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의 사자들] ②히잡 반대하는 20대 남성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붙였다가 사망한 22살 마흐사 아미니 사건에 분노한 한 남성이 지난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 이란 대사관 밖에서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9월16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붙잡힌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 아미니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들이 구타를 당해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다음날부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한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사망자는 2백명을 넘어섰고, 중고등학생부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경험한 세대까지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왜 용맹한 사자처럼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가. 이란 청년 세대를 연구해온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시위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리에 나선 ‘테헤란 사자들’이 답한다. 편집자
지난 9월 히잡 단속에 걸렸던 22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 여성들의 격한 공감을 얻으며 시위로 번졌다. “나도 죽을 수 있었다”라고 분노하던 성난 여성들은 용감하게 히잡을 벗어 던지고, 허울뿐인 공화국의 상징을 불태워 버렸다.
히잡을 벗고 머리를 질끈 묶은 10대, 20대 여성 시위대 곁에는 이란의 남성들이 섰다. ‘나의 누이, 너의 누이, 우리의 누이’를 위해 이들은 함께 시위에 나섰다. 한류에 빠져 이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25살 남성 알리 레저(가명)는 밤낮으로 시위 관련 포스팅을 올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주말 집회에 매주 참여하는 알리 레저에게 물었다. “왜 히잡 반대 시위에 함께 나섰나?”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이 시위는 지금까지 수년간 계속되어 온 시위의 연속 선상에 있는 거예요. 지금껏 사람들의 불만들이 쌓여온 것이죠.” 알리 레저가 답했다. 2009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한 녹색운동 때만 하더라도 이란인들은 이슬람 정권 내에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체제 안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요. 이 분노가 사람들을 거리로 쏟아지게 하였죠. 이 분노가 너무 커서 죽음을 위협하는 정권이 두렵지 않아요.”
지난 10월15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이란을 위한 연대의 행진’에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구호를 외치고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 남성들도 자유를 억압받아왔다. 이슬람적 규범을 강제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기결정권 침해’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은 반바지를 입을 수 없고, 연인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유를 얻지 못한다. 도덕경찰은 여성만이 아니라 이들 남성도 붙잡는다. 알리 레저 역시 단속을 경험했다.
“그냥 친구인 여자애랑 공원에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순찰하던 (도덕) 경찰에게 잡힌 거죠. ‘왜 미혼 남녀가 같이 다니냐, 무슨 관계이냐’고요. 승합차에 태워서 교육 센터로 넘겨졌어요.” 알리 레저는 곧바로 풀려났지만, 같이 있던 여자친구에게는 시비가 더해졌다. “‘너 옷이 좀 이상한데?’라고요. 즉석에서 이유를 만드는 느낌이었어요. 벌금을 내게 하려고요. (히잡 단속 뒤 사망한) 아미니도 그렇게 잡혔을 거예요.”
이란 남성들은 자신도 강압적인 전체주의적 정권의 피해자라 증언한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1981년생 모함마드(가명)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직후에 태어나 ‘무슬림 키즈’로 교육받았다. 자신을 억압적인 사회 환경에서 자란 ‘억눌린 세대’라고 부른다. “이란의 정치 구조는 지난 40년간 변하지 않았어요. 전체주의적인 정권은 다양한 민주적 의견을 무시해왔죠. 우리 세대는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요.”
기성세대는 이란 사회에서 숨죽이며 두 얼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인터넷 세대’는 다르다. “요즘의 10대, 20대는 인터넷과 위성 채널을 통해 외국의 또래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매일 보고 자랐죠. 그런 아이들에게 보수적인 종교인의 말이 먹히겠어요? 지금도 미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시위 상황은 위험하고 힘겹지만 알리 레저는 다짐한다. 이란을 되돌리겠다고, 이란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꼭 보여주겠다고. “이란의 자유를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내보겠습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저자
22살 여성 사망에 분노한 남녀 이란인들이 지난 10월17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란 영사관 밖에서 항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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