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⑩ 이제는 아시아 시대”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⑩ 문명 중심 동아시아로 … 한국, 정신·물질적 대도약 절실
문명 중심 동아시아로 … 한국, 정신·물질적 대도약 절실
[중앙일보] 입력 2013.12.20 03:50
이제는 아시아 시대 ⑩·끝
‘우린 준비돼 있나’ 종합토론회
중앙일보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기획
“부국강병 없이는 아시아시대가 와도 대한민국의 설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아시아시대라 하더라도 중국이 패권국가로 등장하는 아시아시대는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다.”(신정승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소장)
아시아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우리는 충분히 준비하고 있나.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강명구)는 ‘이제는 아시아 시대’ 시리즈를 마치며 ‘아시아시대,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종합토론회를 열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의 사회로 신정승 소장(전 주중대사),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전 예술의전당 사장), 이승철 부회장,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패널로 나섰다.
▶김장실=과거 서구인들은 아시아를 약탈의 대상으로 삼아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착취했다. 막스 베버(독일 사회학자)와 군나르 뮈르달(스웨덴 경제학자)도 서구인의 문화우월주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미개와 야만의 땅으로 이야기했다. 최근에 와서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인도·중앙아시아까지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시아의 미래 예측에서 2050년 아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74조 달러로 세계 전체 GDP의 5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220개 국가 및 지역이 중국 위안화로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 또 지난 11월 인도가 화성탐사 로켓을 발사한 사실을 보면 아시아 시대가 다가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배명복=아시아라는 개념은 문화적·지리적으로 대단히 광범위하다. 그래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거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아시아시대라 하기보다는 좀 더 좁혀서 동아시아의 시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아직 아시아시대가 왔다고는 말할 수 없고 여전히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명사적 큰 흐름에서 보면 아시아시대의 도래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다. 불교·기독교·유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동아시아가 이슬람·기독교 문명에 이어 세계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문명사적 이유가 있다.
아시아경제 커지는데 한국 비중은 위축
▶신정승=한·중·일 3국만 합해도 인구가 20억 명이다. GDP도 17조2000억 달러로 전 세계의 24%다. 현재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해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여러 제약 요인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계속하면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승철=아시아의 경제적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데 이견은 없는 듯하다. 앞으로 30~40년 후 아시아 인구 비중은 55%에서 60%로 늘고 GDP와 수출 비중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다만 아시아 경제는 커지는데 한국의 비중은 위축되고 있다. 인구 비중은 0.3% 줄지만 GDP 비중은 3분의 1로 줄고, 수출 비중도 6.4%로 준다. 부가가치 증가 속도 면에서 이웃 국가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시아시대에 한국의 위치가 초라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아시아가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가 필요하다. 아세안이 크고 있다지만 한·중·일 3국의 경제는 아세안 10개국의 10배 규모다. 유럽연합(EU)처럼 한·중·일 3국이 동북아국가연합(ANEAN)을 구상해보면 어떨까.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로부터 부자유스럽지만 대국주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이 도덕적 헤게모니를 통해 ANEAN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김장실=아시아는 역내 국가들의 발전 수준 격차, 인구 차이, 역사 및 영토 분쟁 때문에 유럽과 같은 지역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 ‘신천하주의’로 미국에 도전
▶신정승=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이 생기면서 나라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문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시대를 맞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 확산되고 외국인 혐오 현상도 생기고 있다. 진정한 아시아시대를 위해선 아시아인들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민간 교류와 정부 간 공공외교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사회=중국은 ‘신천하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있다. 중국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서 보편적 가치를 뽑아내 이것을 세계 문명의 보편 가치와 조화·융합시키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에 상당한 도전을 하고 있다.
▶배명복=동아시아는 대륙적 특성과 해양적 특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동아시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타고났다. 아시아시대를 열려면 반드시 지정학적 취약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중·일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에서 상황을 냉정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원치 않은 시기에 원치 않은 전쟁으로 동아시아 전체 운명에 재를 뿌리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일이 무엇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무력 불사용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역사나 과거사 문제 등 20세기 유산을 청산하고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정승=국제사회는 중국의 부상을 아시아시대와 동일시한다. 최근 아시아 주변 상황을 보면 아시아시대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중국은 ‘두 개의 백년 목표’를 강조한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 그리고 중화인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국가 목표를 수립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대외적으로 평화발전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동시에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은 양보 없이 지키려 할 것이다. 중국의 국방비는 매년 두 자리 숫자로 늘고 있다.
불교·기독교 공존하는 한국의 역할 중요
▶사회=한국은 제대로 준비돼 있나.
▶이승철=평화가 아주 중요하다. 개성공단은 대기업 진출이 제한적이니 똑같은 공단을 파주에 만들자. 개성공단을 베드타운으로 만들어 북한 노동자들이 잠은 개성에서 자고 파주로 출근해 일을 하는 방식으로 공단을 운영하면 대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프랑스와 같은 관광산업, 독일과 같은 제조업을 통해 부국강병을 해서 아시아 시대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배명복=중·일과 달리 한국은 불교와 기독교 비율이 거의 대등한 나라다. 한국에선 동서양의 가치가 상호작용하고 융합해 한국적 특성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왔다. K팝과 한류 드라마가 뜬 배경이다. 아시아 시대에 한국의 문명사적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김장실=대한민국은 아시아시대에 거대해진 중국에의 경제 종속, 중·일과의 치열한 기술경쟁, 안보위협 등 3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류국가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 내부의 대화합, 문화와 제도의 대혁신, 정신적·물질적 대도약이 지금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리=장세정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