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조선일보·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광복70년 국민의식조사] [中] 경제 분야
미래에 대한 전망 나빠져… 70%가 “빈부격차 심해질 것”
광복 후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경제는 역동성 그 자체였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큼 낙관론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잠재 성장률이 뚝뚝 떨어지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데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본지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광복 70주년 국민의식조사’ 경제 부문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론이 낙관론을 압도했다. 지금보다 경제 여건이 나빠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가 나아질 것으로 예측한 사람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10년 후 국내 산업이 활성화되고 실업자가 줄어들 것이다’고 답한 비율은 37.0%에 그쳤다. 반면 응답자 가운데 63.0%는 ’10년 후 국내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10년 전 같은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54.7%가 ‘산업이 활성화되고 실업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낙관했고, 경제 비관론을 편 사람은 45.3%에 그쳤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10년 전보다 늘었다. 10년 전 조사에서도 빈부격차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68.8%)이 그렇지 않은 시각(31.2%)의 2배를 넘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비관적 응답이 더 늘어나 응답자의 70.6%가 ’10년 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빈부격차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29.4%에 머물렀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경기가 좋았던 2005년과 달리 올해는 중국발 위기 등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접어든 점, 가계와 기업 간 소득 격차가 커지는 점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직업이 안정적인지를 묻는 질문에, 10년 전만 해도 ‘안정적’이라고 답한 사람(51.7%)이 불안정하다고 답한 사람(48.3%)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더 높아졌다. ‘내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40.7%에 그쳤고, 59.3%가 ‘내 직업이 불안정하다’고 답했다. 불안정하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는 20대와 50대 이상 응답자가 30~40대보다 많았다. 단국대 경제학과 김태기 교수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더 어려워졌고, 중장년층은 은퇴 압박을 받는 현재 노동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하면 떠오르는 것
59%가 “풍요·효율·기회”, 26%는 “빈부격차·부패”
“재벌 규제 강화해야 한다” 8년前 52%서 63%로 늘어
대기업의 경제 기여에 대해 54%가 “긍정적으로 생각”
우리 국민은 이전보다 대기업의 경제 기여도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 재벌 개혁 필요성은 더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 운용에서 정부의 입김을 줄이고, 민간의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면서도 주주의 기업 감시 강화와 정부의 적절한 개입도 주문했다.
이는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강명구 교수)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 분야 국민 의식을 조사한 결과다. 조사는 지난 6월 12일부터 30일까지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성인 1000명을 일대일 방문 면접해 실시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명예교수, 이재열 교수, 김석호 교수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 등 아시아연구소 연구진이 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국민 63% “재벌 규제 강화해야”
이번 조사에서 국민 59.3%가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본주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더니, ‘물질적 풍요'(45.8%), ‘효율성'(7.5%), ‘풍부한 기회'(6.0%)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꼽았다. 국민의 25.8%는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빈부격차'(14.6%), ‘부정부패'(10.9%), ‘착취'(0.3%)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렸다. 국민의 14.9%는 ‘경쟁’이 연상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경쟁은 개인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국민은 74%로, 10년 전 조사 때(89.9%)보다 줄었다. 청년 실업과 양극화 확대의 좌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국민 경제 기여에 대해서는 54.4%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1996년 비슷한 조사에서 14.9%만 ‘긍정적’이라고 답했던 것보다 평가가 크게 좋아졌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도약한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27.3%(2005년)에서 18.8% (2015년)로 낮아졌고, 재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52.4% (2007년)에서 63.7%(2015년)로 높아졌다. 현 정부에서 공정거래법 강화 등 조치를 했음에도 국민은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필요성에 찬성하는 의견이 53.9%에 달했다.
◇“재벌 개혁, 시장 주도로 이뤄져야”
다만 대기업 개혁 주체에 대해서는 ‘시장 원리에 따라 주주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구체적으로 ‘기업 경영을 누가 감독, 참여해야 하나’란 설문에서 ‘최대 주주’라는 응답이 54.8%(2005년)에서 56.9%(2015년)로 늘어났고, ‘채권자’도 11.2%에서 17.0%로 늘었다. 반면 ‘직원’이라는 응답은 57.6%에서 32.0%로 크게 줄었다. 이는 주주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영미식 자본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현상과 관련 있어 보인다.
2005년에는 유럽형 모델(이해관계자 중심)이 31.0%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올해는 18.5%로 축소됐다. 반면 영미형 모델(주주 중심) 선호는 25.0%에서 33.2%로 확대됐다.
경제 운용을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73.8%에 달했지만, 동시에 정부의 기업 경영 감독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이 16.6%(2005년)에서 20.6%(2015년)로 늘었다.
◇“선별적 복지 하고, 증세는 피해야”
국민은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 부담을 줄이고, 증세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가 ‘정부 책임’이라는 의견은 10년 전 79.6%에서 59.5%로 줄었고, ‘개인 책임’이라는 답이 20.4%에서 40.5%로 늘었다. 선별적 복지에 반대(보편적 복지에 찬성)했던 47.5%가 30.1%로 줄었다.
동시에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반대하는 의견이 33.0%(2007년)에서 41.6%(2015년)로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