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1)
무엇이 삶에 의미를 주는가?

임동균 (서울대학교)

2021년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의 국제 설문조사 결과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한국인들만 1위로 물질적 번영을 꼽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이 글은 위 설문의 확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서울시민들이 주로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다고 응답하는지를 살펴보고, 타 국가 시민들의 응답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분석 결과 서울시민들은 점수상 평균적으로는 ‘건강’의 중요도를 가장 높게 평가하였으며, 점수 대신 순위를 매기게 한 결과 ‘가족’을 삶의 의미를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았다. 다른 나라 14개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서울은 상대적으로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비물질적 경험에 비해 물질적 풍요의 중요성을 높이 여기는 정도가 15개 도시들 중 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삶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시선
출처: 이미지투데이

삶의 의미의 원천에 대한 설문조사

2021년 11월,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양한 관심과 논평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삶에 가장 큰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본 결과, 한국에서만 ‘물질적 풍요’가 1위로 꼽힌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족이 1위로 나타났고, 물질적 풍요를 2위로도 꼽지 않은 나라들도 제법 있었다.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는 물질주의적이고, 돈과 관련되지 않은 것들은 중요한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자조적이고 씁쓸한 성찰과 지적이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 설문조사는 삶의 의미 요소들을 객관식 질문 형태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주관식 응답을 코딩한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모종의 왜곡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 글에서는 지난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에서 15개국 주요 도시의 시민들에게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11개의 보기를 주고 고르게끔 한 설문 문항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몇 가지 분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위 퓨 리서치센터 결과가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는지를 아울러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성찰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시민들의 응답

타 도시들과의 비교 이전에 먼저 서울시민들은 본인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였는지를 살펴보자. 조사에서는 11개 항목을 제시하고, 각각이 본인에게 삶의 의미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답하게 하였다. 그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1) 가족, 2) 일, 직업, 3) 물질적 풍요로움, 4)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5) 건강, 6) 자유, 7) 취미, 8) 무언가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것, 9) 연애, 10)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11) 신앙·믿음. 각 항목에 대해 응답자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부터 ‘매우 중요하다’로 이루어진 7점 척도 문항에 기반해 응답하였다. 서울시민 700명의 응답자가 각 항목에 대해 응답한 값이 평균은 <그림 2>와 같다.

<그림 2> 삶에 의미를 주는 요소들의 중요도: 서울시민

응답을 보면 ‘건강’이 삶의 의미를 주는 데 있어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자유, 물질적 풍요, 가족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 풍요, 가족의 점수는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전국 단위조사냐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냐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결과는 앞서 언급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서 한국인만이 ‘물질적 풍요’를 1위로 선택했다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위 문항과는 별도로, 주어진 11개 항목 중에서 본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주는 항목 3가지를 중요도에 따라 순서대로 고르도록 하였다. 설문조사 기법에 주어진 대상에 대해 평점(rating)을 매기게 하는 방식과 순위(ranking)를 매기게 하는 방식이 있는데 양자는 종종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에 그러한 차이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중요도에 따라 순위를 매기도록 한 설문의 결과는 <그림 2>의 결과와는 약간 달랐다. 약 절반(49.8%)의 서울시민들이 1순위로 ‘가족’을 선택하고, 2위로는 ‘건강’(20.7%), 3위로는 ‘물질적 풍요로움’(13.7%)이 선택하였다. 이 역시 한국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1위로 선택한다는 퓨리서치 센터 조사와는 사뭇 다른 결과이다.

국가 간 차이 분석(1): 다중대응분석

그렇다면 서울시민은 다른 대도시 시민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전반적으로 비교적 유사할까, 아니면 앞서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처럼 물질적인 것에 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을까?

본 조사가 세계 15개 도시들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모든 도시에서 11개 항목에 대해 각각 어떻게 응답하였는지를 모두 표나 그래프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리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도시들 사이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다중대응분석(multiple correspondence analysis) 기법을 사용, 자료를 분석하고 결과를 시각화하였다. 이는 삶에 가장 큰 의미를 주는 항목 1순위로 몇 명이 어떤 항목을 선택했는지가 도시별로 어떻게 상대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론적 도구이다. 결과는 <그림 3>과 같다.

그림에는 15개 도시들과 11개 삶의 의미 항목들이 표시되어 있다. 어떤 두 도시나 항목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같이 선택되는 비중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의 시민들이 절대적으로는 A를 더 많이 선택하였어도, 다른 도시민들에 비해 A를 선택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신 (절대적 비율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B를 택한 비율이 높으면 그 도시는 B에 가까운 것으로 표시가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래프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그래프에 있는 두 점에서 원점으로 선을 연결한 다음 그 두 선의 각도가 작을수록 동시에 선택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의미하고, 그 각도가 클수록 서로 같이 선택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울’은 ‘건강’이나 ‘풍요’와는 같이 선택되는 비율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신앙’이 같이 선택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결과를 보여줌을 알 수 있다. 반면 ‘가족’의 경우 ‘서울’과 직각에 가까운 각도를 보여주는데, 이 경우 서울이 가족과 같이 선택되는 비율은 대략 평균적인 정도임을 의미한다. 전체 평면은 두 가지 차원에 의해 나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항목들 간 관계의 약 48%를 설명하는 1차원은 가족과 신앙이 한편에, 나머지가 다른 편에 배열되고, 23%를 설명하는 Y축은 건강과 풍요 그리고 그 나머지 항목들의 구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3> 도시와 삶의 의미 항목 간 관계에 대한 다중대응분석 결과

전체적으로 서울은 동경과 타이베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 북경을 제외한 동아시아 도시들이 대체로 유사한 응답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상대적으로 많이 고르고, 신앙·믿음은 덜 고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적 풍요의 경우 서울(13.7%)보다 도쿄(22.3%)나 타이베이(17.0%)에서 더 선택되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상대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이러한 결과는 퓨 리서치 센터의 결과와 약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국가 간 차이 분석(2):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의 중요성 차이

한국과 기타 선진국과의 차이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자조적 비판 중 하나는, 한국인들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만 관심이 있고 취미, 교양, 경험 등 사람의 내면과 관련된 것을 추구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물질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비판의 이면에는 비물질적인 차원에서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 취미, 학습, 경험 등에 가치를 충분히 두지 않는다는 비판적 진단이 깔려있다.

그러한 지적이 본 설문조사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간단한 추가 분석을 실시했다. 응답자들이 1) 취미, 2) 무언가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것, 3)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이 3가지가 얼마나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응답한 값의 평균을 계산한 다음,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는 정도와의 차이를 계산하여 변수를 구성하였다. 이 값이 클수록 응답자는 앞의 3가지 비물질적 의미에 비해 물질적 풍요의 의미를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값의 도시별 평균은 아래 <그림 4>와 같다.

<그림 4> 물질적 풍요가 의미를 주는 정도와 취미·학습·경험이 의미를 주는 정도의 차이

그림에 따르면 도쿄와 서울이 15개 도시들 중 물질적 풍요를 상대적으로 중요시하는 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물질적 풍요를 중요시하는 절대적 정도는 서울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높기는 하지만 (15개국 중 4위)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미, 학습, 경험과 같은 항목들이 삶의 의미에 기여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15개국 중 12위), 양자가 같이 고려되면 그 격차가 전체 2위로 높게 나타난다. 즉 한국, 보다 정확히는 서울의 경우 사적 영역 중 비물질적 영역에서 의미를 얻는 정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물질적 풍요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결론

설문에 기초한 국가 간 비교는 번역에 따른 뉘앙스의 차이가 존재하고 각 국가의 시민들이 평균적으로 질문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가 체계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기에 조심해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본 조사는 전국 단위 조사가 아니라 도시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해석에 유의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조사자료를 다각도로 살펴본 결과 서울은 다른 몇몇 동아시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에 있어 물질적 부분과 건강을 상대적으로 중요시하는 패턴을 보이고 사적 생활세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타 부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얻지 못하고 있음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물질적 영역 또한 경제적 자원이 충족되어야만 향유할 수 있다는 사고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국가 간 차이는 문화적 차이를 바탕으로 하므로 어떤 절대적인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영역에서 삶의 의미를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때 더욱 풍요롭고 번영(flourishing)하는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삶의 의미의 원천이 풍부할수록 한국 사회의 개인들이 사회에 대해 긍정적인 감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기에 이러한 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3권 35호 (2023년 7월 24일)

Tag: 삶의의미,국제비교설문,가치조사,한국,물질주의

이 글과 관련된 최신 자료

  • Pew Research Center (2021). “What Makes Life Meaningful? Views from 17 Advanced Economies”
    https://www.pewresearch.org/
  • King, L. A., & Hicks, J. A. (2021). “The science of meaning in life”. Annual review of psychology 72, 561-584.
  • Lee, M. A., & Kawachi, I. (2019). “The keys to happiness: Associations between personal values regarding core life domains and happiness in South Korea”. PloS one 14(1), e0209821.

저자소개

임동균(dongkyunim@snu.ac.kr)

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겸무연구원

 

주요 논문 및 저서

“가치의 재구성,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전환.” 『세븐 웨이브: 팬데믹 이후, 대한민국 뉴노멀 트렌드를 이끌 7가지 거대한 물결』 (21세기북스, 2022)
“누가 좋은 국민인가?: 시민적 의무에 대한 인식의 구조 연구.” 『조사연구』 22(2), 2021.
“Revisiting the “Trust Radius” Question: Individualism, Collectivism, and Trust Radius in South Korea.” Social Indicators Research 153(1), 2021.
“Similar but Different: Uncovering the Multiple Pathways to Life Satisfaction in Asia.” Journal of Asian Sociology 49(2), 2020.