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겨례] “독재자에 죽음을”…우리의 구호가 불 꺼진 테헤란을 밝혔다2022-10-21 15:32
작성자 Level 10

[테헤란의 사자들] ③2009년 반정부 시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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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9일 이란 테헤란 선거 집회에서 녹색 스카프를 착용하고 녹색 페인트로 손을 칠한 미르호세인 무사비의 지지자들.

EPA 연합뉴스 


9월 16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붙잡힌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 아미니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들이 구타를 당해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다음날부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한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사망자는 2백명을 넘어섰고, 중고등학생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경험한 세대까지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왜 용맹한 사자처럼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가. 이란 청년 세대를 연구해온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시위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리에 나선 ‘테헤란 사자들’이 답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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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했던 88년(이란력 1388/2009년)을 기억하지? 요즘 그때를 자주 떠올리곤 해. 나의 마음과 영혼까지도 너무나 힘들어. 많은 아이들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여기 상황이 비참하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이란 현지시각으로 새벽, 메신저 왓츠앱 너머로 들리는 사키네(가명)의 목소리는 이미 젖어 있었다. 사키네 가족은 내가 이란에 현지조사를 처음 갔던 2002년 인포먼트(정보제공자)로 처음 만났다. 그 후 20년간 만남을 지속한 덕에 그들은 나의 ‘이란 가족’이 됐다.

2009년 6월, 이란 대선이 있던 날 나는 사키네의 가족과 함께 투표장에 갔다. 그 가족이 지지했던 개혁파 대선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지지하기 위해 그의 상징색인 녹색 옷을 함께 입었다. 사키네의 가족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개혁파 대통령이 탄생하면 갑갑한 이란의 미래를 조금이나 바꾸지 않을까 그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그날 새벽, 보수파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의 승리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사키네의 여동생 퍼테메(가명)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펑펑 울었다. 다음 날부터 이란에서는 시내·외 전화는 물론 국제 전화도 끊겼다. 사키네의 거실에서 시청한 비비시 페르시안(BBC Persian) 방송에서는 분노를 표출하는 이란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밤 9시가 되자 골목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모두 집에 불을 끈 뒤 창문을 열고 이렇게 외쳤다. 동시다발적으로 외치기에 경찰차가 출동해도 시위자를 잡을 수 없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함성들이 메아리쳤다.

그날부터 이란 대도시 거리에서 사람들은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평화 시위, 침묵시위에 나섰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지 30년 만에 터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다. 하지만 시위대에 돌아온 것은 총에 맞아 숨져가는 ‘네다’라는 여성의 죽음을 비참하게 목도하는 것이었다. 이 땅에 희망이 없다며 울던 퍼테메는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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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혔다가 사망한 20대 이란 여성의 죽음에 항의하며
이란 사람들이 10월17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란 영사관 밖에서 시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로 이란 경제 제재가 해제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던 2016년, 테헤란에서 다시 만난 사키네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활동적인 그는 이란 경기가 활성화되면 페르시아 전통미를 살린 작은 호텔을 열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 와서 그 호텔에 묵고 싶다며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핵 협상 파기와 계속되는 제재로 이란 경제는 끝 모를 침체의 늪에 빠졌다. 이란 사람들은 더는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을 옥죄는 통제 아래에서 그저 ‘#평범한 삶(Zendegie Normal)’을 원할 뿐이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20대 여성의 죽음은 지속적으로 악화하던 이란 사회의 뇌관을 터트린 듯하다. 이란 정부의 강력한 유혈 진압에도 이란 곳곳에서 울분의 시위가 한 달째 계속되는 이유다.

“우리는 울고 있지만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멈출 수 없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나에게 사키네는 희망을, 미래를 이야기했다. 나의 이란 가족은 언제 평범하고 평화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저자 


기사원문 바로가기 “독재자에 죽음을”…우리의 구호가 불 꺼진 테헤란을 밝혔다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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