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잠잠해지던 이란 사회는 3월에 다시 큰 충격에 빠졌다. 바로 여학생들과 여대생을 대상으로 독성 가스 공격이 전국 각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이란 인권 활동가들’(HRAI)은 7000명 넘는 학생들이 이 테러로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범죄가 이미 5개월가량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이란의 성스러운 도시 곰(Qom)의 한 음악전문 학교에서 18명 여학생들의 불명의 중독으로 독가스 공격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초기 대처를 들여다보면 어이가 없다. 정부 당국은 이 사건을 사회 질서에 혼란을 주기 위한 ‘괴담’으로 여기거나 관련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 언론인들과 개혁 성향 인사들을 조사했다. 그러던 사이, 5개월여 동안 정체불명의 화학 가스는 여학생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이란 국영 미디어들은 이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불안을 지속시켜 ‘신성한 이슬람 체제’를 위협하려는 적대 집단이나 외국 세력의 소행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해외에 기반한 디아스포라 미디어들과 반정부 시위에 나섰던 이들의 의견은 다르다. 이 독성물질 사건은 지난해 9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히잡 시위’와 연결되어, 그 시위의 가장 앞에 섰던 여학생들을 겁주고, 공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슬람극단주의의 만행일 거라 주장하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성스러운 거미>로 글로벌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알리 아바시 감독은 연쇄 살인범의 범죄를 묵인한 ‘사회’의 모습을 다루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광적인 ‘괴물’들은 왜,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 것인가? 누가 이 괴물들의 범죄를 멈추지 않게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란 여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이란 이스파한에서 히잡을 적절하게 쓰지 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염산 테러 사건이 벌어져, 여러 젊은 여성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정부 당국은 사회 내부에 공포를 퍼뜨리지 말라고 경고하며, 이 역시 외국에 배후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피해자였던 마르지에는 “두려움과 공포 없이 사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다. 우리는 인질이 아니라 시민이다”라고 말했다.
연이은 독가스 살포 사건으로 이란 전역이 공포로 덮은 상황에서도 이란의 여학생들은,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여대생인 지인의 딸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그들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생존을 위해 싸우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다”라고 썼다. 여대생의 어머니는 “너의 싸움은, 곧 나의 싸움이야. 너는 반드시 이겨 낼 거야”라고 격려의 댓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한편으로는 큰 감동을 준 사진이 떠오른다. 방독면을 쓰고 “마지막 목숨까지, 여성, 생명, 자유!” 포스터를 든 한 어린 여학생의 사진이다. 이 모습은 어떠한 공포 앞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하지 않도록, 용감하게 등교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란 여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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