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겨례] “조국은 우릴 버렸지만, 우린 이란과 함께할 겁니다”2022-10-25 10:37
작성자 Level 10

[테헤란의 사자들] 이란 반정부 글로벌 시위 참가자


20221024503651.jpg
9월25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며 시위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9월16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붙잡힌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 아미니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들이 구타를 당해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다음날부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한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사망자는 2백명을 넘어섰고, 중고등학생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경험한 세대까지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왜 용맹한 사자처럼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가. 이란 청년 세대를 연구해온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시위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리에 나선 ‘테헤란 사자들’이 답한다. 편집자 


0002611265_002_20221021130801395.jpg

2022년 10월1일, 캐나다 토론토 한 도시에서만 5만명이 넘는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자들이 모였다. 2021년 기준 캐나다에 이란 출신이 40만명 살고 있으니까 8명 중 1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1997년에 15살의 나이로 테헤란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한 이란계 캐나다인 마지드(가명)에게 나는 연락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사춘기 소년은 어느덧 40대 초반 대학교수가 돼 있었다. 나는 2021년 5월 이주민으로서의 그의 삶을 같이 따라가며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그에게 캐나다 이란 교포들에게 가장 뼈아픈 기억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20년 1월 이란 상공에서 격추된 우크라이나 여객기 752편에 관한 기억을 꺼냈다.

“나의 조국이 우리를 버린 거예요. 지금까지도 너무 힘들어요.” 그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 모르겠어요. 그때 이란 정부가 정말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격추했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요. 너무 슬프고, 화가 나요. 이제 희망이 없어요. 이란의 지배층은 타협도, 변화도 하려 들지 않아요.” 조국 이란에서 살기 어려워 많은 이란 사람들이 터키 난민 캠프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마지드는 탄식했다.

2020년 1월8일 피격된 우크라이나 여객기 752편은 이란과 캐나다를 오가는 저렴한 비행 노선이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가족들을 만나러 이란을 방문한 이란계 캐나다인, 이란 국적의 유학생들이 이 여객기에 탑승했다. 여객기는 오전 6시15분 이란 테헤란의 이망 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했고 2분30초 후에 이란 혁명수비대의 방공부대 미사일에 피격당했다. 피격 3분 만인 6시18분에 추락해 탑승자 176명이 전원 사망했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지 1000일이 지났다. 그 1000일째 되는 날, 사랑하는 아내와 9살 딸아이를 잃은 하메드 에스마일리온(Hamed Ismailion)은 유가족 대표로 2022년 글로벌 시위를 이끄는 단 한명의 리더가 돼 있었다. 

 

20221024503652.jpg
10월22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이란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마지드는 캐나다에서 연일 벌어지는 이란 반정부 시위에 운집한 많은 사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1999년 이란 학생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비판하기 위해 밴쿠버에서 열렸던 시위를 마지드는 떠올렸다. 아빠와 함께 참석했던 그 시위에는 고작 50명의 이란 교포들이 모였다. 그러나 2009년 이란 녹색운동 이후 많은 시민사회 운동가와 학생 운동가들이 캐나다로 망명하거나 이주했다. 그들은 이란에서 펼치지 못했던 인권 운동, 여성 운동 그리고 이란 반정부 시위를 캐나다에서 조직하기 시작했다.

마지드는 이제 캐나다 교포들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먼 조국의 사건이 아니라 자기 일로 여긴다고 했다. 이란 히잡 반대 시위가 열린 토론토, 밴쿠버, 그리고 에드먼턴 지역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운집한 이유다.

이란 교포 공동체가 작은 캐나다 에드먼턴에서는 2020년 우크라이나 여객기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여객기 13명의 희생자는 작은 교포 사회에서 누군가의 친구였고,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이날 이후 에드먼턴의 이란인들이 달라졌다. 강하게 연결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애틋하게 챙겼다. 마지드는 그동안 이란 정치에 무관심했던 에드먼턴의 이란인들이 이 사건 이후 급진적인 ‘전사’가 되어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절대 시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의 가장 큰 변화는 이란 여성이 주체적인 힘을 얻은 것이고, 개혁운동을 펼쳐온 이란 남성 역시 여성 이슈를 더욱 깊이 자각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이란 안 시민뿐 아니라 이란 밖 시민도 이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마지드는 말했다.

“우리는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이란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라는 글이 이란 교포의 소셜미디어에 다짐하듯 올라와 있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저자

20221024503653.jpg
10월22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한 여성이 이란 반정부 시위대와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기사원문 바로가기 “조국은 우릴 버렸지만, 우린 이란과 함께할 겁니다” : 국제일반 : 국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아시아연구소#구기연#히잡#이란#수도#테헤란#마흐사 아미니#여성#생명#자유#반정부#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