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탈레반 5년’ 세계가 묵인한 것

[경향신문] ‘탈레반 5년’ 세계가 묵인한 것

5년 전인 2021년 8월, 2만㎞의 비행 끝에 39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와 가족들이 인천공항을 밟았다. 카불이 함락되던 아비규환 속에서 한국 정부를 도왔던 이들을 구출한 이 ‘미러클 작전’은 우리에게 안도와 연대의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2026년 8월15일, 카불 거리에는 흰 탈레반 깃발이 내걸렸고 지도부는 회의장에 모여 재집권 5주년을 자축했다. “수십년의 분쟁을 끝내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이 그들의 자평이다. 문제는 이 자축이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5년간 탈레반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평화가 아니라 외교였다. 2025년 7월 러시아가 첫 공식 승인국이 됐고, 나머지 국제사회는 공식 승인을 유보한 채 실질적 관계만 넓혀왔다. 중국은 광산 투자를 매개로 최대 파트너가 됐고, 우즈베키스탄은 올해 5억2000만달러 규모의 무역협정을 맺었으며, 이란 정부는 대체 통로로 내주었다. 유럽 역시 지난 6월 브뤼셀에 탈레반 대표단을 초청해 자국 내 아프간인 강제송환을 논의했고, 독일은 송환 실무를 위해 탈레반 관리의 입국을 허용했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 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들이 내세우는 ‘안정’은 허구에 가깝다. 파키스탄과의 국경분쟁은 지난 2월 말 전면적 무력충돌로 번졌고 3월 파키스탄 공습이 카불 도심을 강타해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 인권전문가들은 두 달 남짓 사이 아프간에서만 289명의 민간인 사상자와 11만명 넘는 실향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여성 배제는 더욱 심각하다. 아프간은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소녀들의 중고등교육을 금지한 나라이며, 240만명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 교육을 세속화의 통로이자, 자신들의 가부장적 권위와 율법적 통치를 위협하는 위험한 씨앗으로 간주한다. 한편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여성 인권 문제를 서방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셈법도 깔려 있다.

아프간인들의 비극은 비단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5년간 탈레반의 폭압과 경제난을 피해 파키스탄, 이란, 타지키스탄 등 주변국으로 피신했던 수많은 아프간 난민 역시 벼랑 끝에 내몰렸다. 최근 이들은 비자가 만료되었음에도 갱신을 거부당하거나, 주변국들의 강경한 반난민 정책에 밀려 대거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고 타국으로 도피했던 이들은 어떠한 보호망도 없는 탈레반 치하의 자국으로 또다시 출국을 강요받으며 생존의 위협을 마주하는 처참한 악순환에 빠져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사회의 무관심이다. 현재 전 세계의 눈과 귀는 중동의 다른 곳을 향해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 영향은 여전히 폭발적이며, 미·이란의 군사적 긴장마저 고조되면서 중동 정세는 복합위기 상황이다. 이 거대한 지정학적 소용돌이 속에서 아프간의 비극은 철저히 국제사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포성 가득한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아프간 여성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주변국에서 쫓겨나는 난민들의 절규가 묻혀서는 안 된다. 이 체제를 조용히 승인해온 국제사회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무엇을 묵인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