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100년의 궤적과 ‘중국의 길’ 독해법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년을 맞았다. 대전환의 시대에 다시 당의 지배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체제는 과거 100년을 혁명과 건설, 그리고 발전의 시대를 상대화하고 다가올 시대를 ‘신시대’로 부르고 있다. 이것은 시진핑이 개인적으로 이데올로기, 조직, 권력 등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00년의 역사를 비춰볼 때 중국공산당은 치열한 노선과 권력투쟁을 통해 개혁개방과 같은 업적, 당정분리와 집단지도체제라는 정치제도화를 쌓아 왔으나, 보다 보편적 지평으로 열려 있는 역동적인 체제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중국공산당 100년의 궤적은 미래 중국의 창과 거울이다.

한 정당이 100년을 지속하는 것은 흔치 않다. 더구나 탈냉전 이후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9천 5백만 명의 공산당원을 보유한 단일정당이 혁명당에서 통치당을 거쳐 집권당(執政黨)으로 발전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국공산당은 크게 보면 혁명 30년, 건설 30년, 발전 30년을 거쳐 ‘신시대’에 이르는 100년의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세계사적 대전환과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시진핑체제는 ‘사회주의 정체성’을 호명하고 있다. 이것은 혁명과 개혁, 그리고 발전의 역사를 ‘상대화’하고 사회주의에 기초한 재조직과 함께 ‘강제로 열린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부국강병을 다시 기획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환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당성을 강화하겠다는 정치 공학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태우다: 혁명의 시대

100여년 전,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분위기는 중국에도 널리 전파되었다. 20세기 초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봉건주의, 제국주의,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통질서의 성격에 대한 논쟁, 자강과 변법의 실험, ‘문제와 주의’ 논쟁 등을 거치면서 점차 사회주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했다. 후난(湖南)의 당대표였던 마오쩌둥도 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조직의 열세로 인해 국민당의 강력한 지배 블록을 현실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국민당 내의 분파로 활동했고, 국공합작과 같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꾀했다. 특히 1934년에서 1935년까지 18개의 산맥을 넘고 17개의 강을 건넜던 1만 2,500km에 걸친 ‘대장정’은 공산당 조직노선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대 전환이었고, 또 마오쩌둥의 지배권 회복, 마르크스를 중국화하는 변곡점이었다. 이처럼 중국혁명의 성공 요인은 국민당의 부패와 실정, 국민혁명 과제의 불철저한 인식에 대한 거울 효과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농민 대중의 자발적 지지, 현장에 뿌리내린 사회개혁의 실험, 유연한 전략과 전술, 다양한 계층과 계급연합, 그리고 무엇보다 세력의 정치라는 시대흐름을 장악한 결과였다. 경제결정론 대신 인간의 의지를 믿었던 마오쩌둥의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anism) 세계관도 이러한 중국혁명의 현장에서 발아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국혁명은 이후 공산당의 역사적 합법성을 지탱하는 근거가 되었다.

1949년 10월 건국을 계기로 중국은 당대사(當代史)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사회주의적 법적 개조를 서두르지 않고 ‘과도기’를 설정해 신민주주의 과제를 수행하고자 했다. 신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주의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단계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주도세력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수행되어야 할 과제를 수행하는 절충적인 것이었다. 건국 직후 토지개혁 속에서도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삼아 일종의 소농경제를 실험한 것도 점진주의(gradualism)와 점증주의(incrementalism)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소분쟁 등 사회주의 진영 내의 갈등, 국내경제 현실과 유리된 과도한 열정 속에 국가건설의 경험이 축적되기도 전에 ‘단번 도약’을 추구한 맹진(猛進)이 나타났다. 당시 이데올로기는 모든 정책영역에서 ‘보이는 손’으로 작용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도 수정주의, 관료주의, 자본주의의 복벽(復辟)을 막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통한 ‘계속혁명’이 필요하다는 계급투쟁의 논리였다. 이처럼 중국의 혁명과 초기 건설의 시기에는 혁명적 에너지가 사회 전반에 관철되면서 실사구시적 논의를 압도했으나 쉽게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국가발전 과제는 개혁개방을 통한 발전의 시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발전의 시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공산당은 1978년 12월에 제2차 혁명의 시작으로 불리는 제11기 3중전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당시 이데올로기와 중국의 존재 방식 및 사회주의 운행 기제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과 노선투쟁을 거쳐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이라는 개혁개방의 기치를 걸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 생산양식을 독자적 사회구성체로 간주하고 생산력 발전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두는 일국사회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은 ‘대내적 개혁’과 ‘대외적 개방’의 시작이었다. 마오쩌둥 사후 새로운 지도부는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대외개방을 추진했으며, 이를 방해하는 국내정치의 걸림돌을 제거해 나갔다. 사상해방운동이 등장하는 등 계몽의 시대가 열린 것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자본의 원시축적이 취약한 중국의 현실에서 대외개방이 대내 개혁을 이끌어 갔다고 볼 수 있으며, ‘책임제’ 또는 ‘청부제’라고 불리는 ‘농업생산책임제’에서 시작한 농촌개혁 또한 도시개혁으로 옮겨갔다. 이를 위해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의 함의를 유연하게 해석하면서 적시에 이런 해석을 현실에 공급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어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전선을 모두 진두지휘했으며, 권력 내부의 노선투쟁과 권력투쟁마다 균형추 역할을 했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짧은 조정기를 거친 후 개혁개방을 재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전략적 구상때문이었다. 특히 1992년 1월 남쪽을 순례하면서 말한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는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당시 그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기준은 계획과 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과 국민 생활의 개선에 있다고 보았다. 특히 우편향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좌편향이고, ‘발전이 이치에 맞으며’ 가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실제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당강령에 반영하면서 움츠려 들었던 개혁공간을 제도화했다.

그리고 공산당의 구조와 기능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2년 공산당은 노동자, 농민과 함께 선진생산력인 붉은 자본가(red capitalist), 선진분자인 지식인을 함께 대표한다는 ‘3개대표’ 중요사상을 제시했다. 또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국제경제 질서에 스스로 걸어들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개혁개방이 본격화되고 여기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목격하면서 체제 자신감으로 무장한 중국의 밀레니엄 세대들에게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정서가 배태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피 묻은 GDP’로 불리던 양적 성장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적 발전관’을 헌법과 당장(黨章)에 반영하면서 포용적 발전노선을 추구했다. 중국이 국가전략에서 ‘성장’을 ‘발전’으로 대체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태환경이라는 5위 1체를 제시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레닌주의적 정치체제, 국가가 시장에 깊이 개입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촘촘한 사회관리 시스템에 기초한 중국모델이 특권, 부패, 지대추구 등 사회적 모순을 온축(蘊蓄)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권력과 자본의 지대추구 행위가 구조적 부패로 전환하는 고리를 끊고, 공익성 시장경제와 민생정부를 건설하지 않는 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대전환의 시대, 다시 사회주의를 호명하다: ‘신시대의 도전

2017년 제19차 대회에서 공산당은 구시대와 절연하는 신시대를 선포했다. 공산당 창당의 초심을 잃지 않고, 이를 강국의 꿈에 접맥해 ‘중국의 꿈’을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공산당은 이러한 신시대의 논거를 마련하기 위해 위기관리, 탈빈곤 등 사회적 개혁과제의 성과, 경제적 회복 탄력성, 미·중 전략경쟁에서 보여준 중국식 결기(骨氣), 대중의 체제만족도 등을 결합해 업적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시대의 주요모순은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美好生活)에 대한 갈수록 늘어나는 수요와 불균형적이고 불충분한 발전의 간극”에 있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는 데 주력했다. 구체적으로 첫째,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동 부유의 사회주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일례로 공산당은 도농간, 지역간, 소득간 격차에 이어 디지털시대의 정보와 교육격차의 극복에 주목했다. 최근 과외금지 조치와2차분배론을 제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둘째,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거나 적응하는 것을 넘어 신형국제질서의 수립을 통해 핵심이익의 수호에 관한 한 강력한 대응을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 만연한 기득권, 부패, 권력유착(權貴)이라는 국정농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사회 영역에서 공산당의 지배권을 관철해 국민들이 ‘획득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중국식 세계화의 모색이다. 이를 위해 전면적 대외개방을 통해 국제협력의 플랫폼을 만들고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공생이론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이른바 신시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위로부터의 기획이다. 특히 시진핑 체제는 새로운 시대적 전환을 과거의 방식으로 독해하고 있다. 우선 “모든 조직은 당에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는 당국가 체제로의 복귀를 선택했다. 이것은 당과 정부의 분리, 권한의 이양, 집단지도체제의 관례화, 인치에서 법치로의 전환 등 덩샤오핑시대의 오랜 정치개혁의 방향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동안 격대지정(隔代指定) 속에서 만들어진 지도자 선출의 관례를 벗어나 강력한 지도자가 과도기적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중국정치에서는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졌고 원로정치가 제도정치 바깥으로 밀려났으며,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과는 달리 중국 공산당원의 수는 안정적으로 늘고 있다. 또 대중 수준에서 체제의 구심력이 원심력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합법성의 위기가 미약하며, 중국식 당국가 체제 자체도 역사에서 배태(embedded)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식 당국가는 수용도가 높은 익숙한 체제이다. 그리고 ‘하나의 중국, 네 개의 세계’라는 말처럼 중국의 지리, 역사적 경험의 차이, 생활과 생산방식의 차이, 혼란에 대한 공포와 같은 정치문화 등을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또 중국은 아직도 도시화율이 65%에 불과하며, 농업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형 개방경제’ 노선을 채택한 결과 여전히 성장여력(vacancy)이 있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 19 이전부터 실험했던 비대면 경제에 힘입어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으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양자컴퓨터, 사물인터넷, 5G를 결합한 과학기술을 통해 게임체인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가 공산당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공산당이 사회주의 해석권을 독점함으로써 공산당 견제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적 민주화 없는 정치적 제도화, ‘민주’ 없는 집중제, 민주주의 없는 현능주의(meritocracy)만으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특히 집단지도체제 시스템이 약화되면서 권력계승 방식에 대한 합의가 흔들리고 있고, 협상 민주주의와 당내 민주주의도 실질적으로 기능을 잃고 있다. 학계, 산업계, 예술계는 강화된 검열체제 속에서 자율성이 크게 제약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의 위기, 일자리 문제 등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 성장하기도 전에 늙어가는 중위인구의 질, 감시사회의 피로, 추상적인 이익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익을 배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난제들이 쌓이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지루한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노동과 여성의 지위향상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새로운 100년은 동원의 수사에 그칠 것이다. 실제로 ‘일어서고, 부유해지고, 강해진’ 이후 미래기획의 불명확성,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수행할 주체의 문제, 지연된 경제적 재균형 목표체계의 수립, 탈패권 기획, 경쟁으로 내몰린 삶의 터전을 복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 시민사회를 포용하는 민간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제 등으로 인해 중국은 구조적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7호 (2021년 10월 4일)

Tag: 신시대, 시진핑, 중국공산당, 신형국제질서,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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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희옥 (leeok@skku.edu)

(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성균중국연구소장
(전) 현대중국학회 회장, 일본 나고야대학 특임교수

 

주요 저서:

『중국의 국가 대전략 연구』 (폴리테이아, 2007)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 (창비, 2004)
『중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탐색』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4)
『궐위의 시대: 미국과 중국이 사는 법』 (편저). (선인, 2021)
『중국의 길을 찾다: 한중학계의 시각』 (공저). (책과함께, 2021)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편집위원장: 김용호 편집위원: 이명무, 정다정 객원편집위원: 김윤호 편집간사: 최윤빈 편집조교: 민보미, 이담, 정민기 디자인: 박종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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