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국일보] 논담 - “정치 된 히잡... BTS 즐기는 청년층이 시위 주도”2022-10-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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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의 질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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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고영권 기자 


9월 16일 이란 테헤란에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종교경찰에 끌려갔다가 사망한 일이 곧 전국적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무력 진압으로 수천 명이 체포되고 100명 넘게 사망했는데도 잦아들 기미가 없다. 유럽연합(EU)은 17일 종교경찰 주요 인사 등을 제재명단에 올리는 등 국제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잡은 어쩌다가 반정부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슬람 계율로 지배하는 신정국가에서 이처럼 저항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를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물었다. 2009년 이란 녹색운동 당시 현지조사를 했었고 책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를 쓴 구 교수는 “인터넷 미디어로 세상을 다 아는 청년층에게 히잡 강요 같은 이슬람 교육은 무리수"라며 "자유 억압, 경제난, 기득권 부패 등이 곪아 터지며 축적된 분노가 폭발한 것이 지금 이란 반정부 시위”라고 말한다.


"어차피 희망 없었으니 해보고 죽자고 해"


- 이란 안팎에 있는 이란인들과 소통하고 계신데, 그들은 지금 어떤 심정, 어떤 결의를 말하고 있나.


“이란 내에선 시위 게시물만 올려도 체포되는 분위기라 처음엔 다들 침묵했었다. 나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실상을 알리는 스토리 게시물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다. ‘무섭지 않냐. 당장 뒤집히지 않을 텐데 목숨을 걸어도 되냐’고 하면 그들은 ‘이슬람혁명 때도 그랬다’고 말한다. ‘1년 동안 계속 시위하면서 죽어나갔다. 혁명 직전 6개월은 정말 엄청나게 죽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때 군의 발포로 시위대 89명이 사망한 검은 금요일 사건이 왕정 전복으로 이어진 변곡점이었는데, 그처럼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죽음이 지금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시위자들이 감금된) 에빈교도소 내 화재와 사망이 있었다. 그러자 시위자들이 교도소로 몰려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경적을 누르며 ‘죽이지 마라’고 악을 쓰듯 외쳤다. 어차피 희망이 없었고 죽고 싶었으니 목숨 바쳐 해보겠다고 한다. 한번 해보고 죽겠다고 한다. 이번에 안 바꾸면 안 되는 최후의 기회라고도 한다. 과거 세대가 이슬람혁명을 했듯 이제 다른 혁명을 일으키는 게 우리 몫이라고 말한다. 


고국을 버리고 해외로 나간 이란 디아스포라도 결사적이다. 이달 1일 글로벌 연대 시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만 5만 명이 모였는데, 이 연대 시위를 진두지휘한 이가 2020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의 우크라이나 항공기 격추로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 대표다. 당시 이란이 자국민과 동포 100여 명이 탄 비행기에 미사일을 쏘는 것을 보고 해외동포들은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미니가 죽자 늘 종교경찰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여자들은 나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강남역 살인 사건 때 한국 여자들이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시위 무력진압을 보면서 남자들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런 죽음과 억압을 오래 봐왔기에 축적된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다.” 


"오랜 저항의 역사, 히잡 반대 시위의 토대"


히잡 반대에서 시작된 시위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향해 ‘독재자에게 죽음을’ 구호가 나올 정도로 격렬해졌다. 이런 저항은 얼마나 예외적인 것인가.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란에는 오랜 저항과 시위의 역사가 있다. 1997년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언론이 생기고 대학생 시위도 많아지는 등 시민사회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2009년 부정선거에 항의한 녹색운동은 시민들이 연대의 힘을 확인한 계기였다. ‘실패한 혁명’으로 불리지만 그런 점에서 결코 실패가 아니며, 이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이란 핵합의 파기 후 극심한 민생고로 시위가 많았는데 2019년 에너지 가격 인상 시위 때는 강경진압으로 1,500명이나 사망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79년 이슬람혁명도 이런 시위가 이어진 끝에 일어났다. 독재적 왕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이슬람이라는 우산 아래 모였고 그중엔 공산주의자, 종교인, 상인, 노조, 신정 반대자 등이 다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재를 물리치겠다는 저항이 깔려있고, 저녁마다 불 끄고 구호를 외치던 과거 시위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이란 이슬람혁명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시민혁명. 결과적으로 성직자 호메이니가 최고지도자가 되고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킨 신정 체제를 낳았다. 이란에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 그래도 수도 테헤란부터 지방까지, 중산층부터 노동자 계급까지 시위 참여자 집단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심상치 않다. 2009년과도 다르다. 신정 정치 전반에 대한 회의와 저항 아닌가. 


“그렇다. 녹색운동은 개혁파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도시 중상류층 이상이 주축이었다면, 지금은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이란민족이냐 소수민족이냐를 다 떠나, 모든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에너지기업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는, 마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넥타이부대가 동참한 것과 같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 이란의 숨구멍이라 할 수 있는 경제의 핵심이 석유에너지 산업이다. 이들이 파업하면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이슬람혁명 때도 그들이 결정적이었다.” 


“자유억압, 경제난, 부패… 불만 곪아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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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이후 테헤란 시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테헤란=AP·연합


- 그런데 아미니의 죽음이 왜 이 시점에 전국적인 반정부 불길의 도화선이 된 것인가. 우선 정치적으로, 지난해 대통령이 된 성직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가 7월 히잡과 순결 칙령을 발표하는 등 이슬람 계율을 강화한 것이 반발을 촉발했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국민 목줄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일을 지금까지 이란 정부는 능숙하게 해왔다. 사실 세상이 변했다는 걸 이란 사람들도 알고, 포르노도 보고 순결을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걸 이란 정권도 안다. 그래서 보통은 선거 전 유화정책을 펴다가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다시 강화하는데, 이번에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고들 한다. 핵합의 복귀 협상은 난항이고 경제난으로 불만은 가득하고 로하니 전 대통령 때도 그렇게 시위가 많았기에 기강을 세게 잡으려 한 듯한데 너무 나갔다. 공교롭게 최근 이란과 중국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중국의 얼굴인식 CCTV를 수입해 히잡 검문을 강화했다. 경제가 안 좋으니 벌금에 목매는 바람에 무리한 단속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 시위가 확산된 경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 


“오래 곪은 문제들이 다 터졌다. 우선 핵합의 파기 후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난이 심각하다(이란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 제재 해제 당시 약 8,000달러에서 최근 3,00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다). 실업률이 높고 물가상승은 살인적이다. 코로나로 더 어려워졌다. 이란은 중동에서 최초로 코로나가 발생한 나라인데, 경제제재로 인해 오직 중국과 무역과 왕래가 늘어난 결과다. 수입 제재로 마스크 치료제 등을 들여오지도 못했다. 경제가 파탄인데 세금을 올려 20%씩 부과한다. 전국바자르(전통시장)상인협회와 소상공인협회가 조직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돈을 벌어도 세금으로 다 나간다는 불만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부패와 내로남불도 분노의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이란은 교육열이 높고 대입 시험도 아주 어려운데, 공무원 자녀들은 20% 가산점을 받아 명문대를 쉽게 가고 공무원으로 취직도 많이 한다.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공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행정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종교를 내세워 시민들을 억압하면서 특권층은 자녀들을 캐나다, 미국에 유학 보내고 외제차를 몰고 구찌 가방을 든다. 쌓이고 쌓인 불만이 터졌다. 히잡이 싫어서, 취직이 안 돼서, 세금이 높아서 등 거리에 나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이란인들이 아미니의 죽음을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고 느낀다.” 


● 이란 핵합의

공식 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에 무기용 핵물질을 제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으로 2015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됐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 탈퇴하고 이란이 우라늄 농축으로 대응하면서 사문화됐고 경제제재가 강화됐다.


"인터넷으로 세상 다 아는데 종교교육 납득하겠나"


- 근본적으로 히잡은 어떻게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가.


“우선 이슬람의 여성 억압이 아닌, 이란에서의 히잡 문제임을 분명히 하자. 히잡 자체는 여성이 쓸지 말지 선택하게 한다면 여성 억압이 아니다. 그러나 이란에서 히잡은 종교가 아닌 정치다. 모든 여성에게 히잡을 씌움으로써 이슬람 공화국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상징, 혁명 성공의 가시화된 상징이다. 정숙한 여성의 복장이라는 문화·종교적 기의(記意)는 다 사라지고 히잡이라는 기표(記表)만 남았다. 남성들도 의복 규제가 있다. 반바지나 넥타이는 지금도 금지돼 있다. 결과적으로는 신의 이름을 내세운 정치적 억압이다. 나 자신도 이란에서 히잡을 쓰고 다닐 때면 끊임없이 히잡을 제대로 썼는지 신경 쓰고 카페에서 제대로 쓰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히잡은 시민의 일상을 서로 감시하게 만든다. 종교를 내세워 거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진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할 능력은 안 되는 정권이 공포 정치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처음엔 여성 중심으로 아미니 죽음에 분노를 표출하다가 남녀 없이 10~20대 젊은 세대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이 반응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디지털 세대인 10, 20대에게 히잡 강요 같은 이슬람 교육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10대들이 BTS, 블랙핑크를 얼마나 좋아하고 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학교만 가면 머리카락은 위험한 것이라 하고 여자는 노래하면 안 된다니 말이 되나. 이런 교육을 아예 받아들이지 못한다. 20대는 취업에 대한 불만이 결부돼 있다. 열심히 공부해도 특권층만 쉽게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자유가 제약됐다는 불만은 남녀가 마찬가지다. 남성도 의복 규제가 있고 종교경찰의 단속을 당한다. 그러니 젊은 남성들이 ‘아미니는 나의 누이이고 너의 누이’라며 동참한다. 모두가 억압적인 이슬람 정권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0, 40대도 반발심은 크다. 경제활동 중심 세대로서 고실업, 살인적 물가상승 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억압밖에 없으니 억울하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분위기다. 이슬람 교육을 받고도 이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다만 50대 이상 이슬람혁명을 경험한 세대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혁명을 했는데 왕보다 더한 독재자가 왔다는 패배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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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이란대사관 인근에서 주한 이란인들이 아미니의 사망과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해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배우한 기자


- 결국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 이란 사회 특히 청년층 인식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정부가 인터넷 차단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그래서인가.


“그렇다. 이슬람혁명을 다룬 ‘작은 미디어 큰 혁명(Small Media Big Revolution)’이라는 책이 있는데 지금은 ‘큰 미디어 큰 혁명’이 될 상황이다. 1979년에는 전단지와 카세트테이프로 시위 소식을 공유했었다. 지금은 텔레그램, 왓츠앱, 인스타그램, 트위터라는 4개 채널을 통해 모든 이들이 죽음의 목격자가 되고 있다. 최근 학교 안에서 경찰이 여고생들을 때리고 한 명을 사망케 한 일도 해외 언론에 제보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목도한 이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권이 인터넷을 끊는 이유다. 인터넷 연결이 매우 불안하지만 사람들이 VPN(가상사설 네트워크)을 깔아 소통하고 있다.”


“체제 변화 어렵지만 목숨 걸고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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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뜻으로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파리=AP·뉴시스


- 반정부 시위가 신정 체제 종식과 같은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나. 저항은 거세지만 구심점이 될 정치세력이나 군부의 변화가 있을까.


“구조적으로 신정 체제를 무너뜨리기 쉽지는 않다. 우선 정치적 대항세력이 없다. 여든 야든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신정을 인정하는 이들이다. 지금 체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도 상당하다. 최고지도자 곁을 지키는 군부도 아직까진 변화가 없다. 이런 사실을 이란 사람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사항전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분노가 강하다. 그런 걸 보면 어떻게든 바뀌기는 할 것이다. 이건 소프트 워(Soft War) 즉 문화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권도 개인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접하고 변화하는 10, 20대를 제일 무서워한다. 아미니 사망 후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이례적으로 라이시 대통령이 진상규명을 지시했을 것이다. 당장 유화 분위기로 돌아서거나 신정 체제가 뒤집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다.”


- 우리나라를 포함해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국 내 소요로 볼 게 아니라 세계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란 정부의 유혈 진압에 대해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력이 있기를 바란다. 이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울 텐데 곁에 함께 있다는 메시지, 머리를 자르며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 가장 힘을 얻는다.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내주세요(Be our voice)'라고 말한다. SOS를 치듯 해외 언론사에 제보하고 발언을 해달라고 한다. 나 역시 그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말하고 있다. 나 또한 수많은 죽음을 봤다. 2002년 현지조사 때부터 알았던 사람들, 녹색운동 때 나를 붙들고 울었던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희망과 절망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 말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란의 실상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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