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조선일보·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광복70년 국민의식조사]  사회 분야

[광복70년][조선일보·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광복70년 국민의식조사] <下> 사회 분야

20代가 공교육 가장 불만족

본지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공동 실시한 ‘광복 70주년 국민 의식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도가 61.6%로 나타났다.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도는 세대별로 20대에서 가장 높았고,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가 ‘교육 기회 평등을 위한 평준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에 대해서는 30년 전을 100으로 보았다면 지금은 66으로 가치가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교육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1.6%로 ‘만족한다’는 38.4%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약간 만족하는 편이다’ 또는 ‘매우 만족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세대별로 20대 31.7%, 30대 33.4%, 40대 33.1%, 50대 39.8%, 60대 이상 51.8%였다. 연령이 젊을수록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또 학력 수준이 높고, 응답자가 주관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계층이 낮다고 생각하고, 가치관이 탈(脫)물질주의에 가까울 때도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도는 높게 나타났다.

국민은 교육 분야에서 경쟁보다는 평준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기회 평등을 위해 평준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63%,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경쟁 요소를 도입하자’는 응답이 37%였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위해 평준화를 강화하자’는 응답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조기유학 필요” 51%
10년 만에 19%P 급감… 유학비용에 비해 효과 적어
“사회보다 개인이 우선” 66%
개인주의 사고 급격히 증가… “결혼은 필수” 15%로 감소세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자녀를 조기 유학을 보내기보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사회나 가족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개인주의 가치관’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자식이 부모를 반드시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줄어들고 있다.

이는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강명구 교수)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사회와 가족 가치 분야에 대해 국민 의식을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 12일부터 30일까지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성인 1000명을 일대일 방문 면접해 실시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명예교수, 이재열 교수, 김석호 교수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 등 아시아연구소 연구진이 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광복 7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11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빅루프(big-roof)에 달린 2만3000개 LED 조명이 태극기 모양으로 빛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민 의향’ 10년 만에 급감

이번 조사에서 국민 30.3%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민(移民)을 갈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민 갈 의향이 있는 국민은 1986년 24.8%, 2001년 35.5%, 2005년 46.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10년 만에 15%포인트가량 크게 줄어든 것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이민 의향이 있는 국민은 전 세대에 걸쳐 모두 줄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민 의향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을 때 국민이 이민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갈등 요소가 많기는 해도 과거에 비해서는 경제가 확실히 질적·양적으로 안정됐다”며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해외 이민을 택하기보다 ‘어떻게든 우리나라에서 잘 해보자’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낼 마음이 있다’는 국민도 2005년 69.8%, 2006년 55.6%, 2015년 50.9%로 꾸준히 감소 추세다. 조기 유학에 드는 비용에 비해 취업이나 사회 적응 부분에서 효과가 작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응답은 2010년 85.7%에서 72.3%로 감소했다.

◇개인주의 가치관 급증

집단(사회)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2005년 41.9%에서 올해 66.3%로 급격히 증가했다. 또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진 국민(66.3%)이 집단주의적 사고(33.7%)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국민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실 의무가 있다’는 점에 국민 42%만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부양 의무에 찬성하는 국민은 1996년 67%에서 2005년 58%, 올해 42%로 급감하는 추세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자율성과 지위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식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여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편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동의하는 국민은 20년 전 44%에서 올해 24%로 줄었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도 갈수록 약해져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매우 찬성하는 국민은 1996년 22%에서 올해 7%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식을 위해 이혼은 안 해야 한다’는 국민은 2005년 64%에서 10년 만에 절반 수준(35%)으로 감소했다.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을 가진 국민도 2006년 25.7%에서 올해 14.9%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다.


개인 차원에선 ‘세월호’ 꼽아

우리 국민은 ‘우리 민족이 광복 이후 겪은 가장 큰 사건’으로는 6·25전쟁(39.7%)을 으뜸으로 꼽았다. 8·15 광복(15.9%)이 그다음을 차지했고, IMF 외환 위기(12.1%)와 세월호 침몰(7.2%), 5·18광주민주화운동(6.4%), 88올림픽(5.8%) 등이 뒤를 이었다. 2005년 조사 때도 6·25전쟁(46.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2위는 광복 그 자체(7.5%)로 조사됐다.

‘개인이 직접 경험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침몰'(37.9%)을 꼽았다. 이어 IMF 외환 위기가 23.1%, 천안함 사건 및 연평도 포격 10.2%, 월드컵 4강 진출이 9.3%로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주요 사건 중 세월호 침몰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 응답률이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외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꼽은 이들은 6.8%, 88올림픽과 6·25전쟁은 각각 4.1%와 2.6%였다. 2005년 광복 60주년 조사에서는 IMF 외환 위기(29.4%)가 가장 많았고 월드컵 4강 진출(19%), 노무현 대통령 탄핵(14.9%), 5·18광주민주화운동(10.5%),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7.9%) 등 순이었다.


전문가 분석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해방둥이들 나이가 올해 70세이다. 식민지 삶에 대한 부채가 없는 이들이 최고령 인구 집단으로 올라선 사이 급격한 사회 변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후속 세대들에게도 차별화된 경험의 흔적을 남겼다. 직접 체험의 결은 세대에 따라 갈렸다. 나이 든 세대에게 한국전쟁, 광주 민주화 그리고 외환 위기의 상흔이 선명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세월호가 더 큰 트라우마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보는 경제로 성장한 70년이라는 점에서 풍요의 양상이 뚜렷하다. 의식주를 구성하는 물질재(物質財)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지위재(地位財)를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일자리 걱정이 늘어났고,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 속에 계층 상승 기회는 닫혀 가고 있다는 점에서 ‘풍요의 역설’이다. 지난 10년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과거 가난했던 시기 성장한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희망의 문화’가 풍요의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에 와서는 ‘절망의 문화’로 전환되었음을 확인케 된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들은 현실적이다. 가족 가치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더 이상 효(孝)를 명분으로 맺은 세대 간 신사협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이 커진 만큼 전통적인 가족 개념도 바뀌었다. 이탈(exit)의 출구가 차단된 사회에서 경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졌다. 퇴직 후 30년이 걱정스러운 베이비붐 세대와 과거에 비해 직업 불안정성이 크게 늘어난 젊은 세대 모두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넘어설 대안이 절실하다. 그러나 경쟁의 정당성을 지탱해 줄 공정한 규칙이 보이지 않는다. 뒤처진 이들을 위한 비빌 언덕이던 가족도 사라졌다. 앞으로 광복 100년까지 30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인프라로서 공정성과 신뢰, 투명성 등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다시금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