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월간중앙] 신년특별기획시리즈 -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 ③2023-03-13 10:36
작성자 Level 10

[신년특별기획시리즈]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3) 

MZ세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 구축할 때


시민사회 분열·갈등은 ‘선택적 협치’의 결과, 이제는 능동적 주체자로 일어서야

‘와일드카드 정신’ 지켜갈 때 진정한 국가-정당-시민사회 간 협치 가능성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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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1회용 컵 보증금제 정상화 촉구 전국 시민사회 선언에서 참석자들이 ‘플라스틱 1회용 컵에 뒤덮인 지구와 인간의 모습을 담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시민사회는 전례 없는 복합적 위기와 중층적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상승적 결합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 삶이 부지불식간에 관리되는 ‘알고크라시(Algocracy) 시대’가 도래했다. 일종의 ‘기술 봉건제(Techno-Feudalism)’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점차 파편화돼 초국적 연대활동이 위축되고 있으며, 지역 시민사회도 도시 과밀화와 지방소멸로 인해 자신의 세계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노력과 경험은 어떠한가? 국가의 위로부터 ‘추격전략(Catch-Up)’에 기초한 지원정책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끼쳤다. 정부가 협치의 이름으로 추진한 ‘보조금 정책’은 지역 주민을 상생발전의 협력 파트너라기보다 정책 결정 및 구현 과정에서 주변화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권 갈등으로 인해 상호 불신과 반목의 개발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신뢰도 하락은 선순환적 삼자 관계 왜곡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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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일 서울 신용산역 인근에서 ‘화장품 어택 시민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재활용하기 어려운 화장품 용기의 재질 개선과 실질적인 재활용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주민들이 외부에서만 그 원인을 찾아 비판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문제 해결에 머물게 된다. 지역 시민사회 스스로 성숙하지 못한 성급한 제도화의 길을 먼저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치의 전제조건인 풀뿌리 민주주의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심지어 지난 3년 동안의 코로나19는 ‘국가의 귀환’을 초래했고, 정부는 공공선을 추구하기보다 정책 코드가 맞는 일부 시민사회단체와의 ‘선택적 협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국가-사회 간의 갈등에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이 증폭되는 ‘이익갈등사회’를 앞당겼다. 이처럼 정치기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반복되는 선택적 협치는 한국 시민사회를 더욱 분열·분절 그리고 분리해 상호 대립과 반목이 상존하는 ‘갈등적 사회운동 사회’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제 시민사회운동이 걸어온 제도화의 길을 반성함으로써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를 모색할 때다. 그렇다면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어떻게 자생할 수 있을까? 한국 시민사회는 짧은 기간에 외연적으로 비영리 활동, 공익 활동 그리고 사회적 경제 활동까지 그 경계를 확장했다. 비록 협치의 기회와 공간을 크게 넓혔음에도 그 결과는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됐다. 저자들은 그 이유를 정부-정당-시민사회운동의 선순환적 삼자 관계가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시민사회운동이 이것을 바로잡으려면 선순환적 자원동원의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

30년 넘게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했던 한 활동가는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운동’에서 성급하게 ‘제도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회고한다. 이런 고백은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에 가졌던 허상에 대한 혹독한 평가다. 다수의 NGO가 협치의 일환으로 참여한 정부정책 위탁사업, 소위 보조금 사업은 그 규모와 범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물론 민·관 협치를 통해 시민사회는 행정의 중요성을, 행정은 시민사회의 헌신과 열정을 상호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위탁수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지방정부는 경쟁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민·관 협치의 ‘안정적인’ 제도화를 마련했다. 그 틀에 들어간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수동적인 협력 파트너로 그 역할이 제한됐고, 그 결과 위로부터 지정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하청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공무원도 시민사회단체를 우리 일을 대신해주는 수동적 대행자(Agent)로 인지하게 됐다.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를 공공선 제고에 헌신하는 전문가로 인정하기보다 자신들의 지원이 없으면 생존이 위태한 지원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보조금 정책은 시민사회 활성화의 지렛대가 되기보다 걸림돌이 됐다. 지난 민·관 협치 경험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주문할 때마다 전직 시민사회 활동가 다수는 “과도한 프로젝트 수행으로 더는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열정·헌신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자신의 역량이 소진돼 버티기 힘들어 이직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사람이 사라지고, 경험과 노하우도 사라지니 창의적인 콘텐트나 프로그램을 기대한 후원과 재정 지원도 끊기는 악순환을 걷게 됐다. 적지 않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다수의 활동가가 떠나고 비상근 대표와 신입 활동가 1명이 조직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Man·Manual·Money의 선순환적 동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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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복합재질 플라스틱 규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중병뚜껑 무덤 속 해골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제 시민사회운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운동단체는 공공선을 제고하기 위한 시민교육, 시민들의 자발적 토론 및 숙의 플랫폼, 가치 옹호 및 사회서비스 활동 참여 촉구, 그리고 모든 활동의 투명성, 사업결과의 책무성을 견지하는 것을 목표로 끈기 있게 나아가야 한다. 이런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적 자원동원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진정성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인정과 신뢰, 더 나아가 존중을 받게 해줄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에서 자원동원은 동원 대상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인적자원(Man), 지식·정보·노하우(Manual), 재원(Money)이 그것이다. 과연 무엇이 우선일까? 대부분 돈이 있으면 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의 역량을 높여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전략은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게 된다. 앞서 ‘보조금 딜레마’라고 명명할 수 있는 성급한 제도화의 길이 운동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조직의 지속성을 다 보면 사람과 매뉴얼보다 돈을 쫓게 되고 주변적인 사업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결국 조직을 이끌어갈 사람과 그들이 중심이 돼 축적하는 콘텐트와 매뉴얼은 빈약하게 된다.

저자들이 오랫동안 참여해온 환경운동연합이 마주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환경운동은 주제별로 다양화된 전문화의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한국 지부를 둔 글로벌 환경단체와 자원동원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물론 과거와 같은 거대 조직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체급을 줄 일지라도 시민사회운동의 기본원칙은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회원·활동가·전문가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자유롭게 들고 나면서 자발적으로 환경의 가치를 공감하며, 그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지원하고 헌신할 수 있는 선순환적 자원동원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회원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회원의 노화가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젊은 인재의 참여가 사라지고 있다면 사람 동원의 메커니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다수의 지역 시민단체가 비상근 대표와 1인 활동가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과연 이런 조직이 사회적 가치 제고를 위해 시민교육과 참여 프로그램을 끈기 있게 이어갈 수 있을까? 당면한 지역 이슈 대응에 급급한 활동에 쫓기다 보면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 성장하는 지역 시민사회 생태계 구축이라는 장기 비전의 달성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직 현실을 고려할 때 MZ세대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참여 기반과 매력적인 활동은 더욱 기대할 수 없다. 지역의 많은 시민사회단체에는 수년 동안 젊은 회원의 가입이 없다고 한다. 요즘 MZ세대의 관심사인 기후위기, 쓰레기 문제, 에너지 전환 등과 관련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MZ세대들이 디지털 매체를 통해 신규 가입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 구축에 주목할 때다. 꼰대처럼 그들을 기존 조직 구조의 틀과 운영방식에 묶어두려고 할 때, 그들은 회비만 내는 회원에 머물거나 어느새 사라질 것이다.

“사람 동원의 메커니즘 다시 점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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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도시공사 가족여성회관에 청바지로 만든 토끼 인형이 전시돼 있다. 청바지 토끼는 가족여성회관 의류리폼 사회공헌활동단 업사이클링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이 기부한 청바지로 제작됐다. / 사진:연합뉴스

실례로 자원순환과 제로웨이스트 가치에 동의하며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플라스틱 방앗간’ 프로젝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쓰레기를 만드는 기업이나 과대포장을 조장한 대형마트에 도전하는 ‘플라스틱 어택 운동’을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전개했다. 어느 한 리더가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고 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이제 시민사회운동은 당위적 주장에 대한 옹호와 지지 활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대 조직의 깃발 아래 모여 그것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에게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동원하기는 어렵다. 창의적으로 노하우를 발굴하고 그것을 시민과 공유하려는 ‘능동적 시민’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창의적인 매뉴얼을 개발·공유하는 선순환적 자원동원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않으면 소비지향 개인주의 시대의 플랫폼 사회에서 그들을 시민사회운동의 온·오프 공간으로 결코 나오게 할 수 없다.

전문가 역시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과거처럼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일방향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인정받으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사회적 책무를 갖고 수평적 관계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제공하고 동시에 참여자 개개인의 소중한 경험을 귀한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활동가는 코디네이터로서 이런 상호작용의 장을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전문가로서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아쉽게도 활동가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경로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하다. 과거 학생운동 경험 세대는 열정과 헌신으로 조직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전문가로 성장하거나 그 경험을 토대로 정치 및 정부로 이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시민사회운동 단체에 참가하는 경로는 인턴십 혹은 공개채용으로 전환됐고 다수가 경제적 부담과 불분명한 커리어로 인해 2~3년 안에 이직한다.

이들을 붙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열정을 바쳐 공공선을 제고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먼저 보조금 정책 내에 불합리한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인재를 키우려면 결국 보조금 중 일부가 활동가 인건비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아직도 이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불신의 벽을 없애는 것도 역시 시민사회단체의 몫이다. 시민사회단체 스스로 조직 내부에 이런 활동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분위기, 안정적인 신분, 그리고 커리어 발전을 위한 비전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생태계 내에서 성장한 인재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동의 역량 강화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시민사회가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와일드카드’ 정신을 끈기 있게 견지해야 한다. 현재 중앙 혹은 지방 정부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벤치마킹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요구할 수 있는 경쟁적 도전자가 돼야 한다. 예컨대 지자체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지역 고유의 특색과 무관한 조형물·기념 건물이 세워지거나 뜬금없는 모토와 마스코트가 등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선거정치가 반복될 때 지역 사회는 볼품없는 ‘키치(Kitsch)의 전시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시민사회 생태계도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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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동창회의 ‘To Serve Better Project’는 하버드 학생, 동창, 교수 및 직원들이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공공선 제고에 기여한 사례를 발굴하고 그들의 삶과 활동을 연중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 사진:‘To Serve Better’ 홈페이지 캡처

디지털 혁명으로 시민사회 생태계도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이 일부 과격한 자들의 분노와 욕설로 도배되고, 존중과 설득보다는 자기 확증과 편 가르기가 공론장을 왜곡하고 있다. 선순환적 자원동원을 위해 시민사회운동이 진정한 소통의 정치 매개자로 나서야 한다. 진영과 코드를 넘어서 다양한 시민단체와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편 가르며 자기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유튜버가 더는 왜곡된 자원동원, 즉 돈벌이 창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시민사회운동단체는 그들과 차별적인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와일드카드로서의 정체성을 끈기 있게 지켜갈 때 진정한 국가-정당-시민사회운동 간 협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노하우나 정보가 개인 차원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시민사회운동에서 정당이나 국가로 이동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시민사회운동 영역도 그들이 돌아와서 기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구 시민사회운동이 정당과 정부와 선순환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주목할 부분이 바로 이런 인재 순환구조다. 한국 시민사회의 경우는 이런 선순환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기에 정부-시민사회의 수평적 파트너십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 조직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왜 시민사회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그 주요 이유는 정치-시민사회 간의 긴장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협치를 통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다가 필요할 때만 상호 동원하는 구조가 구축되고 말았다. 와일드카드로서 시민사회운동이 그들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도전하고 경쟁하지 못한 채 협치라는 제도의 틀로 묶이게 됐다. 유리한 정치기회구조 아래 증가한 보조금 사업이 시민사회단체에는 궁극적으로 독이 된 셈이다. 지금은 사람도, 매뉴얼도, 돈도 없는 삼중고의 시기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얼마 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대통령령’이 폐지돼 협치의 공간이 축소됐다. 그동안 시민사회재단, 시민공익위원회 등을 설립하고자 애를 썼지만 아쉽게도 정부나 정당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협치의 한계를 목격하면서 저자들은 시민사회 스스로 선순환적 자원동원 메커니즘을 아래로부터 구축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부나 기업 주도의 자원동원 메커니즘하에서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와일드카드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이 ‘시민재단기금’을 스스로 마련하기에는 시민사회운동 생태계가 너무 열악하다. 중앙의 거대 단체들도 시민사회를 더는 대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협력 파트너를 찾으려면 광의의 시민사회로 그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

신선한 충격 준 하버드 동창회의 활동 사례

비록 이익단체일지라도 적지 않은 단체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선 제고를 위해 관련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중 사회지도층을 다수 포함하는 대학 동창회를 주목하자. 하버드 동창회의 최근 활동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진행한 ‘To Serve Better Project’는 하버드 학생, 동창, 교수 및 직원들이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공공선 제고에 기여한 사례를 발굴하고 그들의 삶과 활동을 연중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하버드 동창들이 지역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감동의 스토리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창회가 건강한 시민을 키우는 데 헌신하는 동창생 혹은 관련 단체를 소개함으로써 40만 하버드 동창이 관심을 갖고 후원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 것이다.

“특권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하버드 동창회 슬로건이 서울대 총동창회를 비롯한 국내 여러 대학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들이 출연한 종잣돈이 지역 사회의 공공선을 제고하는 시민사회운동기금을 형성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해서 이어진다면 지역 시민사회 스스로 자생적인 중간지원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시민사회운동단체들도 이런 새로운 변화와 흐름에 주목하고 연대와 협력의 틀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치적 동원을 늘 경계하면서 운영과 회계의 투명성, 그리고 사업 결과에 대한 책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연고주의와 불투명한 운영체계라는 걸림돌에 계속해서 넘어지게 될 것이다.

※ 임현진 -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저서로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 지식, 권력, 운동], [비교시각에서 본 박정희 발전모델: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와 아시아의 한국] 등이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이며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냈다.

※ 공석기 -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분야는 정치사회학, 사회운동론, 시민사회론, 사회적 경제 등이다. 주요 연구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정치의 와일드 카드], [뒤틀린 세계화: 한국의 대안 찾기]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환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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