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시아의 미래와 전략 (3)
일본의 아시아정책: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의 전개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현재 일본이 추구하는 아시아전략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목표로 전개되고 있다. 이를 위해 미일동맹의 강화, 인도-호주-아세안 국가와의 연계와 협력 강화, 영국과 프랑스 등 역외 국가들과의 연계 협력 추진,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 확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로 인해 서로 모순될 수 있으나 일본은 미중 외에 다른 나라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중 사이에서 일본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정부 출범 후 한미일 관계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 대만문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을 매개로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바, 한국은 미일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쿼드(QUAD)에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후 일본의 아시아정책이 지나온 경로

전후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시도한 1977년의 ‘후쿠다 독트린’에서 출발한다. 이어 1979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수상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한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했다. 이후 일본의 아시아 외교는 1980년대에는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역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에는 미일동맹이 돌출되지 않도록 아시아 외교로 균형을 잡으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수상 시기인 2000년 1월 발표된 ‘21세기 일본의 구상’에 잘 나타나 있었다.

민주당 정부 초기,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 시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급격하게 진화했다. 2009년 1월 하토야마 수상은 태국 후아힌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제창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의구심을 제기하여 미일동맹이 ‘표류’하는 가운데 중국이 군사적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2010년에는 중일 간 GDP 역전이 일어났고, 같은 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의 충돌 사건은 일본인에게 중국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이래 아시아 정책의 중심은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개념에 입각한 구상으로 대체되었고, 미일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기 시작했다. 아베 내각이 정식화했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은 민주당 정부 시기 추진했던 ‘동아시아공동체’ 외교의 반동으로 나온 것이었다.

한편 탈냉전 이후 일본 외교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일본은 해양 아시아에 산재하는 섬 국가들과는 1997년 이래 ‘태평양・섬 서미트(Pacific Islands Leaders Meeting)’라는 지역협력 구상을, 아시아 내륙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2004년 이래 ‘중앙아시아+일본 대화’를 제창하여 주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아시아 정책은 아니지만, 일본이 1993년부터 개최하는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는 위의 ‘태평양・섬 서미트’와 함께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제시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일본 대화’는 제1차 아베 내각 당시 외상이었던 아소 다로(麻生太郎)가 제시한 ‘자유와 번영의 호(the arc of freedom and prosperity)’ 구상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의 또 다른 기원이 되었다.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의 전개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 외무성이 발간하는 『외교청서(外交青書)』 2017년판의 특집,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에 처음 등장했다.

아베 수상은 2016년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케냐에서 개최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VI)에서 실시한 기조연설을 통해 그 기본 구상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즉, 인도태평양 전략은 성장이 현저한 아시아와 잠재력이 풍부한 아프리카를 중요지역으로 규정하고, 2개 지역을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연결한 지역 전체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자유무역과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여 경제권을 확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지만, 안전보장 면에서의 협력도 그 목표 중에 하나로 설정되어 있었다. 법의 지배에 기초한 해양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거점화를 추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림 1>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

출처: 外務省, 「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 2018.12.20.」 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30632.pdf

그 구체적 내용은 고노 다로(河野太郎) 당시 외상이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발언을 통해 제시되었다. 첫째, 항행의 자유, 법의 지배 등 기본적 가치의 보급 정착, 둘째, 인프라 정비 등을 통한 연결성의 강화 등에 의한 경제적 번영의 추구, 셋째, 해양법 집행 능력의 향상성 지원과 방재 등을 포함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 그것이다. 고노 외상은 이 전략이 특정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특정한 구상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이었다.

<그림 2> 일본의 연결성 구상

출처: 外務省, 「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 2018.12.20.」 https://www.mofa.go.jp/mofaj/files/000430632.pdf

일본 정부가 인도태평양 구상을 처음 천명한 것은 2016년 아베 수상의 케냐 연설을 통해서였으나, 그 기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2015년 3월 일본국제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인도태평양 시대의 일본 외교: 중견국 및 스윙국가에 대한 대응(インド太平洋時代の日本外交−Secondary Powers/Swing Statesへの対応)』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 메시지는 간결하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 Area-Denial) 전략에 맞서 해양에서 일본의 기존 국익을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한 중국의 해양진출을 계기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중간지대로써 인도태평양 지역개념이 등장하고 있다고 보고, 이 지역에서 미국과의 협조를 통해 일본이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베트남 및 필리핀 등 스윙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나설 것을 제언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6월 일본국제포럼(日本国際フォーラム)에서 진행된 공동연구 보고서 『신단계 미일동맹의 그랜드 디자인(新段階の日米同盟のグランド・デザイン)』은 일본이 ‘자유롭고 열린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나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일본 세계평화연구소에서 실시된 공동연구 성과인 『희망의 미일동맹(希望の日米同盟)』도 해양국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타오카 싱이치(北岡伸一)와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 등 아베 수상의 외교안보 브레인이 대거 참여한 이 보고서에서는 일본의 안보 목표가 ‘해양국가로서 자유와 법의 지배라는 가치관, 항행자유 원칙을 옹호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정책보고서가 기반이 되어 2016년 아베 수상의 케냐 연설이 나왔고, 이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은 일본 외교의 간판이 되었다.

목표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은 ‘전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수단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아직 전략의 지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정책 수단으로 광역 연결성 추진, 인재양성, 인간 안보와 취약국 지원, ‘힘에 의한 정치(power politics)’의 관리, 광역 다자 외교의 모색, 통합적 정책 형성과 착실한 실시체제 구축 등이 모색되고 있으나, 아직도 체계적인 전략으로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체상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이러한 구상이 중국의 일대일로와 경합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태도도 이를 전략이나 구상으로 부르지 않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2017년의 『외교청서』에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등장했던 이 구상은 2019년부터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고만 표기되어 있어서, 전략이라는 용어가 폐기되었다.

쿼드(QUAD)의 등장과 바이든정부 출범후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전략에서 구상으로, 그리고 단순한 지역개념으로 변화하는 이면에서 미국과 일본, 인도, 호주가 협력하는 쿼드(QUAD, 4자협의체)가 구체화되었다. QUAD는 미일안보조약에 더해 아베 1차 내각 때인 2007년 3월에 발표된 일본-호주 안보공동선언과 이듬해 발표된 일본-인도 안보공동선언이 제도적 기초가 되었으며, 2015년 7월 미국과 호주의 합동훈련에 자위대가 처음 참가하면서 안보협력의 틀로 발전되어 왔다. 2019년 9월 뉴욕에서 제1회 미일인호 4개국 안보대화가 개최되었으며 2020년 10월에는 제2회 대화가 개최되었다.

아베의 외교 노선을 계승한 스가 내각도 기본적으로 QUAD 협력에 적극적이지만, 내각 출범 직후에 개최된 작년 10월의 제2회 대화에서는 대중 강경책을 주장하는 미국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은 QUAD 플러스, 아시아판 나토 등을 내걸고 한국의 참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스가 수상은 아시아판 나토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확언하여 QUAD 확대가 미국과 일본의 일치된 의견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다만 수상 부임 후 최초의 해외 방문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였다는 사실은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을 계승한다는 점을 국내외에 확인하는 행보로 인식되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직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둘러싸고 미일 간에 간극이 발생해 양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긴장하는 일이 있었다. 2020년 11월 12일, 스가 수상과 바이든 당선인 사이의 전화회담에서 바이든이 ‘안전하고 번영하는(Secure and Prosperous)’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 용어를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바이든이 일본보다 중국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표면화되었다. 이틀 후인 11월 14일에는 아세안+3 정상회담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스가 수상이 ‘평화롭고 번영된 인도태평양’을 함께 만들고 싶다고 표명함으로써 바이든 당선인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 온도차를 보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배려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 측에서는 반대 방향에서 이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2월 7일 제5차 아미티지·나이(Armitage·Nye) 보고서가 발표되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 실현을 위한 미일동맹 강화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2021년 1월 28일에 이루어진 두 번째 미일 정상 전화회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언급함으로써, 용어를 둘러싼 이견은 수습되었고 일본 측은 안도했다.

역외국가와의 협력 강화

한편 바이든 등장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 접근이 강조되는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적극적인 관심이 확인되고 있다. 동시에 일본과 유럽 국가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와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지난 2월 3일에는 영일 2+2가 실시되었으며, 4월 6-7일에는 미일인호+프랑스의 공동훈련이 실시되었다. 3월 12일에는 QUAD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공동성명이 채택되었고, 4월 6-7일에는 미일인호 4개국에 더해 프랑스가 참가해서 해상 공동훈련이 실시되었다. 프랑스가 주도하고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해서 실시되던 해상공동훈련 ‘라 페루즈(La Perouse)’에 인도가 처음 참가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4월 26일에는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의 인도태평양 해역 파견 방침이 발표되었고, 5월 10일에는 일본과 EU(이탈리아+스페인), 지부티의 공동훈련이 아덴만에서 실시되었다. 5월 11-17일에는 일본 규슈 지역에서 미일의 합동훈련에 프랑스가 참가하여 미일불의 공동훈련이 실시되었다.

이와 같이 바이든이 주도하는 동맹 복원, 다자주의 접근의 경향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인도태평양으로의 복귀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인도태평양의 새로운 경향이다. 영국은 2010년 이후 바레인과 오만 등 걸프 연안 국가들과 시설이용협정을 체결하고 인도양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키고 있다. 디에고가르시아섬, 차고스 제도 등이 영국령이라는 사실은 인도태평양에 해군력을 전개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영국은 2018년 3월 외교부 문서에서 인도태평양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 레위니옹섬, 뉴칼레도니아섬 등 인도양 남서부와 남태평양에 자국 영토가 존재하며, 이에 거주하는 약 160만 명의 프랑스 주민과 45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 900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방위를 위해 4,000명 이상의 프랑스군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는 2019년 5월 인도태평양과 관련한 전략문서를 발표했다. 2020년 9월과 11월에는 독일과 네덜란드가 인도태평양 지침 또는 전략을 발표했으며, EU 차원에서는 올 9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할 예정이다.

미중경쟁에 대한 일본의 전망과 정책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일본의 정책 그룹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의 새로운 전개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이 미중전략경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향후 전망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일부에서는 미중 대결이 많은 국가에 양자택일을 강요하여 국제질서가 양극으로 분화할 것이라는 ‘양극화’의 리스크를 지적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정치의 ‘다극화’ 경향을 강조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호소야 게이오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세계에서 미중 이외에 일본과 EU 국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강조하며, 다원적 세계관을 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전문가들에게 국제정치의 현실은 양극화 리스크와 다극화 경향이 공존하며 혼재(hybrid)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 내각에서 펴낸 『방위백서』에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보다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친 대만파로서 중국에 강경한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 체제 하에서 발간된 2021년판 『방위백서』에는 미중관계에 관한 항목이 새로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대만문제, 그리고 홍콩,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문제 등이 언급되어 있고, 이를 둘러싸고 미중 간 상호견제 움직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일본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미국과 함께 보다 분명한 태도로 중국 문제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그 경우 대만문제에서 일본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조직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외교 행태에도 맞지 않고, 미중의 전략경쟁 구도를 보아서도 신중한 행동이 요구된다는 주장들이다. 전통적으로 전후 일본의 외교는 미일동맹과 중일관계 사이의 균형 추구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대중 접근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일관계의 안정과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기초한 다자협력을 추구해 왔다. 2000년대에 아세안+3,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을 실현하는 데서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존재감을 키워가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역내 자유주의 다자협력을 제도화하고 중국을 이에 순응하게 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미일동맹의 견지, 중일관계 안정화, 다자협력의 추진을 세 기둥 으로 하는 대중 접근은 정치주도의 가치관 외교를 적극 전개한 아베 내각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가령 인도태평양 전략을 정식화했던 2017년 아베 수상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 일대일로와 관련한 협력 관계 구축을 요청하면서 정상 간 상호방문에도 의욕을 보였다. 2018년 10월에는 아베가 직접 방중해서 중일 양국이 제3국에서 인프라 정비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오사카 G20에서 아베 수상은 중국이 ‘고도의 인프라 투자 원칙’에 합의하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다자협력의 틀을 통해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그 동안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전략에서 구상으로, 그리고 다시 지역개념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무산되었지만 2020년 4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일을 실현시켜 중일관계 안정화의 마지막 수순을 밟을 예정이었다.

한편 스가 수상도 첫 외유지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도 아시아판 나토 결성의 의도가 없다고 확언하여 중국에 배려하고 있었다. 직후 소신표명 연설에서는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양국만 아니라 지역 및 국제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즉, 미국이 중국과 대결을 전면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은 중국과의 협력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미국의 대일 안보 관여에 대한 일본인의 의구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특히 2010년 중일이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서 충돌한 뒤, 미일안보조약에서 중국의 위치가 변했다. 즉 미일안보조약이 일본의 ‘영토’를 지키는 데 적용되는지 여부가 중요해졌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센카쿠 열도에 미일안보를 적용해서 안보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염소의 섬’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을 일본의 전쟁에 연루시키는 일’을 전략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 냉전기 동맹의 딜레마는 일본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동맹의 딜레마 앞에 서게 되었다. 이 딜레마를 해소한 것이 2021년 4월 미일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공동성명, “새 시대를 위한 미일의 글로벌 파트너십”에서 언급된 대만문제였다. 미일의 공동성명에서 대만문제가 언급된 것은 1969년 사토-닉슨 회담 이래 처음이며, 당연히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에 미국을 묶어 놓겠다면, 미국은 일본을 대만에 묶어 놓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미일동맹에서 대만문제가 차지하는 맥락이 한미동맹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논의를 요약하면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첫째, 미일동맹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하고, 둘째, ‘다극 아시아’를 기대하는 인도, 호주, 아세안 국가와의 연계 협력 강화를 부차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셋째, 영국 프랑스 등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마지막으로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 확립이라는 목표도 선택지로 남겨두고 있다. 이 가운데 첫째 목표와 마지막 목표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서로 모순될 수 있으나, 둘째 및 셋째 목표를 실현하는 것으로 미중 사이에서 일본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일본이 추구하는 목표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한국이 이에 관여하고 협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가할지 여부를 놓고 한국 정부가 혼선을 보였던 2017년 연말 시점과는 다른 상황이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전략의 지위에서 단순한 지역개념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된다. 역사에 가정은 금물이지만, 만일 그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인도태평양 구상에 적극 가담했더라면,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며, QUAD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 전략대화가 되어 대중 포위망의 아시아판 나토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바이든 정부 들어 한미일 협력도 복원되고 있다. 지난 4월의 미일공동성명과 5월의 한미공동성명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일 3국은 각기 하나의 의제를 내 놓고 두 개의 숙제를 받은 모양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만문제’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과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과 미국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로 ‘대만문제’를 받아들이고, 일본의 요구로 ‘인도태평양’ 구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과 일본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과와 그 지속’을 인정하게 했다. 이는 냉전 시기 위계적 분업으로 형성된 한미일 안보협력과는 구조와 내용을 달리 하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 하에서 복원되는 한미일 협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속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를 통해 미중이 만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한국 외교가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숨어 있다.

인도태평양 구상은 2016년에 처음 제시되고 2017년에 정식화되어 이미 5년째를 맞이하는 시점이지만 `아직 전략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한국이 이에 관여하는 것으로 새로운 내용을 채워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 과정에서 한미일 협력이 복원되고 강화될 수 있다. 다만 이는 과거 냉전 시기의 한미일 협력과는 다르다. 오히려 인도태평양을 무대로 하는 한미일 협력으로 한반도가 미중 및 중일 사이에서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중국과 북한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만문제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에서 지니는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여, 대만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협력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QUAD 참여는, 비록 일본이 소극적이라 해도, 미국의 의도에 따라서는 대중 포위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구상과는 분리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의 신뢰 회복과 소통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운신할 폭을 확대해 줄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1권 22호 (2021년 8월 31일)

Tag:인도태평양전략/구상, 일본의아시아정책, 쿼드(QUAD), 미일동맹, 한미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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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남기정(profnam@snu.ac.kr)

현)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외교부 혁신이행자문위원
전) 현대일본학회 회장(2019년도), 외교부 자문위원

 

저서와 논문:

『일본의 국가정체성과 동북아 국제관계』, (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19)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와 한일 관계의 대전환: ‘장기 저강도 복합 경쟁’의 한일관계로”, 『동향과 전망』 (112호, 2021).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관계: 한일냉전의 기원으로서 ‘제4조’ 문제”, 『한국과 국제정치』 (36권 3호, 2020)

“Linking peace with reconciliation: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Seoul-Pyongyang-Tokyo triangle”, Asian Education and Development Studies (Vol. 8, No.3, 2019)

“Is the postwar state melting down?: an East Asian perspective on post-Fukushima Japan”,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20, No.1. 2019)

발행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 발행인: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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