지배적인 문명이 서양 문명(Western Civilization)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는 서양 문명 시스템, 가령 정치제도(민주주의), 경제시스템(자본주의 경제), 의료·복지 시스템, 의식주 등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서양 문명이 문명사의 주류로 부각한 배경에는 큰 위기와 격변들이 있었다. 14세기의 흑사병, 16세기의 과학혁명, 17세기의 소빙하기에 따른 기후재앙, 18세기부터 진행된 산업혁명,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경제 대공황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서양 문명은 이러한 위기와 격변 때마다 시스템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발전을 거듭해왔고, 지배적인 문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21세기 전반부에 우리 인류는 또 한 번의 위기와 격변을 마주하고 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국제적 양적완화 현상,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미·중 간의 글로벌 패권 경쟁,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에 따른 격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림> ‘거대한 재편(The Great Reset)’의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갈림길

이러한 배경 하에 ‘거대한 재편(The Great Reset)’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을 비롯한 글로벌 석학들이 제시한 개념인데, 거대한 재편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인류 사회는 큰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그 변화를 기초로 새로운 경제 시장이 조성되고, 더 큰 발전을 하는 것을 거듭해왔음’을 말한다. 결국, 이 거대한 재편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국가, 기업, 개인의 운명이 걸려 있는데, 21세기 초반의 격변과 위기들이 새로운 거대한 재편의 시대로 인류를 이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경제·사회 시스템 재편의 원동력은 제4차 산업혁명을 추동 중인 첨단기술의 발전이며, 여기에 COVID-19 팬데믹이 맞물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경쟁 양상

왜 20세기 말부터 경제적 밀월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과 중국 간에 패권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굳이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나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 같은 설명을 곁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패권은 다른 국가와는 나눌 수 없는 것인데, 중국의 성장 속도가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정도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각자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사회·경제 문제들 때문에 외부로의 패권 경쟁과 애국주의로 시선 전환을 유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러스트벨트(Rust Belt)1)와 선벨트(Sun Belt)2) 지역의 산업구조 낙후화 문제, 산업과 금융 간의 공고한 카르텔, 만성 재정적자 문제, 인구구조 변화 등의 내부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 통제사회에 대한 불만, 신장·위구르 지역 등 소수민족 분리독립 요구, 홍콩 민주화 요구, 동부와 서부의 경제 격차 같은 내부적 문제들이 산적한 상황이다.

그래서 21세기 전반부의 패권 경쟁은 자칫 한 체제가 무너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경제·정치적 패권 경쟁의 양상이 첨단기술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단순히 기술개발 경쟁뿐만이 아니라 표준과 플랫폼 영역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더 이상 중국의 기술 추격을 방치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첨단기술 없이 하청 제조공장 역할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이 그만큼 단호한 것이다.

올해 미국 상원은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기술, 과학, 연구 분야에 향후 5년간 최소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으며, 과학기술 연구를 국가안보의 우선 사항으로 여기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산업을 구축하고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기술국을 신설하고 예산을 증액했다. 또한, 미국 국무부의 ‘클린네트워크’는 5G 분야에서 표준을 모색하는 정책으로, 중국을 배제하고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반중 경제연합체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가입을 촉구 중이며, 중국은 이에 대항하여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을 통해 자국 기술 표준에 동참할 국가들을 모색 중이다.

<표 1>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우선시하는 기술 분야

물론, 기술 패권 경쟁은 단지 최근의 사안만이 아니라 근대 이후 국제정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마다 늘 벌어지던 경쟁이었다. 다만, 그 경쟁을 주도하는 국가와 주요 경쟁 분야가 달라져 왔던 것인데, 21세기 전반부에 벌어지고 있는 기술 패권 경쟁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일 뿐만 아니라 유럽, 한국, 일본 등 글로벌 주요국들이 동시에 벌이고 있는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그 복잡성이 높다. 또한, 핵심 경쟁 분야가 디지털화 및 지능화와 관련된 첨단기술 분야인데, 우려스러운 점은 해당 기술들 대부분이 ICT 강국인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분야와 겹친다는 점이다.

한·중·일의 휴먼증강 기술 개발 동향

휴먼증강 기술 역시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경쟁의 주요 대상이다. 휴먼증강 기술은 21세기의 신인류라고 불리는 ‘증강인류(Augmented Humanity)’의 시대를 열어주는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증강인류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감각, 지능, 육체적 능력이 크게 향상된 인간들을 의미한다.

인간의 신체적·감각적·인지적 능력을 높이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종류의 증강 방법들이 개발되어 왔다. 가령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무술과 요가, 감각과 인지능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호흡법과 명상, 신체 역량을 보조하기 위한 단순한 의료기기들 역시 일종의 증강 방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이 이러한 휴먼증강 분야에 본격적으로 접목되면서 증강의 효과와 범위가 비약적으로 향상 중이다. 본고에서 다루는 휴먼증강 기술은 바로 이러한 디지털 휴먼증강 기술을 의미한다. 즉, 디지털 휴먼증강 기술이란 인공지능(AI), 정보통신 기술(IT), 생명공학 기술(BT) 등의 다양한 이종 기술 간 융합을 바탕으로 인간의 신체・두뇌・감성 능력의 저하를 예방하고, 회복 및 향상을 통해 지속적인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현재 글로벌 주요국들은 디지털 휴먼증강 기술의 개발과 선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중·일 역시 그 기술경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다음의 표는 휴먼증강 기술과 관련된 3국의 주요 국가정책 및 추진 방향과 기술개발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표 2> 한·중·일의 휴먼증강 기술 개발 동향

한국은 휴먼증강 기술을 미래 성장동력이자, 고령화 및 사회적 불안 같은 사회문제 해결의 유력한 대안으로 바라보면서 국가 차원에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주로 대기업과 대형병원들을 위주로 응용기술 성과가 창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뉴로모픽 컴퓨팅3)과 뇌과학 기술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국가 주도의 지능형 BCI(Brain-Computer Interface) 경쟁력 확보 및 사회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대규모 투자에 의한 성과 창출이 가시화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일본은 인간 중심 ICT 융합을 지향하면서 디지털 기술과 로봇 기술 등을 융합하여 산업 현장 적용과 사회문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한국과 일본이 주로 고령화 등의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응용기술 개발에 기반한 휴먼증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중국은 미국과의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의식하면서 뇌과학 중심의 기초과학역량 확보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증강인류 시대를 향한 도전과 우리의 과제

휴먼증강 기술의 진화 속도는 과학기술의 융합 시대를 맞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인류는 이미 휴먼증강 기술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과 편리성의 증대라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고, 2030년대 이후에는 증강인류와 기계인류(마키나 사피엔스)가 공존하는 시대를 보게 될 것이며, 21세기 내에 비약적인 수명의 증대로 인한 수명 선택의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필자는 증강인류의 등장에 따라 21세기에 ‘인간의 범위와 능력에 대한 탐구’로 대표되는 신(新)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으로 이미 전망한 바 있다.

21세기 전반부에 새로운 위기와 격변의 시기를 맞아, 한·중·일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국들은 증강인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첨단기술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과거 서양문명이 여러 차례의 거대한 재편 시대를 맞아 경제·사회 시스템을 혁신시키고 지배적 문명으로 도약해왔듯이, 21세기의 새로운 거대한 재편 시대에 우리 국가 시스템을 대전환하여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대한민국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약의 중요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휴먼증강 분야의 글로벌 기술경쟁력 확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1) [편집자 주] 미국의 중서부 및 북동부의 중공업 지대

2) [편집자 주] 미국 남부 주로 북위 36도 이하에 해당하는 일조량이 강한 지역

3) [편집자 주] 인간의 뇌 신경망처럼 뉴런과 시냅스로 구성된 뉴로모픽칩으로 인간의 두뇌 작동을 모사하려는 공학 분야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35호 (2021. 11. 28)

Tag: 거대한재편, 패권경쟁, 휴먼증강기술, 증강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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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심진보 (jbsim@etri.re.kr)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전략연구센터장, 충청북도 정책자문관(과학기술분야), 한국콘텐츠학회 상임이사/학술부위원장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경제연구그룹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

주요 저서 :
『포스트바디; 레고인간이 온다』 (공저) (필로소픽. 2019)
『대한민국 제4차 산업혁명』 (공저) (콘텐츠하다, 2017)
『신기술과 소비자이슈』 (공저) (한국소비자원. 2018)
『IT와 친구들』 (공저) (전자신문사, 2014)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편집위원장: 김용호 편집위원: 이명무, 정다정 객원편집위원: 김윤호 편집간사: 최윤빈 편집조교: 민보미, 이담, 정민기 디자인: 박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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